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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 충성 (단 6:1-4,딤후 2:1-7)
오늘은 성령의 일곱 번째 열매인 '충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개역성경에 충성으로 번역된 원어는 '피스티스'로 믿음으로 보통 번역합니다. 표준새번역은 '신실'로, 공동번역은 '진실'로 번역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은 대부분은 faithfulness로 번역하였습니다. '충실' '성실' '신의'란 뜻입니다. 이런 모든 뜻을 담아서 '충성'이라고 하면, 충성이란 믿을만하고 자기 일에 열심을 다한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충성' 혹은 '신실함'이 성령의 열매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지 못하며 믿을만하지 못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킬 때 비로소 우리가 신실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한결 같은 마음과 태도
첫째로 충성은 한결같은 마음과 태도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잘 지키고 변함 없이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계약을 맺으셨는데 그 계약을 끝까지 잘 지킬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나 조령모개(朝令暮改)란 말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하고 변덕이 심한가를 말해 줍니다. 마음에 결심한 것이 사흘이 못 가서 변하고, 아침에 만든 법이 저녁에 바뀌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한결 같지 못함을 뜻합니다. 이렇게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성실하지도 못합니다. 기분이 내키면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는 사람에게 책임 있는 일을 맡기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쉽게 마음이 변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기보다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고 너무 쉽게 그것을 포기하곤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실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볼 수 있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먼 훗날 이루어질 약속에 대해서는 기다릴 마음조차 갖지 않는 짧은 생각이 우리를 신실하지 못한 인간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훈련시키시려고 멀찍이 약속을 두시고 그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고 나가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셨지만 백 세가 되도록 아들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변치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아브라함이 사라의 계집종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존경받는 아브라함조차도 하나님의 약속에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백 세에 아들 이삭을 낳으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었으며, 그와 대조되는 인간의 신실하지 못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다니엘서에 보면, 메대 왕 다리오가 다니엘을 세 명의 총리 가운데 하나로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였습니다. 포로 출신으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 다니엘을 시기하여 사람들이 그에게서 허물을 찾고자 하였으나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한결 같이 공직생활이나 개인생활에 신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의 기도의 생활을 보면서 그것을 트집을 잡고자 법을 만들고 그 법으로 다니엘을 사자의 굴에 던졌습니다. 다니엘이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그의 기도의 생활이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런 기도의 생활이 포로로 잡혀왔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분주한 총리가 되었을 때도 변함이 없었으며, 지금 사람들이 법을 만들어 그를 모함하려고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기도의 생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한결같은 신앙,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은 그의 충성됨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신앙 생활도 이런 신실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루 이틀이나 일 이년 믿어서 어떤 결론이 나는 생활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꾸준히 노력하면서 기다리는 생활이기에 신실함과 끈기가 없이는 중도에서 그만 둘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에게 신실한 마음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열매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20년 가까이 성경읽기표를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리고 그것을 따라 성경을 하루에 두 장씩 읽도록 하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꾸준히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신실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해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매일 성경 읽는 것이 당연한 생활임에도 그것을 몇 십년 동안 꾸준히 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바로 인내가 필요한 일이기보다는 신실함이 요청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 역사가 91년이 되었습니다만 지난 90여년 동안 여러 가지 사회적 정치적 변동과 더불어 교회 안에도 파란곡절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교인들이 나오면서 이 교회가 오늘까지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신실함이 바로 이 교회를 오늘 여기에 있게 하였습니다. 목사가 어떤 사람이 오든 개의치 아니하고 한결 같이 교회에 출석하고 봉사하는 교인들에 의해서 이 교회가 지탱되어 왔습니다. 성령의 열매인 '신실함' '충성심'을 가진 교인들이 평생 이 교회를 지켰기 때문에 험난한 역사를 헤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런 '신실성'을 바탕으로 한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오늘 주어진 과제입니다. 이리 저리 흔들리지 않고 충성되게 한 교회에 출석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고 칭찬하시면서 존귀와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어떤 여건 속에서도 변함 없는 믿음
다음으로 '충성'은 어떤 조건,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함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함을 뜻합니다. 특히 고난과 역경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함을 뜻합니다.
꿈의 사람 요셉의 생애가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그가 오해를 받아 종신수로 옥에 갇혔지만, 거기서도 그는 성실한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고, 변함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고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영광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고, 하나님의 하시는 놀라운 역사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가지면서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고 그 민족을 구원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신실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바로 극한 상황에서 잘 드러납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박해 속에서 그 신앙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순교의 자리에 나갈 때 끝까지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을 맞는 순교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 죽음이 두려워 배교하는 자도 많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실' 혹은 '충성'은 인내와 관계가 있습니다. 오래 참음이 성령의 열매임을 앞서 보았습니다만, 또 다른 열매인 '신실'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내를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앞으로 전진하며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 가는 삶의 자세가 '신실함'이라고 하겠습니다.
고난 당할 때 믿음을 지키는 것과는 반대로 가난할 때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오히려 부자가 되고 혹은 영광의 자리에 오를 때에 그 믿음이 변하고 그 마음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왕이었던 사울은 처음에는 참으로 겸손하여 사람들과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는데, 점차 왕권에 대한 미련과 욕심이 생기면서 그는 처음에 가졌던 겸손함을 잃었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마침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그런 예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목사들이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는 정말 겸손하게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온 힘을 다 기울여 목회를 하다가 교회가 성장하면서는 권위주의에 사로잡히고 교만하여져서 존경을 받지 못하면서 물러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장로들도 처음 임직 받을 때는 참으로 겸손히 교회를 섬기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섬기는 자가 아닌 섬김 받는 자가 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들이 그렇게 변하는 것은 신실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떠나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실함은 겸손함과 관계가 있습니다. 처음 가진 겸손함을 끝까지 가지는 것이 곧 신실함이라고 하겠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물 한 모금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물 한 모금 주기 어렵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심판의 비유에서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 옷가지 하나 주었느냐 안 주었느냐에 따라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았고,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영원한 불에 들어갔습니다. 이 비유에서 물이나 밥이라는 물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줄 수 있는 겸손함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중요한 심판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오늘 물질문명이 휩쓰는 세계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성령의 열매인 신실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이 바로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사명이며 목표입니다.
뚜렷한 목표를 향한 삶
끝으로 충성은 뚜렷한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삶의 자세를 뜻합니다. 오늘 읽어 드린 디모데후서 2장 말씀에 보면, 세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첫째는 군인의 비유이고, 둘째는 경기하는 자의 비유, 셋째는 농부의 비유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어떤 사람이 충성스러운 일꾼인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군인의 비유에서는 군인들이 자기의 생활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데 그 사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충성이란 바로 우리 자신에게 매어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려면 먼저 분명한 목표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의 통치를 이 땅에 실현함이 곧 우리 신앙의 목표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알고 그 목표를 향해 나갈 때 진정으로 충성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이 목표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 데 있습니다. 교인들이 그냥 교회만을 위하여 충성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목표입니다. 교회를 위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교회성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룸입니다.
둘째 비유에서는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경기하는 자가 목표를 바로 알고 규칙을 지켜서 달리지 않으면 실격되고 마는 것처럼, 우리 크리스찬은 항상 분명한 목표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달려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올바로 행하지 않으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법과 그 말씀에 충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성된 종으로 인정하십니다.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성경의 말씀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새롭게 바뀐 규칙을 모른 채 뛰다가 실격을 당한 선수처럼 낙오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충성된 일꾼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성령께서 깨우치시는 역사의 의미와 그 역사를 바르게 보게 하는 성경말씀을 올바로 깨우쳐야만 합니다. 한국 교회는 변화된 역사와 상황을 올바로 읽지 못한 채 옛 생각만 하고 있다가 부끄러움을 당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변화하는 역사를 올바로 읽으면서 그 시대 상황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자신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비유는 농부가 가을의 수확을 위해 봄부터 수고하는 것에 우리의 믿음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농사일은 충성스러운 농부가 아니고서는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없습니다. 땅은 농부가 땀 흘린 만큼 그에게 보답을 합니다. 믿음의 생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한 만큼, 우리가 봉사한 만큼, 우리가 희생한 만큼 믿음은 자랍니다. 땀 흘리는 농부처럼 정직하게 성실하게 주어진 사명과 과제를 감당할 때 우리는 충성된 종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하기 쉬운 작은 일에서부터 충성을 할 때 마침내 큰 일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시기를 "가장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하고 가장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눅 16:10)고 하셨습니다.
칼라일이 어느 날 귀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인간 세상의 번민과 무상에 대한 해결을 요청하는 글이었습니다. 그에 대하여 칼라일은 다음과 같이 회신을 보냈습니다.
"당신의 반짇고리를 잘 보십시오. 실이 엉클어져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옷장을 열어 보십시오. 정리가 잘 안되어 있을 것이니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톨스토이의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최선을 다하여 선을 베푸는 일이다"
지금 주어진 작은 일들에 신실하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신실하게 일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오늘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되지 못한 사람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리인 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인가 작은 일이라도 봉사하십시오. 오늘을 놓치면 여러분의 신앙은 그만큼 열매가 작아질 것입니다. 하루해를 아껴 농부가 부지런히 일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주어진 시간들을 아껴서 봉사하고 예배하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삶 속에 크고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인 '신실함'이 맺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의 열매인 '충성'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한결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며, 어떤 환경 어떤 여건 속에서도 처음에 배운 겸손을 잃지 않음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종으로 부름 받았다는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실하게 땀 흘리며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임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성령의 열매인 '충성'과 '신실'이 여러분의 삶 속에 아름답게 맺혀서 "네가 죽도로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유경재목사님 설교자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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