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기도

여리고와기도작전 (수6:1-11)

by 【고동엽】 2022. 8. 7.
목록가기
 
 

여리고와기도작전   (수6:1-11)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와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동안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번 돌며 제사장들을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을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 하시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지니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여호와의 궤로 성을 한번 돌게 하니라 무리가 진에 돌아와서 진에서 자니라-여호수아 6 : 1 - 11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의해서 구출되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인도로 400여년 동안의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의 생활을 청산하고 홍해를 건너 출애굽했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자 애굽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난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속박과 억눌림 속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 완전한 독립, 완전한 해방을 맞이하여 평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한 첫 작업에 불과했습니다. 이제부터 정신을 차려야 하고, 용기를 내야 하며, 담대해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배고픔을 당하기도 했고, 추위에 떨어 보기도 했으며, 때때로 죽음의 위기를 넘겨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고달플 때는 애굽을 생각하기도 했고, 자기들을 인도한 모세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나안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갖은 방황과 고난 끝에 가나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실망하고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향과 목표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새로운 지도자를 준비하셨다가 세우셨습니다. 그가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정말 모든 끝이요 완성인 줄 알았습니다. 목표를 달성했고 목적지에 도착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갔어도 끝은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또 싸워야 했습니다. 가나안에 일곱 족속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곱 족속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멸하여 점령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나안은 거져 얻은 것이 아닙니다. 싸워서 얻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갔어도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멸해야만 완전히 소유하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거져 얻은 것을 귀하게 여길 줄 모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땀을 흘려서 번 돈은 귀하게 여기지만 거져 얻은 돈은 쉽게 사용하게 됩니다. 가나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워서 얻은 땅이기에 더욱 귀하고 소중한 땅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여리고라는 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전에 봉독해 드린 본문을 통하여 "여리고와 기도작전"이라는 제목으로 피차 말씀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성문은 닫혔다

광야의 시련을 극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백성들은 이제 모든 수고와 고통 그리고 시련이 끝난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앞에는 여리고가, 뒤에는 요단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광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삶의 의욕을 상실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전세를 가다듬어 막상 싸우려고 보니 여리고 성은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본문 1절을 다시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여리고 사람들은 성벽을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리고는 실제로 그렇게 트지 않은 도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성벽을 아주 두껍게 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문을 굳게 닫은 이유도 성문만 굳게 닫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도 이와 같습니다. 오늘 세상도 문들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어떤 문이 닫혀 있습니까?

첫째로 집의 문들이 닫혀 있습니다. 아파트의 벨을 눌러도, 주택을 돌아다녀도 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특별히 아파트 지역은 경비실을 통과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경비실부터 문이 닫혀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지 문만 닫혀 있고 낮에는 집에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둘째로 문만 아니라 마음의 문도, 눈도 닫혀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말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할 것 같으면 말문조차 열지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는 부모 자식간에도, 형제 자매간에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조금 여는가 싶더니 또 막혀 있습니다. 외벽을 뚫었으나 내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여리고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의 손에 맡겼다.

여리고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손에 붙였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다"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의 벽이 두껍고 문이 단단하게 닫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붙이셨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것은 곧 승리를 보장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영혼을 맡기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를 맡기셨습니다. 요나서 1 : 2에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실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획하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요나로 하여금 돌이키게 하시고 니느웨로 가게 하셔서 결국 니느웨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우리에게 붙이셨으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욥기 23 : 13 이하에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바울은 어려움이 있을 줄 알고 가지 말라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더 믿고 따랐습니다. 결국 항해하던 중 유로굴라라는 광풍을 만나 파선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의 여망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저들을 바울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24절에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하나님의 사자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십 사일이나 표류한 이백 칠십 육 명의 선원들을 먹였고, 파선의 위기에서 건져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들을 맡기셔서 이와 같은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영혼들을 맡기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웃의 영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은 물론 더 나아가 소련, 북한, 중국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반드시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사실 전도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닫았다 하더라도 이미 가지고 있는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하면 전에 가지고 있던 가치를 버리게 됩니다. 복음에는 큰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우자.

하나님께서는 여리고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이시고 그 성을 점령하도록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을 성을 돌라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절에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간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계속해서 5절에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일 때에는 백성들은 다 큰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들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을 합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였지만 결코 법궤를 앞서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로 하여금 법궤를 메고 앞서게 해 놓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여러분! 법궤를 앞세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법궤 안에는 돌 비가 들어 있었고, 만나가 들어 있었으며,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부활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말합니다. 돌 비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돌 비는 곧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말합니다. 그리고 만나는 생명의 양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법궤를 앞세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웠다는 것이요 부활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앞세웠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앞세울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 의지하고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면 동일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힘이나 지식, 경험 그리고 능력을 앞세우기 보다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앞세워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그대로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내 생각, 내 의지, 내 경험보다도 말씀 그대로를 믿고 앞세우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성령께서 능력을 행사하십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돌았다'는 것은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를 하되 때로는 조용하게 하기도 하고, 크게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 주위를 돌던 백성들은 나팔을 불기도 하고, 때로는 큰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조용하게 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난 뒤에 백성들이 함께 소리를 지르니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20절에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결국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에 힘쓰면 맡겨주신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워야 할 줄 믿습니다.

4. 그리하면 승리하고 점령하리라.

하나님은 여리고를 맡기시기만 하는 분이 아니라 무너지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를 맡겼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싸워 이겨서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믿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은 하나님께서 해결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라는 큰 장벽을 만났던 것처럼 큰 고난이나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상황이든지 사람이 앞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판단이 앞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론이 앞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끝내는 정복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끝이 아닙니다. 예수만 믿으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인 줄 생각하셨을 줄로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오고, 환난이 옵니다. 광야를 걷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요단을 건너기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리고와 같은 큰 장벽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 것은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점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승리하는 한 주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