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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설교 : 고난은 유익중의 유익 (시119:67)

by 【고동엽】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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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유익중의 유익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67

밤에 남산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그렇게 아름답고 평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내려와 보면 싸움도 있고, 시기도 있고, 고통의 신음소리도 있습니다. 가정마다 한숨 소리가 있고 염려와 걱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며 살아갑니다. 나만 고난당하는 것 같고, 나만 문제가 있는 것 같고, 나만 잘 안 되는 것처럼 생각되어질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은 문제도 없고, 평안하며, 모든 것이 잘 되어지는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크든 작든 고난은 다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누구나 다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행복을 물질적이고 물량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가진 사람이 행복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없기 때문에 고난당한다 할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고난을 싫어합니다. 아무리 유익이 많다 하더라도 고난을 싫어합니다. 고난이 없는 곳은 오직 하나님 나라 뿐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를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배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았습니다(19). 그는 고난을 몰랐을 것입니다. 걱정도, 염려도, 불안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헌 데를 않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이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가 그 헌 데를 핥힘을"당했습니다(20-21). 한 마디로 그의 생애는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그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고난 속에 산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행복한 삶을 누리고, 반면에 이 땅에 있는 동안 호화로이 연락하며 산 부자는 지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25절에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살았을 때에 고난당하였으나 죽어 연락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살았을 때에 매일 연락하는 삶을 살았으나 죽어 고난당하는 자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언제나 고난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고난 없는 행복한 삶을 누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고난 속에 있습니다. 경제적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고난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양심수를 석방한 일이 있습니다. 고난 속에 있다가 고난 밖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권력을 가지고 호화롭게 살던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고난 없는 삶을 살다가 고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고난은 유익을 가져다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고난이 주는 유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고난은 고난을 이기게 한다.

나는 배고파 보았기 때문에 배고픔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헐벗어 보았기 때문에 헐벗음도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의 체험이 있는 자는 고난을 이깁니다. 더위는 더위를 이깁니다. 더위 속에서 산 사람은 더위를 이깁니다. 추위 속에서 산 사람은 추위를 이기고요. 작년 여름에 브라질 쌍파울로에서 집회를 인도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참 더울 때 그들은 겨울을 만났습니다. 그 때의 온도가 섭씨 8도였습니다. 그 날 밤이 지나고 그 다음 날 뉴스를 들으니 영상 8도에 세 사람이 얼어죽었다는 것입니다. 더운 나라의 사람들이 추위를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견디지 못해서 얼어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위도 경험하고 추위도 경험하니까 어디다 갖다놔도 끄떡없습니다. 고난은 고난을 이깁니다.

6.25 사변은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입니다. 그렇게 참혹하고 비참했습니다만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물론 말할 수 없는 피해와 손해를 입었지만 오늘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저는 6.25사변의 증인입니다. 그 때 저도 군인으로 있으면서 총탄을 맞아 피를 흘리며 사선을 넘는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공산당이 뭔지를 압니다. 전쟁이 무섭다고 하는 것을 압니다. 전쟁을 치루어 본 사람이 전쟁을 압니다. 그 고통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어떤 고난이 앞에 놓인다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난은 고난을 이깁니다.

로마서 5장 3절 이하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만들어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참을성이 없습니다. 더운 것도 못 참고, 배고픈 것도 못 참고, 힘든 것을 못 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배고파 본 일이 없기 때문이고, 힘든 일을 경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힘든 일을 경험해 본 사람은 힘든 일을 잘 합니다. 아파 본 사람은 아픔을 이기고, 슬픔을 경험한 사람은 슬픔을 이깁니다. 이렇듯 고난당해 본 자는 고난을 이깁니다.

2. 고난은 감사하게 한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욘1:2).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도망가다가 예측하지 못한 풍랑을 만나게 되고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제비를 뽑은 결과 그 풍랑을 만난 원인이 요나에게 있음을 알고 그를 바다 가운데 집어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합니다. 요나서 2장 2절에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고 했습니다. 7절에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여호와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9절에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고 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감사하며 서원을 갚겠다고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육지에 토해냈습니다. 고난은 감사하게 합니다. 형통했을 때보다 곤고할 때에 더 진한 감사가 나옵니다.

요셉은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죠. 그 형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뻔 하다가 애굽으로 팔리게 되었죠. 고통스러운 노예의 생활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진실하게 살려고 할 때에 애매히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죠. 그러나 그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 늘 감사하고 믿음 속에 인내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 하나는 므낫세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모든 고난을 잊어버림'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에브라임입니다. 그는 '창성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했더니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잊게 하셨던 것입니다. 고난은 감사를 낳습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고난은 삶의 참 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한 번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음식의 그 맛을 알게 됩니다. 매일 좋은 음식을 먹으면 그 좋은 음식 맛을 모릅니다. 그러나 맛없는 음식을 먹게 되면 그 음식의 참 맛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외국 여행을 다녀본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것입니다. 우리의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파본 사람은 건강할 때의 축복을 압니다.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실패한 사람은 성공의 축복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생의 가치도 고난 속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늘의 별이 깜깜한 어두움 속에서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처럼 고난 속에서 참 삶의 가치가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고백을 했습니다(롬8:18)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이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오는 8월에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데, 너무 불안해하지 맙시다.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그것을 통해 반드시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떨어지는 경험을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것만이 꼭 좋은 것이라고 말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고난은 좋은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4. 고난의 체험은 축복을 가져오게 한다.

욥은 고난의 대명사입니다.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욥의 고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 고난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 고난 후에 그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욥42:10-13). 고난의 체험은 축복을 가져오게 합니다.

욥기에서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서 인생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5장 7절에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났다"고 했습니다. 형통할 때는 인생의 참된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자 인생과 고난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3장 26절에 "세상에는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고 했습니다. 7장 1절 이하에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고 했습니다.

고난의 체험없는 친구들이 욥을 조롱합니다. 고난의 체험없는 아내도 그를 비난했습니다. 2장 9절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함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고난의 체험없는 자는 체험없는 자와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고난의 축복은 고난의 체험을 가진 자만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13장 5절에서 욥이 말하기를 "너희가 잠잠하고 잠잠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고난당하는 욥을 위로하는 척 하면서 친구들이 오히려 고통을 더하여 주었습니다. 고난당하는 자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위로일 수 있습니다. 위로한다고 하는 말이 더 큰 고통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 어떤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죄가 있어서 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일단 잠잠해야 합니다. 침묵을 지키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 참으로 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19장 25절 이하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23장 10절 이하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런 믿음으로 고난을 이겼을 때에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축복은, 첫째로 42장 5절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나님을 보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던 그가 이제 구체적으로 그를 만나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둘째로는 42장 10절입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전에 있던 소유보다 갑절이나 더 받았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장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당하십니까? 잠시 불평하고 원망할 것을 뒤로 미루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일을 바라보며 참고 인내하는 성도가 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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