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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주는 3대 축복 (에스겔 11장 14-21절)

by 【고동엽】 202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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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주는 3대 축복  (에스겔 11장 14-21절)

< 자신의 문제에 정직하십시오 >

작년 말, 미국 교계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이크 존스(Mike Jones)라는 남창이 콜로라드 스프링스에 있는 새 생명 교회(New Life Church)라는 14000명 교회의 담임목사였던 테드 해거드(Ted Haggard)가 마약을 하고 호모였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처음 며칠 동안 테드는 마이크를 알지도 못한다고 했지만 매스컴의 추적조사로 결국 마약과 호모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5중 복음을 믿고 성령 운동을 하는 성령파 목사였고, 뉴에이지 운동의 총본산이자 목회자들의 무덤으로 불리던 콜로라드 스프링스를 미국 개신교의 총본산처럼 만든 목사였습니다. 또한 그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전미 복음주의 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의 총재였으며, 2005년에는 타임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25명의 목회자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동성결혼과 호모 행위를 제일 앞서 반대했었습니다. 그의 비행을 폭로했던 마이크 존스는 3년 동안 한 달에 한번 정도 관계하면서도 해거드의 정체를 몰랐다가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해거드가 말로는 기도와 성령을 내세우고 호모 행위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뒤에서는 호모로 사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14000명의 성도와 수많은 사람들이 속고 사는 것 같아서 폭로를 하게 되었다고 폭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결국 그 일로 해거드는 교회를 떠났고, 복음주의 연합회의 총재 자리도 물러났으며 자신의 아내와 5자녀, 교회, 그리고 미국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회에도 큰 해악을 미쳤습니다. 그의 책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권 출판되었고, 몇몇 목회자는 그의 책을 극찬하며 그의 교회를 교회성장의 모델로 삼기도 했었습니다.

그처럼 중보기도와 영적 전쟁을 강조하고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장했던 그가 실족하는 것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성령 충만’이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꼭 성령 충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믿는 사람이 그래? 어떻게 목사가 그래?” 당연히 그런 회의와 탄식이 생기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위선과 잘못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성도가 나쁜 삶으로 빠져듭니까? 왜 어떤 것이 나쁜 줄 알면서 그것을 끊지 못합니까? 해거드는 폭로 며칠 후, 주일아침 9시와 11시 예배 때에 교회에서 읽혀진 그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고 보여주려 했던 삶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그렇게 살려고 저는 그 메스껍고 어두운 삶과 끊임없이 투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에는 제가 너무 부족한 존재였습니다.”

그 말대로 그는 진실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가 마약과 호모 행위를 버리지 않으면 그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이 미웠고, 그런 자신을 이겨내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는 그 죄에 속박된 상태였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속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해거드처럼 마약과 호모 행위를 하지 않겠지만 우리에게도 다른 면에서 영혼을 침몰시킬 수 있는 수렁이 참 많습니다. 그런 자신의 문제에 정직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 정직하면 사는 길이 열리고, 자신에 대해 정직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심각한 어려움이 다가올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그런 내적인 투쟁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7장 21-24절 말씀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이런 투쟁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우리는 좀더 자신에게 정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 힘만으로는 죄와 사단의 속박을 이길 수 없습니다.

< 성령이 주는 3대 축복 >

어떻게 우리는 내적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성령님이 끊임없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3가지만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죄로부터의 자유(Liberation From Sin)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인자야 예루살렘 거민이 너의 형제 곧 너의 형제와 친속과 이스라엘 온 족속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 하였나니.”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부가 바벨론에 끌려갔을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 남았던 사람들은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을 은근히 정죄하며 그들은 죄가 있어서 끌려갔고 자신들은 비교적 의롭기에 끌려가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 중에서도 다니엘과 같은 의로운 사람도 있었고, 끌려가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증한 죄인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6-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이 진실한 예배를 드리면 그 예배를 받아주시고 결국 원래 살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돌아간 후에 어떤 일이 생깁니까?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찌라.”

이 구절에서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은 은밀한 곳에 숨겨둔 우상을 뜻하지만 크게 말하면 마음속에 있는 죄를 뜻합니다. 그런 죄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이 임하실 때 우리는 깊이 숨겨진 죄를 버리게 됩니다. 그때 그 죄가 더 즐겁지 않게 되고, 그 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사람이 죄의 속박과 자극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얼마 전, 유명한 여배우인 니콜 키드만(Nicole Kidman)과 결혼한 컨츄리 뮤직 스타인 키쓰 어번(Keith Urban)이 알코올 중독자 재활치료 프로그램으로 들어갔습니다. 2005년에 어번은 그 해의 최고 연예인이요 최고 남자가수 상을 받았고, 2006년에도 최고 남자가수 상을 다시 받았지만 그는 그 상을 재활센터에 있을 때 받아야 했습니다. 그가 부른 최고의 노래가 “더 좋은 삶(Better Life)이란 노래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그 노래를 부르면서 ‘더 좋은 삶’을 꿈꾸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알코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처럼 사람은 부와 명예와 가정을 다 잃어버리는 줄 알면서도 어떤 속박에서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떻게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성경과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그것은 오직 성령이 임하실 때만이 가능하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2. 내적인 변화(Inward Transformation)

본문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이 말은 성령께서 임하실 때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변화는 행복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의 변화를 추구하고, 수많은 종교와 철학과 도덕은 마음을 변화시켜 보려고 수많은 길과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마음의 변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변한 것 같아도 변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새롭게 창조될 정도까지 되는 마음의 창조적 변화는 오직 성령님만이 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51편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정한 마음을 창조해주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상처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상처로 느껴질 일이 참 많습니다. 목사가 악수하면서 딴 사람을 보는 것도 상처가 되고, 출장을 갔는데 주보에 광고를 안 한 것도 상처가 되고, 헌금자 명단에 이름이 빠진 것도 상처가 되고, 봉사한 것을 광고시간에 광고하지 않은 것도 상처가 되고, 제직 명단에 이름이 실수로 빠진 것도 상처가 됩니다.

반면에 성령님이 정한 마음을 새롭게 창조해주셔서 마음의 변화를 이루면 똑같은 상황을 상처의 재료로 삼지 않고 감사의 재료로 삼게 됩니다. 누군가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시선을 주면 부담스런 시선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고, 헌금자 명단에 이름이 빠지면 그럴수록 하늘의 상급이 커진다고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그런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 살면 삶이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음의 변화를 이루려고 사람들은 수많은 도덕과 윤리, 그리고 종교와 철학을 만들었지만 그런 것들로는 진정한 마음의 변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마음의 변화는 매일 매 순간을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드리고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살 때 이루어집니다.

축복 중의 축복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 되려는 마음입니다. 나누려는 마음은 사단이 주는 마음이고, 하나가 되려는 마음은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사람을 하나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더하기 표(+)’입니다. 즉 십자가는 ‘하나 됨’의 상징입니다. 그처럼 십자가를 지고 하나 되려는 것은 가장 복된 일이고, 반면에 사람의 축복을 가장 저해하는 것은 시기와 질투와 분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교단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신학과 중점목표와 교회정치 체계가 달라서 교단이 생기는 것은 다양성의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문제는 많은 한국 교단이 단순히 욕심과 시기와 질투 때문에 생겼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 교회 중에서 가장 시기와 질투와 분열이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혼자는 참 잘합니다. 머리도 좋고, 열심도 있으니까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둘이 모이면 싸우기 시작하고, 셋이 모이면 갈라집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우리나라가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선교대국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18장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하나가 되어야 기도 응답이 있고, 사는 길도 열립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려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에 욕심이 있으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영화 ‘대부’를 보면 어느 날, 7개 마피아 갱단 두목들이 만나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결의했습니다. 그리고 형제의식을 위해 두목들이 손가락에 피를 내서 컵에 모으고, 그 피를 섞어 돌려 마시면서 싸우지 말자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얼마 후, 그들은 사소한 일로 충돌해서 결국은 다 죽고 두 사람만 살아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불의한 마음을 가진 죄인은 하나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의 변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는 길은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붙잡아주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3. 영적인 능력(Spiritual Empowerment)

본문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사람은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만들뿐만 아니라 우리를 ‘능력 있는 존재’로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만 가지고 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짜 능력은 우리의 약함을 인정할 때 주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대단히 강하고 능력 있는 존재인 줄 알았지만 하나님이 끊임없이 그를 약하게 만드셨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약한 존재로 살면서 오히려 가장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9-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우리는 우리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겸손히 요청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86년에 입사하고 첫 출근 얼마 전에 중학교 은사 선생님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때 은사 선생님은 저에게 세 가지를 꼭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일찍 출근하라. 둘째, 뒤에서 험담하지 말라. 셋째, 기타를 잘 치니까 직장 생활의 윤활유 역할을 하라.”

저는 그 말씀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회사 전체에서 항상 1등으로 출근했고 뒤에서 다른 직원들에 대해 험담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직장에서 기타를 치고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항상 웃는 표정으로 윤활유 역할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처럼 많이 노력했지만 어느 때는 한번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내 밑으로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한 여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맡은 일을 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뒤처리는 내가 담당해야 했습니다. 아주 바쁜 때에도 저녁 6시가 되면 그냥 퇴근했습니다. 그 다음날까지 외국인과 회의할 회의 서류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가버리니까 내가 대신 밤새도록 손가락 하나로 톡톡 영문 타이프를 친 적이 꽤 많았습니다. 또한 업무시간에 개인적인 전화를 한 시간씩 했습니다.

1년쯤 지난 어느 날 그 근무태도에 쌓인 감정이 나오는데 참다못해서 책상을 한 번 세게 탁 치면서 화를 냈습니다. 다음날 그 소문이 회사에 순식간에 쫙 퍼졌습니다. 그렇게 화를 낸 후유증이 한 달 이상을 갔습니다. 그때 분노하면 분노한 사람이 더 마음이 상한다는 원리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별 수 없습니다. 목회자도 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참는다고 하지만 사람의 참음이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언젠가는 터집니다. 그렇게 오래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터질 때는 더 겁이 납니다. 평소에 부드러운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섭고 그날로 많은 것이 끝입니다.

그처럼 사람의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사람의 노력이 아닌 신적인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도덕과 윤리와 철학으로 주어지지 않고 성령의 임재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 때 주어집니다. 능력은 소유에서 오지 않고 관계에서 옵니다. 능력은 자기 의지를 하나님께 드릴 때 주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영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 우리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

얼마 전, 존 사라시노(Jon Saraceno)가 한때 가장 유명한 헤비급 복서였던 마이크 타이슨(Mike Tyson)과 인터뷰를 하고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에 이런 기사를 썼습니다. “39세가 된 그는 퇴폐적인 삶에 빠졌다가 지금은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퇴폐적인 삶은 그에게 인간관계의 상처, 재정난, 그리고 악명만을 남겼습니다. 그의 불안감은 그의 전설적인 KO만큼 컸습니다.”

타이슨은 여섯 살 자녀를 둔 채 이혼했습니다. 그는 저속하고, 난폭하고, 화를 잘 내고, 방탕하게 살았던 자신의 비참한 생활을 한탄했습니다. 그 기사에서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홀로 죽을 겁니다. 저는 정말 비참한 존재입니다. 저는 낭비된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실패자였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자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새롭게 살고 싶습니다.”

아마 경중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에게도 타이슨과 같은 삶이 있습니다. 가끔 죄를 짓고 속박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타이슨처럼 비참한 고백도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에 대해 실망하지 말고, 그런 속박의 상태가 우리 삶의 최종 결말인 것처럼 생각하며 포기한 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얼마든지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성령이 주는 3대 축복인 ‘영혼의 자유, 마음의 변화, 세상을 극복하는 능력과 같은 놀라운 축복을 사람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께 우리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변화될 수 있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이제 끝났다!”고 선언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제 시작이다!”라고 선언하시고 놀라운 축복으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찬송가 405장을 지은 존 뉴톤은 젊었을 때 노예상인이었습니다. 원래 그의 어머니는 경건한 크리스천으로 그가 설교가가 되도록 기도했지만 그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장인 아버지를 따라 선원이 되어 아프리카를 다니며 노예 매매를 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탄 배가 무서운 폭풍에 의해 박살났습니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의 형상(The Imitation of Christ) 을 읽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노예제도의 반대자가 되었고, 점차 그는 ‘변화된 늙은 선장(old converted sea captain)’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설교하며 찬송가를 쓰다가 마침내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담은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라는 위대한 찬송 가사를 썼습니다. 그는 그 찬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저와 같은 쓰레기도 구원받았다는 그 소리가 얼마나 감미로운지 모릅니다. 저는 한때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한때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봅니다. 저의 심령에 두려움을 가르쳤던 것은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도 은혜였습니다. 제가 처음 믿었던 시간에 그 은혜가 얼마나 가치 있게 나타났는지요.”

그가 죽을 무렵, 그는 기억력을 거의 잃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의 기억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가지만은 기억합니다. 하나는 제가 놀라운 죄인이라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놀라운 구세주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이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을 사상 최대의 축복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가망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키스 어번도 변화될 수 있고, 타이슨도 변화될 수 있고, 우리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영접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살면 우리와 같은 죄인도 하나님은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항상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대 자유를 노래하며 사는 복된 심령들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이한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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