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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 (마태복음26:36-46)
영국의 한 광고회사가 큰 상을 내걸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퀴즈를 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런던까지 가장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워낙 상품이 컸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응모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비행기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차를 타고 오다가 어느 시점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새벽에 지름길로 승용차를 운전하고 오면 가장 빠르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고, 실제 시간을 재어보면서 서로 자기들의 아이디어가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런던은 영국본토의 가장 남쪽에 자리하고 있고, 에든버러는 북쪽 스코틀랜드에 자리하고 있어서 기차로 가면 약 6시간 거리가 되고, 비행기로는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물론 자동차로 가면 하루는 충분히 가야하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결국 상을 탄 사람의 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무척 가깝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계산법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인생을 누구와 함께 하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읽은 성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성경은 그곳을 낙원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인류에 죄와 저주가 들어오고 그 낙원에서 쫓겨나 미움과 고통과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아님으로 하나님은 그 목적을 다시 회복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에게 십자가를 짐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우리의 있을 곳 영원한 영광의 천국까지 예비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위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마침내 청국을 다 준비하시면 다시 세상에 오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에서 이루어진 일을 전해줍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 날 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최후의 만찬을 하셨습니다. 만찬 후에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함께한 제자들에게 아주 충격적인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이 다 각각 말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35)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에 이르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36)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38)
그리고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와서, 자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40)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두 번째 기도하시고 다시 와서 자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고,
다시 가서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와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자고 쉬어라. 보아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린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46)
1.이 말씀에서 중요한 단어가 하나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함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별히 “주님과 함께” 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고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제안하신 말씀이 바로 “함께”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와 함께 인생을 사느냐에 따라서 그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함께 가자하시는 예수님의 요청을 봅니다. 이 말씀을 얼핏 보면 십자가를 지시고, 끝까지 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아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38)
주님도 인간이셨기 때문에 약한 모습을 드러내셨고, 당신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려워 제자들에게 동행해 줄 것을 원하셨던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은 인간의 동정을 구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사람의 도움을 구하실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던 날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꺾어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소리 높여 찬미하였습니다. 이 때 믿음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누가복음19:40)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실 때 가장 마지막 날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것은 에덴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해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같이 하고, 그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하여 당신의 동역자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함께 가자! 하신 것은 인류구원의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는 기쁨과 은혜를 함께 누리시기 위하여 초청하신 것입니다.
‘나와 함께 그 일을 좀 도와주지 않겠니?’ 하는 뜻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보람 있고 귀한 일인데 주님은 당신이 그 일을 이루어 가시는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 감격과 기쁨에 동참하도록 초청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여기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 애타게 찾고 계시는 주님을 도와드리러 온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놀라운 구원의 축제에 우리를 참여시키시는 크신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배 중에 헌금을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자선을 요청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재물을 바르게 관리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큰 축복 가운데 살게 하시기 위한 은총의 수단입니다.
히브리서4:16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입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작년에 몽골 후레 정보대학 학생들이 졸업여행으로 한국에 오는 것을 위해 교회들이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토록 후한 대접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기대하는 것입니까? 공연히 이렇게까지 낭비를 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도대체 속뜻이 무엇입니까?” 그 친구의 말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왜 아무런 개인적인관계가 없는 자기들에게 이처럼 많은 돈을 허비하는 것이냐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한 가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하는 것 이외에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위하여 말씀하십니다.
첫째, 예수님 계신 곳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에 가셨습니다.(36)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신 다음 들떠 있던 자제들과 무리들을 다 보내신 다음 예수님은 따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마태복음14:23)
주님은 분주한 일상에서 떠나 조용히 기도할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자신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며 사람을 재무장할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마가복음1:35) 그리고 밤이면 습관을 쫓아 겟세마네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누가복음22:39)
젊은이들이 부르는 복음성가 하나를 소개합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 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지날 때에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움직이는 기준은 오직 하나에 의해서였습니다. 구름기둥이 움직일 때였습니다. 구름기둥, 곧 하나님이 앞서가시면 그 길을 따라갔고, 하나님이 머무시면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이것이 천극으로 나아가는 순례자들의 삶입니다.
예배하는 이 곳에 오는 이유도 주님이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가 천국을 사모하는 이유도 주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게시지 않으면 천국도 천국이 아닙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지옥도 기꺼이 가겠습니다.
둘째,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6:40,41을 함께 읽어 봅시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깨어있어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채널을 주님께 맞추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채널이 맞으면 놀라운 일이 나타납니다. 라디오의 사이클이 맞아지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방송을 들을 수 있듯이, 우리의 영의 사이클이 기도로 맞추어지면 우리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야고보서4:2,3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함이니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반복해서 드린 기도의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허옵소서.”
왜 이 기도가 필요합니까? 많은 경우에 시작할 때의 마음이 도중에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불가피하게 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로마정권의 힘에 밀려서 억지로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류 구원을 위한 주님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길에서 마땅히 지불해야하는 고난이라는 대가가 너무 크고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처음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지켜나갈 수 있기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밤을 새워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상황의 많은 변수를 경험하면서 처음 마음이 바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타락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하였지만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일들 앞에서 내 자신을 스스로 무너뜨리려는 유혹을 이기기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건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깨어 기도합니다. 건강한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깨어 기도합니다. 받은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기 위하여 깨어 기도합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에 대모대열에 앞장서면서 한 때 학과를 바꿀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목회사역의 방향을 사회운동으로 바꿀까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나를 오늘까지 목회자로 붙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저에게 기도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처음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그 마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오직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3.일어나서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
마태목음26:46입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주님이 함께 가기를 원하시는 그 길은 십자가를 지시는 길입니다. 이 세상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역의 길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동참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입니다. 주님만이 가실 수 있는 길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만이 같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 초청은 위대한 특권입니다. 축복입니다.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던 날,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왜 십자가를 지는지도 알지 못하고, 억지로 그 십자가를 함께 진 일로 인하여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고, 오늘 우리까지 그 가족사를 알 정도의 복된 가정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당신 이루실 그 위대한영광의 길에 오늘도 우리를 오라고 부르십니다.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대단한 희생을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두란노에서 출판된 김학영씨의 책 “아름다운 동행”을 읽었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한 26세의 ‘김 찬’이라는 청년이 한동대학을 졸업한 다음 좋은 기업에 취직 합격을 한 다음 세계여행을 다녀오기로 하고 갔다가 스위스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의 비보를 듣고 그 아들의 시신을 찾아서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아들이 믿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실화였습니다. 자식을 가진 아비라는 동질감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살아서 아들과 함께 동행 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죽은 아들을 향하면서 아들의 진정한 아버지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됨으로 아들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으로 바뀌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들었던 여행자 보험과 아들이 든 적금을 찾아서 2억 2천만 원을 한동대학에 ‘김 찬 장학기금’으로 드렸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주님과 동행하는 참으로 행복하고 복된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오는 수요일부터 2007년도 사순절이 시작이 됩니다.
사순절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앞두고 40일 전부터 우리 죄를 참회하고 절제하며, 자기 훈련을 통하여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는 기간입니다. 특별히 오는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이라 해서 참회와 결단의 의미로 종려나무 재와 성유를 섞어서 십자가를 그리는 의식을 행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루아침에 성자가 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겠거니와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도 안 됩니다. 한걸음씩, 한 걸음씩 우리는 주님께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주님을 닮아갈 것입니다. 때로는 너무 더딘 것 같아서 낙심이 되기도 하겠지만 낙심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넘어지는 것을 걱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일어서면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다가 넘어지고 쓰러지며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중단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골고다 언덕까지 가셨고, 그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40일 동안 매일 새벽 요한복음을 읽으며 주님이 가신 길을 요한과 함께 묵상하며 갈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하루 한 끼씩 금식한 헌금을 드릴 것입니다. 5000원을 40일 동안 드려서 몽골신학대학 건축비로 사용할 것입니다.
몽골에 감리교회가 시작된 것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활발하게 선교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곳에 신학교가 4년 전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작고 초라하지만 하나님께서 몽골을 복음화 하는데 얼마나 크고 존귀하게 쓰실 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모두 2억 5천만 원이 필요합니다. 교회 예산 5천만 원을 비롯하여 북방 선교후원회에서 3천만 원, 금년 장로천거감사헌금 3천만 원, 그리고 기타헌금으로 충당하게 됩니다. 우리 전 교우님들이 하루 한 끼 5,000원씩을 500명이 참석하시면 1억원이 되고, 1,000명이 참석하시면 2억이 됩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청년들, 그리고 온 교우들이 함께 하시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2004년 금식헌금은 960만원이었고, 그 헌금은 1년 동안 결식하동 7가정을 1년 동안 도왔습니다. 그리고 2005년은 2200만원으로 지금 계속하고 있는 노숙자 만나식사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약 2만 여명이 이 식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지금도 매주 화요일 아침에는 약300여명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6년도에는 5,000만원이었습니다. 그 헌금으로 30평 채 되지 않는 작은 예배당을 을 80평의 새 건물로 이전해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하는지! 주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합시다. 해마다 금식헌금은 배가 되었습니다. 금년에도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다면 배 이상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일에 주님은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지난 주간 교회 선교부장님과 해외선교위원회장 두 분 장로님과 의료선교를 위해서 두 분 권사님이 함께 몽골을 다녀왔습니다. 여러 명의 환자들을 수술을 하고, 학교를 건축할 후레정보통신대학 내의 부지 확정과 앞으로의 운영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학교 측과의 긴밀한 협약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이 땅에 이루실 일들을 위하여 우리에게 동참할 기회를 주십니다. 십자를 대신 자라 하시지는 않습니다. 인류구원의 십자가는 이미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친히 지셨습니다. 우리가 또다시 그 십자가를 지실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주님께서 함께 가자고 하시는 것은 그 영광의 자리에까지 함께 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가기만 하면 함께 그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아무리 말고, 험한 길이라도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이 사순절기에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 거룩한 자리에 우리를 동참하라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십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끝까지 같이 가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짧은 인생의 여정에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축복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이용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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