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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의 복 (마5:4 )

by 【고동엽】 2022.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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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의 복   (마5:4 )

지난주간 마음이 가난한 자의 복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세상에서 가난한 것보다 부자로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창대하였는데 이름도 창대하고, 재물도 창대하였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갑부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믿음의 부자, 자식의 부자 뿐 아니라 재물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급의 총리 대신이 되어 권력 뿐 아니라 재물까지도 풍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풍성하고 넉넉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28장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자식도 잘 되고, 집안도 잘되고, 사업도 잘 되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교우 모두가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둘째,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받아서 셋째, 풍성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주의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선교하는 일에도,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도, 우리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일에도, 그리고 장차 월산교회 100주년을 앞에 두고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여러분 모두가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주간에 우리가 나눈 말씀은 물질적으로는 부자가 되어야 하지만 마음은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함에 대하여 생각하였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부자인 자를 물리치시고, 심령이 가난한 자를 찾으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 따위는 필요 없다는 마음이 부자인 자에게 하나님은 결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피할 바위시며, 나의 피난처시며, 나의 구원의 뿔이십니다 하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사, 세상의 것뿐만 아니라 영원히 영광된 천국까지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애통하는 자의 복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을 살 때에 애통하며, 슬퍼하며, 탄식하며 살면 안됩니다.
빌립보서의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신 말씀대로 늘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살전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는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아무리 절망 속에 있더라고,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기다리며, 소망으로 눈이 반짝여야 합니다. 피할 길을 주시고, 이길 힘으로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소망 가운데 기뻐하여야 합니다.  
애통하고, 슬퍼하고, 탄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애통함은 세상 속에서 늘 탄식하며 슬퍼하며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슬퍼하고, 죄에 대하여 탄식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마5장에 기록된 8복의 말씀은 우리 신앙의 단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자마자 단번에 천사처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조금씩 자랍니다. 마치 계단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올라감으로 높은 곳에 이르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은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첫 단계가 마음이 가난함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자녀로 맞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영접하심을 받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는 어떠한 느낌을 받게 됩니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의 모습으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흠 없고, 깨끗하고, 온전하신 하나님 앞에 죄로 더러워진 누더기를 걸치고 추한 몰골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움으로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의롭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온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오히려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 많은 허물과 실수를 가지고 살아가는 위선적인 신앙인들 보다 자신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오래 전 텔레비죤에서 미시의 세계,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세계에 대한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면 깨끗해지는 줄 압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손발을 물로 닦으면 깨끗해지는 줄을 압니다.
목욕을 하고 나면 온몸이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현미경을 통해서 우리 몸을 들여다보면
세계 인구가 얼마입니까? 60억쯤 됩니다. 세계 인구보다 더 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손에 수십만 마리의 자그마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손을 씻으면 씻겨 나갑니다. 그러나 1시간만 지나면 남아 있는 것들이 번식을 해서 또 그 만큼 되는 것입니다.

깨끗한 척 하지 마십시오. 현미경을 들이대면 우리 모두는 얼마나 지저분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영혼, 우리 내면의 깊은 곳을 지켜보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자신의 더러운 죄가 낱낱이 드러날 것입니다. 감춰있던 죄가 드러날 것입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형제를 죽이는 살인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간음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더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으로 죄를 짓고, 입술로 죄를 짓고, 몸으로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다가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는 분에게 배를 빌려 드렸습니다. 그분은 배를 타고 물로 조금 나가셔서 호숫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입을 열어 가르치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얼마나 오묘하던지, 베드로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배를 빌려 타고 말씀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하여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그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깨달은 베드로는 즉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죄가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죄가 있습니다.
마땅히 알아야 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섬겨야 하는 하나님 섬기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작은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은 작은 죄를 짓는 것이고
큰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이고
가장 큰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가장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짐승이나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꾸어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온 자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게 되며, 깨달은 뒤에는 애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다른 신을 믿으며 살았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동안 불의한 일을 많이 행했습니다.
이 어거스틴이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의 부르심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어거스틴이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온 뒤에 어거스틴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애통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고백하며 회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애통하며 참회하며 써내려 간 참회록은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 읽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지은 더럽고 추한 죄를 바라보십시오. 부끄러움으로 수치심으로 애통하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 애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높은 담을 쌓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도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못하게 하는 장애물입니다.
죄는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저주와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우리의 영혼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큰 바위를 물에 던지면 풍덩 소리를 내며 물 속에 빠집니다.
그러나 아주 자그마한 모래알도 역시 물 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죄란 무서운 것입니다. 아주 자그마한 것이라도 우리를 영원한 저주와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공동묘지에 가면 많은 무덤들이 있는데 핑개 없는 무덤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돌아가셨습니까?
간이 나빠져서, 위암으로, 폐암으로, 심장마비로, 당뇨로-----
우리 몸에는 오장 육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사람들 보면 다른 곳은 다 튼튼한데 딱 한 곳에 나빠서 죽은 것입니다.

죄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무시하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우리를 파멸에 이끕니다. 영원한 심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죄는 무섭습니다. 암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AIDS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암과 AIDS는 우리의 육체를 죽음으로 인도하지만 죄는 우리의 영혼을 죽음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암보다도 더 무서운 죄에 잡혀 있다는 것을 알면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애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내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 내가 얼마나 허물이 많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깨닫고 애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무섭고 두려운 심판을 생각하며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 가운데 자신의 죄 때문에 애통하여 본 경험이 있습니까?
믿음의 계단을 바로 밟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죄로 인하여 애통해 보고, 탄식해 본 경험이 없으십니까?

죄 때문에 애통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알 수 없습니다.
죄 때문에 탄식해 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지난주간에 청년들과 함께 월산 극장에서 미숀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으로 나오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노예 사냥꾼으로 원주민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자신의 여인을 가로챈 동생과 결투 끝에 동생을 죽입니다.

동생을 죽인 죄책감으로 매일 번민 속에서 지냈습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 버렸습니다. 삶을 포기하였습니다.
이때 주인공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을 만난 뒤에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이 큰 죄를 어찌해야할지 몰라 몸부림을 칩니다.
그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죄 지을 때 사용하였던 온갖 잡동사니들을 자기 몸둥아리 만한 자루에 담아서 끌고 다닙니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죄의 짐은 놓지 않았습니다.
가파른 언덕도, 절벽도 죄의 짐은 놓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더러운 죄를 붙잡고 오래도록 씨름하며 애통하고 탄식하였습니다.

이렇게 애통하는 시간이 지난 뒤에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더럽고 무거운 죄를 씻어 주시고 용서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와 형벌을 받으셨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저주와 형벌을 받을 만큼 자신의 죄가 더럽고 추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더럽고 추한 죄를 용서받았고, 무거운 죄의 짐에서 벗어났다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평강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용서하신 주님을 위하여 살기로 다짐합니다.
원주민을 잡아 노예를 팔던 잔혹한 노예 사냥꾼에서 그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섬기고, 그들을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탄식하고 애통하는 일이 없었다면 용서의 기쁨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도 없었을 것이고
죄의 짐이 벗겨지는 용서의 은총을 입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좌에 영광스러운 광채를 내며 하나님께서 앉아 계신데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보좌 옆에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하며 찬송을 합니다.
찬송 소리에 성전의 터가 흔들리고, 연기가 자욱하였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앞에 서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이사야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는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뵈었구나"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죄인 것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허물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부끄러움으로 애통하고,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의 천사가 제단을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더러운 입술을 지져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정하게 하신 것입니다.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더러운 죄를 다 씻어 주셨고, 죄로부터 자유케 하심을 생각하며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선지자로 부르심에 응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때 많은 박해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힌 이사야는 기쁨으로 선지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더러운 죄를 붙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탄식하였습니다.
이러한 깊은 탄식을 하는 바울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롬8:1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인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부여 잡고 탄식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도말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와 평강과 기쁨과 감격을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승리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자가 되시고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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