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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제자

엠마오 길의 두 제자 (눅 24: 13~17)

by 【고동엽】 2022.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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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 길의 두 제자  (눅 24: 13~17)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두 제자가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부터 25리가 되는 거리라고 했습니다. 10리가 4km이므로 25리는 10km가 됩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모습은 힘을 잃고 맥 빠진 모습입니다. 실망스러운 얼굴과 낙심된 마음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3년간 열심히 따라 다녔던 예수님이 어이없이 로마병정들에게 붙들리고 재판을 받으시더니 십자가에 처형당하여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1. 이 모든 된 일

14절을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는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된 일이라는 것은 곧 ‘나사렛 예수의 일’이었습니다. 19~20절을 보면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인데 한번도 그 능력을 발휘하시지도 못하고 어이없게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낙심하고 실망하여 이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셔서 죽은 자도 살리셨고, 병든 자도 고치셨으며, 풍랑도 잠잠케 하시며, 못하실 일이 없으시며, 못 이루는 것이 없으시는 분이시므로 로마병정들 쯤이야 단번에 물리치시고 승리할 수 있는 분인데 이상하게 한번도 대항을 안 하시더니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실망과 낙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기대를 걸고 주님을 따르면 성공할줄 알았는데 이제는 희망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2. 눈이 어두워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이야기하며 길가는 그곳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그 길에 동행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낙심하고 실망하여 함께 길을 가면서도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15~16절에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자기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는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지를 못했습니까?

① 슬픈 빛을 띠고

17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너무 큰 슬픔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는 너무나 슬픈 마음과 생각에 사로잡혀 함께 길을 걷고 있는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일에 얽매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 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을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남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을 돕기를 원합니까? 내 문제에 얽매인 것들에 대하여 하루 속히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문제에서 벗어나야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볼 수 있게 되고, 도와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학교 교사들이나 구역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은 내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남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②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는 이미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듣고도 믿지는 못했습니다. 21~23절을 보면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서 시체를 오래 보존하기 위한 당시의 풍습대로 향품을 발라 드리기 위해서 갔더니 시체는 없어졌고 입었던 수의는 개켜있었으며 천사가 나타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가 없었으며 따라서 낙심하여 그들의 가고 싶은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25~26절에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마음에 왜 더디 믿느냐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지금도 부활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믿지 않고 도적설이나 환상설이나 기절설이나 조작설 등으로 이야기하며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 도적설이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해 가서 숨겨두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8장 12~13절에 장로들이 로마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시킨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환상설이란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환상 가운데 그 얼굴을 본 것으로 이것은 부활하셔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환상 중에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 기절설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힐 때 못을 쾅쾅 박으니 잠시 기절을 했다가 죽은 줄 알고 내려서 동굴무덤에 넣었더니 따뜻한 동굴의 온도 때문에 깨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었다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기절했다가 깨어났다는 것입니다. ? 조작설이란 한편의 드라마(Drama)를 만들어 내듯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그럴법하게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한 것처럼 지금도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며 사실이라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않고 있습니다.

3.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뜨거워져야

30~31절을 보면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비로소 눈이 밝아졌습니다. 눈이 밝아져야 믿어지고, 눈이 밝아져야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영안이 열려지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성경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또 누가복은 24장 32절에는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가슴이 뜨겁지만 죽은 사람은 가슴이 싸늘합니다. 겨울에 밖의 온도는 추워도 실내가 따뜻한 것은 불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나 기선이나 우주선도 불의 힘으로 움직여집니다. 신앙도 불이 붙어야 합니다. 전도의 불, 기도의 불이 붙어야 하며, 열정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말씀을 풀어 들려주시는 이 시간에 성도 여러분들의 신앙이 뜨거워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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