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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충만케 하소서 (고린도전서 12:1-11)

by 【고동엽】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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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충만케 하소서   (고린도전서 12:1-11)

주님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우상 숭배하러 가는 사람은 마귀에 이끌리어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가서 섬기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대로 내가 행하는 것 같지만 마귀에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마귀에게 끌려가는 삶입니다. 마귀의 종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술집에 도박판에 가는 것 같고 범죄를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마귀가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 자체는 내 뜻과 내 의지와 관계없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사랑의 영, 은혜의 영, 지혜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고 주님 앞에 나와서 1년도 아니고 한평생 믿음의 생활하는 것은 배후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를 길러주십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의 인격과 삶과 이 확실한 우리의 삶은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 4절, 신명기 28장 49절에 보면 “독수리가 그 새끼를 기르듯이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길러주신다.”라고 말씀합니다. 미국에 가면 독수리 형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국가의 상징인 독수리를 어디서든지 볼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새의 왕입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 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크는 것이 아닙니다. 어미가 한없는 보살핌과 희생으로 끊임없이 돌보아 독수리를 길러 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끊임없이 도와주시고 독수리 같은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독수리 같이 올라갑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에베레스트 산 위에도 이 독수리가 지나가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거기는 얼마나 추운데 잠시만 얼굴을 내밀어도 동상에 걸린다고 하는데 영하 50도, 60도 되는 그 추위에 독수리가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조금 지나는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 산맥은 적어도 독수리가 날아도 한 시간은 날아야 될 텐데 그 먼 길을 어떻게 날아갈 수 있을까? 또 산소도 없을 터인데 어떻게 날 수 있을까?’ 저는 상당히 의심이 갔습니다. 독수리는 그만한 힘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먹이를 찾아내는 그 눈과 그 용맹과 지혜는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여러분도 이런 능력 있는 주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이 악하고 어려운 세상을 살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유약하고 병들며, 나약해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는 실로 강한 것입니다.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능력은 세상적인 육체의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실 때 주어지는 능력만이 참 능력, 이 세상을 이기는 능력, 오직 하나 성령의 충만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힘 있는 자가 다 실패해도 성령으로 함께 하는 사람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어떤 힘으로 해결하고 감당해야겠습니까?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K1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K1을 아주 자주 봅니다. 늘 봐도 신납니다. K1은 K자가 붙은 모든 게임이 같이 모여서 1등 한 명 챔피언을 뽑아내는 겁니다. K는 가라데, 킥복싱, 권투 같은 것, K는 아니라도 비슷한 것 다 모이는 겁니다. 복싱은 발을 못하지 않습니까? 얼굴을 발에 맞아서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게임을 보면,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스포츠이든지 국가적인 어느 전쟁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게임은 중요한 것이 자기 힘만 있어서 상대방을 넘어뜨려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힘이 있어도 자기도 맞을 때가 있으니까, 안 맞을 수는 없으니까 자기가 맞았을 때 잘 막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쉽게 말해서 맷집이 좋아야 됩니다. 때리는 힘만, 파워만 가지고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자기도 잘 맞아야 됩니다. 어떤 분은 한방이면 적을 넘어뜨리는데 자기가 먼저 넘어지는 겁니다. 한방만 맞으면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한국 사람이 나가서 하는데 제가 너무 창피할 정도로 막 휘두르더니만 약간 스쳐 가는데 딱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람은 어떻게 때릴 줄만 알지 맞을 줄 모른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맷집이 없는 사람 그러면 실패합니다. 일방적으로 밀고, 이기는 전쟁은 하나도 없습니다. 야구도 자기가 안 맞는 야구는 하나도 없습니다. 공격만 잘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방어를 잘 해야 됩니다. 맷집이 좋아야 승리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인물은 자기가 세상을 이길 수도 있지만 세상으로부터 오는 공격도 잘 받아냅니다. 모세 보십시오. 바로 왕만 이겼습니까? 바로를 이기는 것보다 열배나 더 큰 시련 어려움이 많이 왔습니다. 얼마나 수많은 펀치가 날아와도 모세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만 받았습니까?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만 때려서 넘어뜨렸습니까? 그것 하나뿐입니까? 자기에게 오는 어려운 물맷돌은 천개, 만개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끝끝내 이겨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기사와 이적과 능력만 행했습니까? 욕이라는 욕은 다 얻어 먹었습니다. 침 맞고 마지막에는 십자가 위에 죽으시기까지 합니다. 다 당하는 것을 잘 당해야 됩니다. 사도 바울도 능력이 물론 많습니다. 바울의 능력은 못한 일이 없지만 바울의 능력에 관한 것은 몇 번 안 나옵니다. 오히려 감옥에 들어가고 환란핍박 당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어려움을 다 이겨냅니다. 가정생활에 승리하는 가정은 좋은 일만 있어서 사랑하고 이해하며, 관용하고 먹을 것 입을 것 많으며, 직장 좋고 건강해서 행복합니까? 그런 사람은 한방만 들어와도 나가떨어집니다. 가정에 오히려 슬픔, 실패, 상처, 아픔, 눈물이 앞을 가리고 걷잡을 수 없는 이 어려움이 오지만 이겨내야 행복한 거지, 좋은 일만 있어 성공하려는 사람은 이 지상에는 그런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빨리 공동묘지로 가야 됩니다.

    이 세상은 어려움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기사, 이적과 능력을 행하고, 예언하고 방언하며, 병 고치는 이런 은사도 본문에 쭉 있지만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참음과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잘 참아내는 겁니다. 계속 참아내는 것이 사도의 두 기둥입니다. 하나는 어려움을 잘 참는 것 어떤 분들은 연애할 때 싸움 하나 안 하고 결혼하는 분이 있습니다. 연애할 때 신나게 싸워야 됩니다. 많이 싸우고 결혼해서 그 다음에는 안 싸워야지, 좋은 것만 보고 결혼하면 실패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거기에 감당해 내어야 가정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교회생활에 은혜만 받고 좋은 일만 있으면, 좋은 소리만 들으려면 그 사람이 교회 생활에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들어 쓰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교회를 좋은 교회로만 생각을 하고 등록하면 그 사람은 실패자입니다. 교회에 오면 이 말 저 말 다 듣고, 이런 일 저런 일 다 보고 듣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은 상처투성이에서 옵니다. 모든 아픔 다 경험하고 온갖 망치로 두들겨 맞으면서 그다음에 영광이 주어지는 것이지, 쉽게 올라오는 일은 이 지상에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왜 좋습니까? 왜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됩니까? 이 세상에 별의별 어려운 일을 성령 안에서 우리는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내가 승천하면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너희에게 임하면 뱀을 집어도 독이 없고, 독을 먹어도 독이 없으며, 귀신을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물리치며...” 이런 사도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이 능력으로 뱀의 독을 이길 수 있었고 수많은 전염병을 이길 수 있었으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증인의 사명을 끝까지 다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 여러분도 독을 먹어도 독이 되지 않고, 여러분이 뱀에 물려도 뱀이 여러분을 해치지 못하는, 독이 여러분을 넘어뜨리는 못하는 능력이 있고, 질병도 고치고 저주도 물리치는 능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4장 15절부터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만나지 않습니까? 홍해를 만났을 때 모든 백성들이 원망합니다. “우리 이제 죽게 되었다. 우리를 애굽에서 죽게 하지 왜 여기 데리고 와서 물에 다 빠져 죽게 하느냐?” 모세를 향하여 온갖 원망을 합니다. 모세는 걷잡지 못합니다. ‘이것 어떻게 해야 될까? 정말 죽게 되었구나.’ 그러나 믿음이 없어 망하는 것이지, 물에 빠져 죽는 일는 절대로 없습니다. 내 앞에 적이 왔다 해서 총칼에 죽는 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믿음을 떠나면 집안에서도 목욕탕에서도 넘어져서 죽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는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 모세를 보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 왜 내게 부르짖느냐? 내가 너에게 능력을 주었는데. 네가 가진 지팡이를 가지고 바다를 한번 내밀어보라.”고 그랬습니다. 바다에 내미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다가 움직이면서, 바다가 육지같이 갈라지면서 이스라엘 60만이 그 바다를 통과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능력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셔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그래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손에는 손의 능력이 있고, 손을 내밀면 손으로 기적이, 발을 내밀면 발에 기적이, 입을 말할 때마다 말의 기적이 따르는 겁니다. 믿음의 말을 하시면 내 믿음대로, 내말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얼마든지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여러분은 질병을 가져다 놓고 “고쳐주세요. 고쳐주세요.” 저도 그것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저도 몇 년을 부르짖었는데 그게 아닙니다. “너가 믿고 기도하라. 너가 내 이름으로 고쳐내라. 마귀를 물리치라. 저주를 물리치라.”는 겁니다. 능력이 있는 성도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석회와 물이 합하면 뜨거운 열이 생긴다고 합니다. 녹이 슨 쇳가루, 아무것도 아닌 쇳가루하고 알루미늄에 열을 가하면 2천도 이상의 열이 나서 강철도 녹인다고 합니다. 40년 전에 영월 화력발전소를 가보았습니다. 화력발전은 어떻게 일으키느냐? 굉장한 수많은 에너지가 모이는 줄 알았더니 논리는 간단합니다. 석탄하고 물이 모여가지고 전력을 일으킵니다. 석탄물입니다. 간단한 논리가지고, 기름하고 물하고 해서 전부 화력발전소를 그렇게 일으키는 겁니다. 원자력발전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에너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끼리 만나가지고 여기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인간은 겉으로는 흙덩어리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실 때 재료가 흙입니다. 육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범죄 하는 육체, 쓸모없는 육체지만 하나님 영이, 성령이 이 가운데 하나가 되면 여기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모세의 능력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고, 성령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할 때, 성령의 능력이 사도 바울과 함께 할 때, 성령의 능력이 다니엘과 함께 할 때 사자 굴에서 살아날 수 있는 겁니다. 할렐루야!

    오늘 모든 실패자는 이 육체의 마귀와 합할 때 엄청난 부작용이 일어나고 파괴의 능력이 나타나며, 잘못된 바이러스가 만들어지지만 하나님과 우리와의 만남, 성령과 하나님의 자녀의 만남은 국가적으로도 위대한 일을 만들고, 우리의 가정에도 위대한 일이 일어나며, 우리의 인격과 삶 위에, 우리의 걸어가는 발걸음 위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무 보잘 것 없는 죄 많은 사마리아 여인이라도 성령이 함께 하시면 거룩한 하나님의 종이 되고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제 어떤 책을 한권 보았는데 실미도에 관계된 분입니다. 이 분이 나중에 예수 믿고 목사가 된 이야기를 쭉 적었습니다. 자기가 그 전에는 책을 안 냈답니다. 하도 안 믿으니까, 이것은 믿을 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북한을 갔다 오고 작전을 수행하며, 얼마나 자기가 강했는지. 북한에 가서 입속에 있는 혀하고 살을 깨물어가지고 앞에 뱉었답니다. 그 정도로 강했답니다. 그런 사람이 변화 받아가지고, 이 강한 사람이 성령이 함께 하니까 은혜의 사람, 부드러운 사람,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어서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지금 아르헨티나에서 목사로, 선교사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온갖 더러움이 있어도 성령이 역사하시면 더러움은 거룩한 것으로 바뀌고,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쓸모없는 사람이라도 성령이 함께 하시면 존귀영광이 같이 합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임하시고, 여러분의 가정에 성령이 임하십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우리 교회 안수집사 250명 면접을 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무슨 은혜를 받았느냐? 우리 교회에 와서 어떤 일이 있었느냐? 여기까지 잘 나온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그러니까 “목사님! 제가 굉장히 싸우고, 사투고 이랬는데 교회에 와서 평화를 얻었습니다. 우리 가정이 화목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도 너무 잘 됩니다. 그대로 잘 커서 모두 성공했습니다.” 다 그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술, 담배 끊고, 잘못된 생활 정리하고, 가정의 행복을 얻었습니다.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게 본인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의 힘은 끊임없이 부딪히는 일이었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집에 오시니 그 집에 평화가 찾아오는 겁니다. 조금 섭섭한 것은 “목사님 설교에 은혜 받았습니다.”라는 그 말은 한마디도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설교를 잘 안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또 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지, 사실 그렇습니다. 목사, 관계없습니다. 저의 설교하고 아무 관계없습니다. 성령이 그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좋은 크리스천으로 만들어주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곳에 언제나 새로움이 있고, 거룩함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방법으로 설득하고 노력하며, 지식과, 학문과, 교양과, 수양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방법으로도 인간을 새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만이 거룩한 영, 새로운 영, 새 생명으로 우리를 치료하여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늘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늘 기다리지 않습니까? 항상 사모하는데 성령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 항상 좋은 찬스를 끊임없이 만들어 주십니다. 행복을 원하십니까? 성령은 여러분을 행복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고 치료받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은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지은 죄도 우리 스스로 회개를 못합니다. 끊임없이 안고 싸고 돌려고 하지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에게 찬스를 주셔서 눈물이 앞을 가리고 통회하면서 죄에서 탈출하도록 우리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때에 따라 우리에게 봉사의 길도 열어주십니다. 신앙도 자기가 부모에게 먹을 것을 받아먹어야만 크지만 어느 정도 되면 자기가 먹어야 큽니다. 교인이 교회생활을 할 때 날마다 받는 은혜만 가지고는 훌륭한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일을 시킵니다. “너, 일해라. 봉사해라. 내가 능력 줄 테니까. 시간도 주고 물질도 주며, 건강도 주시고 다 줄 테니까 너가 일을 해서 은혜를 받아라.” 이렇게 주님은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보면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해 보면 항상 성령은 우리의 길을 잘 열어주셔서 어떤 일을 만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증거 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복음,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광스러운 이 복음, 십자가 진리의 구원의 길을 많은 사람에게 열어주고, 많은 분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증인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달려가야 합니다. 마사이족이 사는 나라에 보면 동물들이, 치타가, 표범이 먹이를 향하여 질주해  잡아내듯이 우리는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땅 끝까지 질주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모든 축복은 복음을 위해서 쓰려져야 할 줄 믿습니다. 보리밭에 보리가, 목화밭에 목화가, 포도원에 포도가, 사과밭에 사과가 무르익듯이, 온 밭을 덮듯이, 우리의 꿈은 이 나라 이 민족 4700만, 남북한 7천만이 복음의 밭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때 이 나라에 최고의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저는 유럽에 있는 나라들을 쭉 봤습니다. 그 나라의 공휴일이 100% 기독교 공휴일입니다. 자기나라 공휴일 없습니다. 전부 성탄절 부활절이 국경일이고, 성령강림절을 국가적으로 다 지키는 겁니다. 온 나라가 그리스도에게 맞춥니다. 제일 적은 나라도 기독교가 인구가 80% 이상 다 됩니다. 보통 90% 넘습니다. 그 나라들 보십시오. 벌써 천 년 전에 만들었는데 우리는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증인의 꿈이 없기 때문에, 증인의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안 믿어서 덕 볼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 안 믿어서 되는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를 믿어 금생과 내생에 영원한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증인을 되시기를 바랍니다. 땅 끝까지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복음증거에 투자할 때 하나님은 천배 만 배 내게 돌려주시는 겁니다. 어느 교회가 부흥합니까? 전도로 모으는 교회가 꼭 부흥하는 것 아닙니다. 총 동원 전도에 부흥하는 것 아닙니다. 증인의 사명을, 전도의 사명을 세계의 복음전파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교회를 하나님은 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 사업을 하든, 무엇을 하든, 정치를 하든, 어디를 가든지 증인의 길로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의 모든 삶을 끊임없이 도와주십니다.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염려할 것이 그렇기 때문에 없습니다. 저는 명성교회를 1980년 7월 6일에 개척을 했습니다. 다음 달이면 우리 교회는 창립 27주년을 맞이합니다. 저는 성령의 인도대로 “주여, 나를 인도해 주세요.” 그러고 따라 갔는데 버스종점으로 인도했습니다. 저는 ‘적어도 둔촌아파트 앞은 가야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명일동 버스 종점, 그린벨트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으로 저를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주여!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좋은 길이 열리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순종했습니다. 여러분은 “주여! 나는 여기에 가고 싶사오니 이 길을 열어주시고 여기서 살게 해 주시며, 이 사람과 만나게 하시고, 이 사업이 좋습니다. 이 집이 좋습니다.” 이렇게 기도 하면 안 됩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선택 해 주시고, 길을 열어주십시오. 제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내일 길을 알지도 못하는 분이 앞에 가면서 성령을 도와달라고 하면 우리의 길은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여! 나의 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 명일동 종점으로 인도했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인지 모릅니다. 동서남북에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백가지 가운데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7월 6일에 개척하고 10월이 되어서 첫 추위가 왔습니다. 잠을 자다다 추워 가지고 제가 일어났는데 애들 셋이 밑에는 시멘트 바닥인데 거기다 비닐 장판을 까니까 추워 가지고 오징어 오므리듯이 전부 오므려 가지고 자는 겁니다. 온 식구가 오징어 다리 같이 오므려 들어갑니다. 저는 너무 추워 일어나서 내려다보니 기가 막힙니다. ‘겨울을 어떻게 나냐.’ 교인도 없고, 날씨는 추워지고 첫추위가 몰아닥치는데 너무 추운 겁니다. 돈이 없고,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더 추운 겁니다. 벌벌벌벌 떨었습니다. ‘이 애들을 데리고 겨울을 어떻게 날까’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에게 찬송을 주셨습니다.

♬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영의 함께 함이라 ♬(찬송가 427장)

    계속 불렀습니다. 마침 첫추위가 오니까 새벽 일찍 참새들이 “짹짹짹짹” 숲에서 모여가지고 우는지, 웃는지 막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짹짹짹” “파다닥” 그리고 막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주님의 음성이 저에게 들려오는 겁니다. ‘얘야! 참새도 내가 살려주는데 서울 시내 농사짓는 곳이 있느냐? 어떻게 사냐? 그래도 참새가 자살하는 거 굶어죽는 거 얼어 죽는 것 봤냐? 내가 다 먹이는데 내 종을 내가 굶기겠느냐? 너 왜 염려하느냐?’ 그 마음이 오면서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지는 겁니다. “주님! 내가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습니다. 나를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춤을 추면서 나는 숲에 새와 같이 울면서 “기쁘다. 기쁘다.” 너무 기뻐서 몇 시간을 계속 그 노래만 불렀습니다. 자고 났습니다. 어떤 교인이 찾아왔습니다. 삼성동 주택에 있는 분인데 그분이 저에게 봉투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는 봉투에 관심이 많지 않습니까? 웬  봉투를 가지고 왔습니다. 세상에 봉투가 큽니다. 개척교회에 웬 봉투를 누가 이렇게, 그분이 그러는 겁니다. 집사님이 우리 교인도 아닌데 “목사님! 제가 집수리를 하려고 돈을 천만원을 가지고,” 그때 천만원이면 지금 1억이 넘습니다.  그때 천만원이면 집을 몇 채를 샀습니다. 그런데 집수리 하는데 천만원을 준비해 가지고 하려고 그러는데 성령님이 똑같이 말하는 겁니다. 저에게 위로의 성령께서 그분에게는 권고의 성령으로 말씀을 하는 겁니다. “얘! 너 집은 이만해도 얼마나 좋은데. 너는 빌딩도 있고, 너는 무엇이 부족하냐?  너가 무엇 때문에 집을 고치냐? 김삼환 목사가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겨울에  어떻게 그 집에서 사냐? 거기 갖다 드려라.” 이 마음에 그렇게 기도 하는 것이 오더랍니다. 그래도 자기가 안가지고 오려고 많이 노력을 했는데 성령께서 역사하신 겁니다. 천만원을 가지고 하나도 추위를 당하지 않고 강동아파트 15평짜리로 올라가 제가 그래서 몇 년을 강동아파트에서 살았던 겁니다. 처음으로 평생소원인 아파트 생활을 그래서 해 본 것 아닙니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겁니다.  

    여러분 앞날을 왜 염려하십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염려, 걱정, 죄악을 버리십시오. 불의에서 떠나가십시오. 성령이 도와주십니다. 거룩한 길로 독수리 같이 힘 있게 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위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가정에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면 성령의 역사는 평안이라고 그랬습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성령이 주장하는 교회와 가정은 평안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천만가지 좋은 점이 있어도, 너무 아름답고 백가지가 훌륭해도 성령이 떠나면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의자도 없고, 모양 좋은 것 하나 없어도 성령이 역사하면 그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인간은 성령이 함께 하면서 능력도 있고, 힘도 있는 겁니다. 하늘나라 가는 날까지 성령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서울에 사는 어떤 가정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서울 사람이고 부인은 경상도 사람입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여보. 비도 오는데 국수나 삶아먹읍시다.” 하니까 부인이 그랬습니다. “국시 말이에요?”, “그래요. 국시 말고 국수를 끓여먹읍시다.” 그러니까 “국시가 맞잖아요. 국시 끓여요?”, “끓이는 것은 좋은데 국수가 맞다.” 그래서 둘이 자꾸 다투는 겁니다. “표준어를 써야지.”, “표준어가 국시예요.” 그럽니다. 계속 국수도 못 끓이고 그것 때문에 다투는 겁니다.  “뭐 그런 것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냐?”, “말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이렇게 해서 옆에 있는 교장선생님 댁에 갔습니다. 거기 가서 무엇이 맞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국시가 맞습니까? 국수가 맞습니까? 이것 때문에 계속 우리가 다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장선생님이 알아차렸습니다. 어느 쪽으로 말하기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국수와 국시는 전혀 다릅니다.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듭니다.”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같은 말 아닙니까? 뭐 그렇습니까? 그 밀가루, 밀가리 무엇이 다릅니까?”, “전혀 다릅니다.”, “밀가루는 봉투에 넣어서 팔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넣어서 팝니다.”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봉투나 봉다리나 무엇이 다릅니까?” “전혀 다릅니다. 봉투는 기계에서, 공장에서 찍어가지고 나온 것이 봉투이고, 봉다리는 풀로 붙여 나온 것이 봉다리입니다.”

    우리가 살아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봉투나, 봉지나, 봉다리나, 밀가루나, 밀가리나, 밥이 질면 죽으로 생각하고 먹으면 되고, 밥이 설면 생식한다고 생각하고, 짜면 물 타면 되고, 이 세상에 그런 것, 성령 받은 사람은 절대로 거기에서 안놉니다. 왜 그것 때문에 마음 상하고, 그것 때문에 상처 받고, 그것 때문에 다투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봉지 봉다리 가지고 계속 싸우고, 국시하고 국수가지고 서로 옳다 그러는 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 전체입니다. 우주 시대에 우주개발하고, 세계인류를 향하여 크게 공헌하고, 독수리 같이 날면서 저 천국을 향하여 날아가는 힘 있는 능력 있는 날개를 한 번도 못 펴는 겁니다. 계속해서 구석구석마다 사람 모인 곳에는 전부 국시냐, 국수냐, 봉지냐, 봉다리냐를 가지고 우리가 싸우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교회생활에도 독수리 같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셔서 가정에도 독수리 같이 능력이 임하시고. ♬주를 앙모하는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모든 싸움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찬송가 394장)

    성령의 충만하심이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 안에, 여러분 마음에, 여러분 입술에, 여러분 삶 속에, 인격 속에 성령은 지금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출처/김삼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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