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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믿음이 없느냐 (막4:35~41)

by 【고동엽】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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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믿음이 없느냐  (막4:35~41)

인도네시아는 2억4천 인구 중 9%인 2천 백만명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 안에서 교인들이 고난과 순교를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결과 아시아 최대의 기독교 국가가 된 것입니다. 수라바야에는 아브라함 알렉스 목사가 담임하는 2만 5천명 성도의 큰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알렉스 목사님이 큰 믿음을 얻게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알렉스 목사가정에 뇌성마비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뇌성마비 아들이 태어나자 이슬람교도들은 목사님을 조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능력만 바라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온전하게 되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기도하길 석 달을 해도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넉 달이 지났을 때 아들이 온전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목사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되었고, 아들과 함께 한계가 없는 믿음을 경험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권사님과 함께 중병을 앓고있는 성도를 심방하러 가셨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분을 살려주시옵소서. 주여! 주님이라면 능히 하겠나이다. 믿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권사님이 목사님께 말합니다. "목사님, 그 분 병이 심각하네요, 얼마 못살겠죠?" 라고 묻더랍니다. 조금 전까지 "살려주시옵소서. 주님이라면 능히 하겠나이다. 믿습니다" 라고 기도했던 말이 몇 분도 안되어 "얼마 못살겠죠" 라고 바뀐 것입니다. 두 가지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본문을 보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십니다.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동안 예수님은 고물에서 주무셨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큰 풍랑이 몰아쳤습니다. 물이 배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당황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잠에서 깨신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고 명령하니 바람이 그치고 잔잔하여졌습니다. 이후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책망하십니다. 풍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어찌 믿음이 없느냐?" 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생애에 온갖 위기가 닥쳐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위기를 믿음의 문제로 평가하십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제자들의 믿음의 중심을 정확하게 평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풍랑이 일어났는지 아느냐?" 라고 묻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향해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믿음으로 고난을 이기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행보는 모든 상황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과연 이러한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있습니까?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는 주님의 책망 앞에서 믿음이 회복되려면 ,


첫째로 주님이 먼저 보여야 합니다

메리 앤 베이커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큰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이 차례로 같은 병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똑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너무 안타까워 하나님을 향해 외칩니다. "하나님, 왜 우리 가정을 돌보지 않습니까? 주님을 믿고 헌신하며 살았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본문의 말씀을 읽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면서 "선생님,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를 돌아보지 않습니까?" 라고 소리치니 주님이 일어나셔서 바다를 꾸짖고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베이커 여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그렇구나, 예수님이 주무시는 것 같아도 주무시는 분이 아니구나. 그 분이 잔잔하라 하시면 어떤 세상의 파도도 잔잔해지는구나" 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찬송시를 썼는데 바로 찬송가 419장입니다. 1절에서 그녀는 제자들처럼 질문합니다. "우리의 죽게된 것을 안 돌아봅니까? 깊은 바다에 빠지게 된 때 주무시려합니까?" 2절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구주여 떨리는 내 맘 저 풍랑과 같아서 늘 불안에 싸여서 사니 날 붙들어 주소서 세상의 풍파가 나를 삼키려 합니다. 지금 죽게된 날 돌아보사 곧 구원해 주소서". 드디어 후렴에 가서 그녀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님과 같이 바다를 향해 명령합니다. "큰 바람과 물결아 잔잔해 잔잔해 사납게 뛰노는 파도나 저 흉악한 마귀나 아무것도 주 편안히 잠들어 누신 배 뒤엎어 놀 능력이 없도다 주 예수 풍파를 꾸짖어 잔잔해 잔잔해 주 예수 풍파를 꾸짖어 잔잔하라"

믿음이란 눈이 열려져 문제 너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풍랑을 이기려면 풍랑만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문제만 자꾸 보면 문제 앞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은 풍랑만 보았기에 당황했습니다. "왜 우리를 도와주지 않습니까?" 라고 오히려 원망합니다. 우리의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만 보이고 주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풍랑의 너머에 있는 주님이 먼저 보여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주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엄상익 변호사의 글에 "병상서 새 사람된 변호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수재였고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일류대학에 들어갔고 고시에 합격하여 전문변호사가 되어 열심히 일했습니다. 어느 날 퇴근길에 핸들 잡은 손이 뻑뻑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 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급히 중환자실로 실려갔지만 두 주가 지나자 발가락까지 마비되었습니다. 전신의 말초신경이 파괴되는 특이한 병이라고 진단이 내립니다. 그 순간 산다는 것이 허망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밤늦은 시각까지 포기하지 않고 병상에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아내를 보면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같이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을 믿게 해보십시오. 제가 믿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증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절 죽게 하시면 하나님 손해입니다. 그러니 제발 살려주세요". 그는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3주가 넘은 어느 날 발가락이 간지러웠습니다. 마비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일 주일 후에 양치질도 가능해졌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몇 달 후 새로운 변호사가 한 명 태어났습니다. 업무를 수행하는 중 그는 하나 하나 행동까지도 하나님께 여쭤본다고 합니다. 그는 아픈 사람을 찾아가 기도할 줄 알았고 삶에 있어 진짜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생의 어떤 풍랑이라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인생에 풍랑이 불어올 때 가장 먼저 약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광풍이 크면 클수록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크기만큼 삶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보니 처음에는, 38절에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할 정도의 적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창조주이신 주님을 봅니다. 그 후 그들은 41절에 "심히 두려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두려움은 광풍을 보고 두려워하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 그 분 앞에서 가지는 경외감입니다. 믿음으로 이끄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성장되었습니다. 자신의 경험보다 믿음을 더 중요시합니다. 자신들이 배의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배의 주인이시고 자기들의 기술로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풍파를 헤치고 안전한 항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유고슬라비아에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10대의 소녀가 되자 성경 말씀을 들을 때 가슴에 불타오르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작정을 하고 수녀가 되어 인도 캘커타에 파송되었습니다. 인도에 오자마자 거리에서 병든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주위에 돌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몸의 한쪽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참담한 현실을 보고 그녀는 "힘도 없는 여자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라며 그냥 지나가려 는데, 성령님이 그녀에게 말씀합니다. "네가 도와야 한다" "하나님. 저는 못해요. 제가 어떻게 해요" 그때 가슴에 와 닿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가 도와도 못하겠느냐?". 그때 그녀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하겠지요". 그녀는 가던 걸음을 돌이켜 여인을 업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돌보기 시작한 환자들이 점차 늘기 시작합니다. 그 후 도시의 행정관리를 찾아가 집 옆에 있는 '비욘드 힌두템플' 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병원을 열었습니다. 캘커타의 수많은 빈민들과 환자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이 여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바로 테레사 수녀입니다. 그녀가 죽기 전 영국 BBC 방송이 그녀가 일하던 켈커타의 병원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자가 병원에서 일하는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질문을 합니다. "테레사 수녀님, 힘들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대답을 합니다. "힘들지요. 그러나 즐겁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힘들지요. 즐겁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라는 이 세 마디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삶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힘든 세상입니다. 그러나 즐겁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이 함께 계신다면 즐거울 수 있습니다. 믿음의 능력이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처럼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까? 믿음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문제보다 주님이 먼저 보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 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찌 믿음이 없느냐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 분명한 믿음을 보여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광일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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