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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어떻게 할 것인가? (야고보서 3장 1 ~ 12절)

by 【고동엽】 2022.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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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어떻게 할 것인가?  (야고보서 3장 1 ~ 12절)

기독교는 ‘말’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까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셨고 그 말씀을 삶으로 이루셔서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성령께서 사역자들을 감동하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전해져서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말을 중요시합니다. 그 말로 영혼이 삽니다. 그 말로 낙심한 심령이 위로를 받습니다. 그 말로 절망 중에 있던 사람이 소망을 찾습니다. 그 말로 갈 길 몰라 방황하던 사람이 길을 찾습니다.

그러나 때로 그리스도인들이 말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을 잘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말로 심령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 말로 공동체에 큰 갈등을 일으킵니다. 때론 그 말로 영혼을 잘못된 길로 내 몰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거스릅니다.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비유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5절을 보면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라고 했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불로 번져서 산에 수많은 나무를 태울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금년도 산림청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산불의 64%가 등산객이나 성묘객들의 실화로 인해 발생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심코 던진 담배꽁초, 생각 없이 지핀 작은 불씨가 온 산을 태우고 또 바람을 타고 대형 산불로 번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 뱉은 말 한마디가 큰 사고를 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비유입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일생을 망칠 수가 있고, 공동체에 큰 갈등의 파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6절에 더 강도 높은 경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온 산을 다 태우는 산불을 일으킨 그 작은 불은 바로 지옥에서부터 온 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을 죽이고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그 불의한 말은 바로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혀가 사탄의 도구로 쓰임을 받아서 영혼을 죽이고 공동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아서 하나님의 살리시는 역사를 일으켜야 할 혀가 거꾸로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혀를 길들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처럼 우리 혀를 길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면 큰 배도 키를 잘 조정해서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 것처럼 우리 혀를 길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혀를 잘 길들여서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말, 우리가 후회하지 않을 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말을 하도록 하라는 권고입니다.

   특히 1절에 선생된 자들일 수록 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일 수록 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했습니다. 말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말을 조심하기 위해 해야 할일은 무엇일까요?


말하기 전에 생각하자

   말을 조심하기 위해서는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화살은 시위를 떠나면 다시 되돌아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과녁에 제대로 조준되었다는 판단이 들기 전에는 시위를 놓아서는 안 됩니다. 과녁에 정확하게 맞으리라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시위를 놓아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말은 한 번 우리 입을 떠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말이 내 뜻을 정확하게 담고 있는지, 이 말이 내가 바라는 결과를 이루어 낼 수 있는지, 혹시 이 말이 누군가를 괴롭게 하지는 않을지, 혹시 이 말이 공동체에 나쁜 파장을 일으키지는 않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원칙 가운데 소위 ‘미란다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경찰이 피의자를 검거하기 전, 검사가 피의자를 심문하기 전 피의자에게 미란다 원칙의 내용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사실과 진술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점을 알리지 않은 채 수사가 진행된다면 형사소송법상 그 모든 수사 내용은 법정에서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피의자가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기 전에 잘 생각해보고 자신이 없으면 변호사와 상의해서 말하거나 아니면 불리할 것이라고 판단되면 아예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미란다 원칙을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없으면 보혜사이신 성령님께 여쭤보고 나서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유익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입을 닫고 묵비권을 행사하라는 말입니다.

   눅 2장을 보면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리아가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았습니다. 이 때 천사들이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 탄생을 알리고 그 아기 예수가 구주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목자들이 마구간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에게 들은 그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눅 2:19를 보면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고 되어있습니다. 목자들이 전해 준 이야기를 마음속에 꼭 담아두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발설하고 자랑하거나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헤롯에게 발각되어 큰 낭패를 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도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입밖에 꺼내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말을 거르자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닙니다. 할 필요가 없는 말, 해서 좋을 것이 없는 말, 심지어 해서는 안 될 말들도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한강수질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한강수질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하수종말처리장이라는 것입니다. 한강의 지천에서 한강으로 유입되는 물을 깨끗케 하는 정화시설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축산폐수, 생활하수, 그리고 각종 오수를 정화시킵니다. 그래서 맑은 물만 한강으로 흘려보냅니다.

   우리 입에도 이런 정화시설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입에서 말이 나오기 직전 걸러내서 우리가 하는 말이 그리스도인의 말다운 말이 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입에서 걸러내야 할 말은 어떤 말입니까?


  첫째, 비난하는 말입니다.

   약 4:11을 보면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 2:1에서도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 입에서 남을 비판하는 말,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을 한다면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둘째, 거짓말입니다.

   시 101:7에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 입에서 거짓을 말한다면 우리는 결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셋째, 품위 없는 말입니다.

   레 20:2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거룩해야 합니다. 당연히 우리 입도 거룩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욕설을 삼가야 합니다. 음담패설도 삼가야 합니다. 지나친 은어와 비속어를 삼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는 품위 없는 말들을 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말을 해야 합니다.

   본문 1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말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11을 보면 ‘샘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샘에서는 한 가지 물이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함께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또 다른 비유 곧 ‘나무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맺지 못하고,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각 나무는 저마다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적극적으로 우리말을 바꿔가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말로 우리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을 바꾸면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말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믿음의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도무지 넘기 힘든 험산준령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 산 앞에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크다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끝내 그 산을 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산을 향해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하나님이신지를 선포해 보십시오. 그 믿음의 선포가 능력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끝내 그 산을 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말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


  한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루는 한 환자가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찾아왔답니다. 얼마 전만해도 활기차게 인생을 살던 분인데 상태가 무척 나빠졌답니다. 진찰해 보니 신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답니다.

  이 분이 밝게 웃으면서 말했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 병은 쉽게 나을 것입니다. 미꾸라지를 꾸준히 다려드십시오.” 그리고 보냈답니다. 이분이 믿음을 가지고 가더랍니다.

  얼마 후 다시 찾아왔는데 정말 혈색이 달라져서 왔더랍니다. 이번에는 더 밝게 웃으면서 말했답니다. “인생의 모든 걱정을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을 바꿀 비결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십시오.” 이분이 그렇게 해 보겠다고 하고 갔답니다.

   얼마 후 다시 찾아왔는데 정말 태도가 달라져서 왔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말에 귀 기울이시고 믿음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랑의 말입니다.

   우리는 인생길을 더불어 걸어갑니다. 때로는 단 둘이 팔짱을 끼고 가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사람이 대열을 이루어 가기도 합니다. 그 때 어떻게 함께 가느냐가 인생길의 행-불행을 결정적으로 좌우합니다.

   서로 돌아보며 사랑의 말을 나누면 그 인생길은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헐뜯고, 저주하고, 서로 탓한다면 그 인생길은 정말 불행할 것입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 모두가 절망 속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인도인들 가슴에 용기와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러 일으켰던 것은 의외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간디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길 가에 한 할머니가 길에 엎드려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간디가 가까이 다가가 손수건으로 그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요. 그러나 나에게는 손이 모자라는 군요” 이 말이 인도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말을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정말 잘하고 있어요.” “당신은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예요.” “힘내세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셋째, 소망의 말입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늘 앞길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더더욱 오늘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미래에 대해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말씀을 세미한 음성으로 듣기 때문에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소망을 말하며 살아야 합니다. 소망을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연극배우 윤석화씨가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그는 이 아이를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작은 평화]라는 책에서 이 아이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선물이었단다. 하늘이 나를 위해 주셨다고, 감히 말하고 싶구나. 네가 나에게 이토록 소중한 선물이 되어주었듯이, 너도 많은 이들에게 선물이 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망의 말을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 때문에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는 말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말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을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말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출처/박봉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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