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신앙교육 (신6:1-9)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 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명기 6:1-9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관심은 우리 부모들이 어느 나라의 부모보다 더 뛰어납니다. 과거에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해서 의식주 문제만 해결해주면 부모 된 책임을 다 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니까 이제는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 중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교육입니다. 과잉 교육열로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자녀교육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특히 신앙교육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는 것입니다.
1. 나는 내 자녀의 부모인가?
좀 쌍스러운 표현입니다만 '저것도 에미냐' 혹은 '저것도 애비냐'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식을 낳은 부모이긴 하나 더 이상 부모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더 이상 부모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부모이나 부모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자식을 낳고는 버리는 부모가 있습니다. 물론 자식을 버려야 하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낳은 자식을 어떻게 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자식을 버릴 때에는 이미 부모임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이면 마땅히 자기 자식을 돌보고 사랑하며 마음껏 자라도록 뒷바라지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부모, 자녀들을 잘 돌보지 않는 부모, 낳기는 했지만 그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모를 진정한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낳은 것만으로 그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 된 우리 모두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과연 우리는 진정 부모입니까? 지금까지 자식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부모다운 부모였는가?
사람은 자기 자식을 버리기도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버리시지 않습니다(시27:7-10). 하나님은 절대로 그의 자녀를 버리시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십니다.
2. 내가 낳은 자식은 내 자식인가?
부모가 자식을 낳았어도 자기 자식이 되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은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은 부모보다도 수령이 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수령의 자식으로 교육을 시킵니다. 북한은 제도적으로 수령의 자식이 되지만 우리의 상황 속에서는 부모와 함께 있으면서도 부모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속만 썩이므로 자식이 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마치 못된 청개구리처럼 부모의 뜻에 거역하는 자식 말입니다. 그런 자식 때문에 부모는 평생 속을 태웁니다. 어떤 자식은 부모를 우습게 여기는 일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학대하는 자식도 있습니다. 요즈음 효도관광이다 뭐다 해서 부모와 함께 여행을 가서는 부모는 남겨두고 자식만 몰래 돌아오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누구를 믿고 살 것입니까? 여러분!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과연 내 자식입니까? 혹 속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진정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3. 육의 혈통의 관계
육의 혈통을 이은 자식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육의 혈통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품안에 키울 때 자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키워놓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들 합니다. 자식이 품안에 있을 때에 부모고 자식이지 떠나면 더 이상 자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끼지만 언젠가는 육의 혈통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미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보모가 자식을 잘 돌보지 않으면 그 부모는 부모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법적으로 자식을 보호하게 됩니다. 부모가 그 역할을 잘하지 못했을 때에 법이 육의 혈통을 끊어놓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적인 혈통만 맺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영적인 혈통을 이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육의 혈통을 끊으라는 말씀을 했습니다(갈4:22-30). 즉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육의 혈통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육의 혈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영의 혈통입니다.
4. 영의 혈통관계
'일 년을 내다보고 씨를 뿌려라 십 년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어라 백 년을 내다보고 자식을 가르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영원을 내다보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영원한 농사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역사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이 어느 민족보다도 탁월한 것은 바로 신앙교육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어렵고 힘들 때, 어떤 위기를 맞았을 때 '엄마, 아빠'를 찾는 것은 어릴 때에 먼저 '엄마, 아빠'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가르치면 '하나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가르치느냐는 것은 이처럼 대단히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집중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작은 민족이지만 세계를 쥐고 있는 강한 민족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교육은 특이합니다. 어려서부터 선민의식을 가지도록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신뢰감을 심어줍니다. 부모와 이웃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신뢰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자립정신을 가르치고 훈련합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강한 자립정신을 넣어줍니다. 더 나아가서는 환경을 지배하고 정복할 힘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합니다. 이렇게 가르치고 훈련하기 때문에 어디를 갖다 놓아도 잘 적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우리의 교육의 핵심이요 내용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입니까? 우리는 육적인 혈통관계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혈통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녀들이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여러분 가정에, 특별히 자녀들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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