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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명설교편◑/옥한음목사 설교(66편)

표준을 낮게 잡으면 망한다 P2 마5:48

by 【고동엽】 2022. 7. 1.

표준을 낮게 잡으면 망한다 P2              마5:48        

 

2001.08.22. 옥한흠 목사님 교갱협 설교                

 

◑표준, 기준을 정확하게 설정하십시오!

 

▲여러분 바울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매우 값진 귀감이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역자로서 일을 하면서, 누구 한 사람보고 ‘나를 본받으라!’는 말을

입 밖에 낸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내 자식들을 보고도, ‘나를 본받으라!’는 말을 한 마디 못했어요.

내 아내보고도..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어요.

 

제자훈련을 지금까지 수 백 명, 수 천 명을 시켰지만

제자훈련을 하면서, 소그룹을 하면서,

너무 웃고, 어떤 때에는 너무 슬퍼서 같이 눈물을 쏟고,

서로 위로하고, 참 은혜의 도가니에 흠뻑 젖을 때가 많이 있었지만..

 

제가 ‘여러분, 저를 보고 따르세요. 저를 본받으세요.’ 감히 그 말을 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고 했어요.

 

우리가 이 정도까지 나가야 되는데, 참 이것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어찌 고민이 되지 않겠어요.

 

▲우리는 사역자로서, 우리 자신의 고민을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참 우리 사역자로 하여금, 정말 기가 죽을 수밖에 없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예수처럼 되라. 작은 예수가 되어라.’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교역자에게만 요구하신 것이 아니에요.

믿는 사람에게 다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표준이에요.

이것이 제자훈련의 핵심 아닙니까.

 

감사하게도 요즘에는 이런 사실을 강조하는 훌륭한 분들의 책들이 많이 소개 되어서

저 자신도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장로교에서는 ‘예수처럼 되고 예수처럼 변하는’ 것은

‘영화 glorification’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저 세상에 갔을 때, 우리는 주님과 같이 될 것이니까

세상에서 너무 그런 면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하면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다.. 라고 생각하는 밑바탕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장로교의 배경을 보면

'예수를 닮는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 강조를 못했어요.

 

‘성화의 점진성’은 신학적으로 이야기는 하지만

그 점진 progress 을, 하나의 이론이라고만 생각을 했지

우리의 인격과 삶이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경지로 들어가야 된다.. 라는

실제적인 면을 강조하지 못했어요.

 

그러다보니까 ‘다 우리는 인간인데..’ 라는 변명을 가지고

적당히 다 눈감아주는 현실주의에, 우리 모두가 곤두박질치고 말았어요.

이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교역자들의 세계에, 냄새가 진동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으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다 요구하시는 표준이에요.

교역자들에게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도 다 시중의 책들을 읽어보셨잖아요.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대로 두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이 예수처럼 되기를 원하신다.’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것은 성경적이니까요.

 

우리가 참 존경하고 사랑하는 헨리 나우웬 같은 사람들은

더 가슴이 콱 막히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우리들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도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우리 자신이 예수님과 같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님과 닮았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는 살아있는 예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우리의 도전이 있다' 라고 했어요.

 

‘나는 살아있는 작은 예수다. 너희는 나를 봐라.’ 라고 할 정도로

우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진정한 구원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즉 창1:27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원형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게 구원인 것입니다.

 

종말론적으로 먼 미래에 되어질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늘 현실에 되어질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장 부담스러워하고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죠.

 

원수 사랑하는 것. 이웃 사랑하는 것.

가족도 사랑하지 못해서 고민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이 주신 유명한 말씀이 있잖아요.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해라.’ 마5:48

 

주님의 요구에요. 이것이 표준이에요.

온전해 지는 자가, 제자라는 말입니다.

온전함이라는 말은, 작은 예수라는 말입니다.

그 수준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예요.

 

모든 믿는 신자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표준이, 이 수준(아버지처럼 온전)이라고 한다면

그들보다도 한 걸음 더 앞서야 하는 사역자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격의 수준, 삶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겠느냐.. 라는 것을

정말 우리가 고민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나름대로의 몸부림이 “없이”

우리가 주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그것은 메마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메시지들을 들으면 굉장히 부담스럽죠.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갱신하자고 하는 타이틀을 걸고 모인 사람들이에요.

표준 standard 을 정확히 다시 확인하실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지금 무엇을 추구하고 있고,

우리가 응시하는 정점이 어디라는 것을 정확히 확인하고 돌아가셔야 되요.

그것이 되지 않으면갱신은 무슨 갱신이에요?

 

 

◑미국교회는, 인격적 표준이 아주 까다롭고 높습니다.

 

▲찰스 콜슨, 여러분은 잘 아시죠?

<거듭남>이라는 유명한 책을 쓰시고

교도소 선교회를 만들어서,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그의 책들은 엄청난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모든 면에서 갖추어진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입니다.

 

그 찰스 콜슨이, 자신과 같이 일하는 교도소 사역자들을 앞에 놓고, 이런 질문을 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고 질문을 했다가, 금방 무슨 말을 했느냐 하면,

 

‘아 내가 질문을 수정하겠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사명을 다 할 수 있을까요?’ .. Doing 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확한 질문이 아니고, 진짜 해야 될 질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 Being의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질문이 남의 질문이어서는 안 되죠. 우리 모두의 질문이어야 합니다.

 

▲척 스윈돌 목사님을 잘 아시죠?

지금 달라스 신학교 총장으로 있는 스윈돌 목사님은

자기와 함께 일하고 있는 사역자들과 함께 늘 확인하는

가이드라인을 하나 갖고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만든 지침이죠.

 

그 지침을 놓고, 자주 자기 자신을 점검하도록 한답니다.

사역자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 질문도 하고, 대답도 하면서..

아주 미국인다운 방식입니다.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니까요.

 

   -지난주에 어디서든지, 사람들의 의심을 살만한 여성과 같이 있은 적이 있는가.

    이것이 첫 번째 질문입니다.

 

   지난 주 동안, 사람들 눈에, 의심을 받을 만 하던지

   조금 이상하게 보일 만큼 의혹적인 어떤 이성과 함께, 단 둘이 앉은 일이 있는가.

   이것을 체크하는 거예요.

 

   -또 하나, 금전거래를 정직하지 못하게 한 적이 있는가. 

 

   -또 하나, 노골적인 성적인 자료를, 포르노 같은 것을 탐닉한 적이 있는가.

 

   -성경공부와 기도에 적절한 시간을 보냈는가.

     제 생각에는 이것이 제일 앞에 나와야 할 것 같은데. 뒤로 미루어 놓았어요.

 

   -가정에 우선적으로 시간을 보내는가. 책임과 역할을 다 하고 있는가.

 

   -소명에 따른 요구에 잘 따르고 있는가.

     소명에 필요한 사역에 잘 헌신하고 있는가.

 

   -제일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거짓으로 대답하지는 않았는가.

    위의 질문 한 가지, 한 가지에 대한 대답이, 자신의 양심으로 비추어볼 때

    거짓으로 대답하지는 않았는가.. 라는 것을 매주 함께 모여서, 점검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그것을 보고서, 참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부교육자가 백 명이 넘지만

한 번씩 이런 데이터를 가져다놓고 점검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척 스윈들 목사님이, 사람이 모자라서 그렇습니까.

아니면 여러 가지 허물이 많아서, 양심의 가책이 되어서 이런 일을 합니까. 물론 아니에요.

 

우리 사역자들이 추구해야 될 인격의 표준이 너무나 높기 때문에

만약이라도 잘못되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망치던지

아니면 주의 이름을 욕되게 하던지

거룩한 교회를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점검 작업을 하는 것이죠.

 

만약에 우리가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날마다 X냐, O냐로 표시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로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씀 드립니다. 교인들이 교역자들에게 요구하는 인격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늘 염두해 두세요.

 

교인들 자신이 주님을 닮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마당인데

교역자들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있을 것 아니에요.

자기와 똑같아 가지고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잖아요.

 

이것이 저로 하여금 자주 번민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목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완벽주의에서 오는 어떤 병적인 사고가 아니에요.

성경적인 뿌리를 가지고 자신을 검증할 때,

피할 수 없는 질문이고, 고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유익한 것입니다.

교인들이 목회자들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적어도 자기들보다는 나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해요.

 

▲미국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도덕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 높은가,

인격적인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를 가끔 보면, 놀랄 때가 있잖아요.

 

클린턴이 그렇게 개망나니 짓을 했는데도,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면 굉장하다고 느끼는데

그런데 또 그들이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엄청나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좋은 예로 지난번에 대통령 선거 때 있잖아요.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선거전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W. 부시가 박빙의 표차를 가르는 혈투였어요.

 

처음에는 인기투표에서 엘 고어가 앞섰어요.

그런데 막판에 접어들면서, 부시가 점점 전세를 역전시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엎치락 뒤치락 했어요.

 

그런데 선거 막판에 두 사람이 TV토론을 했습니다.

그 평가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고어가 훨씬 잘한다. 똑똑하다.’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올라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보니까, 부시가 앞서가는 거예요.

기자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TV토론에서는 고어를 좋게 평가를 하면서, 왜 지지 할 때는 부시 쪽으로 가느냐.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그 기자가 분석해서 써 놓은 글이 있어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고어보다도 부시가 인격적으로 더 신뢰가 간다는 것입니다.

부시가 고어에 비해서, 훨씬 더 정직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신뢰가 간다는 것입니다.

67퍼센트의 사람이 그렇게 대답했어요.

 

두 사람을 보면, 똑똑하기는 고어가 더 똑똑해요.

그러나 신뢰는 부시 쪽이 훨씬 낫다는 겁니다.

 

왜 고어를 그렇게 보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국민들이 대답합니다.

고어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던지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이미지가 박힌 거예요.

대통령만 될 수 있다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들은 본 것입니다.

 

그렇게 본 사람이 열 중에 여섯 명이나 되었어요. 고어의 말이 굉장히 화려합니다.

그리고 고어는 평생에, 자기도 모르게 조금 과장하는 습관이 그의 몸에 배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당히 표현이 화려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감동을 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정말로 저 말을 믿어야 될 것이냐?'에 대한 것을 물을 때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 약간 말 주변도 없어 보이는 부시 쪽이

대통령이 되면 조금 더 진실한 지도자가 될 수 있겠다.. 하는 확신을

국민들은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 많습니다.

세상에서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 정치판인데,

정치판에 대통령이 되는 것에도, 국민들이 어떤 표준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가르치고 외치는 자리에 있는 사역자들에게

교인들이 요구하는 표준은 어느 정도 일까요?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표준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문제를 놓고, 한시도 쉬지 말고 자기 점검을 해야 하고, 고민을 해야 합니다.

 

 

◑다짐과 결단

 

▲저는 이번 교휘갱신협의회 목회자 수련회에 참석해서 참 행복합니다.

시간마다 귀한 종들을 세우시고, 참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폭포수처럼 쏟아주시고

여러분들도 말씀을 듣는 시간이나 기도를 하는 시간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을 볼 때,

 

참 한국교회에 아직도 소망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하나님께서 놀랄 일을 앞으로 하실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을

저 자신이 갖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새벽 기도 설교를 들으니까, ‘한 영혼을 그렇게도 사랑하는구나’

하는 찡한 감동이 전해지고, 저런 자세를 가지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자세다.. 하는 것을 제가 느꼈어요.

 

또 오늘 새벽에도 여러분이 들은 말씀을 잘 기억하시죠?

어떤 장로님을 표준으로 놓고, ‘나도 저 장로님처럼 이웃을 사랑하자!’

그것도 따지고 보면, 누구를 본받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본받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더 주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그 몸부림이

그 교역자의 말에서 배어나오잖아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나도 저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각오를 또 한 번 하게 됩니다.

 

또 저녁 집회를 맡은 정목사님 설교를 여러분들이 들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을 거예요.

예수님 때문에 참 행복한 목회자 한 분을, 우리가 보았어요.

 

예수님으로 인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내면에는 몸부림이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가까이 주님 앞에, 조금 더 주님을 닮은, 조금 더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계속 채찍질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몸부림이 그 배후에 서려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낄 수 있잖아요.

 

▲저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저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어요.

‘너는 제자훈련을 늘 외치는 사람인데, 내가 물어보겠다. 너는 나를 얼마만큼 아느냐?’

이상하게 자꾸 그 음성이, 제 뇌리를 떠나지 않아요. 지금도 안 떠나요.

 

‘너 자꾸 예수님을 닮으라고 가르치는데, 너 도대체 나를 얼마만큼 알고 있니?’

그래서 저는, 그 음성 앞에 마음을 작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생애 조금 더 예수님을 응시하자.’

내가 오르지 못할 정상일지는 모르지만, 조금 더 주님을 눈을 크게 뜨고 응시하자.

밤이고 낮이고 주님을 응시하자.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자.

 

그리고 목회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 하나하나를 놓고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그것을 계속 질문하자.

그래서 예수님이 어떻게 했다는 해답이 나오면,

나도 그렇게 해보려고 몸부림을 조금 치자.

 

내 마음에 잘 들지 아니하는 교인을 놓고,

또 어떤 면에 내 마음에 고통을 주는 교인을 놓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은 3년 동안 가롯 유다를 끼고 다니면서 어떻게 하셨나..

 

베드로와 요한과도 같이, 아직까지 덜 되먹은 제자들을 놓고

주님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그들을 다루셨나.

 

예수님은 한참 인기를 끌고 승승장구 할 때, 어떻게 처신을 하셨나.

주님을 조금 더 내가 응시하고, 조금 더 깊이 바라보면

주님이 보여주신 그 삶을 통해서, 내가 닮아야 될 중요한 핵심이 있는 것을 압니다.

나는 조금 더 주목해야 되겠다...

 

주님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잃어버리고 저 밑으로 추락할 때, 어떻게 하셨나.

주님은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켰는가.

 

내가 조금 더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면, 내가 그런 처지에 빠졌을 때

분명히 주님은 대답하실 것이다.

 

세상에서 멸시받고, 사람대우 받지 못한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서

뭔가 실오라기라도 잡으려고 몸부림 칠 때

그 사람 하나에 대한 관심도 예수님은 어떠하셨나.

 

주님은 사람대우 받지 못한 여자 하나를, 어떻게 다루셨나.

병으로 인해 인생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들을 하나 하나 놓고

주님은 어떤 심령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가셨는가?’

 

나는 거기서 배워야 되는 거예요. 조금 더 배워야 되요.

조금 더 배우고 몸부림을 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갈 수가 있어요.

이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사역자로써 생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직업군이 먹고 살기 위해서 목사일 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다른 일로 부르지 않으셨어요) 

다른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붙들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고,

‘나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주여 내가 안고 있는 이 문제를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항상 이렇게 물으면서 주님을 닮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나도 모르게 모든 성도들이 본받을 수 있는 하나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이런 몸부림, 우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표준을 낮추지 마세요. 우리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설교 제목

 

그는 완전한 자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그 표준이 너무 완전해서, 우리 모두에게는 너무 부담스럽지만

그러나 표준을 낮추지 마세요.

 

대청봉을 오르려고 준비하는 사람하고,

에베레스트를 오르려고 준비하는 사람은 그 자세가 달라요. 생각이 달라요.

모든 것이 틀려요. 보는 눈이 달라요. 오르려고 하는 정상이 너무나도 다르니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그분처럼 살겠다고 하는 정상을,

표준으로 정해놓고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구별될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이 표준을 낮추지 맙시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낮추지 맙시다.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이 칭찬하시는 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집요하게 고집스럽게 주님만을 응시하고 본받으려고 하는 이 자세가

결국 우리 사역에 영광이 되고, 능력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능력을 우리가 갖고 있는 이상, 어떤 문제도 겁나는 것이 없어요.

세상이 아무리 악해져도 겁날 것 없어요.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구름떼와 같이 일어난다고 해서

우리가 위축될 필요가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승리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앞에서는 모든 것이

이미 해결된 상황이에요. 천 년 전에도 세상은 여전히 악했어요.

이 천 년 전에도 세상은 여전히 음란했어요. 똑같아요.

 

우리는 뭐 금방 세상이 악해지고 잘못된 것처럼, 호들갑 떨 것 없어요.

세상은 언제나 똑같았어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세상이 얼마나 악하냐.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손에 쓰임을 받는 우리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가 문제에요.

우리 모두가 표준을 낮추지 말고, 오직 주님을 푯대로 삼고

그분만을 닮아가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목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임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 모두가 서로 쳐다볼 때마다

서로 자랑스러운 동역자가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모였을 때는 뜨겁습니다.

기도할 때도 뜨겁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도 아멘으로

정말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만큼 그 분위기는 화려합니다.

 

그러나 일단 문을 열고 나가면 너무나도 처참합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 교역자들의 특징이에요. 또한 교인들의 특징이에요.

문 열고 나가면 사람이 달라져요.

마치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땀을 실컷 흘리고 밖에 나갈 때와 비슷해요.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오늘 날 한국 교회가 부흥회가 없어서 이 꼴이 되어갑니까.

수련회가 없어서 이 꼴이 되어갑니까. 기도 안 해서 이 꼴이 되어갑니까.

 

미국 사람들이 볼 때에는, 우리 한국 교회를 볼 때

목회자들이 어마어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기도를 적당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과 비교할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초라하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실추된 우리의 인격을 회복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라고 하는 그 표준을

다시 한 번 정확하게 확인하고

힘이 들어도, 십자가를 져도, 자기 부인을 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그런 고달픈 삶을 살아도

그 분을 닮아가려고 하는 몸부림, 이것만큼은 포기하지 맙시다.

이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십니다.

 

▲마지막 시간이니까 우리 한국 교회를 가슴에 안고

<부흥>이라는 찬양을 함께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그 찬양 속에 우리의 탄식과 회개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 속에 우리의 비전이 들어있고, 하나님의 소원이 들어있습니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못하게 하는

우리 마음 속의 우상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이 우상을 불태우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우리가 다시 한 번 회복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다시 한 번 성령의 바람이 불고,

진리의 말씀이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영광스럽고 거룩한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는 간절함이

우리 가슴 안에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부흥을 막는 어떤 악의 요소가, 내 인격에 있습니까.

내 숨은 삶에 있습니까. 내 교회 안에 있습니까. 주여 가르쳐주옵소서.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면, 주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 서겠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참석해서 첫 시간에, 목회자의 자기 성찰이 왜 중요한지를 들었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모두를 우리 마음에 담고, 깊이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첫 시간의 메시지가, 이틀 동안의 모든 메시지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첫 날 새벽에 우리가 세 가지 소리에 대해서 설교를 들었죠.

그 설교자를 통해서, 한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감정을 우리가 느꼈죠. 배우고 돌아가야 합니다.

 

소명이 무엇입니까. 나는 소명자입니까.

다시 한 번 질문하고 대답 받고 돌아가야 합니다.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행복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를

참 깊이 있는 말씀을 들었어요. 충분할 때 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얻을 때까지,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입으로만 좋은 이웃이라고 떠들지만,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한 희생을 잘 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약점을 늘 기억하고 안타까워합니다.

 

그 설교를 들으면서, ‘아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은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배웠지 않습니까.

 

오늘 마지막 시간은, 우리의 표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절대로 낮추면 안 됩니다. 낮추면 세속화됩니다.

낮추면 망합니다. 낮추면 세상 사람하고 다를 바가 하나도 없어요.

우리의 표준, 정확하게 우리가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 남은 짧은 시간에, 주님 앞에 기도하고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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