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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기도

엘리사의 기도 (왕하 2:12~14절)

by 【고동엽】 202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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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기도  (왕하 2:12~14절)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지금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일군을 찾고 있습니다. (마 9:37)보면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한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를 비롯하여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사용할 성도는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다. 너는 참된 일군이냐 물음에 저 또한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엘리야와 엘리사는 하나님의 일군이면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계승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예입니다. 참된 일군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참된 신앙의 대물림 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눈을 돌려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겠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선생과 제자 사이로써 아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엘리야는 모든 것을 물러 주려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며 엘리사는 엘리야를 수종들며 끝까지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임한 능력을 사모하며 나에게도 은혜가 감절이나 임할 것을 관절이 바라고 있습니다.

1. 엘리사의 통곡 {12절}

엘리야의 승천 직후 일어난 상황으로서 엘리야의 선지자 승계가 요단강 가름과 엘리야의 권한 위임으로써 증거된다. 엘리야의 승천 사실을 엘리사가 목격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엘리사가 제시해 주었던 상황(3, 5절)이 성취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엘리사는 자신이 요청한 '갑절의 영감'이 응답된 것을 알았다. 여기에서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엘리사의 이 외침은 2장에서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있다. 본문에서 '아버지여'라고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본문의 의미는 엘리사가 자신을 엘리야의 영적 아들로 인식하고 엘리야를 '아버지'라고 호칭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라'는 외침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참 보호자가 된 것을 의미한다. 한편 병거와 마병은 그당시 최고로 강력한 병기로 이스라엘의 왕들이 왕국의 국력을 과시하고 안전을 의존했던 것이다. 엘리사 히브리어로 '엘리솨'로서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의 '엘리'와 '그가 구원하신다'라는 뜻의 '예솨'가 합쳐진 말이며 '나의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엘리사가 자신의 옷을 찢은 것은 스승과 이별하는 슬픔을 나타낸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던 엘리야가 사라진 것은 엘리사에게 큰 슬픔과 더불어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그의 이러한 심적 상태가 단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엘리사는 본래 농부였다. 많은 농토를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직접 농사일을 했던
사람이다. 그의 학력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자신의 본업에 충실했던 사람이다. 그의 운명을 바꾸어준 사람은 엘리야였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엘리사 라는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도록 하신 것이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너는 이제부터 내 후계자다 라는 말을 통보해주었고, 엘리사 역시 그러한 통보를 받자마자 즉시 따라 나섰다.
그는 스승인 엘리야를 항상 수행했다. 그리고 선지자의 길이 어떤 길인지를 직접 체험하
였다. 오늘날과 같은 건물 안에서 행해진 탁상수업이 아니었다. 선지자의 고난과 사명의 귀중성을 피부로 체험하였다. 뿐만 아니라 엘리사는 그의 스승 못지 않은 영성도 준비하였다. 그의 스승이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원천이 바로 성령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리야는 그의 승천에 앞서 후계자 엘리사를 연단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2절) 길갈-벧엘-여리고- 요단으로 이어지는 험난하고 고된 여행을 하는 동안 엘리야는 엘리사로 하여금 여행을 포기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2,4,6절) 사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여행을 포기하도록 세 번씩이나 간청한 것은 엘리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세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대업을 맡기면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17절)라고 세 번씩 같은 질문을 하신 것과 같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험난한 길은 외모로만 나타나는 영광된 길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환난과 어려움을 무릅쓰고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더욱 굳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이러한 스승의 시험을 훌륭히 통과했습니다. 또한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엘리사는 소리지르며 자기의 옷을 잡아 찢었습니다. 이렇듯이 엘리사는 절박한 위기 사항을 알고서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처에 있는 상황을 살펴봅시다. 사회가 변화하고 물질이 풍부해짐에 따라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간에 쫓겨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잘못 되어져 가는 현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여야만 관계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본문에서 엘리사는 통곡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어려움도 그에게 있었습니다. 엘리야에게서 따라오기를 거절당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안했습니다. 그는 엘리야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사모하였으며 주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럼으로 그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사의 끈질긴 기도를 우리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2.엘리사에 임한 은혜 {13절}


이제 엘리사는 위의 모든 사실을 목격한 증인들에게로 되돌아 오기 시작한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줍는 후계자 계승의 상징적 행위는 왕상 19:19에서 엘리사가 선지자로서 처음 부름을 받던 행위와 서로 연관된다. 한편 엘리야의 떨어진 겉옷은 엘리사의 요구가 성취되었다는 하나의 증표임과 동시에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단정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외적 증거이다(15절)

이제 엘리사에게 결단의 시간이 닥쳤다. 하나님께서 스승인 엘리야를 데려가신다는 사실
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스승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하는 중임을 맡게된 것이다. 엘리사는 이일의 성패는 바로 성령의 능력임을 알았다. 성령의 인도함이 없이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엘리사는 스승에게 내게 갑절의 영력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물론 엘리야가 임의로 공급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비록 엘리야를 통한 청구였지만 그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청구였다. 하나님은 엘리사가 보는 앞에서 엘리야를 불러 올리셨다. 강력한 회오리바람으로 하여금 엘리야를 공중으로 휴거 시켰다. 이제 엘리야는 땅에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목격한 엘리사는 흥분해 있었다. 이러한 사항은 아주 긴박하고 절망감에 빠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이러한 현상에도 굴복하지 않고 목숨을 다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엘리야가 입고 있던 옷을 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엘리사에게도(왕하 2:8)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나타낼 수 있게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엘리사가 선지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이 앞에 놓여 있을지라도 실망하지 않는 삶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은 끝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때 닥치는 어려움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간구 하십시오.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뜻에 관계없이 주시는 것도 있지만 엘리사 처럼 기도하므로 우리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 처럼 살아갈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주어졌습니다. 이제는 성령이 여러분의 삶을 리더 하시기를 원합니다.
3.요단강을 가르시는 하나님{14절}


여기서 '물을 치다'라는 표현이 두 번 거듭해서 언급된 것은 스승 엘리야가 행했던 능력을 상기시켜 줌과 동시에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출14:21,22; 수 3:17).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나이까 히브리어 원문은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표현되어 있어 마지막의 두 단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엘리사가 이렇게 외친 것은 엘리야에게 능력을 주셨던 하나님께 자기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간구 했던 기도였다. 그러나 이것을 엘리야와 함께 그 하나님의 능력이 더불어 사라진 것이 아닐까하는 근심의 표현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와는 반대로 엘리사는 질문의 강조 형식을 빌어서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충성심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그의 신앙에 응답하여 기적을 이루게 하셨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외적으로 확증시켜 주셨던 것이다.


엘리야를 향하여 간절히 부르짖었다. 내아버지여! 라고 불렀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옷을 찢었다. 극도의 흥분상태였음을 짐작케 하는 행동이다.
엘리야의 겉옷이 떨어져 있었다. 유일한 유품이었다. 그는 이 옷을 들고 요단강물을 향
하여 흔들었다. 그랬더니 신비한 현상이 발생했다. 강물이 이리 저리로 갈라지는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었는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십니이까?
하고 소리질렀다. 강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갈라진 강을 걸어서 건넜다. 이 기적은 하나님의 섭리와 필요조건에 이루어진 사건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엘리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의 농사꾼에 불가하며 힘이 없고 나약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 대열에 올려놓으셨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사항을 볼 때 지금도 어느 누구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고자하는 동시에 지금도 역사 하시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제 주어진 은사를 활용하는 문제입니다. 은사를 사용할 줄 모름으로 소멸시키는 것을 많이 보고 듣기도 합니다. 은사 중에 기적과 이적을 나타내는 은사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사랑, 섬김, 헌신, 봉사 등등이 있습니다. 이런 은사를 활용할 때 크나큰 역사가 여러분의 주위에 일어날 것입니다. 은사를 기지고 계십니까. 활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결코 은사가 소멸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담대하게 사용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삶의 변화와 내가 모르는 일을 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지금 이 순간부터 성령님의 이끌림에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일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십시오. 또한 여러분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동행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동행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에 여러분의 삶이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며 여러분의 삶에 항상 축복이 있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결론
이 본문에서 받을 교훈이 있다면 엘리야와 엘리사의 계승의 문제 일 것이다. 진정으로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엘리사를 선택하여 훈련시키는 한편 그에게 모든 것을 주기로 작정함으로 후대의 선지자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잘 수행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엘리사는 본업인 농부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작정한 엘리사는 가족과 제물을 버리고 엘리야를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렵고 힘든 것을 선택했습니다.
엘리사는 여행을 하면서 엘리야에게서 따라오기를 거절당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표했던 축복을 받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진정한 계승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의 부모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자녀에게 물질을 물러 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전해줌으로써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값지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계승이 이루어짐으로 자손 만대까지 이어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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