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님을 향한 뜨거움
영국의 한 시골 노인이 난생 처음 런던 관광을 왔습니다. 그는 그림에 조예가 있어서 유명한 화실에 들러 이 그림 저 그림을 구경하다가 신앙이 독실한 대 화백이 필생의 걸작으로 그린 예수님의 상을 보고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경건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한참 그림을 쳐다보다가 노인의 두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오 !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관람객 중의 한 부인이 그 노인에게 가서 손목을 꽉 잡으며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 한 학생이 이 장면을 보고 "할아버지,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 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이름 아래서 그들은 서로 통했고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삽시간에 칠팔 명의 사람들이 그 앞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주님을 향하는 뜨거움이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항상 있어야 됩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 2:17)
/김준곤 목사
2. 가장 중요한 분
영국을 여행할 때 제일 먼저 방문하는 곳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그곳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묘가 있습니다. 리빙스턴을 비롯하여 엘리자베스 여왕, 음악가, 건축가, 시인, 정치가, 귀족 등 영국의 유명 인사들의 무덤이나 비석들이 그 사원 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일종의 박물관이니까요.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본래는 그런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이었습니다. 그러한 곳이 이제는 영국 왕이 취임하는 곳으로, 유명 인사들의 묘지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국의 역사를 보존한다든지 역사를 계승한다든지 또 관람객들에게 영국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역할을 하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원 안에 들어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느끼고 나올 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자기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을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전 안에서 정말 시선을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분, 홀로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는 무관심합니다.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면 그는 참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옵소서.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이나 물질에 나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나의 모든 생각과 뜻을 늘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을 날마다 묵상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3. 무엇보다 귀한 분
영화의 고장 할리우드에서는 가끔 배우들과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아침 식사를 나누는 모임이 있다. 이때에는 당대의 최고 인기 배우나 유명 인사를 초빙하여 간단한 연설을 듣는다고 한다. 한번은 매우 아름다운 용모의 여성이 연사로 등단했다. 그녀는 미국의 최고 미인 열 명중의 한 사람으로 뽑힐 만큼 아름다운 영화배우였다. 이 여자가 마이크 앞에 나오자 박수가 요란스럽게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녀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나는 지금 사랑에 빠졌습니다!" 장내는 이상야릇한 흥분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도대체 그 행운을 잡은 사나이가 누굽니까?" 여자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영화배우의 일도 그만두려고 합니다." 과연 그 여자는 자신의 말처럼 할리우드를 떠나서 후에는 목사의 아내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 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누군가가 그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당신은 할리우드의 명예와 부를 물리치고 예수님을 택하신 일에 전연 후회가 없으십니까?" 그녀의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할리우드의 스타나 영국 여왕의 자리도 지금의 저와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저에게 이처럼 귀하신 분이십니다."
참으로 멋진 답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부귀, 명예, 행복과 바꿀 수 없는 존귀하신 분이시다.
* 기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신 주님, 귀한 주님의 이름을 찬양드립니다. 이세상의 무엇보다도 주님만이 나의 기쁨이요 전부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나는, 가장 행복한 자요, 부요한 자인 것을 또한 믿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두 번째 자리
스펄젼은 어느 날 밤, 그가 수많은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엑세터 홀로 그의 약혼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택시가 그 홀에 도착했을 때 그의 마음은 온통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수잔 탐슨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이야기해놓고 예전처럼 군중 사이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이 끝난 후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찾아보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더니 그녀는 몹시 토라져 있었으며 다시는 만나지도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펄젼이 계속 만나 달라고 간청함으로 그녀는 마지못해 아래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먼저 사과한 후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잘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오. 나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종이 되길 첫째로 원합니다. 주님은 항상 나의 첫째이며, 주님을 위한 일도 최우선입니다. 당신이 이 사실을 알고 기꺼이 나의 두 번째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매우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오. 나의 첫째 임무는 주님의 일입니다."
나중에 스펄젼의 부인은 그 날 밤 남편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신 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두 번째 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보다 선행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이동 명령이 내려졌을 때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5. 아내보다 먼저 주님을
데이벳 리빙스턴이 선교사업에 자원할 때까지 그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결혼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가족들에 의해 생기는 걱정거리가 없다면, 선교사업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메리 모페트를 만나게 되자, 그는 그녀에게 구혼을 하게 되었고 둘은 결혼을 하였다. 메리는 곧 그의 남편이 하나님을 삶의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녀도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리빙스턴은 아내인 메리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아내여, 주의 은총이 그대에게 내리기를! 당신의 애정을 나에게보다 주 예수님께 더욱 깊숙이 쏟으십시오. 우리들 서로가 아무리 깊은 사랑을 느끼더라도 항상 예수님을 모두의 친구와 안내자로 생각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모든 악으로부터 자신의 영원한 품안에서 당신을 지켜 줄 것입니다."
6.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오
아프리카 오지에서 전도탐험을 계속하던 리빙스턴에게는 이미 약혼한 연인이 본국에 있었다. 메리라고 부르는 그 여인에게 쓴 리빙스턴의 편지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친애하는 자여! 이미 그대는 나의 곁에 있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하나님에 대한 그대의 사랑이 나에 대한 그것보다 더욱 깊기를 바라오. 그리고 하나님의 강한 힘과 은총에 힘입어 한결같이 자신을 지켜나가기 바라오.
내 존재가 당신의 신앙에 있어 방해됨이 없기를 기도하겠소. 우리들이 서로 측량할 길 없이 깊은 우정을 느낀다고 해도, 언제나 예수를 우리들 공동의 친구로 삼고, 그가 길잡이가 되시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총으로 모든 죄로부터 그대를 지켜 주실 것을 빕니다."
암흑의 사지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보낸 간절한 편지 속에서 리빙스턴이 왜 아프리카의 삶을 살아야 했는지, 그 신앙적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맡겨진 것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한 영광의 일이었음을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언 8:17)
7. 나의 사랑, 나의 생명
지금은 탄광에 환기장치가 잘 되어 있어 큰 위험이 없지만 예전에는 메탄가스 폭발사고가 많았다. 안심하고 일하기 위해서는 누적된 메탄가스를 새벽에 태워버려야 했다. 파이어 맨(불 붙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젖은 두꺼운 옷을 입고 긴 나무 막대기 끝에 불씨를 켜서 누적되어 있는 가스를 태운다. 이는 가스가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냄새로만 판단하면서 굴에 들어가기 때문에 목숨을 건 작업이었다. 그것은 모든 광부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 십자가에 파이어 맨으로서 매달리셨다. 가스에 덮인 탄광처럼 죄에 덮인 인간들의 죄악을 불태워 없애기 위하여 자신을 태운 것이다. 예수를 생각하면 오직 감사의 눈물이 흐를 뿐이다. 오직 예수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편해진다. ‘주여, 당신만큼 참아본 사람이 있겠습니까? 당신만큼 빼앗겨본 사람이 있겠습니까? 당신만큼 멸시를 받아본 사람이 있겠습니까? 당신만큼 외로워해본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분의 마음을 내 마으로, 그분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할 수 있다면, 그분의 행복도 나의 행복으로 삼을 수 있지 않겠는가? 참으로 당신은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여, 나는 약하여 한 순간도 당신 없이는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포옹은 부드럽고 당신의 오른손은 힘이 있어 나를 만족게 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지 마소서.’
8. 주님과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타울러가 수도사가 된 지 얼마 안되어 라인 강변에서 혼자 선행에 대해 깊이 묵상하면서 산보를 하고 있었다. 이 때에 노인 한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노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언제나 기쁘다. 내게는 모든 날이 선(善)하다. 나쁜 날은 하루도 없다."
그러자 타울러가 노인에게 물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옥으로 떨어뜨리신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자 노인은 유쾌하게 대답했다.
"지옥이 어디 있는지 나는 모르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주님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오. 한쪽 팔로는 겸손이 주의 인성(人性)을 안았고, 다른 팔로는 사랑이 그의 신성(神性)을 붙잡았고. 그래서 내가 가는 곳에 주님도 갑니다. 주님이 없는 황금의 천국에 가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불구덩이 지옥에 있는 것이 더 낫소."
9. 최상의 사랑으로 사랑하라
성경 말씀에서 사랑은 어떤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 어떤 한 사람을 버리고 다른 한 사람을 선택하는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분을 비길 데 없는 최상의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첫 번째 요구에 바르게 반응하기 위해 우리는 의지적으로 삶 속의 모든 관계를 재조정해서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와 경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다. 왜 그려셨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하나님의 우선적인 관계가 최상임을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마태복음 6장 24절을 통해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돈을 똑같이 섬길 수 없다. 때때로 돈에 그저 ‘익숙해지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굉장히 좋아할 따름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그 두 가지 우선 순위를 모두 가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돈, 그 둘은 서로 상반된 충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의 관심은 오직 그분에게만 집중되어야 한다. 이런 중국 속담이 있다. “어떤 집도 두 여인이 같이 살 만큼 큰 집은 없다” 같은 이치로 어떤 크리스천의 삶도 두 연인을 둘 만큼 크지 못하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방법으로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우리 삶의 전면 중심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이상을 해야 한다. 그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신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어떻게 그렇게 하고 있는가?
10. 소망은 오직 예수
한때 테니스 세계의 정상을 차지했었으나 자살을 시도했던 보리스 백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윔블던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했습니다. 그중 한 번은 가장 나이 어린 선수였습니다. 나는 부자였습니다. 필요한 모든 물질을 소유했지만 아주 불행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저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였습니다. 이런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만이 아닙니다. 유명한 소설을 쓴 한 작가는 소년 시절에 알았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정상에 도달해 봐야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소유하고도 여전히 불만스럽고, 자살까지 기도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우리를 오직 그분만이 만족시켜 주실 수 있는 의미와 목적과 희망을 갈망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때 주님께서는 이 갈망을 채워 주십니다. 성공을 했든 안했든 누구든지 이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길은 주 예수를 구주로 모시는 것뿐입니다.
11. 예수만 바라보자
성경: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경기도 개성시 북쪽 16Km 지점에 솟은 천마산 아래에는 박연폭포가 있습니다. 그 폭포를 향하여 가는 길에 두 절벽이 마주보며 만나는 곳이 있는데 그 간격은 약 1미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1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를 건너뛰는 사람이 몇 사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지에서의 1미터라면 어린 아이도 건너 뛸 수 있지만 천야 만야한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건너 뛰자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위를 결단의 바위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밑을 바라보지 말고 평지라고 생각하며 앞에 있는 목표만 바라보고 결단을 내려서 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이 1미터의 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뒤를 바라보지 말고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12.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라
큰 성공을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자
큰 지위를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자.
큰 교회를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자.
큰 부요를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자.
큰 명성을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자.
큰 성공과, 큰 지위와, 큰 교회와, 큰 부요와, 큰 명성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성공과 지위와 교회와 부요와 명성은 모래위에 세운 집처럼 언제 무너져버릴지 모릅니다. 올해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오직 예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최용우
13. 오직 하나님께만
영국의 '죠지 뮬러'처럼 신앙으로 살았던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아원을 지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셨다. 그는 인간에게는 한 푼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부탁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건물과 교사들과 고용인들과 음식과 의복 등 필요한 모든 것을 보내 주셨다. 수백 명의 고아들은 다음 끼니의 식사를 어디에서 공급 받을지도 알지 못한 채 마지막 식량을 먹는 일이 흔히 있었다. 그러나 '뮬러'는 기도하였고 아이들은 한 끼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믿음을 소유해야겠다. 오늘날에도 오직 하나님께만 아뢰고 그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14. 오직 당신만을
페르시아 왕국의 시조인 고레스가 한 왕자와 그의 가족을 사로잡았던 일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고레스가 포로로 잡혀 온 왕자에게 물었다. "너를 풀어준다면 나에게 뭘 주겠느냐?" "전 재산을 드리지요." "너의 아내를 풀어 준다면, 어떻게 할 거지?" 그러자 왕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저를 드리지요." 고레스는 가족에 대한 왕자의 헌신에 감복해 가족 모두를 풀어 주었다. 가족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왕자는 아내에게 물었다. "고레스가 멋지지 않았소?" 그러자 그녀는 사랑이 가득한 눈길로 남편을 바라보며 이렇게 답했다. "모르겠어요. 저는 오직 당신만 바라보고 있었는 걸요.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한 사람, 당신만을요."
우리는 성도로서 다른 그리스도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항상 먼저 바라봐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믿음의 경주임을 알고 인내와 훈련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날마다 간구하라.
/레리 모이어
15.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
살라만카의 성 '이냐시오'는 이단자라는 혐의로 투옥되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와서 그의 불행을 동정하였다. 그러자 '이냐시오'는 '불행이라니요, 당신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쇠사슬에 묶이게 되는 것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이 전혀 없는 것이요.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하여 묶이고자 하는 만큼의 많은 쇠사슬과 족쇄가 이 살라만카에는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요'. 라고 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더불어 괴로움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신앙의 가장 훌륭한 표본이 아닐 수 없다
16. 물이 바다 덮음같이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던 89세의 할아버지 선교사가 뇌일혈로 쓰러져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온전히 기도했고 다시 일어나 인도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스탠리 존스입니다. 넬 마리라는 사람은 스탠리 존스의 전기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마침표를 찍으실 때까지 자신이 결코 쉼표를 찍지 않았다. 그의 고향은 미국도, 인도도 아니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하나님께서 마침표를 찍으실 때까지 그는 결코 쉼표를 찍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록 미국에서 태어났고, 대부분 인도에서 살았지만, 그 어디에도 그의 마음을 둔 적이 없었습니다. 오직 그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품 속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얼마 안 있어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어디에 소망을 두고 계십니까? 온 세상 모든 민족과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세상,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주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한 그런 세상을 꿈꿀 수는 없겠습니까? 온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거룩한 승리를 축하하는 그런 함성을 듣는 꿈을 가지십시오.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전하십시오. 온 세상이 여호와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날이 오기까지. 하나님만이 희망입니다
/서정오
17. 예수님밖에…
오래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한인 안경점에서 텔레비전 광고를 하였습니다. 그 광고의 멘트는 안경점 주인이 나와서 어눌한 말투로 “내가 아는 것은 안경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는 한 마디였습니다. 이 광고가 당시에 큰 히트를 쳤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에는 최고의 광고로 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안경점에서 안경밖에 모른다는 것은 자랑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톨릭 신학의 거장입니다. 아퀴나스는 훌륭한 학자이며 동시에 경건한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천사와 같은 박사’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수도원에서 기도하던 중 예수님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주님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18. 전심을 주는 생활
어떤 교수가 사숙을 경영할 때 많은 제자들이 자기에게 지혜를 배우러 왔습니다. 제자들은 항상 그 스승에게 많은 선물을 드렸습니다. 한 사람이 그 교수에게 부름을 받아 영광스러운 제자의 반열에 끼게 되었습니다. 선물을 가져가야 하는데 선물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선물을 하는데 자기는 선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선생님, 제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을 때, 그 선생은 의아해서 "그래, 무슨 선물을 가져왔지? 자네는 돈도 없을 텐데‥‥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때 제자는 "저 자신입니다. 제 마음을 바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유명한 교수는, "내가 이 세상에 나와서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지금 네게서 받은 선물은 내가 한 번도 받아본 일이 없다. 내가 원하던 선물은 바로 그것이었다. 너는 공부를 다 했다. 나도 나 자신을 너에게 주노라." 하고 감격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19.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지 않는 삶의 모습
얼마 전에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고 노인들만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설교 내용에 대하여 반감을 갖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모두 기도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시작되었는데도 모인 무리들은 고요하고 교회당 안에는 을씨년스러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 누구의 기도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기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러도 도무지 기도의 영이 느껴지지 않는 공동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숨길 수 없도록 그대로 반영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하여 가장 잘 표출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기도보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모이는 대부분의 모임 가운데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과 교제해야겠다는 단호하고도 끈질긴 마음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서 교회와 집 사이를 오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삶의 모습입니다.
/김남준 목사
20. 버림받은 예수
지스문트 겟치라는 화가의 '버림받은 예수'란 비유적인 그림이 있다. 성바울 대성전의 계단에 예수가 서 있다. 그 주변에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스포츠 신문에 열중한 청년, 휴가여행을 위하여 택시를 잡으려는 남녀, 길을 가면서도 시험관을 들여다보고 있는 과학자, 그러나 아무도 예수가 거기에 서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없다. 신부 서너 명이 둘러서서 팔을 휘두르며 열렬히 토론하고 있지만 예수에게는 신경을 안 쓴다. 오직 한 사람 간호원 제복을 입은 여성만이 잠깐 멈추어 곁눈으로 예수를 보는 장면이다. 이 그림은 현대의 기독교인을 상징하고 있다.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은 예수의 일방적인 약속이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도 정말 예수와 함께 생활하는가? 나의 생활 전체로 볼 때 예수는 아주 작은 존재가 아닌가? 시험 때문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예수는 시험보다도 비중이 낮은 것이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인가? 몇 십 만원을 손해볼 것인가? 그런 선택에서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 몇 만을 벌기 위하여 예수는 멀리 젖혀놓는 우리가 아닌가? 예수는 말씀하신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나에게 실망하지 않는 사람, 예수를 작게 보고 그대의 생활에서 나 예수를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21.하나님의 닮은 꼴
한 여인이 임신을 한 후 다른 남자의 상을 자꾸만 생각하면 자기 남편이 아니라도 그 남자를 닮은 아기를 낳는다는 토마스 하디의 (환상의 여인)이라는 작품을 보면 거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시인을 마음속으로 사모한 여자가 그 시인을 닮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남편에게서 오해를 받습니다. 그녀는 한 번도 그 시인을 만나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으로 사모하고 상상하여서 마치 그 사람의 아기를 임신한 것처럼 그 사람을 닮은 아기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 사모하기를 임신한 여인이 사모하는 이를 닮은 아이를 낳는 것처럼 그렇게 사모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야 합니다. 눈도 닮아야 하고 표정도 닮아야 합니다. 이것은 못생기고 잘생기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얼굴을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듯이 자기의 눈동자 속에서, 자기의 언어 속에서, 자기의 불행을 통해서, 고독을 통해서 예수가 드러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22.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1827년 스콧트랜드의 항구에서 배에 올라탄 노인 목사가 있었습니다. 성 안드레 교회에서 50년간 설교한 라이트 목사였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따뜻한 곳에 살아야 하겠다는 의사의 지시를 따라 프렌치 리비에라로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첫 번 기항지인 프랑스의 북부 항구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아침 출항 시간에도 라이트목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여관 방을 열었더니 노인 목사는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며 책상에는 밤 사이에 쓴 시 한 편이 놓여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전세계가 애송하는 찬송가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531장)입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날은 빨리 저물고 어둠이 짙어가는데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아무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을 때 오직 나를 도와주실 수 있는 주여, 나와 함께 거하소서 작은 인생은 썰물처럼 멀어가고 땅의 기쁨과 영광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변하지 않는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주님의 축복이 내 곁에 있으면 병도 힘을 못 쓰며 눈물도 쓰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죽음도 무덤도 승리의 개가가 되리이다. 내 눈을 감기 전에 십자가를 보게 하소서. 하늘의 새벽이 밝아올 때 허망한 땅의 그늘은 사라질 것이오니 사나 죽으나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23.두 장애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한 청년은 축구, 레슬링, 권투 등 만능 선수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979년 권투 시합에서 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못쓰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치료를 받고 보조기를 쓰면 혼자서 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에게 산에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정상에 다다르자, 그는 그를 산에 옮겨 준 친구들에게 잠깐만 자리를 피해 달라고 하고는 숨겨 가지고 온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24세였습니다.
다른 한 청년은 어느 날 불량배들에게 칼을 맞고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는 투지로 노력한 끝에 낙하산 점프의 묘기를 보였고, 특별 장비를 갖춘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며 혼자서 취사, 세탁, 청소 등을 하며 생활합니다. 그는 또한 휠체어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관한 세 권의 사진첩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동일한 상황에서 한 사람은 죽음을 택했고, 한 사람은 생명을 택했습니다. 성경은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네 앞에 놓았으니 생명을 택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생명을 택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24. 왕은 포도를 팔지 않는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한 여인이 포도를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중병에 걸린 외아들이 포도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여인은 궁궐의 담벼락에 탐스런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고 관리인에게 사정했다.
“1백달러에 포도를 파십시오”
관리인은 고개를 저었다.여인은 다시 2백달러를 제시했다.관리인은 화를 벌컥 내며 여인을 궁궐 밖으로 내쫓았다.공주가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슬피 울고 있는 여인을 불렀다.
“여인이여,당신은 지금 큰 실수를 했습니다.이 포도의 주인은 이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장사꾼이 아닙니다.그분은 포도를 팔지 않고 그냥 주신답니다”
공주는 포도를 따서 그녀의 품에 안겨주었다. 인간의 구원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자신의 선행과 성품으로 주 안에서의 영생을 살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값없이 얻는 선물이 바로 ‘구원’이다.
/임한창
25. 단 한 분만을 위하여
이제 갓 안수를 받은 젊은 목사가 어떤 교회로 부임하였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신임 목사를 환영하는 만찬회가 열렸는데 어떤 부인이 젊은 목회자에게 다가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목사님께서는 7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힘든 일을 맡으실 생각을 하시게 됐는지 이해가 안 가는 군요"
그러자 젊은 목사는 주저함 없이 대답하였다.
"제가 이 도시에 온 것은 7백 명의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단 한 분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그분이 기쁘시기만 하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저절로 잘 될 것입니다.
26. 예수의 사람
서울 봉천동의 고갯길에서 큰 글씨로 엉성하게 인쇄되고 맞춤법이 엉망인 전도지 1장을 주웠습니다. “예수를 미드면 맘이 평안함을 어더요/수고롭고 괴롬많아 짐무겁게 진자여 빨리 내게 나아오라/평안 함을 주리라/하신대로 나는 믿고 평안함을 어더/전도합니다/ 미드면돼요/미드세요.”
이 전도지를 나누고 다녔을 사람은 사실 자신의 무식함을 자랑하는 셈이 되었겠지만 이 사람은 그것이 문제되지 않을 만큼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넘쳐 흘렀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로 말미암아 소유한 평안은 혼자서 가지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전도지를 준비한 것 같습니다. 그 전도지는 교회의 이름이 적힌 그런 전도지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전도자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로만 가득한 전도지였습니다.
어느 교파의 사람이 되기 전에, 어느 교회의 사람이 되기 전에 ‘예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맨 앞자리에 모시지 않는다면 교파도 교회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임종수 목사(큰나무교회)
27. 일편단심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1711∼99)는 1735년 25세에 등극하여 황제로 60년,태황제로 4년 도합 64년을 통치한 분입니다. 그가 1760년께 신장 위구르족을 정벌하고 카슈가르족 왕의 정혼녀 향비(香妃)를 전리품으로 얻었는데 향기 나는 미녀란 뜻의 이 향비가 자금성에 갇혀 온갖 호의호식을 마다하고 오직 고향 카슈가르 음식을 먹고 위구르 복장을 고집하면서 항상 비수를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황태후가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죽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향비의 애틋한 사랑의 일편단심이 애절함을 넘어 존경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자금성의 온갖 부귀영화도 그녀의 일편단심을 꺾지 못해 끝내 향비는 숨을 거두고 그녀의 소원대로 고향 카슈가르에 안장되었습니다.
일편단심,그것이 애정이든 애국이든 실용주의와 기회주의가 판치는 오늘날에는 더욱 존경받을 일입니다. 예수를 향한 성도의 사랑 또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한 일편단심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철재 목사(서울성서교회)
28. 최고의 신랑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을 다른 어떤 일과도 바꾸지 마십시오.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는 신랑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신랑입니다. 혹 당신은 부자 신랑을 원합니까? 부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비교할 자는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
든 것이 그분께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분의 신부가 된다면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을 그분과 더불어 나눌 것입니다. 지혜로운 신랑을 원합니까? 지혜에 있어 그리스도와 견줄 자는 없습니다. 그분의 지식은 무한해 모든 것을 통달합니다. 당신이 그분의 신부가 된다면 그분은 당신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악한 세대의 모든 공격에서 당신을 보호해 줄 힘 있는 신랑을 원합니까? 능력에 있어서 그리스도만 한 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착한 신랑을 원합니까? 그리스도처럼 선하신 분은 없습니다. 다른 신랑들도 착한 면을 갖지만, 그들의 착함이란 불완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착함은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그분 안에는 악이 없습니다. 잘생긴 신랑을 원합니까? 그분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납니다. 그분의 외모와 사랑의 빛줄기는 눈부십니다. 당신을 사랑해 줄 신랑을 원합니까? 예수님처럼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값없이 베풀어지고 변덕도 없으며 영원무궁합니다.
/ 조지 휫필드
29. 무엇에 미쳤는가?
시카고 무디 교회의 목회자며 저명한 라디오 설교자였던 폴 레이더(Paul Rader, 1879~1938)는 평소에 이 예화를 종종 들곤 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한 소년이 길가의 담장에 얼굴을 대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아이는 때때로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저 애가 저렇게 난리지? 혹시 저 애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냐?’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애는 담장 너머에서 벌어지는 야구 경기를 그 구멍을 통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애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안타를 칠 때마다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행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던 그 애는 행인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과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미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정의해야 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면서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미친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미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그분에게 반응하는 것은 정상이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 못하기에 우리가 그분에 대해 열광하는 것을 보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에게 보이는데, 세상의 비웃음이 뭐 그리 큰 문제인가?
30. 오직 예수
본문: 요14: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나라 철학자 가운데 한국의 소크라테스라고 하는 박종흥 교수가 계십니다. 서울대 교수로 계시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철학적 자문을 해 주시던 박학다식했던 분입니다. 특히 진리를 사랑하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해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습니다. 이분이 국민교육헌장을 만드셨습니다. 1976년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는데, 임종이 가까워졌습니다. 하루는 제자가 찾아와 위로 합니다.
“선생님, 극락세계에서 영생하셔야지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니야, 극락이 보이질 않아. 앞이 캄캄할 뿐이야.” 제자는 난감했습니다. 선생님이 천국가야 할텐데,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 눈 앞이 캄캄하다고 하니 어떻합니까?
“선생님, 그러면 예수 믿어 보십시오.” 이 말에 그분이 예수믿기로 작정하고 새문안교회의 강신명 목사님을 모셔다가 요한복음3:16을 읽고 예수믿고 세례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분의 마지막 유언이 기독교식으로 장례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뛰어난 지식과 뛰어난 인격과 성실한 그의 인품이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가지고 천국 갈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31. 오직 예수
스위스에 가면 유럽의 지붕이라고 하는 알프스 산이 있습니다. 알프스의 어떤 봉우리에 누군가가 하얀 대리석으로 십자가를 하나 세워 놓았습니다. 그 십자가에는 "오직 예수"라고 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여름철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 스위스를 방문했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은 사랑하는 딸과 함께 어느 알프스 산봉우리를 오르게 되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올라갔습니다. 거의 다 올라갔을 때 사랑하는 딸이 그만 실족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 아버지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돈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돈이 그에게 아무런 위로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도 지위가 대단히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높은 지위도 그에게는 아무런 힘과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때에 그에게 참된 위로가 되고 그에게 새 힘을 공급해 주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었습니다. 지위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고 신체보다 마음의 장애가 더욱 괴롭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고맙고 놀라워서 사랑하는 딸이 떨어진 그곳에 하얀 대리석으로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라고 하는 글귀를 적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시고, 우리의 위로가 되시며,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해바리기가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들도 무슨 일을 당하든지 의의 태양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모습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딤전4:10)
꽤 큰 부자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 고령의 할머니가 되어서야 예수님을 믿게 된 분이 있습니다. 이 할머니가 예수님 믿고 중생한 후 어느 날 손녀의 손목을 잡고 장거리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불쌍한 사람이 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그에게 얼마를 주고 가다 보니 또 누군가가 도움을 청합니다. 물론 이 할머니는 그에게도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구세군의 자선남비에도 얼마를 집어넣고... 이런 식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손녀가 말합니다. "할머니, 오늘 참 손해 많이 보시네요 ?" 할머니는 그 어린 손녀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이렇게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내가 예수님 믿은 후에 급한 성격도 버렸고, 남 흉보던 말도 버렸단다. 세상 쾌락도, 욕심도, 이기심도, 질투도, 남을 비판하는 마음도 다 버렸단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예수님뿐이란다"
우리도 예수님 믿고 다 잃어버렸다고 고백합시다.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고백합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라고 한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질그릇에 불과한 무가치한 존재이니,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 가십시다.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으로 시작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 나가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끝을 맺는 나, 개인, 가정, 교회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32. 오직 예수
성 어거스틴이 어느 날 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결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어거스틴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이때 어거스틴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원합니다."
또 어떤 유명한 백작이 자기 집안의 좋은 배경과 화려한 귀족 출신의 신분을 다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맨발로 거리를 향해 뛰쳐나갔습니다.
전도하는 그에게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의 야망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내 야망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젠돌프의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1)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가운데 주님의 일을 가장 꼭대기에 두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떤 교인들은 그들의 시간과 재능을 그들의 개인적인 즐거움이나 계획에 차질이 없을 때만 주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을 첫 번 째에 버금가는 중요한 자리에 두려고는 하나 그들의 삶에서 주님과 주님에 대한 봉사를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기를 주저합니다.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으뜸되는 자리에 올려놓아야 하며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모든 것 중에서 우선해서 모시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의 가장 큰 축복을 주십니다. 당신은 주님을 당신의 삶에서 첫 번 째로 모시고 있습니까?
불란서의 루이 9세 왕이 마가렛트 공주와 결혼하면서 결혼반지에 "첫째 하나님, 둘째 불란서, 셋째 마가렛"이라고 새겼으며, "이 순서를 떠나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고 늘 말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철저한 신앙 때문에 "성 루이스" 라는 성자 칭호까지 붙이게 되었고, 역사상 길이 기억되는 왕이 된 줄로 믿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성경구절이 신명기 6장 5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에도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손목에도 매고 미간에도 붙이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도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느 율법사가 제일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강령이니라."(마22:35-40)고 했습니다. 또 성경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마10:37)고 하였습니다. 어떤 철없는 학생은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은, 하나님은 너무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질투가 많으신 분이 아닌가고 의문을 가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령 한 아내가 자기 남편만 사랑해야지 폭넓게 생활한다고 하면서 적당히 다른 남자도 사랑하고 정을 나눈다면, 남편의 분노를 살 뿐 아니라 그 여자 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을 초래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자신도 행복과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33. 오직 예수
예수보다 더 높은 하나님 없도다
예수보다 더 깊은 사랑도 없도다
예수보다 더 굳센 생명도 없도다
예수 계신 곳에는 참이 있구나
예수 계신 때에는 선이 있구나
예수 계신 일에는 빛이 있구나
헐벗어도 예수라면 따뜻하오
굶주려도 예수라면 배부르오
목말라도 예수라면 시원하오
알고 싶은 것 예수요
보고 싶은 것 예수요 되고 싶은 것 예수로다
오! 예수 오! 예수 오! 예수
34. 오직 예수
본문: 마태복음17:1-8 * 찬송 93장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 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 기록은 변화 산상에서 된 것입니다. 이 기록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그리스도의 본체의 영광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본체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모세의 모든 율법과 엘리야의 모든 예언, 그밖에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인데, 이 모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이르러서 완성된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 나타나서 예수와 서로 담화를 하셨는데 특별히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의 장차 죽으실 일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하늘의 음성을 듣고 두렵고 놀라서 땅에 엎드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일어나라고 하실 때에 제자들이 일어나 눈을 들고 보니 오직 예수 한 분 밖에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와 엘리야의 시대는 이미 지난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 바라보라고 하는 뜻입니다. 히브리서에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오직 예수만 하나님의 참된 계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과 예언서의 완성을 의미하며 그 뜻을 우리는 본문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모든 사람은 참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음을 전파하게 하옵소서.
35. 오직 예수
이탈리아의 한 화가가 도자기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최후의 만찬을 그려서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도하고자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온갖 정성을 들여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정말 영감 있는 주님의 모습, 빛나는 주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를 본 친구는 그녀가 그린 예수님의 모습은 본 척도 않고 도자기의 아름다움만을 칭찬했습니다. 그 화가는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려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은 가리워지고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친구가 떠난 뒤, 그림을 붓으로 다 지워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여,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예수 외에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 예수 외에 찬란하게 빛나 보이는 것, 예수 외에 앞장서 나타나 보이는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처음 되시고 먼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따르고 전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중심의 뜨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는 단호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 김남수
36. 시험을 이기는 길
언젠가 개를 훈련시키는 사람이 쓴 글을 제가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개를 훈련시키는 방법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마룻바닥에 아주 먹음직스러운 쇠고기 덩어리를 갖다 놓은 후 개를 데리고 옵니다. 개가 쇠고기를 보고 뛰어가 그 고깃덩이를 물면 몇 차례 개를 때려주고 고기를 빼앗아 놓습니다. 그 다음 또 그 자리에 고기를 갖다놓고 기다리면 개가 또 뛰어가려고 달려듭니다. 그때 주인은 "안돼! "하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면 개가 멈칫하고 섭니다. 이렇게 여러 번 반복 훈련을 하고 나면 개의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나중에 고깃덩이를 또 갖다놓을 때 개가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아십니까? 개는 고깃덩이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봅니다. 주인이 무엇이라고 명령을 하나? 개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가 떡을 가지고 와서 시험을 합니까? 세상의 인기를 가지고 와서 시험을 합니까? 세상의 영광을 가지고 와서 시험을 합니까? 그것을 쳐다보지 마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시나? 주님은 어떻게 하셨나? 주님이 무엇이라고 명령하시나?" 그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시험을 이기는 길입니다.
*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매 주님의 설교와 각종 성경공부를 통해 주님에 대한 지식이 머리에는 점점 쌓여가지만 삶에 적용하기는 생각처럼 잘 안됨을 고백합니다. 그것이 이제껏 살아온 나와 다르고 힘들고 어리석어 보여도, 포기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날마다 연습하게 하소서.
37. 한 주인
고려의 장수 강조와 부대장 이현운은 거란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포로에 대한 대우가 으레 그렇듯이 이들에게도 역시 어려운 시험은 다가왔다. 즉 하루는 거란의 왕 성종 앞으로 끌려가 이러한 제안을 받게 되었다.
"이제라도 거란을 위해 일하는 용사가 되겠다고 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
이에 약삭빠른 이현운은,
"새 하늘 아래 거하게 된 지금 옛 하늘을 그리워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성종을 위해 충성을 바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용맹하고 충직한 강조는,
"나는 고려의 장수로서 생을 마치고 싶소 !"라고 담대하게 외쳤다. 그리고는 옆자리에 있던 이현운을 향해 소리쳤다.
"너는 고려 사람으로서 어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 용사된 몸으로 어찌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있느냐 ! 죽어 마땅한 놈 !"
결국 이현운은 절개를 팔아 목숨을 지켰으나, 강조는 임금을 향한 충성으로 떳떳이 죽음을 맞이했다. 하물며 인간을 향한 충성도 이러할진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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