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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11

by 【고동엽】 2022. 5. 15.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11
그리스도인은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 3
칼 야스퍼스는 BC 800 - AD 200 년 천 년 동안을 인류 정신 문명이 정립된 축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때 인류 현자들은 선(도덕)과 지혜를 인류 정신문명 기둥으로 삼기로 합의를 이루었습니다.(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그러나 1 세기에 예수께서는 사랑을 제시했습니다.
 
 
예수께서 현자들이 세운 선과 지혜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선과 지혜로 이루어지는 삶에 갈등과 불화가 있음을 알립니다.
예수께서 새로운 지혜를 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실현하셨습니다. 예수와 함께 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신6:5) 이웃을 사랑하라고(레19:8) 가르치셨습니다.
사랑은 새로운 지식이 아닙니다. 삶의 현실입니다. 사랑을 예수께서 새롭게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를 하나로 합한 것도 예수께서만 그렇게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알렉산드리아 필로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랑하지 않아서 사랑하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라는,
유대인 성서 말씀이고 유대인들은 사랑에 열심이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서를 오해한 까닭에 당시 유대인들 믿음이 율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 세기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연구한 샌더스는 당시 유대인들 믿음이 율법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유대 랍비들에게 당시 유대인들 믿음이 율법적이었다고 말하면 의아해 한다고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 믿음 중심은 사랑과 회개였습니다.(알프레드 에더스하임, 메시아)
예수께서 사랑이 믿음 중심인 유대인들에게 사랑을 실현해 보이십니다.
유대인들 사랑 실현은 예수사랑과 달랐습니다. 예수사랑은 차등 없이 인간 존엄을 존중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 가기위해 공로 쌓기 사랑이었고 자기들 수준에 못미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사랑이 아니라 가진자가 구제하는 시혜 사랑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윤리 도덕을 존중했기 때문에 자신들 수준에 못미치는 사람을 차별하여 배제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반율법주의자나 반도덕주의 자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신앙의 길이 그렇게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도덕과 경건이 주는 갈등과 불화를 인식해야하고 도덕주의자들보다 의가 못미쳐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의는 도덕입니다.
 
 
도덕주의자 바리새파 신앙
1 세기 유대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은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입니다.
정치 지배층은 사두개인이었고 바리새인들은 그들 아래서 관료나 행정직 재판관 교사 등으로 지배층에 고용되어 일하는 가신 그룹으로 이해됨이 타당합니다.(1)
 
 
바리새파는 신앙 지배층입니다.
에세네파는 가장 엄격하게 율법을 고수하며 별도의 신앙공동체(쿰란)를 형성하거나 마을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에세네파는 바리새파가 율법을 온건하게 해석한다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 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안식일 날 웅덩이에 양 1 마리가 빠지면 에세네파는 건져 내서는 안되고 바리새파는 건져냅니다.
바리새파를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평신도 신앙 개혁 운동입니다. 당시 진보적 신앙 운동 입니다.
 
 
예수께서 법을 반대한 분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예수는 엄격한 율법주의자인 에세네파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고 온건한 신앙 개혁 운동자인 바리새인들과 적대한 것으로 보아 예수의 관심은 법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권력입니다. 예수는 정치권력자인 사두개인보다 신앙 권력자 바리새인과 더 적대했습니다. 신앙으로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는 일을 반대한 것 입니다. 바리새라는 말의 뜻은 분리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학자들은(E P 샌더스, 카렌 암스트롱 등) 바리새인들의 높은 도덕성 때문에 그들에게서 잘못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와 바라새인들이 적대한 것이 아니라 바리새파와 초대교회가 경쟁하면서 적대한 것을 예수께서 적대한 것으로 성서에 기록했다고 합니다.
사두개인들은 로마 앞잡이로서 백성들의 원성을 샀고 에세네는 가난한 사람들은 지킬 수 없는 법을 강요하여 사람들이 경원했으나 바리새인들은 법을 온건하게 해석하고 도덕적 삶을 살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 자신들도 모르고 백성들도 모르며 현대 학자들도 모르는 예수께서만 아는 바리새인들 잘못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위선자라 했다고 그들이 뒤로 나쁜짓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들은 성실하고 도덕적이며 구제를 많이 하는 모범 시민입니다.
 
 
그들은 높은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 온다면 가장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일 것 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도덕성 때문에 자연스러움과 따뜻함을 잃어서 예수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에피쿠로스도 질서를 세우는 플라톤을 위선자라고 비난했습니다.
 
 
도덕이 신앙과 합세하면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예수에게 지적된 바리새인들의 유일한 잘못은 그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한 사회에서 낙오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 입니다. 현대에서도 세력을 이루어 자신들의 이념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입니다.(밀란 쿤테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도덕과 경건은 힘의 논리로서 신앙 엘리트 입니다. 필자가 교회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십일조를 하거나 일정한 도덕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세력을 형성하여 그들 수준에 못미치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정도에 못 미치는 것을 악으로 규정 합니다. 우리가 뱀을 혐오하는 것은 육지의 모든 동물은 발로 움직이는데 유독 뱀은 덩치도 크면서 배로 움직이기 때문 입니다. 정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악으로 간주합니다.
도덕과 경건으로 무장된 신앙인은 자기들 수준에 못미치는 사람은 악으로 규정하고 차별하여 배제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에세네파와 다르게 종교를 세속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와 다르게 도덕과 경건으로 신앙함으로써 실패했습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도덕에는 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자유를 연구한 니체는 도덕이 가진 악을 탐구했습니다.
인류가 문명화 되면서 인간 본연의 야수성을 억제하게 되고 미처 억제되지 않은 야수성이 표출되는데 이것을 도덕적 악이라 합니다.(2)
 
 
모든 도덕에서 본질적이고도 주요한 요소는 그것이 장기간에 걸친 강압입니다.(3)
니체에 의하면 도덕이란 모든 생명 현상에서 자신의 의지를 펼쳐서 지배하려는 관점을 세운 지배관계에 대한 학설입니다.(4)
 
 
도덕은 사유를 경직하여 관점의 평가를 무디게 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존립을 막습니다.(5)
경건은 자신을 미화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6)
도덕과 경건은 선과 악을 가르면서 일어나지만 사랑은 항상 선과 악의 저편에서 일어납니다.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일이지만 도덕과 경건으로 무장된 집단 당파 민족에게는 일상입니다.(7) 전광훈의 태극기 부대가 좋은 예가 됩니다. 전광훈은 부패하거나 타락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는 검소하고 도덕적이고 경건한 신앙인입니다.
전광훈 목사는 청교도 영성 훈련원을 세워 전국 목사 4 천 여명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교회를 지역 개발 사업에 알박기를 해서 세상을 시끄럽게 했습니다.
도덕 경건으로는 탐욕을 이길 수 없는 사례입니다.
모든 도덕은 강제이고 자유에 반대입니다.
모든 도덕은 자연스러움을 억제하기 때문에 자연과 이성에 대해서 폭압입니다.(

 

도덕으로 판단하고 판결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편협한 사람이 덜 편협한 사람에게 즐겨쓰는 복수입니다.
또한 자신이 재능받지 못한데 대한 일종의 손해배상이며 그렇게 해서 자신이 고상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9)
도덕과 경건은 다른 사람과 차이를 나타내는 현실입니다.
다른 사람과 차이는 증오를 낳습니다.(10)
 
 
도덕주의자는 세계를 부정하고 삶을 퇴락시킵니다.(11)
도덕은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시키는 행위입니다. 즉 현재의 안락을 위해 위험을 회피하는 행위로서 진취적 사고가 결여된 행위입니다.(12)
 
 
김진호는 필자의 첫 번째 책 '기독교의 본류를 찾아서'를 뉴스엔조이에 서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 합니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소비사회가 정착되면서 사회가 제도화되는 것은 군대나 경찰의 통제보다는 규범에 의한 질서가 더욱 중요해 졌고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체계는 노골적으로 강자 중심으로 체계화 되었다고 합니다.
사회 결속을 위해서 의무를 강제하는 억압의 도덕은 닫힌 사회를 이루고 애국심으로 똘똘뭉쳐 다른 사람들을 향해 배타적 거리두기를 합니다.(앙리 베르그송,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도덕성은 도덕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운 좋은 사람들의 것 입니다.
우리는 모든 윤리 도덕의 오만을 버리고 우리가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 행운임을, 신앙인은 하나님 은혜임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13)
 
 
그리스도인은 도덕주의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필자 글에,
자기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말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는 댓글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로마서에 대한 오해로 기독교는 율법주의가 아니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모든 번역은 법인데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에 반국가 단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법이라 하지 않고 율법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법은 유대에 한정된 할례 음식규정 절기지키기에 한정될 때도 있고 인간 가치체계 전반을 말할 때도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에 대립되는 법은 문화 종교 이념 법률 교육 도덕 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도덕과 경건은 바울이 말하는 율법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에서,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산다는 말과 그리스도인은 도덕과 경건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같은 말 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과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산다는 말은 같은 뜻 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법에 대해서 사랑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다시 서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윤리 도덕으로 바로 서자는 글과 설교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계인보다 윤리 도덕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계인들은 신앙인 가치관이 비신앙인 가치관과 좀 달라야 한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세계인보다 가치관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윤리 도덕의 길은 바리새인들이 실패한 길 입니다. 바울도 부활 예수 만나기전에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노력인지 부활 예수 만나고 깨달았습니다.
 
 
바울의 믿음을 따라가면,
윤리 도덕은 바울이 말하는 법 입니다. 인간 스스로 그 법을 이루려 하면 이룰 수 없고 사랑을 하면 그 법을 이룰 수 있다는 게 바울 주장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윤리 도덕으로 바르게 살려고 하면 그 뜻을 이룰 수 없고 예수사랑을 내 삶에서 이루어 나가면 그 윤리 도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와(로마13:8)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로마13:10) 바울 진술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조국 교수가 공정한 사회를 위해 노력했는데 정작 자신의 딸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불공정을 수사한 한동훈 딸은 그 보다 더 악질로 불공정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보수 우파를 지지하며 맹렬하게 조국 일가 불공정을 질타한 진보 학자 서민 교수도 자신의 의학 논문에 조국 교수 딸이나 한동훈 딸 사례처럼 고교생을 2 저자로 등재했음이 밝혀졌습니다.
 
 
자기가 무슨 공정의 화신인양 떠든 사람도 수사한 사람도 불공정한 것 입니다.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교수들끼리 서로 품앗이 해서 자기 자식은 의과대학 보내고 유학 보냅니다.
정의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시민 운동가나 정치인도 미국을 욕하면서 자기 자식은 월 5 백만 원씩 들여서 미국 유학 보냅니다. 그돈이 공정하게 얻은 거 겠습니까
기득세력은 모두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조국 사건은 자기들도 그와 같거나 더 심하게 불공정하게 살면서 조국 일가를 마녀 사냥한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를 포함해서 교회 개혁을 위해 그리스도인 윤리 도덕을 바로 세우자고 말하는 사람도 인간 탐욕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경험한 인간 이해입니다.(로마7:14-25)
바울이 예수 만나기 전 하나님과 예수 만난 후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입니다.
즉 바울은 같은 하나님 신앙하는 방법을 바꿨습니다. 윤리 도덕 추구에서 사랑으로 바꿨습니다.
사랑하며 사노라면 그 윤리 도덕이 바로 선다는 게 바울 가르침입니다.
찬물과 더운물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와같이 도덕 경건한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덕 경건한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식하고 분리하는 행위입니다.
도덕 경건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 장애인 성매매 여인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 실패자를 혐오합니다.
사랑은 이러한 사람들을 용납하고 그들의 존엄을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마태가 말하는 믿음은,
나를 극복하고 다른사람의 고통과 아픔에 연대하는 행위입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도덕 경건은 예수 말씀을 거부하고 나를 스스로 가두는 행위입니다.
도덕 경건은 세상을 악하다고 인식한 플라톤이 제시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칼뱅 웨슬리 등이 따른 길 입니다.
사랑은 예수께서 제시하고 바울 등 성서 저자들이 따른 길 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을 가고 있습니까?
다음회는 신앙인 폭력성에 대해 씁니다.
1. 프레드릭 J 머피 초기유대교와 예수운동 유선명 새물결플러스 2020, 421p
2.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김정현 책세상 2002, 111-114p
3. 홀링데일 레지날드 J 니체 그의 삶과 철학 김기복 이원진 북캠퍼스 2017, 290p
4.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김정현 책세상 2002, 39p
5. 같은 책 65p
6. 같은 책 98p
7. 같은 책 113p
8. 같은 책 140p
9. 같은 책 201p
10. 같은 책 285p
11.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최순영 부북스 2018, 51p
12. 프리드리히 니체 M 하이데거 니체의 신은 죽었다 강윤철 스타북스 2011, 198p
13. 슬라보이 지젝 죽은 신을 위하여 김정아 도서출판 길 2008, 256-2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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