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의란 무엇인가?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
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을 믿고 그 분을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제일 먼저 하게 되는 것이 “성경읽기와 기도”입니다. 자기 뜻대로 살아오던 것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정을 내린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게 됩니다. 이 어린 그리스도인은 순수한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나고, 성장해 가면서 더욱 단단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하나님의 일꾼으로, 군사로 무장되어 갑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다보면 별다른 도움없이 깨달을 수 있고 소화해 낼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상당 부분은 읽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보통입니다. 이 경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목사에게 묻거나, 주석서 혹은 관주 성경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목사마다 해석이 다르고 주석마다 해석이 다른 경우가 다반사인 현실 앞에 이 어린 그리스도인은 어떤 것이 진리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결국 그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대개는 가장 “유명하고”, “큰” 교회 목사, 혹은 가장 “유명한” 신학교 교수, 혹은 자기가 속한 교단의 해석을 택하게 됩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와중에서 교리에 대한 혼란을 피해 보기 위해 ‘체험’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게 되고 결국 부흥회나 기도원을 전전하며 “감정”을 자극하는, 믿음이 아닌 종교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기도를 많이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나오기 때문입니다(로마서10:17). 진리의 영이 오시면 모든 진리에로 인도하신다는(요한복음16:13) 주님의 약속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자기가 내린 해석은 모두 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올바른 해석이라고 주장하니 누구의 해석이 옳고 누구의 교리가 옳은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두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인가”라는 질문이며,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은 소위「세대주의」라고 알려진 신학체계, 즉 성경해석 방법입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세대주의」에 관한 개관을 다루려고 합니다.
세대주의의 당위성
성경을 읽는 독자라면 그가 어떤 교리적 입장이나 교단적 배경을 갖고 있든지 간에 말라키와 마태복음 사이에 결정적인 구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구분은 너무도 분명해서 그 독자가 성경을 둘로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없어도 그 구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이전까지의 39권의 책들은 “구약”(The Old Testament)이라고 불리며, 마태복음부터 시작되는 27권의 책들은 “신약”(The New Testament)이라고 불립니다.
성경을 세심히 읽는 독자라면 창세기부터 말라키까지의 사람들은 그들의 속죄와 구속을 위해 염소와 황소의 피밖에는(히브리서 10:4) 갖고 있지 못했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죄가 용서받았고(출애굽기 34:7), 의롭다고 여겨지긴 했어도(로마서 4:1∼6), 그들의 죄가 정결케 되지는 못했습니다(히브리서 10:4|출애굽기 34:7).【 개역한글판성경과 개역개정판성경의 출애굽기 34:7은 심히 변개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교리를 위해서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출애굽기 34:7을 읽어 보십시오. 】
구약의 어떤 성도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으로 침례받지 못했으며 영적인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골로새서 2:11). 구약의 성도들은 그 누구도 거듭나지 못했으며 죽을 때 셋째 하늘에 가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구약 성도의 구원과 신약에 계시된(로마서 4, 5, 10장|에베소서 2장) 신약 성도들의 구원이 동일하다는 주장은 성경적일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구원과 신약의 구원이 같을 수 없는 것은 두 가지 다른 언약에 근거해서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7:22의 더 나은 언약은 옛 언약(구약)이 아닙니다. 구약의 그 누구도 마태복음 27장까지는 죄값이 지불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마태복음 26:28에서 신약(새 언약)이 세워지고 이 신약은 유언의 형태로 주어졌으므로 유언한 사람이 죽은 후인(히브리서9:16) 마태복음 27:50에 가서야 효력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마태복음 27:50까지는 비록 신약성경이 마태복음 1:1부터 시작되기는 하지만 교리적으로는 구약적 배경임을 알게 됩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생을 얻는 방법으로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 것을 참조하십시오. ─ 마태복음19:16, 17). 이처럼 구약과 신약이 구분될 뿐만 아니라 율법과 선지서들은 요한까지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누가복음16:16) 침례인 요한부터 새 언약이 세워지는 마태복음 27장까지가 구분되며, 또한 로마서 5:14에 따라 같은 구약성경에서도 아담과 모세까지와 모세로부터 침례인 요한까지가 구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분명한 구분들(divisions)이 있고 이 구분들은 분명히 존중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올바로 성경을 해석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누어 놓으신 구분에 따라 그 분이 계시해 놓으신 진리들을 찾아내서 공부하는 그것이 성경의 기록자이신 성령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디모데후서 2:15).
이 놀라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며(공부하라), 어떻게 해야 하고(올바로 나누어), 왜 그리해야 하는가(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를 명백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자상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을 신학자들은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라고 부르며 비판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학자들의 견해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영어킹제임스성경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제외한 나머지 성서들은 이 놀라운 구절을 모두 변개시켜 버렸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바른 성경을 찾아서」시리즈를 참조하십시오. 】
“세대”란 무엇인가
우리 말로 “세대”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의 “οικονομια”(oikonomia, 오이코노미아)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시기”나 “기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한 집안이 운영되는 규범” 혹은 “집주인이 그의 가족들을 다스리는 방법”이란 뜻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로는 dispensation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는 라틴어의 “dispensatio”에서 온 것입니다. 이 라틴어는 “나누어주는 행위, 행정, 관리” 등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가 일정한 기간(period) 혹은 시대(age)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예를 들면 율법시대, 은혜시대, 환란시대) 우선 가장 잘 알려진 세대주의자 중의 한 사람인 스코필드(C.I. Scofield)의『스코필드 주석 성경(The Scofield Study Bible)』에서 내려진 정의 때문입니다. “세대란 인간이 하나님의 어떤 특정한 계시에 대한 순종과 관련하여 시험을 받는 일정한 기간을 말한다. 성경에는 일곱 개의 그러한 세대가 나타나 있다.” 물론 하나님의 집의 주인이신(히브리서3:2|에베소서 2:19)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여러 시대별로 자기 “가족”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스리고(혹은 경영하고) 계시기 때문에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경영방식이 달라지는 것에 근거해서 “oikonomia”를 기간 혹은 시대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경영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시대’에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세대가 아닌 “경륜”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신학자들은 세대주의자들이 성경을 시대별로 구분해서 해석한다는 이유로 “oikonomia”(dispensation)를 세대로, 그리고 dispensatioalism을 세대주의로 번역해서 사용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경에서의 이 단어의 용례를 통해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 보도록 합시다.
헬라어 “οικονομια”(oikonomia)의 다양한 형태가 신약성경에 17번 나오는데 동사 “oikonomia”는 누가복음 16:2에 단 한 번 사용되었고, 명사는 “oikonomos”와 “oikonomia”의 두 형태로 16번 사용됩니다. 이 단어들은 각각 “청지기”(steward, 누가복음 12:42/16:1, 2, 8|고린도전서 4:1, 2|디도서 1:7|베드로전서 4:10), “청지기직”(chamberlain, 로마서 16:23), “청지기”(governor, 갈라디아서 4:2), “청지기직”(stewardship, 누가복음 16:2, 3, 4), “경륜”(dispensation, 고린도전서 9:17|에베소서 1:10/3:2|골로새서 1:25) 등으로 사용됩니다. 이들 성경 구절에 따르면 “oikonomia”는 “집안 일을 다스리고 경영하는 것”, “권위 있는 자로부터 의무를 부여받아 집안을 관리하는 것”, “재산을 관리하는 것”, “도시의 재정을 맡아 경영하는 것” 등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경륜(dispensation)으로 번역된 구절을 통해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 보도록 합시다.
『과연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진대』(에베소서3:2). 만약 “경륜”(dispensation)이 어떤 “기간” 혹은 “시대”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라는 “기간”이 있게 되는 셈이고 그 기간이 바울에게 주어졌다는 말이 됩니다. 이 구절을 (골로새서 1:25)과 비교해 봅시다.『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되었노라.』 만약 이 구절에 나오는 경륜이 어느 시기를 의미한다면 하나님이라고 하는 시기 혹은 시대가 있다는 말인데, 성경 그 어디에서 하나님이란 시기가 등장한단 말인가요? 따라서 ‘에베소서 3:2’ 한 구절만을 끄집어내서 경륜을 시대로 해석하고 그것은 곧 은혜시대이며 은혜시대는 바울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사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주장을 우리는「극단적 세대주의」(Hyper-Dispensationalism)라고 부릅니다. ─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들로는 스탬(Cornelius Stam), 벌링거(Ehtelbert Bullinger), 오헤어(J.C.O. Hair)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영적인 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고린도전서2:15)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방법입니다. (에베소서 3:7)에 보면『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골로새서 1:25’ 및 ‘에베소서 3:2’과 비교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비들을(고린도전서 4:1) 바울에게 계시하시기 위해 그에게 주신 은혜란 뜻이지 결코 어떤 “시기”나 “시대”란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륜(dispensation) 이란 단어를 일정한 시기와 시대의 의미로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들을 언급할 때 하나님의 경영방침에 따라 일정한 시기가 바뀐다는 사실을 염두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경륜을 시기별로 잘 나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언약들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95.6- No.39)」ː5. 성경의 기본구조 (pp. 42) /「열린 성경 닫힌 마음 (1995, 이송오 지음)」ː(pp.18∼50)을 참고하십시오. 】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시는 방법(경륜)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구원과 관련시켜 살펴보겠습니다. 아담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었고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진 이후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순절부터 휴거 때까지는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휴거부터 재림까지의 7년 대환란 기간에는 믿고 끝까지 견디는 자들이 구원받으며, 천년 왕국에서는 산상설교의 내용을 그대로 지켜야 구원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에 있어 인간을 다루시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대주의의 역사
“세대주의는 19세기에 있었던 분리주의 운동 중 하나인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에 의해 정립되었다.” 세대주의에 대한 전형적인 진술 중의 하나인 이 말 속에는 세대주의는 최근의 것이며 따라서 비정통적이라는 것과 세대주의는 분리주의 운동에서 태동한 것이므로 경계의 대상이라는 암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세대주의라는 용어와 학술적인 논쟁은 19세기 이후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경륜들에 따라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는 방법은 성경의 말씀에(디모데후서 2:15) 순종하는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채택되어 왔습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세대주의’적 개념들은 처음부터 있어 왔습니다. 전천년주의자였던 져스틴 마터(Justin Mater, A.D.110∼165)는 <트리포와의 대화, Dialogue with Trypo>에서, 그리고 같은 전천년주의자인 이레내우스(Ireneaus, A.D.130∼200) 역시 그의 <이단을 대적한다, Against Heresies>에서 성경을 나누어서 보고 있습니다(특히 이레내우스는 인간에게 주어진 언약을 홍수 이전에 아담에게 주어진 것, 홍수 이후에 노아에게 주어진 것,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 그리고 은혜의 복음 등으로 나누었습니다).
이외에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A.D.150∼220), 어거스틴(Augustine)과 같은 초기 교부들이 추후 ‘세대주의’로 발전해 나간 기본 원칙들에 관해 언급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예를 들면 “시대를 구분하라, 그러면 성경은 그 자체와 조화를 이룬다.”는 어거스틴의 빈번한 진술은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세대주의’의 기본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롬의 변개된 성서인 <라틴 벌게이트, Latin Vulgate>의 등장으로 시작되는 중세 암흑시대는 성경 진리에 관한 한 그야말로 암흑시대였습니다. 카톨릭 교회의 배교를 정죄하고 성경적 성별로 “분리주의자”로 낙인찍힌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심한 박해로 숨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들은 책을 집필하는 일에나 매달리는 학자가 아니라 말씀을 전파하고 실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까지는 ‘세대주의’와 관련된 문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디모데후서 2:15’의 말씀에 따라 올바른 방식으로 성경을 공부했고 그 지식을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1640년 윌리암 고지(William Gouge, A.D.1575∼1653)는 어거스틴의 체계와 유사한 6개의 경륜들을 제시했고, 피에르 포이레(Pierre Poiret, A.D.1646∼1719)는 칼빈주의적 전천년체계를 제시했습니다(그는 6권의 책에 7개의 경륜들을 제시했습니다. ①창조 ②죄 ③회복 ④성육신 ⑤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인간의 협력 ⑥보편적 섭리 ⑦지상 천년왕국). 아이작 와츠(Issac Wattz, A.D.1674∼1748)는 ①속죄시대 ②은혜의 언약 ③노아의 경륜 ④아브라함의 경륜 ⑤모세의 경륜 ⑥그리스도인의 경륜을 제시했습니다. 이외에도 현대적 세대주의를 확립한 것으로 알려진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이전에 세대주의 체계를 제시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리지의 존 테일러(John Taylor of Norwich, A.D.1694∼1751), 존 플레치어(John Flechiere, A.D.1729∼1785), 데이비드 보그(David Bogue, A.D.1750∼1825), 아담 클라크(Adam Clarke, A.D.1762∼1832), 존 프리스틀리(John Priestley, A.D.1733∼1804), 죠지 파버(George Faber, A.D.1773∼1843) 및 데이비드 러셀(David Russell, A.D.1779∼1848) 등.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이들 세대주의자들 중에는 로마 카톨릭 학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카톨릭 신자들은 성경의 애독자가 아니므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A.D.1800∼1882)는 플리머스 형제단 소속으로 스코필드 주석성경의 “서문”을 쓴 사람입니다. 그는 일곱 세대를 제시합니다(에덴에서 홍수까지, 노아, 아브라함, 이스라엘, 이방인, 성령, 천년왕국). 이외에도 사무엘 자비스(Samuel Jarvis), 맥컬로(J.H. McCulloh), 존 페이 스미스(John Pye Smith), 존 콕스(John Cox), 존 커밍(John Cumming), 조엘 존스(Judge Joel Jones), 베인(W.C. Bayne), 찰스 핫지(Charles Hodge), 로버트 댑니(Robert L. Dabney), 존 그레이브스(John R. Graves), 사무엘 앤드류스(Samuel Andrews), 윌리암 팔레인(William Parlane), 죠지 펨버(George Pember), 로버트 카메론(Robert Cameron), 죠지 윌슨(George Wilson), 아돌프 녹(Adolph Knoch), 죠지 솔타우(George Saltau), 녹(A.E. Knoch), 벌링거(Bullinger), 놀만 해리슨(Norman B. Harrison), 죠지 거드브로드(George H. Gudebrod), 카데스(C.A. Chades), 헤리 아이론사이드(Harry Ironsides), 데이비드 쿠퍼(David L. Cooper), 아더 아이스벨(Arthur Isbell), 죠지 크롤리(George Croly), 알게논 플록(Algeunon Pollock), 루이스 스페리 췌이퍼(Lewis Sperry Chafer), 아이작 맬드만(Isaac Maldeman) 등이 나름대로의 체계를 제시했습니다.
오늘날은 클라렌스 라킨(Clarence Larkin)과 스코필드(C.I. Scofield)로 대표되는 고전적 세대주의 외에도 수정세대주의, 점진적 세대주의, 대중적 계시주의 등이 등장했습니다. 어떤 학자가 어떤 방식으로 세대(경륜)를 구분했던 간에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분(division)이 있다는 사실은 교회사를 걸쳐 공인된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단순히 나누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올바로” 나누는 것입니다(rightly dividing, 디모데후서 2:15). 앞서 언급한 대로 잘못 나누면(wrongly dividing) 엄청난 교리적 오류와 이단을 낳게 되고 사탄은 벌써 이 “사역”에 깊숙이 개입해 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 극단적 세대주의). 반대로 성경을 나누면 오류가 생길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아예 구약, 신약, 유대인, 이방인, 교회 등을 한 데 뭉뚱그려 성경 전체를 ‘인간 구원’에 갖다 맞추는 언약신학자들의 영적, 비유적 해석은 한 마디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입니다.
세대주의의 기본 원칙들
세대주의라고 하는 신학체계에는 기본 원칙들이 있습니다. 학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원칙들이 있다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합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문자적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둘째, 성경 전체에서 특히 예언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이스라엘’과 ‘교회’에 대한 엄격한 구분을 둡니다. 셋째, 성경 전체를 포괄하는 주제는 “구속”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Kingdom)입니다.
첫째,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은 무오하고, 글자 하나하나가 영감받았으며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행에 있어 유일하고 최종적인 권위라고 믿는 사람들로서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문자적으로) 받아들입니다. 특히 문자적 해석은 예언들과 관련될 때 그 무오성이 강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해 구약에 예언된 수많은 구체적 사실들이 모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으므로 재림에 대한 예언 역시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이에 근거해서 ‘요한계시록 20:1∼6’을 문자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문자적 해석을 하는 세대주의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당연하게 ‘전천년주의’를 표방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구분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그 원칙에서 비롯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로, 교회는 교회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보는 영적, 은유적 해석을 거부합니다! 성경은 “영적 유대인”(spiritual Jew)과 “육체적 유대인”(physical Jew)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셋으로 구분하고 계십니다.『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게나 아무도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린도전서 10:31). 따라서 성경의 교리적인 적용은 그 말씀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정확히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오늘날의 많은 교리적 오류와 혼란은 이 셋을 구분하지 않은 데서 비롯됩니다.
셋째, 언약신학 체계와는 달리 ‘세대주의’에서는 성경의 주제를 구속, 혹은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영적, 물리적 왕국(Kingdom)’이라고 봅니다. 죄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옥에 가지 않고 구원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는지 몰라도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입니다(이 왕국이 세워질 그 날은 구약 예언서에서 그렇게도 강조하고 있는 “주의 날, the day of the LORD”인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생각할 때 죄인의 입장에서 형벌과 심판을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빼앗겨버린 영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로마서 3:23).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성령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에베소서 1:6, 12, 14).
맺는 말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에 따라 온 우주와 역사를 경영하시는 방식이 있고 그 각각의 방식에 따라 사람을 다루십니다(히브리서 1:1).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며 이 경륜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경륜들에 관한 진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을 택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다시 말해 “세대주의”라고 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성경을 공부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성경적 신학체계요,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성경의 해석자(창세기 40:8)께서 주신 성경 해석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렵고 떠는 합당한 태도로(에스라 9:10)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을 따라 공부하면 주의 말씀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알기 쉽게 다가올 것입니다(잠언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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