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도회 헌신 예배
피 흘린 십자가 피 묻은 신앙
히브리서 9:11-22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헌신의 참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신 의미가 우리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살아야 하는 진실된 의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1. 죄인은 헌신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죄를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이고 기독교는 피로 세워진 종교입니다.
레 17:11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해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즉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니 피를 뿌려서 죄를 속하라는 말씀입니다.
히 9:22에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피 밖에 죄를 씻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의 과실은 다 먹어도 좋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매우 쉬운 것 같지만 호기심 많은 인간에게는 지키기 힘든 언약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 과실을 먹고 죄를 지어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 왔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에게 바쳐진 사람들이 되지 못하고 죽음에 얽매인 사람들이 되었고 그들의 이런 잘못이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전가되어 우리들도 죽음에 매여 살게 되고 말았습니다.
롬 6:23에는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망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를 말하고, 생명에서 끊어진 것을 말하고, 사망의 권세 아래 살게 된 것을 말하고, 사단의 종노릇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죽음이고, 죄고, 어두움이고, 사망입니다.
인간 불행의 총화는 사망이요 죽음입니다. 죽음은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요, 둘째는 육체는 살아 있지만 영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적 사망이요, 셋째는 제 2의 죽음, 큰 죽음인데 영원히 하나님을 떠나서 소망이 없이 절망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죽음이라고 말하는 영 육의 분리는 사실 영원한 죽음의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일종의 죽음의 가사 상태입니다. 일시적인 죽음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영원한 죽음은 무감각, 무경험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 영원한 소외, 영원한 어두움입니다.
그런데 이 저주받을 죽음이 사단의 간계로 미화되고 있습니다. 사단은 가짜를 잘 만들어 냅니다. 그들은 가짜 예수님을 만들었습니다. 죽음의 문제는 그의 피로서만 해결될 수 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를 흉내 내서 적그리스도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은 붉은 혁명의 깃발을 앞세워 공산주의를 만들어 내고, 1960년대는 Student Power라는 신좌익 운동을 만들어 일본, 미국,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우리 나라 학생들까지 피를 흘리지 않고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하여 무서운 피의 제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피흘림은 속죄의 피흘림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를 위한 피흘림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문화 혁명이 일어나 “피를 흘리자, 피를 흘리자”라고 피의 숙청을 부르짖었습니다. 이미 망해 버린 구 소련의 국기에는 피 빛 바탕에 별 5개가 있는데 세계5 대륙을 피로 적화해야 한다는 사단의 계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이교도들의 종교도 대게 피의 종교들입니다. 그들은 피로 죄를 씻는다고 하고, 자기들의 신에게 피를 바친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피를 흉내낸 사단의 장난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흉내내서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의 의미를 흐리게 하고 마치 그들이 말하는 피가 그리스도의 피와 같은 것으로 착각을 하게 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생명의 피요 축복의 피입니다.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위해 하나님이 옷을 입혀 주셨는데 그것은 한 마리의 짐승을 잡아 피를 흘러 만들어 주신 것이요,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침으로 피 흘리는 제사를 드렸고,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해 피를 흘려 우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바쳐 죄인의 생명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죄인의 구원은 깨끗하게 사는 도덕적 결의로나, 신화, 소설, 문학에서 나 온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는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말씀이 255번이나 나오는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이 구원을 얻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피의 약속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만찬식 때 포도주를 가지시고 “이것은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2,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는 피입니다.
헌신에는 속량의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값을 주고 산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당신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돈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강압적으로, 말로 우리를 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피를 흘리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사상이 아닙니다. 피를 흘려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의 심장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흐릅니다. 그들의 영혼 속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용솟음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살아 계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의 참된 헌신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들이 희생하므로 써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혹은 수고로운 짐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량이 없는 헌신은 공염불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이렇듯 고귀한 생명의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우리들도 우리들의 생명을 바쳐 주님 위해 살아야 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속량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사람이 의로워지는 것은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의로워집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며, 성실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원이 말씀입니다. 영원한 삶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의인을 요구합니다. 교회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기관이지만 그 죄인을 구원하는 일은 죄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적 의인이란 죄없는 완전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어 덧입음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덧입은 사람은 그 생각과 말과 행동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총으로 인해 의인이 되었으니 의인으로써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재직이 되고 중책을 맡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방법과 수단을 그대로 동원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4.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피가 같다는 말입니다. 요세는 어떤 일 때문에 친자 확인이라는 것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자 확인은 4-5가지의 조건이 정확히 맞아야 친자 증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친자 확인은 피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한가지라도 맞지 않으면 친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확실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들의 생명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인의 흉내를 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이 천사의 모양을 흉내낼 수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흉내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 있습니다.
5. 예수님의 피는 약속의 수단입니다.
우리가 도장을 찍을 때 붉은 인주를 쓰는 것은 피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과 인격을 걸고 이렇게 약속을 합니다”라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5,000이상의 약속을 피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에 사용된 붉은 인주는 바로 예수님의 피입니다.
6. 예수님의 피는 능력입니다.
사상, 도덕, 교육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피가 그의 피입니다. 죄인을 의인되게 하고, 영원히 구원하시는 능력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죄인을 지옥에서, 영원한 저주에서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들을 지옥에서 완전히 구원하시는 능력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피의 효과를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신장 이식 수술을 하는데 필연적인 두 가지 요소가 맞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신장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이식을 받은 사람이 거부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이 우리의 것이 되려면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 가 계시고 그 생명을 받는 우리가 그 생명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고 믿음으로, 전적인 의탁과 순종으로“당신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요, 당신의 생명은 나의 생명입니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진센돌프는 모리비안 교파의 지도자입니다. 모리비안 사람들은 감리교의 웨슬레에게 은혜를 준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진센돌프가 박물관에 있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 그림에는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살길을 주었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었느냐”라는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그 그림과 그 글을 보고 있다가 그 자리에 무릎을 끓고 “주여, 나의 모든 생명을 다 드립니다.”라고 헌신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것은 참으로 배은망덕합니다. 적반하장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또 다른 아픔, 또 다른 고독과, 슬픔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기에 달려 돌아가실 때 “테델레스타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세금은 다 지불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우리의 생각에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하고, 우리가 세상을 살 때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이 온통 그리스도의 삶이 되어야 하고 우리들의 이상과 꿈이 모두 그리스도의 그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 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내 생명보다 더 귀하시고, 내 자식보다, 내 명예보다, 내 세상보다 더 귀하십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없는 세상을 올바른 세상이 아니며, 그리스도 없는 나는 참된 구원을 얻은 내가 아니라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어 있는 저주받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피의 언약입니다. 지울 수도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생명의 언약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우리 무덤 앞에는 십자가가 세워 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묘비에는 세상의 공적이 아니라 단 한마디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주님의 나라에 간 사람”이라는 말이 있어야 합니다.
헌신 예배에 헌금했다고 헌신된 것이 아니며, 예배당 청소를 했다고 헌신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우리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잘 알고 주님의 마음과 진심으로 교회를 섬겨야 헌신된 것입니다.
출처 : 주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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