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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믿는 믿음은 최대의 복입니다./요한복음 20:24-31
지난 화요일 구역장 성경공부를 하는데 교육관에 들어가 먼저 앉아 기도를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어느 집에 가든지 아니면 어느 모임에 가면 먼저 기도부터 하지 않습니까? 기도를 하고 눈을 떳는데 어느 집사님이 저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는가봐요. 목사님 기도하는데 왜 찡그리고 기도를 하느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웃는 모습보다는 찡그리는 모습을 하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25년에 소집한 니케아회의에서 부활절은 "춘분 이후 처음으로 보름달이 뜬 다음 첫번째 주일에 지켜져야 한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세계 모든 사람들은 이 날을 부활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약력으로 치면 3월22일에서 4월25일 사이가 됩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실망한 자에게 소망을 주는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고 어둠에 마침표를 찍고 빛을 주신 날입니다. 진정 참 기쁘고 즐겁습니까? 옆사람의 얼굴 표정이 어떻습니까? 자신의 얼굴 표정은 어떻습니까? 정말로 기뻐하며 즐거워 하는 것 같습니까? 세상 번민과 고뇌, 죄를 다 짊어진 우거지상입니까? 인터넷 유머를 보니까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구기자 전설이라는 유머입니다. 한국 남자들이 다 무기력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약 한 첩을 다들 잘 못 먹어서 라고 합니다. 그 약은 구기자라고 합니다. 구기자 한 잔 씩을 잡수어서 다 구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아내가 너무너무 근심이 되어 남편에게 뭘 하나 선물을 했답니다. 그러자 그 날부터 남편은 생기가 돌고 어깨를 피고 활기찬 삶을 살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였겠습니까? [피자] 랍니다. 오늘 부활절입니다. 우리를 피게하는 것이 피자이겠습니까? 부활의 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지면 얼굴이 활짝 피게 됩니다. 인생이 활짝 핍니다. 미래가 활짝 피게됩니다. 오늘 아직까지 부활을 믿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부활의 신앙을 가지기는 가졌지만 확신이 없으신분이 계시다면, 부활의 신앙이 있기는 있지만 부활의 신앙으로 인생을 활기있게 소망차게 살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들음으로 부활의 신앙이 회복되고 부활의 기쁨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야 말로 세상 그 누구보다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무나 부활을 믿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이렇게 부활 주일 기쁨으로 예배에 감격하며 참여하는 것 아닙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진정 복받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까? 평안히 잘먹고 잘사는 사람입니까? 평생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사람입니까? 먹고 싶은 음식 바라보며 계산하지 않고 철 바뀔 때 옷장 여는 아픔을 갖지않고 동창회에 나가 자식으로 움츠려 들지 않고 원치 않게 이사하지 않으며 사는 사람들입니까? 물론 그런 사람들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만 복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같이 집도 없이 월세를 살며 정처 없이 나그네처럼 사는 사람들도 참으로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29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까? 누가 뭐라해도 예수님께서 복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이런 복 아무라도 받는 것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어떤 교훈을 해주시고 있습니까?
1. 믿음 약한 우리를 다 아시고 찾아 오셔서 부활의 증거를 보여주며 부활의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24-27).
1)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도마는 어떻게 보면 실증주의자입니다. 실제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은 절대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 때 도마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25절을 보십시오. 못믿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만으로 믿지 못하고 내 손가락으로 그 못자국에 넣어 보야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옆구리를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도마만 그렇습니까?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눅24:11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소개할 때 반응입니다.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눅 24:11)"
허탄하다는 말은 어쩌구니 없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부질 없는 헛소리라는 것입니다. 꿈깨라는 말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베드로는 어떠했을까요? 바로 뒤를 보십시오. 용감하게 홀로 무덤에 갔습니다.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눅 24:12)" 예수님의 시체가 없자 이상하게, 신기하게 여기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음이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제자들과 같은 상황에 도달하면 부활의 신앙을 약해집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 주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도마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손에 못자국을 보여 주고 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 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연약성 하나님이 다 아시고 있습니다. 혹 회의에 빠지신 분 있습니까? 삶의 어려움에 처하신 분이 있습니까?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 23:10)
2)우리에게 증거를 보여 주시며 부활의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현대인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믿지 않습니다. 실증주의 자들입니다.
부부가 집사님인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교회에 나가기는 나가지만 그 아들의 눈에는 믿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끔씩이면 싸우고 식사할 때 기도도 하지 않고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교회에 갔다오면 늘 재미 있었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모처럼 어머니가 주일학교를 마치고 가자 오늘은 뭘 배웠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 때 아이가 말합니다. "오늘은 모세가 적들을 어떻게 이겼는지 배웠어요. 홍해에 도착해서, 모세는 다리를 건설해서 사람들을 모두 건너게 했대요.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건너자 그는 무전기로 본부에 연락을 해서 폭격기 지원 요청을 했죠. 폭격기는 폭탄을 떨어뜨려서 다리를 부쉈고, 적군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대요." 그러자 어머니가 눈이 둥글해져서 "아가, 선생님이 정말 그렇게 얘기하셨니?"라고 물었습니다. "사실은 아니에요. 하지만 선생님이 얘기하신대로 말하면 엄마는 못믿을걸요?"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믿는 것같이 보이는데 실제로는 않믿어요.
현대인을 지배하는 사고 구조를 지배하는 원리는 대강 세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평의 원리, 유추의 원리, 상관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과거를 판단할 경우 진리와 비진리를 흑백을 가리듯 쉽게 가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재분석하고 평가하고 종합하여 실제 그런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비평의 원리입니다. 어떻게 부활해 죽어 보아야 알지, 천국이 어디 있어 가보아야 할지?라고 생각합니다.
유추의 원리란 과거의 경험은 결코 현재의 경험과 완전히 다를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경험하는 것이 과거 경험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일어 날 수 없는 것은 과거에도 일어 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부활이 없는데 어떻게 과거에 부활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상관의 원리라는 것은 과거의 발생된 사건은 우연 보다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 관계를 가지고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조건을 주면 계속적으로 부활이 일어나야 그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원리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원리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히11:1)는 믿음의 원리 말입니다. 우리가 죽어 보고 사는 것입니까? 우리가 사업을 할 때 다 경험해 보고 사업을 합니까? 우리가 다 살아 보고 결혼합니까? 아닙니다. 믿고 결혼하고 믿고 사업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실제로 그렇게 살면서도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는 유독 믿음의 원리로 대하려 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어는 전문가가 나와 채소가 좋다하면 무조건 채조를 먹고 조깅이 좋다 걷기 운동이 좋다하면 만보기가 없어서 못팔정도로 나가는데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아요.
이러한 사고의 구조로 보면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이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제자들의 신앙 고백적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에 의하여 신화적으로 꾸며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격화하기 위하여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되지 못한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가설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기절설: 일시 기절했을 뿐이며 장사를 한 후 정신이 되돌아와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2)무덤을 찰 못 찾았다는 설: 어두운 새벽길에 잘 못 찾아서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이 부활힌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3)도난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옮겨 놓고는 부활했다고 거짓을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4)환상설: 부활이 없었는데 돌아가신 후 죄송한 뉘우침에 부활을 말하신 것을 굳게 믿고 심히 피곤하여 머리 속에 그리다가 마침내 환상을 보고서 이것을 실제인양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5)신비설: 바벨론 신화. 동방신화에 나오는 부활설을 예수에 적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는 것이 사기이고 환상이고 착각이고 꾸며낸 이야기이고 신화일까요? 기절하였다가 다시 일어났겠습니까? 확실한 증거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1)기절하였다가 다시 일어 낫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성경의 진리이면서 역사적 사실입니다. 빌라도도 빌라도 보고서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가시면류관을 쓰셨고 책찍에 마졌으며 허리에 창을 받아 물과 피를 다 쏟았습니다. 그리고 세마포에 싸여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동굴이 서늘하여 무덤에서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일어 날 수 있었겠습니까? 설령 일어났다고 하여도 어떻게 동굴의 문을 밀고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마 27:62-66)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이렇게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주님께서 무덤 문을 열고 나올 수 있겠습니까? 부활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2)여인들이 무덤을 잘 못 찾아가서 빈무덤을 보고 착각했겠습니까?
①예수님의 묘지는 공동묘지가 아니라 개인 묘지이기에 찾기에 쉬웠습니다.
②(눅23:55)여인들이 무덤의 위치를 미리 확인하여 두었습니다.
③(막16:2)해 돋을 때에 무덤으로 다시 베드로가 갔습니다. 이 외에 요한과 다른 여인들도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장소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판단 착오를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3)제자들이 시체들 도둑질하여 옮겨놓고 거짓으로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렸겠습니까?
①그럴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잡히시던 현장에서 도망하고 주님을 부인하던 제자들입니다. 또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 부활을 전했을 때, 믿지 않으려고 확인까지 하려던 제자들입니다.
②그들은 완전히 생활이 변하였습니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제자들 11명 전원이 순교하였는데 한결 같이 거짓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을 확실히 믿은 신앙만이 순교의 자리까지 제자들을 인도하였습니다.
③가능성이 없습니다. 가야바가 시체 도난을 막도록 특별히 경계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④로마 황제의 인봉(마27:66)이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허락없이 때면 사형입니다.
4)예수님을 너무 그리다가 그만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고 헛소리 한 것입니까?
①유령이 아니라 실제로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눅24:13-35)
②도마에게는 상처를 만져보게 하셨습니다.(요20:28)
③떡과 고기를 잡수시기도 하셨습니다.(눅24:39-49)
④ 여러 사람이 일시에 환상을 보고 실제적 사건으로 오인했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간 무려 11번 나타나셨고 갈릴리 지정된 산 위에서는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
5)예수님을 신화화하기 위한 기록이겠습니까?
부활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왜곡하여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였다고 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만난 사람이 베드로나 요한 같은 제자들이 아니고 죄인 취급을 받았던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빼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사도들이 두려움과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대로 기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정확합니다. 의심할 만한 사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이 기록하였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고 기록하였기에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이름을 가진 소책자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못박도록 허락하였던 당시의 유대에서 로마 황제로부터 보냄을 받은 총독이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때부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로마 황제에게 보내는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견 되었고 지금 터어키의 성 소피아 사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보고서의 내용에 의하면 본디오 빌라도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장 큰 증거는 제자들의 생활의 변화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죽은 다음의 생명을 분명히 믿은 제자들이 순교의 잔을 마신 뒤, 위대한 신앙인들은 순교의 길을 기쁨으로 알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이 보다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삶들은 부활을 증거하였고(행4:2), 베드로는 부활을 말하지 말라는 사두개인들에게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 중에 어느 것을 듣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행2:14-36)
사도행전은 '부활의 복음서'라고 불릴만큼 부활이 확증하고 있습니다.(2:23, 32,3:15, 26, 4:10, 33, 5:30, 10:40, 13:30-34, 17:31)
더욱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누구 보다도 예수님의 가족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였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마13:55-56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이 식구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7: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막3:21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변하였습니다 행1: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확실히 부활하였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애놀드는 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 중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로슈 멕도르씨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사람들을 속여 오던 일 중에서 악랄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위선 중에 최대의 위선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기적적인 사건일 것이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도마는 부활의 증거를 보고야 믿었는데 우리는 그런 증거를 보지도 않았는데도 부활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28-29).
이것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그많은 기적을 보았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본고로 본 것만을 믿으려 했다면 결코 있을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엄청난 선물입니다.
어느 부흥사 목사님이 시골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답니다. 마을의 건달 몇 명이 집회 시간마다 나타나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주먹깨나 쓴다는 건달은 "누가복음 대신 내가 복음을 믿으라"며 악다구니를 퍼부었답니다. 옛날에 한 주먹 했다는 부흥사는 인내심을 갖고 꾹 참았답니다. 그런데 집회 마지막날 기어이 사고가 나고 말았답니다. 그날따라 건달은 술까지 거나하게 취해 예배당에 들어섰답니다. 건달은 강단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밥이 나오나?" 부흥사의 야성이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답니다. 부흥사는 서서히 강단에서 내려왔습니다. 교인들의 눈은 부흥사에게 집중됐습니다. 부흥사는 건달을 단 한방에 때려뉘었답니다. 시골 건달인 동네 청년은 과거 도시 건달이었던 부흥사와는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청년들은 부들부들 떨며 애원했답니다. "아이고, 형님 나좀 살려주시오" 부흥사는 건달의 멱살을 잡고호통을 쳤답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놈은 용서할 수 없다. 예수 믿을거야 않믿을 거야. 예수 믿을래 한 대 더 맞을래. 예수 믿으면 용서해 주겠다" 건달들은 싹싹 빌으며 믿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 마디 하는데 까불지 말고 믿어 하고 강대상에 올라가더라는 것입니다.
까불리 말고 믿으라고 한다고 믿어지겠습니까? 믿는체한다고 믿어지겠습니까?
믿음은 세 가지의 믿음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가 있습니다.
1)본능적인 믿음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믿음입니다. 개연성, 상식에 의하여 생기는 믿음입니다.
내일 아침에 해가 뜰 것입니다. 내일 죽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밥을 주는 것에 독이 들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집이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2)이성적인 믿음입니다. 과학적 사고에 의한 믿음입니다. 경험해 보고 증명해 보고 믿는 믿음입니다. 과학이나 경험을 통하여서 믿어진 믿음입니다.
3)영적인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천국을 믿고, 영적인 것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후3:2)"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에 의하여 영적인 새생명이 있는 사람만이 가지는 신비한 것입니다. 기적입니다.(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고전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므로 이 믿음을 가진 자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요20:29)"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 이 믿음은 말씀을 통하여 주어집니다.(30-31).
우리가 이 믿음의 복을 누리기 위한 딱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말씀을 듣고 보는 것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물론 말씀을 듣는 다고 다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그 말씀 가운데 역사해야 합니다. "(고전 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부활의 믿음을 갖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보는 것 밖에 없습니다. 부활의 신앙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주일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성경에는 뭐가 들어있을까요? 그 때 한 꼬마가 손을 번쩍들더니 대답하기를 네. 우리 형 성경 안에는 애인 사진이 들어 있어요.
성경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오늘 성경 말씀 31절을 보십시오. 주님이 있습니다. 믿고 생명을 얻게 하기를 원합니다. 풍성한 생명을 얻기를 원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지만 이 말씀을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다윗, 시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고백. 욥은 욥42: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겠아오니."
이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약속해 주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1)영생의 복을 받습니다.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3)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4)기도응답을 받습니다.
(마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5)병 고침을 받습니다.
(막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약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6)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7)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8)소원을 이룸니다.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9)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습니다.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10)마귀의 유혹과 공격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엡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1)세상을 이깁니다.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12)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3)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벧전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참으로 부활의 믿음을 가진 자가 복된 자입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영생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심판에 이르지 않기 바랍니다. 기도응답을 받고, 병 고침을 받으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부활의 능력을 행하고 소원이 이루어져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길 바랍니다. 마귀의 유혹과 공격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고 복음으로 세상을 이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진 자에게 이런 행복을 주실 것을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믿음은 최대의 복입니다./요한복음 20:24-31/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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