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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성경집중 강해-야고보서

by 【고동엽】 202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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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집중강해-야고보서.hwp
 

 

첫째 날(8월 17일)

 

1. 야고보서를 연구해야 할 이유

 

신약성경 27권 중에 보존케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야고보서는 자극적, 충격적, 권위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편리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야고보서를 외면한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그렇지 않다.

 

1) 교회사적 위치

 

신약성경은 약 300년의 기간을 걸쳐 여러 책들이 키질되어서 27권이라는 정경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야고보서는 27권의 맨 마지막에 신약성경에 들어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본다면 야고보서는 성경의 권위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중요성에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많은 시간 동안 야고보서는 서자 취급을 받았다.

그러한 이유는 예루살렘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다.

주후 70년까지 예루살렘에는 초기 기독교회가 있었다.

예루살렘교회의 최고 지도자는 야고보였다. 베드로는 순회 전도자의 역할을 했다.

예루살렘 핍박과 함께 사람들이 흩어졌다. 그러나 야고보는 남아 있었다.

야고보는 예수의 친동생이었다. 그는 62년에 순교를 당한다.

요세푸스는 야고보를 죽여서 예루살렘이 멸망하였다고 함.

66년 예루살렘 전쟁.

70년 예루살렘 멸망.-유대인들이 로마 세계 전역으로 흩어져 버리게 된다.

1945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기까지 흩어진 백성으로 살아간다.

70년 이후에 예루살렘은 로마의 통치로 완전히 바뀐다.

사도행전 15장 기독교선교사에 중요한 이방선교전략을 만드는 주역이 야고보이다.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남겼다.

예루살렘과 흩어진 유대인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흩어진 12지파에게 편지 한다’고 야고보는 쓴다. - 기독교인 12지파의 상징.

이는 흩어진 유대 기독교인을 말한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사람이다.

유대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었다.

야고보는 유대 땅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쓴다.

초기 기독교에서 유대인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

 

루터 시대까지도 야고보서는 외면 당한 대표적인 서신이다.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까지 혹평하였다.

그 이유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그의 생각과는 반대되는 개념인 행위에 대한 의로움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터는 야고보서에는 이신칭의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루터의 반대 이유

1) 자기가 주장하는 가르침이 없다.(이신칭의)

2) 너무나 유대적이고 율법적인 냄새가 난다.

3) 무질서하다.

 

칼빈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다룬 책으로 인식됨.

 

John Herder

만일 야고보서가 지푸라기 서신이라면 그 안에 알곡이 있을 것이다. 알곡의 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야고보서와 바울서신은 같은 서신인데 같은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야고보서는 바울로부터 독립해서 이해해야 한다.

야고보서의 순수하고 특이한 맛을 봐야 한다.

루터는 야고보가 바울 밑에 종속되었다고 본다.

 

 

2) 야고보의 의도

 

야고보서의 특이한 맛을 어떻게 보느냐?

 

언어를 살펴봐야 한다. 언어는 인격이고 독특성이다.

야고보의 특이함은 다른 성경에서 볼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시대의 시대상이 반영되고 있다.

1083절 중 대부분이 명령형을 되어 있다.

 

야고보서는 언어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되어 있다.

1. 긍정적인 측면 2. 부정적인 측면
참 종교성(true religiosity) - 40 가지
지향사항
권면사항
세속성(secularity) - 40 가지
지양사항
책망사항

부정적인 측면을 버리고 긍정적인 측면으로 행하라.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교의 중심(율법주의- 613개의 조항)

바리새파(문자적으로 지키라), 사두개파(제사를잘 드리라), 열심당원(하나님 나라의 쟁취), 에세네파(탈세상적, 금욕적 삶) 등이 예수 당시 유대의 종파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한다.

예수님의 출현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

예수운동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야고보에 의해 계승된다. (72 건의 예수의 가르침을 간접 인용)

야고보는 참 의인이다. 의의 수호자이다. 평생 나실인이다.

 

공동체 교회

야고보는 공동체의 잘못된 점을 보고 고쳐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야고보서를 썼다.

 

3) 현대적 의미

 

야고보서는 오늘의 우리에게 거울이다.

우리는 야고보서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마귀를 발견하고, 세상을 발견하고, 동료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모습을 발견, 목회의 vision을 발견, 세상을 보는 눈을 발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발견

신약성경에는 한번밖에 나오지 않는 단어가 나온다.

1:8에 두마음을 품은자들아 - 이중적 존재임을 발한다. (δίψυχος)

 

 

 

둘째 날(8월 18일)

 

2. 중생한 그리스도인의 의미

 

1) 야고보서의 중생의 의미

 

하나님 나라의 계승을 위해서는 거듭난 사람이 필요하다.

거듭난 사람은 계속해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중생은 하나님의 가장 좋은 선물(약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는 특정한 존재를 가리킨다. 이 말은 내 형제들아 라는 것을 포함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류 모두를 포함한다.

진리의 말씀으로 인한 거듭남이 중생이다.

인류의 구분법 ① 유대인 ② 헬라인, 이방인으로 구분한다.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첫번째 창조가 아니고 두 번째(육신의 생명 후) 창조 ; 거듭남, 중생(regeneration) ; 형제

 

그리스도인들이 누구냐?

-어떤 사람들이 신앙인이냐?

-거듭난 사람만이 신앙인이다.

-거듭난 사람만이 형제에 속한다.

 

이 세상에 많은 종교 중에서 가장 종교적인 것은 유대교이다.

열심이고 율법을 지키기에 철저했지만 그것으로 신앙인이 아니다.(예, 니고데모)

거듭난 사람만이 신앙인이다.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용인 ➜ 거듭남

 

자기 뜻을 좇아 →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뜻을 세우시고 추진하신다.

-하나님의 섭리가 다겨져 있다.

 

역대기는 예수의 족보를 차단(저지)시키려는 마귀의 저항이다.

 

자기의 뜻을 좇아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시면 아무리 강력한 마귀의 힘이라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추진하신다.(전지, 전능, 무소부재, 불멸, energy를 가지심)

-βουληθεὶς - 뜻 ; 모든 섭리가 그 속에 다 담겨있는 것이다.(힘, 능력, 뜻)

 

진리의 말씀으로

-진리의 logos라는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예수를 예언하심.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세계가 바뀌어 나간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계승하기 위한 사람.

 

하나님의 가장 좋은 선물 = 거듭남(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다.

-거듭나게 하신 것이다.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계승시키기 위한 것이다.

 

※ 첫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계속 열매를 맺어야 한다.

-참 종교성 실현의 잠재력이 내포돼 있다.

-출애굽 10번째 재앙 = 장자 : 첫 열매, 첫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떼어놓아야 한다.

-첫 열매는 분리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존재이다.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이다.

 

2) 중생이 갖는 잠재력

 

아리스토텔레스 ; 씨앗 속에는 모든 잠재력이 있다.

씨 → 열매

한 첫 열매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불의한 사람 → 의로운 사람

마귀의 자녀 → 하나님의 자녀

멸망 → 영생

죽음 → 생명

죄를 이길 힘이 없다 → 죄를 이길 힘이 있다

세상에 이끌려 살 수 밖에 없다 → 세상을 이길 힘이 있다(승리)

 

이 모든 것(거듭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거듭난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데 왜 참 종교성은 없고 세속적인 현상이 나타나는가?(이러한 질문은 야고보서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질문이다.)

 

모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가 실상은 그렇지 않는 이유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 καρδία(마음)

-마음에 새 생명이 부여된다.

-세상적인 사람 → 육신적인 그리스도인 → 거룩한 사람

-잠재력은 있지만(새 생명을 부여받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우리의 본질은 본질적으로 두마음을 품은 자들이다.

-아담이 범죄 함으로부터(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인간의 열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

인간은 노력하면 할수록 인간은 절망, 낙심할 수밖에 없다.

-본질은 덮어두고 인간의 노력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깨끗해질 수 없다.

인간의 행위나, 율법적 노력으로 깨끗해지지 않는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새 생명을 주셨다.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율법적인 노력으로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생명의 씨가 열매를 맺어 성령충만하고, 성결한 그리스도인인 될 수 있다.

 

3) 중생의 궁극적 목표

 

이중적 삶에서 빛의 삶으로 가라.

즉 거룩한 사람이 되라.

 

엘리야

-거룩한 사람으로 간 사람.

-자연 질서를 초월한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능력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장로들의 대표기도는 바뀌어야 한다.(세상과 짝하고 왔습니다)

-52편의 웨슬리 설교 - 딱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가고 있다.

 

중생한 사람은 첫 열매로서 계속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깊은 안식, 평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 기도할 때 기도의 응답이 있다.

 

 

 

셋째 날(8월 21일)

 

3. 중생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

 

야고보서는 분명한 결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세상적인 사람에서 → 육적인 그리스도인 → 거듭난 그리스도인

 

 

이 과정을 성장이라고 한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1) 말씀에 대한 경청

 

1:19-24

약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듣기는 속히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하라.(마음에 심긴 도)

-전파된 것이라고 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만민교회의 예를 본다. 문선명의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이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한다.)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근본적인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의미한다.

-아버지와 자녀들과의 관계를 살펴본다면, 중요한 요소는 관계의 신뢰이다.

-듣는 문제는 중요한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여기서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학 중에 견디기 어려운 것은 경제적인 문제였다.(홍 박사 자신의 고백)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오히려 불평이 된다.

 

야고보서의 1:19절 이전의 이야기는 1-18절까지는 고난과 시련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다.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고난과 시련과 관련된 상징적인 표현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열매맺기 위해서 거듭난 사람들도 시련에 봉착하게 된다. 거듭난 사람들이 이러한 고난을 이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되면 고난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복을 강조한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그러나 이것을 믿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복을 생각하면서 고통을 만나게 되면 복은 사라지고 자신이 저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병이들거나 잘못되면 교회의 지도자들은 당사자에게 당신은 무슨 죄를 많이 지었는가?라고 물어보곤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받는 것이 저주로부터 왔다는 것을 반영한다. 잘못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다른 것을 듣지 말라.

예수 믿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경청이 필요하다.

말씀에 대한 경청이 있을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육신 하는 능력이 있게 된다.

말씀이 형성화되지 못한 삶은 무의미하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창세기 1:1-31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는 뒤에 형상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이 나타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전하기 위한 사명을 받았다.

 

혼돈, 공허, 흑암이 깊음 ;

-여기에는 중요한 비밀이 있다.

-흑암이 있으면 혼돈과 공허는 우리 가운데 있게 된다.

빛이 있을 때는 형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흑암의 깊은 가운데서는 아무런 형상을 찾을 수 없었다.

-블랙홀

어두움 속에 형상은 없다. 그러나 어두움 속에 형상이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창조의 순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형상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요1: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 = 생명 = 빛

요1:14 말씀 = 육신 = 영광 = 은혜와 진리

말씀이 육신 -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영광은 상징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말씀의 형상화

칼 맑스의 공산주의 이론은 말로 이루어져있다. 말로 한 길을 보여준다. 환상의 도시인 유토피아를 본다. 그 형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르게 되었다..

산은 형상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말도 형상화 작업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사용하는 말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말에 형상을 입히신 것이다. 이것이 창조의 질서를 보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즉 중생한 사람들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중생한 사람을 통해서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은 형상이다. 즉 형상화된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예수를 닮은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빛(φώς, 포오스, light)

예수님도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했고 우리도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소금이라고 말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소금의 역할은 무엇인가.

-부패를 방지하는 것, 이것은 모양을 바꾸지 않는다.

-썩는다는 것은 형상이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부패성을 간직한 채 우리의 삶을 산다면 그리스도의 온전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예수님 안에는 본질적으로 부패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소금의 형상이 필요하다.

-즉 우리는 부패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형상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형상화되지 않으면 부패한다.

-우리는 세상이 부패성을 갖고 있는 것을 깊이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반드시 그 속임수에 넘어간다.

-우리는 말씀을 가지고 속이는 세상의 유혹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지 않으면 그것은 인간(즉 목사)의 말이다.

-그것에는 하나님의 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리, 경험으로 형상화되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라는 강력한 요구가 야고보서에는 나타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변형시켜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우리의 믿음은 자라게 된다.

말씀을 암송하게되면 더욱더 믿음이 자라고 생각이 바뀌게 된다.

말씀의 형상화

세계관과 가치관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이루어진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 119: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말씀에 대한 경청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자기의 고집과 주장과 판단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섞일 수 없다.

 

2) 고난을 통한 성장

 

야고보서는 고난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일반적인 고난과 특수한 고난으로 대별한다.

고난에 대한 모든 것을 포괄적인 것으로

 

일반적인 고난 - 1:2

특수한 것 - 1:12, 1:14, 5:13, 5:4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 가지 시험 - 포괄적이다.

 

경제적인 고난 - 특수한 고난

1:14-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욕심으로 인한 고난.

2장

5장

점진적인 고난의 과정을 말한다.

 

5:4-6

사회적 고난(social suffering)

5:13-18

고난이 특정한 것과 관련된 것도 있다.

 

사회적 고난(social suffering)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고난의 문제

사회적 차별(social discrimination)에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고난을 보아야 한다.

한국적 문화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인은 지나치게 배타적이다.

사회적 차별성이 강하다. 동창회, 혈연, 학연, 지연을 따라서 배타적인 요소가 강하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가장 큰 요소이다.

social sin, social evil 이다.

2장의 사회적 차별은 사회적 죄가 발생한다. 이것을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종교의 공동체는 이러한 차별을 이겨야 한다.

차별은 분리를 만들어 내고, 분리는 배타성을 만들어 내다.

이것은 사랑의 상실을 만들어 내다. 이것은 죽었다.(계 사데교회에 대한 예수의 경고)

사랑의 상실은 생명력의 상실, 생명력의 상실은 첫 열매가 아닌 마지막 열매이다.

야고보 공동체의 전체적인 맥락은 이러한 차별로 인한 고난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우리가 동료로부터 배척을 받으면 어떻겠는가?

-영따를 당하는 것이다.

-가진 것으로 인해서 차별을 받는다. 반목, 좌절, -하나님의 형상이 무너진다. 하나님의 영광이 보여지지 않는다.

-생명의 공동체가 아니라 사망의 공동체로 가게된다.

2:17

2:26

야고보의 고난의 문제를 이해하고 고난을 극복하는 힘은 공동체의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사랑이 파괴된다면 공동체를 회복할 힘이 없어진다.

우리는 고난의 문제를 무속적인 입장에서 이해한다.

우리의 전이해는 유교적이고 무속적인 것인데 이것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온전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

 

무속의 핵심은

무(巫)

신(神)의 영역

--------

人 ⇅ 人 무당은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

인간(人間)의 영역 = 복(福)과 액(厄)

 

우리는 신의 영역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무당(박수, shaman)이 필요하다. 무당은 이 두 영역 연결할 수 있는 힘이 있다(magic power).

무당은 굿을 하기 전에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삼색의 옷을 입고, 칼을 들고 춤을 춘다. 그러면 magic power가 생긴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신의 이름으로 땅의 문제를 지적하고 무당은 문제를 해결해준다.

주술-신의 영역에서 원인 규명과 처방을 해주고 복채를 받는다.

(안수 기도하고 돈을 받는다.)

 

오복 -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

삼재

대삼재 - 화재, 풍재, 수재

소삼재 - 전쟁, 역병, 기근

팔난 - 생, 노, 병, 사, 구득불고, 애별리고, 원증회고, 오음성고

 

삼신 - 부귀영화(터줏대감), 연명장수(대성신), 평강안녕(성주신) = 삼신각이 있다.

불교에도 있다. 무속 삼신을 섬기는 삼신각이 있다.

고사를 지내고 떡을 한다.

고사떡

- 다락(다락의 아래는 아랫목, 연명장수(延命長壽)-할아버지의 수를 지킴, 고종명),

- 장독대(장들을 담아두어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둔다. 터줏대감, 부귀영화(富貴榮華)의 문제)

- 대청마루(용마루에 가까운 곳)의 뒤주(평강안녕(平康安寧))

이러한 것들은 물질과 건강의 문제를 말한다.

이원화 시켜서 구분화 시킨다. 복에 속하느냐? 액에 속하느냐?

목적이 수단을 지배한다. 결과만 잘되면 수단은 상관없다.

갖기만 하면 성공하고 인정받는 것이다. 윤리가 없어진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윤리성이 약한 것도 이러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찰라적이고 비 윤리적이다.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만이 중요하다.

모로가도 서울로 가라.

미래성이 없다.

불교, 유교, 기독교를 집어 삼켰다.

한국교회가 90%이상이 축복 설교를 한다.

 

저주를 설교를 하면 처음에는 굴복하지만 후에는 속았다는 생각에 교회를 등지게 된다.

 

야고보서는 고난이 공동체 안에서부터 오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고난을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 것이 안으로부터 상실되는 것을 말한다.

 

고난은 우리의 영혼을 깨끗해하는 역할을 한다.

고난은 우리의 찌꺼기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참된 형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게 된다.

 

마틴 루터는 고난을 우리의 찌꺼기를 때우는 용광로와 같다고 했다.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고난을 극복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공동체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약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서로의 죄를 고백하여야 한다.

 

3) 행동적인 믿음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기에 하나님을 의지해서 역동적인 삶이 따르게 된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자기가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다 이루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사기를 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기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행동하는 믿음 - 순간 순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쉬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나의 계획과 생각을 내려놓으라.

구름 기둥이 움직이면 그 때 백성들이 움직이도록 하셨다. 그 외에는 움직이지 말라. 이것이 행동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행동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분명한 sign이 있을 때만 움직여야한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 움직인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되어 행동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넷째 날(8월 22일)

 

4.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

 

거듭난 사람들이 신앙 성장함에 있어서 신앙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는 3가지이다.

야고보서에는 이 세 가지가 여기저기에 나타나 있다.

 

1) 세속주의

 

정의 ; 세상적인 방법을 따라 가는 것이다.

 

2:1-6 / 야고보 공동체 내에 나타난 세속주의 모습

2:4 물질을 가지고 서로 구별하며, 재산의 유무를 가지고 외모를 취하며

2:3 서로 구별하는 것을 구체화한다.

2:5-6 빈부의 차이에 의한 차별

 

3:13-15 / 세상적인 지혜를 따라가는 세속주의

독한 시기와 다툼은 세상적인 지혜를 말한다.

4:1

세상적인 것을 따르는 세속주의가 흐르고 있다.

4:4

세상과 벗된 것 - 세상의 방법을 따라가는 세속주의의 형태이다.

4:13-17

외국과 무역을 하는 사람들은 당시에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써야하지만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5:1-6

재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없어질 존재이다. 없어질 재물을 위해서 억울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모습이 세속성의 모습이었다.

재림 때에 모든 것이 종지부를 찍는다. 그때까지 길이 참아라.

 

야고보 공동체가 물질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부귀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물질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고.

돈은 할 수 있는대로 많이 벌고 할 수 있는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많이 써야 한다.

 

세속주의의 다양한 면을 야고보 공동체는 1-5장까지 서술하고 있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4:4의 싸움은 세상과 벗된 모습을 나타낸다.

 

야고보 공동체에는 세속성이 들어와 있는 공동체로 세속적인 방법을 따르고 있다.

이중적 모습을 가지고 공동체가 가고 있다.

 

세속성은 신앙의 성장을 방해하고 오히려 퇴보하게 한다.

 

야고보의 언어가 오늘이 우리의 상황을 비추어주고 있다.

 

※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세속성은 무엇인가?

야고보 당시에는 세속주의를 따라가는 세속성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세속성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무속주의-현세적, 가시적인 것이다.

우리의 사회는 세속주의가 판을 치는 곳으로 가고 있다.

야고보 공동체도 그 당시의 세속성에 따라 가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세속화. 제사장을 중심으로 귀족그룹의 형성으로 부가 집중되었다.

예루살렘은 종교,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제사장들이 대체로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제사장들이 도지를 주는 일을 하였다.

기독공동체는 이 세상의 일에 거슬려 올라가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진리의 빛을, 세상을 사랑하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교회는 필요한 것이다.

교회는 세상 안에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거룩성 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는 종교적인 집단에 불과하게 된다.

야고보 공동체도 이러한 어려움이 있었다.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세속성의 모습이다.

 

한국교회의 세속성의 모습을 살피려면 현대 사회가 어떻게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가?

 

세상과 교회의 차이가 없다면 심각한 세속성에 빠져 있는 것이다.

다행이 차이가 많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 교회 세속성에 대한 사회학적인 의미를 본다.

 

세속화(secularization)

정의 - 사회가 신적인 영향력으로부터 이탈되어져 가는 과정이다.

사회는 의식적인 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중세는 종교적인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신적인 영향력이다.

헨델의 메시아, 신락원, 존 번연의 천로역정, 법정신에도 기독교적인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사회와 인간의 의식속에서 신적인 영향이 멀어져 가는 것이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는 당시 미국의 메사추세스의 종교적 영향력을 다룬 대표적인 소설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많은 교회들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고, 교회들은 음식점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미국교회 침례교회 약 80명의 구성원 주로 노인들로 구성되었다.

점차로 노인들의 수는 줄었고 교회는 점차로 어렵게 되었다.

메사추세스는 가장 보수적인 곳에서 가장 자유적인 지역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모습이 세속화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세속화는 산업 자본주의 혁명에 의해서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본주의가 들어가면 세속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봐도 된다.

 

자본주의 혁명(Peter Berger, The Capitalist Revolution)

 

자본주의를 창조적 파괴력(creative destruction)이라고 정의하였다.

돈을 가지고 자연을 파괴하고 새로운 빌딩을 세우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돈이 없으면 상상할 수 없는 창조들이 일어나지만 그러한 창조가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파괴가 있다. 이 파괴는 물질만 파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의식 속에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것이 세속화의 과정이다.

한국은 빠른 시간에 창조적 파괴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창조적 파괴력이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가?

1) 자본주의는 구매력을 증대시킨다. 대량생산으로 인하여 가능하고 이익을 증대하고 물질의 소유 능력을 향상시킨다.

자가용을 소유한다는 것을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꿈을 꿀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원하는 대로 자가용을 소유할 수 있다. 자동차의 대량생산으로 값이 내리고 구매력을 자극하여 물질 소유 능력을 향상시킨 것이다.

2) 물리적인 성공에 대한 기대감과 척도를 창조하였다.

70년대의 수세식 -

아파트의 평수의 변화 - 25평은 국민주택, 기본은 33평,

물리적 삶을 향상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은 계속된다.

물질적 삶의 척도를 계속 향상시킨다.

대형화되는 가전제품에 대한 소유욕구가 점진적으로 향상된다.

물질을 많이 소유한 것이 성공이다.

 

음악하는 가수, 연예인, 운동선수

과거에는 천민이지만 지금은 많은 재물을 소유한 사람으로 우상화하는 경향까지 있다.

어슬렁족 -

수표족 -

야타족 -

오렌지족 -

 

물질적인 삶이 척도가 자본주의라는 돈의 힘에 의해서 가름된다.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는가?

 

3) 교육철학 - 많이 쥐는 법을 가르쳐라. 많이 가지고 자랑하는 법, 가진 것을 가지고 풍요롭게 사는 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교육의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 - 과거의 의식 수준에서 현재적인 의식으로

정신 ---------→ 물질

교육과 기술 습득을 통해서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4) 인간 추상화의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 시대에 대접받는 사람과 대접하는 사람의 문제.

소나타 구형 vs 그렌저 - 호텔에서 차에서 내릴 때 대접이 다르게 나타난다.

사람을 물질에 따라서 평가하는 인간의 추상화 문제가 현실 속에서 구체화 된다.

인간의 추상화는 그 사람의 본질을 모르고 겉모습만을 살펴 판단하는 것이다.

인간의 추상화는 상대적 빈곤을 느끼게 한다. ( - 절대적 빈곤)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돈을 많이 움켜지는 것이 복이다. 이것은 무속 신앙의 핵심.

한국교회는 자본주의와 인간의 추상화가 무속과 함께 같이 가고 있다.

돈이 하나님의 힘을 대신하는 의식의 세속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에서 큰 교회에 대한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

차, 집, 돈, 명예에 집착하는 교회 내의 세속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세속화 현상은 예외가 아니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그리스도인들(삼풍백화점 사건의 배후, 선을 행하는 척하면서 사기를 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교회의 재산 싸움이 가장 많은 소송이다.

교회 내에도 세속화 현상이 몰려들고 있다.

 

우리의 기본이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복음이 세상적 성공의 가치로 바뀌고 있다.

권위주의에 대한 경계. - 젊은이들이 권위를 찾아다닌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거룩을 들어내야 할 공동체가 하나님을 외면한 채 세속화의 물결에 침전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야고보는 당시의 세속성에 대해서 강하게 도전하고 있다.

 

과연 하나님은 엘리야의 하나님이십니까?

자본주의의 혁명에 밀려가는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야고보는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2) 마음의 정욕

 

세속화는 마음에서 세상적인 것을 따라가기 때문에 나타난다.

새로운 능력을 받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망의 원인은 인간의 욕심이다.

 

ἐπιθυμία(desire, 정욕, 욕망)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ἐπιθυμίαις, heart)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ἐπιγνώσει, mind)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욕심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욕심은 어디를 향하는가?

-세상적인 것을 향한다. 세상적인 세속주의는 마음으로부터 세상적인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마음

-mind (롬 1:28 επιγνωσει, νουν)

-heart (롬 1:24 ἐπιθυμίαις τών καρδια)

마음에 있는 정욕, 욕심을 따라 끌려간다. 세상에는 물질이 가득하기 때문에 마음이 끌리게 된다.

종교적으로 꾸며져 있어도 인간의 욕심은 숨길 수 없다.

욕심이 인간의 정신적 에너지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을 그려놓고 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이끌 우상을 그릴 수밖에 없다.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고 자신을 드린다. 우상은 비이성적인 사람이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거나 만들지 말라고 하신다.

출20:3-6

당시의 로마시대의 우상은 지금까지 20,000가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보이는 모든 것을 우상화시킨 것이다. 인간의 공허와 흑암 가운데 사는 삶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우리의 삶에 자리잡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난 삶을 살 수 있다. 욕심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따르고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형상화하려고 한 것이 애굽의 삶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욕심은 이렇듯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소욕은 모든 고난의 시작이 된다.

불교에서는 12개의 고난을 끊어야 해탈이라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1:21 - 마음에 심긴 도를 따라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4:8에서 명령하고 있다.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이러한 명령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하기 때문에 야고보는 명령을 하는 것이다.

마음에 심긴 도가 점점 세력을 확장시켜 성화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성결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3) 마귀의 유혹

 

마귀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적인 것을 붙들게 한다.

마귀의 첫 번째 방법은 교회를 세속화시키면 된다. 마귀가 원하는 첫 번째 전략이다.

 

잠 마귀야 물러가라.

사단아 물러가라.

고장 마귀야 물러가라.

이 모든 것을 귀신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무속화의 영향을 받은 세속화의 전형이다.

 

우리는 마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마귀를 성도들이 형상화시킬 때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을 한다.

마귀의 간계를 잘못 그려줌으로 인해서 교회가 세속화된다.

오히려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성도들이 마귀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다.

마귀는 교회 안에서 세상적인 것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예수가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은 것을 기억하라.

마귀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말한다.

야고보는 마귀의 궤계를 깊이 통찰하고 하고 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라.

 

약 1장 전체에서 나타나 것이 마귀적인 것이다.

 

3:14-18

성장의 방해 요인 - 3:15에 근거해서 만든 것이다.

약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마귀는 빛과 소금이 맛을 잃게 하기 위해서 세상적인 것을 우리들에게 계속해서 던진다.

이러한 마귀의 계속적인 공격은 결국 우리로 세상에 빠지게 된다.

약 4:4 - 세상과 벗된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거듭났다고 해도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

그런 교회는 아무리 크게 성장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다섯째 날(8월 24일)

 

5.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야고보서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약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하나님은 주인이다. 야고보는 그의 종이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시사한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며, 많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지혜로우심, 하나님의 관대하심,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으신 하나님이시다.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주 = 하나님 / 미래의 상급을 말해주시는 하나님. 그분은 상급을 주시는 하나님.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악으로부터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

악으로부터 자유로우신 분. 어떤 피조물도 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악의 시험과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

악은 오늘의 인류를 파멸로 이끈 힘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악으로부터 자유로우시며 사람들을 악으로 다루시지 않으신다.

사람들을 괴롭게 하지 아니 하시는 분.

 

약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이시다.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

빛들의 아버지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그림자가 없으시다. 실체와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실체 그 자체임을 말한다. 빛의 아버지로서 빛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어둠이 없다.

하나님은 빛들의 통치자를 말한다.

변함도 없으신 분.

야고보서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생각들이 담겨져 있다.

 

약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다. 생명의 근원이시다.

 

 

약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의 의

도덕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과 관계되어 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완전한 분이시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분별해 내시는 분이시다.

사람들이 입으로 경건하다, 거룩하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분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요구하시고 평가하시는 분이시다.

 

약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다. 정의로우신 하나님.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시는 분이시다.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다.

 

약 2:23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믿음을 보시고 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복음의 내용)

사람을 하나님의 벗으로 인정하시는 분이시다.

4:4과 대조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벗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다.

 

약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하나님은 주 아버지이시다. 이러한 묘사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말들이다.

인간의 근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다.(창 1:26)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신 분이신데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원수 - 밀어내고 심판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원수로 여기신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인간의 하나님께 해야할 책임 - 겸손한 자가 되라.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할 사람들의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사람들의 근본적인 책임이다.

 

약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를 높이시는 하나님.

사람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높여주시는 분이시다.

명예를 얻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자가 되면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약 4: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입법자와 재판자는 하나님.

입법자와 재판자를 동시에 하는 자들은 세상에서 독재자가 된다.(예 루이 14세, 내 말이 곧 법이다)

입법과 재판을 완전하기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통치자의 개념이다.

구원과 멸함도 통치자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약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주의 뜻 - 우리는 그의 뜻을 준행 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약 5:4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만군의 주

부당하게 고통 당하는 자들을 다 알고 계신다.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주는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이시다.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병든 자를 일으키시는 분.

치료의 하나님.

 

약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약 5:18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

 

이상이 하나님에 대한 야고보의 생각들이 깊이 펼쳐진다.

야고보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깨닫고 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더욱 깊어지고, 겸손해지고, 친밀해진다. 상상을 초월한 존재를 경험하게 된다. 믿음은 하나님을 알수록 힘이 있고 확신 가운데 살 수 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에게는 안식이 있으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알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서 안식이 있다.

하나님의 평안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을 기독교 역사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본질(본성)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거룩 + 사랑)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의 언어로 설명이 된다.

이 두 가지에서부터 하나님의 성품이 파생된다.

 

1) 거룩

 

거룩의 의미 / 구별되다. 구별하다. 선을 긋는 것을 말한다.

인격적 존재를 놓고 하나님과 대비하면 구별된다.

 

세상은 유한하다(능력, 지혜, 지식, 공간 점유, 시간적). - 하나님은 무한하시다.(영원성, 전능성)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다.

의타적이다. 타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스스로 존재하신다.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거룩의 구별성은 하나님과 세상의 차별을 구별하는 것이다.

 

세상 안의 인간들은 같은 속성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타자(wholly other)로서 다른 분이시다.

성전 / 성경 / 거룩한 제사장 / 거룩한 절기 / 거룩한 백성 / 거룩한 도시 / 거룩한 땅 / 거룩한 집 / - 이 모든 것이 구별된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같지 않은 절대적인 분이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는 홀로 존재하며, 홀로 신비에 쌓인 영광 중에 거하는 분이시다.

그의 앞에는 존엄성과 능력이 있어서 인간은 그분을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으로 느껴진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시내산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출애굽기 19장, 33장을 보라)

인간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거룩함 앞에 경건함과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

 

사 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추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이 절대로 침해받지 않으신다.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도덕적인 완전함과 지고의 선과 아름다움이 그에게만 있다..

인간에게 그분은 도덕적인 명령을 내린다.

죄와 정결치 못한 것에 대하여 용납하지 않으시고 진노와 벌을 내리신다.

 

하나님만이 절대적 가치와 권위를 갖고 계시다.

인간의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만드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무가치한 것들이 밀어내신다.

-더럽고 추한 모습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다.

 

거룩은 모든 고통을 차단한다.

권위와 주권과 영광을 주장한다.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하게 한다.

자신을 적대하며 대적하는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저항하는 모든 것을 멸하신다.

 

거룩성은 더러운 것이 가까이 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밀어내신다.

거룩성은 거룩해지지 않으면 용납되어질 수 없다.

세상 누구도 하나님 앞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죄성과 타락성 때문에.

우리의 존재는 무가치, 더럽고, 추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삶이 죄악된 삶이었고 타락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고 자녀로 삼으신다.

이것은 기적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2) 사랑

 

야고보서에서는 사랑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상급을 주신다.

구하면 주신다.

가까이 해주시는 것.

 

사랑과 거룩에 통합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가페(ἀγάπη, love)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 아가페이시다.

요 3:16 아가페의 동사형(ἀγαπάω, 아가파오)을 쓰고 있다.

사랑의 하나님이 움직여 나오는 것을 말한다.

사랑은 movement이다.(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 - 국경을 초월하는 사랑. 좋은 걸 어떻게 - 상황을 뛰어넘는 사랑.)

사랑은 근본적으로 움직여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움직임이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헬라어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존재하던 언어였다.

성경이 쓰여진 언어인 헬라어에는 이미 헬라인들에 의해서 언어의 의미가 정해져있었다.

성경의 저자들이 그러한 개념들을 이해하고 성경을 쓸 때 사용하였다.

 

모든 언어는 하나님의 형상을 말해주고 있다.

 

아가페를 이해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에로스를 이해해야 한다.

에로스는 plato의 symposium이라는 책에서 소크라테스와 4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 가정에서 모여 한 주제를 가지고 모여서 논의하는 것.

세미나 - 주제발표를 하고 질의 응답하는 것.

에로스의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였다.

에로스(eros)는 희랍철학에 나오는 신중의 하나이다. 사랑의 신중에 하나이다.

 

1. 에로스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음으로 추구한다.

본질적으로는 아버지를 닮아서 부유하나 현실적으로는 어머니를 닮아서 가난하다.

가난한 세계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에로스라고 한다.

본질 또는 근원인 이데아를 찾아서 부한 것을 찾아 도달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에로스라 한다.

이데아(실체) - 진(眞)

도덕적 무가치하다. - 도덕적 무가치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선(善)이다.

그림자(가난) - 추하고 - 이러한 추함을 극복하려는 것이 미(美)이다.

※ 가난하고, 추하고 무가치한 것을 탈피해 미(美), 선(善), 진(眞)을 구구하려고하는 부단한 노력이 에로스(eros)이다.

-인간의 본성은 가치를 부단히 추구하여는 경향이 있다.

 

※ 현실은 본질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가 실재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키에르케골르의 실존철학에도 반영되는 개념이다.

심미적인 아름다움, 선한 가치, 진리

에로스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심미적 실존, 도덕적 실존, 종교적 실존으로 보았다.

 

에로스에는 이상을 추구하려는 movement가 있다.

인간의 모든 사랑은 무엇인가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치추구를 하기 때문에 에로스적이 된다.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에로스는 가치를 향한 movement이다.

참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아간다.

여기에서 에로스가 극대화되면 나르시즘(narcism)이 된다.

자기의 모습에 빠져 물에 빠져죽었는데 그곳에서 수선화가 피었다.

자기에 대해 깊이 빠지지 말라.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여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힘을 과시한다. 이것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자신을 파괴하는 요소가 된다.

 

에로스는 귀족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계급적이다.

에로스는 부귀적이다. 권력자의 소유물이다. 약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가 엘리트 교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에로스적인 교회이다.

우리는 에로스적이 될 때 아가페를 생각해야 한다.

 

아가페는 엄청나게 가치있는 것이 무가치한 곳을 향해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가 없는 곳에 가치를 창조한다.

아가페는 무가치한 존재를 향하여 자신의 가치를 쏟아 부어준다.

반항적이고, 신실하지 못한 자들을 향하여 용납하고 끌어 안아주는 것이다.

그 아가페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아가페의 실현이다.

아가페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을 하나님에게 끌어들이는 것이다.

무가치한 존재가 지존자 안에 거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마틴 루터 - 하나님 사랑은 세상의 모든 것을 녹아 내리는 용광로이다.

 

아가페 즉 사랑은 자신을 나누어주려는 능력이고 계시고 실현이다.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다. 이유는 인간의 무가치함과 추함과 빈곤함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을 향하는 그 중간에 세상의 우상을 놓고 있다.

그래서 그것에 가려서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로 인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가치추구적인 에로스만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아가페는 이러한 에로스의 한계를 뚫고 무가치한 세상에 가치를 주신다.

 

하나님의 아가페와 인간의 에로스가 만나는 곳이 십자가이다.(십자가 = 거룩 + 사랑)

아가페는 담을 헐어버린다. 권위도 버린다. 용납하고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의 거룩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온전하게 된다.

십자가의 비밀은 인간의 완전한 딜레마를 극복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역사이시다.

 

첫 번째 movement는 십자가

두 번째 movement는 부활

마지막 movement는 재림하시는 것이다.

 

야고보는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고 있다.

 

3) 하나님의 원하는 것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다. 세상을 등지고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오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준행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라고 요구하신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의 거룩한 삶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하신다.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레 11: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지 말라.

 

야고보는 하나님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공동체가 구별성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고, 그곳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라고 하나님의 요구를 전하고 있다.

돌이키고, 대적하고, 순종하라.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는 마음 안에 정욕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르지 못하게 한다..

 

에라스무스의 시 “하나님의 사랑”

오 사랑의 하나님

당신은 이 세상의 태양입니다.

떠오르기만 하지 결코 지지않는 분입니다.

우리 마음에 비춰주기를 기도합니다.

죄의 어두움과 죄악 가운데서 제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 생애 전체에 걸쳐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이 예비하신 길을 따라 감에 있어서,

넘어지지 않고 영원토록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는 성령과 하나님과 하나되어 살아계셔서 통치하십니다.

 

거룩이 없으면 사랑은 흘러 나갈 수 없다.

거룩성을 유지할 때만 세상을 향해 사랑을 흘려 보낼 수 있다.

 

 

여섯째 날(8월 26일)

 

6. 참 그리스도인의 능력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모세가 애굽의 왕국에 있었을 때 그는 어마 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애굽은 세계의 중심으로 그 세력이 실로 엄청났었다.

문무, 지략, 경영,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대에 모세를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보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오히려 그는 광야로 내몰렸던 사람이었다.

40세의 모세는 왕성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모든 것을 갖추고있었다.

(맥아더 장군의 예를 보면 그는 군인으로서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배우들도 자신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 속기가 쉽다.)

 

제도화되어 있던 곳에서 모세는 광야로 자신의 삶의 자리를 옮겨간다.

 

문화 충격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광야 안에서의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도화에서 탈제도화로 왕자에서 목동으로의 삶의 전환이 일어난다.

탈제도화는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다.

이러한 충격에 적응하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제도화 속에서는 모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광야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상황이 바뀐다.

애굽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구원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상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의 상황이다.

 

그러나 모세는 광야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광야에서 40년의 생활 후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산다.

 

어떻게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는가?

 

세상적인 육신의 사람 ▶ 육신적인 그리스도인 ▶ 거듭난 그리스도인

자연인 → 그리스도인 → 성화된 그리스도인

(2중적인 삶, 갈등이 있다.)

약 3:10 / 찬송과 저주

약 3:11 / 단 물과 쓴 물

약 3:12 / 무화과와 포도

제한적인 상황(기쁨과 고난이 공존하는 상황)

95%가 그렇게 살다 간다.

성화의 과정 중에 있다.

정욕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인간의 욕정은 대단한 힘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욕심 - 죄 - 사망으로 이끌어 간다.

 

야고보서에서는 하나님과 벗됨을 이야기한다.

4장의 중심 주제이다.

 

마음은 인간의 영혼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정욕은 우리를 끌고 간다.

어떤 것을 해도 인간은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렘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 17: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하다.

그 사실을 우리는 모른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신다. 부패하고 거짓된 마음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아직까지 마음속에 자신의 부패한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야고보는 알려준다.

내 속에 있는 것을 알 수 없다가 자신을 알게되면 변화할 수 있다.

 

비밀한 속의 몇 천겹의 껍데기로 쌓여 있다.

부패한 마음은 자신의 실재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부단한 노력으로 그것을 감추려하고 그곳에서 부패한 것이 나온다.

야고보는 이것을 지옥 불이이라고 한다.

약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역사에 저항하는 반항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참 평안과 안식을 얻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다.

 

이러한 부패한 마음의 궁극적인 관심은 자신의 영광과 자기 자랑, 자기 만족이다

자신의 영광, 자기의 만족, 자존(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마음을 끌고 간다.

자긍하며, 아집하며, 자기 중심적이다.

이러한 것에서 원망과 불평, 사치와 연락, 교만과 시기, 분노와 싸움, 성적 타락, 증오, 분리, 차별, 이중성이 나타난다.

 

이러한 야고보 공동체는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4:1-4 / 육체의 정욕을 가진 사람, 세상과 벗한 사람에서 떠나라. 마음의 정욕대로 사는 사람.

4:5-6 / 하나님이 그들에게 원하는 것.

하나님께 순복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가던 길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야고보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윤리적인 것을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1730년 이전 웨슬리가 나오기 전에는 영국의 설교는 도덕적인 설교를 가장 많이 하였다.

그럼에도 영국은 거대한 도박장과 같고, 영국 전역은 주점들로 가득차 있었다. 교회에서는 도덕적인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러한 설교에도 세상은 점차 타락하고 있었다.

 

한국의 상황은 도덕적인 설교를 하고 있지만, 세상은 타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칼빈 - 기독교인의 윤리를 도출하는 서신이다.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 있는가?

 

도덕설교를 하면 사람들은 짓눌리고, 율법적이 된다.

이중적이 된다. 보이는 곳에서는 거룩함 모습,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세속적인 삶.

 

야고보는 자신의 공동체가 사망으로 가고 있음을 말한다.

진정한 윤리는 지고의 선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지고의 선(절대타자이신 하나님)에서 도덕적인 명령이 나온다.

 

율법 - 유대인에게 이것을 지켜 행하면 복을 주겠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너희를 흩어버릴 것이다.

(신명기의 내용)

신 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신 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고의 선을 이룰 수 없음을 보여준다.

 

율법주의는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죄와 사망으로 가게 한다.

 

고후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롬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예수 그리스도 율법으로 완성하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다.

요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과의 완전한 일치 = 예수는 하나님과 일치된 삶을 통해서 십자가의 삶을 이루시고.

그의 삶의 능력이 이곳에서부터 온다.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적인 삶을 살면 이중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는 율법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는 이러한 껍데기를 벗어야 한다.

종교적인 가면을 쓰고 있기에 자신의 실상을 볼 수 없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을 합리화하여 넘어가는 가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본질은 이중적인 요소를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적인 것을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네가 누구냐?

하나님은 그것을 알려주신 다음에 평안 가운데 확신을 갖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확신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믿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평안을 주신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새로워진다.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진다.

 

1) 거룩의 체험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소유하는 길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모세는 세상적으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을 만난 뒤에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 살았다.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방법은 없다. 우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4:6-8

겸손히 하나니을 향하게 될 때, 하나님의 방법대로 역사하신다..

손을 깨끗이 하라 - 세상과 잡은 손을 깨끗이 하라고 하신다.

 

시 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 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5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시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시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 15: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시 15: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시 15:5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 모세의 거룩의 체험

 

지팡이를 던지라.

- 목자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할 삶의 도구이다.

-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받았다.

 

신을 벗으라

- 시내산에서 신을 벗고 얼마나 살 수 있는가?

- 생명을 보존하던 신을 벗었을 때 하나님은 새로운 도구로 새롭게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의 도구를 취하신 다음 그것을 새롭게 하셔서 돌려주신다.

그러한 도구는 사람의 생존 도구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로 주셨다.

 

손을 가슴에 넣어라.

-문둥병이 걸렸다. 인간의 심장이 썩었다.

-다시 넣었을 때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셨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하나님이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시고 다시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를 거룩한 사람으로 바꿔 주시는 것이다.

빌리 그래함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한 후에는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키시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사 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4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자신의 더러움을 고백하고 회개할 때 성령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성령의 충만함.

-거룩에 대한 깊은 체험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2) 거룩한 열매

 

거룩을 체험한 자는 마음의 깊은 안식과 평안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믿음이 생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기도의 능력이 나타난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주는 거룩하신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일은 아름답습니다.

주는 강하고 위대하시며, 가장 높으시고 전능하십니다.

거룩한 아버지시여! 주는 하늘과 땅의 아버지십니다.

주는 셋이요, 하나이며 모든 선이십니다.

주는 모든 선이시며, 최고의 선이십니다.

살아 계셔서 진리 되신 여호와 하나님,

주는 사랑, 지혜, 겸손, 인내, 휴식, 평화이십니다.

주는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주는 정의요, 절제입니다.

주는 우리의 모든 것이며 우리를 충족시켜 주십니다.

주는 미요, 친절입니다.

주는 우리의 보호자, 안내자, 방어자이십니다.

주는 우리의 하늘이요, 희망입니다.

주는 우리의 믿음이요, 커다란 위로입니다.

주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며 위대하고 경이로운 전능자,

자비로운 구원자 여호와이십니다.

-St. Francesco, 1181-1226

 

3) 기도의 힘

 

거룩한 하나님을 경험한 거룩한 사람은 기도의 능력이 나타난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 뜻이 일치할 때 그것이 참된 기도가 된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될 때 기도의 능력은 구체화 된다.

마음에 욕심없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진다.

 

기도 응답이 없는 경우

 

약 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마음에 욕심없이 기도하는 삶.

하나님과의 동행 - 안식, 평안, 흔들리지 않는 믿음.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의 본질

 

이성적인 한계를 초월한 하나님의 신비가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

아무에게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기도를 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의 많은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있는가?

-아직도 우리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기에 능력이 없이 살 수밖에 없다.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한 후 그의 삶은 능력자체이다.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

예수의 경험, 야고보의 경험, 거룩한 성도들의 경험 - 이것들은 신비한 경험이다.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성결케하라고 말한다.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영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윤리적인 것을 실천할 수 있다.

육신적인 삶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고 명령한다.

그의 명령은 우리에게 가능한 것이기에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한다.

 

성결한 사람들은 주님 오시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이러한 경험이 이 세상에 흘러 나가도록 해야 한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의 도구를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임 받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에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야 한다.

세상에서 세상을 이끌며 빛과 소금의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다.

 

거룩한 하나님을 체험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 오실 때까지

참된 그리스도인의 형상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되어야 한다.

 

 

세상 가운데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주를 따르도록 나를 도우소서.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거래를 하는 가운데에도

주를 발견할 수 있게 하소서.

나를 주의 나라의 제자로 삼으시고,

하늘의 문으로 보호해 주소서.

십자가의 권능과 자유의 영으로 모든 사람을 환영하시는

주의사랑에 거스르지 않도록 하시고,

신뢰와 진리 가운데 주의 사랑을 깨닫고

주께서 물으시는 물음을 듣게 하소서.

- John Taylor

 

 

 

출처 : 원어사랑연구회
글쓴이 : 주춧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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