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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편◑/정통 교리사

교리사 제 3장 삼위일체론

by 【고동엽】 2022. 3. 5.
 
 

 

제 3장 삼위일체론


1. 삼위일체 논쟁
1) 배경

a. 삼위일체 논쟁의 출현
아리우스와 나타나시우스의 싸움으로 전면에 대두된 삼위일체 논쟁은 사실 그 이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터툴리안이 하나님의 세 위격을 분명하게 말햇고 이 세 위격이 본성상으로 단일하다고 최초로 주장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의 단일성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군주신론이 등장했다.

b. 오리겐의 삼위일체론
그는 영원한 발생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설명한 최초의 인물이었지만 본질과 관련해서 제 2위가 제 1위게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성부는 성자에게 ‘호 데오스’(유일신)이 아니라 ‘데오스’(일반적인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열등한 신성을 주었다. 그래서 성자는 이류신으로 불렸다.
또다른 결함은 성자의 발생이 성부의 필연적인 행위가 아니라 성부의 주권적인 의지로부터 나왔다는 주장이다. 성령은 성자에게 종속된 존재며 심지어 성자에 의해서 지음받은 것들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성령의 신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2) 논쟁의 성격
a. 아리우스와 아리우스주의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다. 아리우스는 나지조 않았고 유래하지도 않았으며 존재의 시작도 없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했다. 하나님 안에 내재해 있는 신적인 에너지에 불과한 로고스와 마침내 성육신한 로고스를 구별했다. 성자에게는 시작이 있었다. 성자는 성부에 의해서 발생되었다. 이 말은 성자가 성부의 피조물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성자는 세계 창조전에 무로부터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영원하지도 않고 신적 본질도 없다. 성자는 모든 피조된 존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고 최초로 피조된 존재다. 세계는 이 성자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성자는 장차 보여줄 공로들로 인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그가 장차 얻게 될 영광에 비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렸다. 성자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의 주장의 근거는 잠 8:22; 마 28:18; 막13:32; 눅 18:19; 요 5:19; 14:28; 고전15:28이다.
잠 8: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막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눅 18: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14:28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위 구절들만 보면 아리우스의 주장이 맞는 것 같이 보인다. 실제로 여호와 증인은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2등 하나님으로 믿는다.

b. 아리우스에 대한 반박-성부와 성자에 대한 아타나시우스의 견해
성부와 성자는 신적인 동일본질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 안에는 나뉨이나 분리가 존재하지 않고, 하급신을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단일성 안에 세 구별된 위격이 있다. 성자의 독립적이고 영원히 인격적인 실존을 주장하였다. 세 위격은 어떤 식을로는 분리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삼신론이 되기 때문이다. 성자가 발생에 의해서 성부로부터 낳음을 입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내적인 행위, 따라서 하나님의 필연적이고 영원한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입장은 구원론적인 확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시키는 것이 구원에 필수적인 것인데 이 일을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중보자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본질이다. 즉 하나님이신 로고스가 인성을 입어서 신인이 될 때만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서 구원이 성취된다.

 

3) 니케아 공의회(A.D. 325)
a. 쟁점
아리우스파는 아타나시우스
영원한 발생이란 개념을 거부했고 인정함.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피조되었음. 성자가 성부의 동일본질로부터 발생했음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 아님.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임.

b. 공의회의 결정
대다수가 중도파였는데 중도파의 대표는 유세비우스였다. 이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오모우시오스)이라는 가르침에 반대했다. 대신 유사본질이라는 말 ‘호모이우시오스’를 사용했다. 그러나 결국 황제가 개임해서 아타나시우스파의 손을 틍어주었다. 지음받지 않고 나셨으며 성부와 한 본질에 속하는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다.

 

4) 회의결정이 가져온 결과
a. 불만족스러운 결정
설득이 아니라 황제의 힘으로 결정이 되어서 앞으로 황제의 변덕이나 황제가 바뀌면 결정이 바뀔 수 있는 전례를 만들었음.
b. 동방 교회에서 준 아리우스주의의 일시적인 득세

가. 공의회의 결정을 반대한 자들
대담하고 정직한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가 성부와 다른 본질이라고 했고, 일부는 성자가 성부와 같지 않다고 했고, 준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가 성부와 유사본질이라고 했다. 주로 동방교회에서 그랬고, 서방교회는 터툴리안의 전통을 이어서 아타나시우스의 교리를 받아들였다.

나. 앙키라의 마르켈루스
이 사람은 발생이라는 용어를 선재한 로고스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성육신한 로고스에 국한시켰으며, 부활 후에는 성부에 대한 세계 창조 이전의 관계로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을 더 넓혔다.

다. 화해의 시도들
안디옥 공의회는 유사본질과 성부의 의지적 행위를 통한 성자의 발생을 강력히 주장했다. 콘스탄티우스가 황제가 되어 서방교회 감독들이 아를과 밀라노 교회회의에서 서방교회 감독들이 유세비우스파에 동조하도록 하였다.

c. 반전된 흐름
가. 반대파의 붕괴
아리우스파와 준아리우스파는 서로 견해가 달랐고 후자도 통일되지 않았다. 시르미움 공의회(357)에서는 우시아(본질),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의), 호모이우시오스(유사본질의) 같은 용어를 배제함으로써 분파들을 결합시키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정한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준아리우스주의자들을 친 니케아진영으로 내몰았다.

나.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
이들은 대 바실, 닛사의 그레고리, 나지안의 그레고리다. 이들은 휘포스타시스(위격)을 ‘우시아’(본질) 및 ‘프로소폰’(인격)의 동의어로 사용하는데서 오해의 소지가 발생했다고 보고서, 휘포스타시스를 성부와 성자의 위격적 실존을가리키는 데에만 사용하도록 그 용법을 제한 하였다. 이들은 신격 안에 있는 세 휘포스타시스(위격)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이 위격들을 신적인 우시아라는 개념아래 통합하고자 하였다. 그레고리우스 두 명은 신격 안에 있는 위격의 관계를 공통의 인성에 대한 세 명의 사람들의 관계에 비유하였다. 이로써 양태론은 완전히 극복되었으나 자칫 삼신론의 오해를 살 수 있다. 단지 로고스가 가진 인격성은 충분히 보호된 것이다.

d. 성령에 관한 논쟁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아다나시우스의 견해를 따라서 성령의 동일본질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인 마케도니우스는 성령이 성자에게 종속된 피조물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성령이단론자들이라고 불렸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우리는 성부로부터 나와서 성부 및 성자와 함께 영광을 받으시게 되어 있고,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 주, 생명을 주시는 이를 믿는다.”

e. 삼위일체론의 완결
가. 성령이 성자로부터 나온다는 문제
콘스탄티노플 회의는 두 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 첫째, 호모우시우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아서 성령이 성부와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직접적으로 단언되지 않았다. 둘째, 다른 두 위격에 대한 성령의 관계가 정의되지 않았다. 성령이 성부에게서 나온다는 진술은 있지만 성령이 성자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부정되지도 긍정되지도 않았다. 성령이 오직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말하면 성자와 성부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고, 성령이 성자로부터도 나온다고 말하면 성령을 성자보다 더 의존적인 지위에 두어서 성령의 신성을 침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다나시우스, 바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성령이 성자로부터도 나온다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성부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단언했다.
서방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주후 589년에 톨레도 회의에서 필리오케(그리고 아들로부터)라는 말이 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첨가되었다. 동방에서는 다메섹의 요한이 오직 하나의 신적본질이 존재하지만 세 위격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세 위격은 신적인 존재 안에 있는 실체들로 여겨져야 하지만 서로에 대해 세 명의 사람의 관게 같은 그런 관계로 있는 것은 아니다. 세 위격은 존재 양태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하나다. 성부는 비발생, 성자는 발생, 성령은 발출이 그 특징이다. 위격간의 상호관계는 혼합됨이 없는 상호내재다. 동방교회는 결코 필리오케를 채택하지 않았다. 성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원천이고 성령은 성자로 말미암아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나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어거스틴은 삼위일체론에서 세 위격은 각각 본질 전체를 소유하고 그런 한에서 본질 자체와 동일하고, 다른 위격과 동일하다. 세 위격은 세 사람의 인격과 같지 않은데, 이 경우 각 사람이 인간 본성의 총체 중 일부만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세 위격은 다른 위격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세 위격간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성부는 발생시키고 성자는 발생되고, 성령은 영감을 통해서 존재한다. 세 위격 간에는 상호침투와 상호내주가 있다.

 

2. 후대의 신학에 나타난 삼위일체론
1) 라틴 신학에 나타난 삼위일체론

a. 로스켈리누스의 삼위일체론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위격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세 개의 개체들로서 오직 발생론적으로 보거나 이름에 있어서만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세 위격의 단일성은 의지와 권능의 단일성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삼신론으로 귀결된다.

b. 프아티에의 길버르의 삼위일체론
신적본질과 하나님을 구별하고, 이 둘의 관계를 인성과 구체적인 사람들의 관계에 비유했다. 신적 본질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만드는 그 무엇이나 하나님의 형체다. 이 것을 포르마라고 하는데 포르마가 세 위격에 공통적이기에 세 위격은 하나라고 하였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세 사람들은 사람이란 면에서 하나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삼신론 혹은 신적본질과 세명의 신이 존재하게 되므로 사신론을 가르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c. 아벨라르의 삼위일체론
세 위격을 능력, 지혜, 선이라는 속성들과 동일시한다. 성부는 능력이고 성자는 지혜며 성령은 선을 나타낸다.

d. 토마스 아퀴나스의 삼위일체론
당시의 교회에서 통용되던 지배적인 견해였다.

2) 종교개혁시대의 삼위일체론
a.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은 신격 안에서 세 위격의 절대적인 동등성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성부로부터 발생된 것은 성자의 본질이 아니라 성자의 위격적 실재라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칼빈은 세 위격이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영원 전부터 존재하여 왔는데 지속적인 발생의 행위를 상정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b. 소시니안들과 알미니안들의 삼위일체론
16세기에 소시니안들은 세 위격이 공통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교리가 이성에 반한다고 보았다. 성자는 선재하지 않았으며, 성령의 특별한 충만과 하나님을 아는 특별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고, 승천할 때에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수여받기는 하였지만 본성에 있어서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성령은 하나님에게서 사람들에게로 흘러가는 미덕 혹은 에너지라고 하였다. 소시니안들은 유니테리언들과 현대주의자들의 선구자들이었다.

3)종교개혁시대 이후의 삼위일체론
a. 클라크의 삼위일체론
그는 성부를 최고신이자 유일신으로 보았고, 성부와 나란히 태초부터 성자라 불린 두 번째의 신적 위격이 존재했는데 성자는 성부의 임의적인 의지의 행위를 통해서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성부 및 성자와 나란히 제 3위가 존재하는데 그의 본질은 성자로 말미암아 성부로부터 나온다. 성령은 본성적으로 성부의 뜻에 의해 성자에게 종속되어 있다.

b. 뉴 잉글랜드 신학자들
에몬스는 영원한 발생론을 영원한 넌센스라고 했다. 스튜어트도 명백한 모순이라고 했다. 성부,성자,성령느 구속의 경륜 속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구별들을 가리키는 단어들이고 하나님 자신 속에서의 하나님의 영원한 관게들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 아니다.

c. 오늘날의 삼위일체론
스웨덴보리는 성부,성자,성령은 단지 성자 안에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령을 통하여 활동한 영원한 신인 안에서의 구별일 뿐이라고 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만물의 근저에 있는 미지의 통일성으로서의 하나님 자신이 성부이고, 예수 안에서 의식적인 인격을 지니게 된 하나님이 성자이며, 교회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인 하나님이 성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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