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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부르너

by 【고동엽】 2022. 3. 4.

하나님 만남의 신학자 에밀 부른너(E. Brunner)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서 소명의 삶을 살수 있을까?
제 I 장: 어떻게 하나님 만남과 소명을 가르칠 수 있을까?

 

 

2. 하나님 만남의 신학자 에밀 부른너(E. Brunner)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1:20)

 

에밀 부른너는 칼 바르트와 동시대에 살았던 개신교 신학의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는 일생동안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설교자요 전도자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폭 넓은 삶을 살았다. 루터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외침으로 개신교가 세워진 것처럼,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는 이 본문 한 구절에 대한 부른너의 신학 사상은 기독교 교육학과 기독교 교육의 자리를 확고히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만남을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다. 그리하여 무시간적으로 인간을 향하여 말씀해 오시는 하나님께 인간이 그 만남을 향하여 나아감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만남의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준 신학자이다.

 

 

A. 에밀 부른너의 성장배경과 그에게 영향을 준 사상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

 

에밀 부른너(Emil Brunner: 1889- 1966)는 한 초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는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를 침투하던 시대에 성서의 신앙을 지키고 선조들의 신앙신조에 굳게 섰기 때문에 희생된 목사의 딸이었다. 그는 깊은 신앙의 소유자였던 어머니의 무릎에서 성장하였다. “취리히 대학 신학부를 졸업한 부른너는 칼 바르트보다 3년 후에 태어났지만 바르트가 33세에 그의 데뷔작인 로마서 주석(Exessegesice of Rome:1918)을 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나이 23세 때에 ' 종교적 인식에서의 상징성‘ (Das Symbolische in religioesen Erkenntnis.1914)을 세상에 내 놓아 당시 20세기 초 유럽 철학계의 거두였던 독일 철학자 후설(Edmund Husserl)에게 칭찬 받을 정도로 뛰어난 천재성을 나타내었다.”

 

에밀 부른너는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의 만남 사상을 신학적인 면에서 많이 수용하였다. 마틴 부버는 유대교적 종교철학자로서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사람이다. 특히 부버의 만남의 철학은 “근세기 기독교 사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화(dialogue)와 관계(relationship)로서의 종교적 삶에 대한 그의 사상은 칼 바르트(K. Barth), 베르자에프 (N. Berdyaev),폴 틸리히(P. Tillich), 라인홀드 리버(R. Niebuhr)와 에밀 부르너(E. Brunner)같은 뛰어난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인간은 세계와 인간과 사물의 관계성 속에서 타자에 대한 기본 태도(basic orientation)에 의해서, 독백의 삶과 대화의 삶 중 하나를 취하게 된다고 부버는 말 하였다. 부버에게 있어서는 이런 모험의 순간이 '만남의 장'인 것이다. 교육학에 있어서 교육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교사와 학생과의 만남, 학생과 작품 속의 인물, 또는 역사적 인물과의 만남, 육체적 감각적인 각성, 나아가 영적인 깨우침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전환이나 도약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 요소가 만남이라고 하였다.

 

에밀 부른너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었다는 창조론의 차이 때문에 신학자 칼 바르트와 논쟁을 하였다. 바르트의 기본 입장은 “하나님 인식의 길은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인간의 길이 있을 뿐이며 그 반대의 길은 막혀있다. 계시는 전적인 위로부터의 은총이며 죄인인 인간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신앙조차도 하나님이 절대 자유의지로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인 무력, 이것이 바르트 신학의 시종일관된 입장이었다. 칼 바르트는 “인간의 주체성이란 신앙에 의한 주체성이지 인간 고유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신앙에 의해 잠시 대여된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하였다.

 

이에 반하여 에밀 부르너는 그의 책 ‘자연과 은총’에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유일한 그리스도의 계시 외에 피조물인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긍정하였다. 계시를 특수계시와 일반계시의 2중 계시로 구분하여 인간의 이 같은 가능성이야말로 종교개혁자들이 전한 올바른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하여 페처(K. Fezer),베버(O. Weber), 알트하우스(P. Althaus) 등이 찬의를 표하고 ‘독일 목사신문’은 이 책을 ‘하나의 광맥’아니 금광의 발견이라고 지지 하였다.”

 

에밀 부른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렇게 이해하였다. “인간 안에 다른 일체의 피조물보다 탁월한 인간성(das Humanum)이 있다. 이 인간성이 있으므로 인간은 죄인임에도 창조의 중심이며 정점이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인간에게 이 탁월한 인간성(das Humanum)이 있기 때문에“인간은 죄인인데도 전피조물 중에서 탁월한 존재이며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인간 본성(das Humanum)인 주체성, 책임성, 인격성, 언어능력, 이성, 양심 등에 의하여, 죄인이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근거이며 이 인간성이 하나님과 인간의 ‘결합점’이라는 것이다.”

 

부른너는 루터나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이 말한 잔상(Image-Rest)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한 특수계시 외에 자연적 일반계시의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개혁자의 전통을 오류 없이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에밀 부른너의 하나님 만남 사상은 실존주의적 단속성을 배경으로 형성되었다. 실존주의적 단속성이란 인간의 성장은 계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뜻밖에 일어난 사건에 의해서, 돌발적 사건에 의해서 새로운 존재에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키엘케골로부터 싸르트르에 이르는 실존주의자들과는 달리 인간을 고립된 실존으로 보지 않고,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부버와 같이 인간이 단독자로서는 불완전하다는 것, 즉 고립된 존재는 인간일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고립된 개인을 강조하던 종래의 실존주의를 극복하고 관계적 만남을 통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통하여 참 인간에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에밀 부른너에게 영향을 준 마틴 부버는 당시 유럽의 파쇼주의와 공산화에 따른 전체주의, 도시화 현상과 산업 구조의 거대화가 인간들을 집단주의의 무력함 속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았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진척되는 문명의 발걸음은 인간의 실존에 두려움과 무의미함과 불안감을 누적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에서 부버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틈을 오가며 인간된 존엄성을 상실해 버린 현대인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딜렘마에 깊이 빠져 있는 현대인들은 병든 시대(times of sickness)를 살아간다고 보았으며 이 무 방향의 방황을 계속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양식(soul food)을 공급하고, 인간의 정신적 본질을 되찾아 황폐한 삶을 부흥시키기 위한 관심을 집중했다. 부버는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고 참된 관계 형성을 위하여 ‘만남’(encounter)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현대 문명 속의 인간관계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격적 주체인 “너”(Thou)로 보지 않고 도구적 수단에 불과한 사물적 존재 “그것”(It) 으로 보는 "나-그것"(I-It)의 관계로 타락했다고 주장하면서 인간과 인간의 인격적 ‘만남’을 강조하였다.

 

에밀 부른너는 부버와 같이 관계의 개념으로 인간의 위치와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다. 이러한 의식에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영적 존재와의 대화적 관계, 즉 "나와 너"(I and Thou)의 "만남"의 관계를 촉구하였다. 그는 마틴 부버의 만남의 철학 사상인‘나와 너’(I and Thou)라는 인격적 만남의 주제를 그의 신학 방법론으로 도입한 것이다.

 

 

 

B.하나님 만남을 향한 에밀 부르너의 신학적 위치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

 

한 사람의 위대한 신학자와 그 신학 사상은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힘과 능력이 된다. 기독교 교육학에 끼친 에밀 부른너(E. Brunner)의 신학 사상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였다. 그의 신학 사상은‘하나님 만남’을 향한 기독교 교육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으며 초석이 되었다. 에밀 부른너는 신학이란 신앙에 의해서 인도 되어지는 사고의 합리적 활동이라고 밝힌다. 신학의 자료나 규범, 주제, 그리고 의미는 모두 성서 안에서 발견되며 신학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 말씀 안에 있다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실 때에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게 되며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신앙이 생겨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신앙의 행위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한 인간의 자기 이해(Understanding)이다. 인간의 이 자기 이해는 인간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지하고 나아갈 때에 급진전함을 많은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시간과 때는 자신이 알 수 없고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하였다. “부른너의 신학 사상은 부버의 관계적인 만남 사상을 수용하면서 밀러, 쉐릴, 하우 등 기독교 교육학자들의 이론적 사고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에밀 브루너는 칼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에서 강조한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면서도 ‘신과 인간과의 만남’을 그 신학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그리하여 하나님 만남을 위하여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강조한 신학자가 부른너이다. 그는 하나님 만남을 위하여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 줌으로써 교회 교육의 서야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분명히 제시해준 위대한 신학자이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과 기독교 2천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수많은 증인들 중 교회사에 빛을 남긴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는가를 살펴보면 그들 또한 인간들이 할 일을 철저히 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말씀이 말하려고 하는 궁극적인 내용을 찾거나 접근하지 않고 소홀히 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의도를 바르게 깨닫기 위하여 영적인 민감함을 가지고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을 위해 쓰여 졌기 때문이다. 에밀 부른너는 바로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의 내용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고 그 사실 뒤에 숨어있는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진리를 발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진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인 동시에 목적이다.“

 

에밀 부른너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신앙이 성숙되고 더욱 깊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음을 이렇게 강조하였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와 살아계심을 믿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실존을 거부하며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명한 약속을 하고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11:6)

 

오늘 세계의 다른 많은 종교인들 중 유대교인이나 이슬람 교도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 중에 하나님의 실존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는 통계가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들 중 대부분은 자기 이성과 지성의 범위 안에서 성경을 보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1:20-25)

 

사람이 하나님의 실존을 믿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려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하며 자신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하신 것을 보고 믿어야 한다.

 

둘째로 신앙이란 하나님의 선물이라 할지라도 성경은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치고 있는데 인간이 해야 할 일을 할 때에 신앙을 선물로 주신다는 사실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즉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은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 일차적인 것이다. 이것을 원초적 결단(man's original decision)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하신대로 행동하려는 근본적인 결단, ‘이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셋째로 신앙의 전제조건으로 성경을 말하고 있다. 성경을 통하여 약속하신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의미를 알고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 받을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히9:12,공동번역)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이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피가 오늘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생각하며, 주님의 보혈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십자가의 보혈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서는 사죄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 인간들 중에 죄가 없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죄로 더럽혀져 죄인 된 모습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들의 죄가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주님을 통한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준비 행위’를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

 

기독교 교리는 성경말씀을 토대로 한 기독교 진리의 정수이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과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아무도 참다운 크리스천이 될 수 없음을 에밀 부른너는 강조하였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3:22) 성경은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풀어주신 풍성한 능력과 은총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다.“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8-19).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행동하며 살아가야 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4:15)

 

에밀 부른너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에 신앙이 생겨나기 때문에 신앙의 싹이 나기 위해서는 말씀이 활력 있게 생동하는 교육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하였다. “부른너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성서적 신앙을 말한다. 성서적 신앙이란 신뢰와 순종과 사랑의 결과로써 이루어지는 인격적 만남이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말씀과 성령 안에서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며 신앙의 참된 형태는 인간이 하나님을 무조건 적으로 신뢰할 때의 의존 상태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xx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8-19) 이 말씀을 근거로 에밀 부른너는 모든 인간에게 신적인 계시가 있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인간이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도 일반 계시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칼 바르트는 ”말씀의 언어“를 강조하였는데 에밀 부른너는 ”말씀의 언어“ 못지않게 “관계의 언어”(language of relationship)를 결정적 언어로 강조했다. 하나님을 계시의 주체자로 보면서 부른너는 특히 하나님의 계시하시는 “과정”에다 강조점을 두었다. 즉 계시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활동으로써 성서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행위 즉 특별계시이다, 그 하나님은 동시에 다른 모든 곳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행위 즉 일반계시에 부르너는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부른너의 계시 이해는 교육학적인 면에서 살펴볼 때에 칼 바르트보다 더 열려진 “의도적 기독교 교육”의 가능성의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C. 에밀 부른너에게서 하나님 만남(encounter)의 의미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11:6)


“에밀 부른너의‘만남으로서의 진리’(Truth of Encounter)는 그의 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 중의 하나이다. ‘만남으로서의 진리’는 1937년 웁살라에서 행한 부른너의 강연제목(Wahrheit als Begegnung)이었고 그 이듬해 1938년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1943년 영어판으로 번역되어 나올 때는 ‘신과 인간과의 만남’(The Divine-Human Encounter)란 제목으로 번역출판 되었다.”

 

그 중심 내용은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인간에게 계시되었음을 강조하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말씀하신대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길로, 진리로, 생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진리에 대한 지식은 계시자이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인간은 이 진리의 수용자일 뿐이다.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의 행위들 그 자체이다. 만남의 행위는 현실적으로 일종의 부름(a call)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진리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리스도 신앙” 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부른너가 응답적 현실성(responsive actuality)라고 부르는 신앙을 통해서 책임적 존재가 된다. “이 책임성은 최고의 자아(Supreme Self)가 인간을 부르시고 인간과 교통하신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는 ‘응답 가능성’(answer ability), 즉 자신의 응답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에밀 부른너는 성서적 신앙을 만남(encounter) 이라고 정의 한다. 그래서 그는 만남을 진리로 표현하였다. 진리가 있는 곳에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만남이 있다. 만남의 진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신앙의 진리도 존재하며 성서적 의미에서 신앙의 진리는 만남으로서의 진리이다. 부른너는 만남으로서의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화해로 생각하였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함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만남은 십자가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며 이러한 만남이 일어나기 위하여서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직접적으로 있었던 사도들의 증언과 하나님 만남을 체험한 기독교 역사 안의 수 많은 증인들의 증언을 통한 명상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하나님 만남은 하나님의 자기 의사 전달과 함께 시작된다. 이 하나님 만남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인간의 행동이며,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에밀 부른너는 “인격적인 하나님 만남에는 반드시 대화가 탄생된다고 보았다.”이 만남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자신의 자율성을 포기하는 인간의 결단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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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부르너의 종교인식론

 

 

백동인

 

 

종교의 통로는 인식인가, 체험인가?
종교적 인식을 위한 직관
직관 이외의 종교적 인식
종교 인식의 개념: '영적인 세계'와 '초인적 인간성
종교적 인식을 통한 상징적 신 이해
요약
주석

 

서론

 

이 소고는 칼 바르트와 더불어 한 때, 소위 변증법 신학자로 알려지기도 했던 스위스 신학자 에밀 브룬너(Emil Brunner)의 종교인식론의 유형과 방법, 의미를 분석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에밀 브룬너는, 독일교회는 독일국민의 교회이므로 오직 순종 독일인들이, 순종 국민교회(Volkskirche)를 세워 나치정권의 이데올로기에 일조 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완성이고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소위 '아리안 조항'에 대한 신학적 찬반논쟁으로 유럽 신학계가 일대 혼란을 경험하던 나치정권 출범 초기에, 바르트(K. Barth)와 저 유명한 자연신학에 관한 논쟁을 벌였다.

 

당시 히틀러를 일종의 메시야 처럼 추앙하려던 중재신학의 분위기를 간파하고 있던 바르트는 그의 신학에서 신과 인간의 질적 단절을 선언하고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이외의 그 어떤 접촉, 계시 가능성도 부정했다.그러나 브룬너는 중세 이래로 큰 물줄기를 이루어 온 "자연도 은총이다"는 자연신학의 명제를, 당시의 상황에 관계없이, 총체적이고 근원적인 입장에서 강변하고자 했다. 그는 급기야 당시의 독일 고백교회 지도자들로부터 본의 아닌 오해를 사게 되고, 그의 자연 신학은 '브룬너에 대한 반대'(Nein! Antwort an Emil Brunner)라는 칼 바르트(Karl Barth)의 예언자적 직격탄을 맞는다.

 

그러나 그는 피조세계에서 계시의 객관성을 찾으려는 자신의 인식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생애 중, 줄곧 창조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의 객관성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주체성을 연결시키는 접촉점(Ankn?fungspunkt)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삼 단계의 생성과 변화의 단계를 거쳐 이루어 갔다.

 

즉 '직관'과 '상징'을 통해서 종교적 인식에 도달하려던 초기(1914년 - 1920년)의 "종교철학적 관점"의 시기와, 투르나이젠(E. Thurneysen), 불트만(R. Bultmann), 고가르텐(F. Gogarten), 그리고 바르트(K. Barth)와 더불어 '시간의 사이'(Zwischen den Zeiten) 라는 동인지와 여타의 강연을 통해서 변증법 신학(Dialektische Theologie)이라는 공통의 관심에 노력을 집중하던 시기(1921년 - 1927년), 그리고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나-너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소크타테스가 사용한 대화술(Sokratik)과 그 의미상 유사한 대화 신학(Eristische Theologie)을 주목한 시기(1928년 이후)가 그것이다. 그는 대화신학을 통해서, 정신사의 큰 물줄기를 이루어 온 주관과 객관을 혼합한 만남의 신학을 이룩하고자 했다.

 

본 소고는 브룬너의 자연신학의 골격이 되는 그의 초기 인식론에 주목해서, 주관과 객관, 이성과 감성의 미로를 더듬어 신과 진리를 찾고자 지적 모험을 시도했던 그의 생애 초기의 종교철학적 인식의 범주와 대상, 방법론을 소개하고 해석하고자 한다. 애석한 것은 1933년과 1934년 사이에 이루어진 바르트와의 논쟁에서 바르트가 브룬너 신학에 대한 극단적인 반대를 선언한 이후, 그의 신학에 대한 연구논문이나 학위 논문이 바르트에 관한 것 보다 상대적으로 감소해 들어가기 시작, 1960년 이후의 그에 대한 논문이 흔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본 소고를 씀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의존한 종교철학에 관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종교적 인식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것"은 이 논문에 관한 참고자료나 이차자료가 희귀해서 연구의 깊이를 만들어내기가 수월치 않았다.

 

본 인식론의 연구 방법은 교의적이거나 계시의존적이 아니다. 오히려 초기의 브룬너가 그러했던 것처럼, 필자도 주관주의적 인식론의 접근 방법을 긍정하고, 그의 논리로 그 당시의 그를 이해하고자 한다. 좀 더 후기의 그의 변증법적 신학이해에 상반되는 그의 초기 주장은 인식방법에 있어서 진리 인식의 전 단계로서의 부정의 과정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브룬너의 주관주의적 종교인식론은 그의 후기 사상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데 충분한 발판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종교의 통로는 인식인가, 체험인가?


브룬너에 있어서 그의 가장 중요한 첫 작품은 '종교적 인식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것'(Das Symbolische in der Religi?en Erkenntnis)이라는 인식론적 주제에 대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스승인 라가츠(L. Ragatz) 에게 바친 이 논문을 그는 '종교적 인식론에 기여하며'(Beitr?e zu einer Theorie der religi?en Erkenntnis)라고 명명하였다.1) 여기서 그는 종교적 인식을 기독교적이 아닌, "종교적인 믿음"의 실상의 문제로서 제기한다.

 

브룬너는 종교적 의식 속에서 종교적 진술의 실상에 대한 하나의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즉 상징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종교적 인식에 대한 하나의 독자적인 이론을 정립해 보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기본적으로 쉴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적인 변형적 인식론을 따르면서도 칸트(I. Kant)와 쉴라이어마허의 독특한 통합을 이루고자 한다. 잘라 말해서, 쉴라이어마허가 이룩한 "영적 현현"에 대한 종교의식의 '독특성'과 '독자성'의 통합은 브룬너에게 있어서 진리 인식의 확실한 기반이다.

 

그는 순수의식의 분석이 모든 규정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브룬너는 종교적 인식은 "도덕적 규범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내세에 대한 인식으로 본다.2) "절대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체험, 독자적인 영성(Geistigkeit)의 체험으로부터 신앙 세계로의 문이 열린다고 본 것이다.

 

브룬너는 칸트가 종교의 실상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의식의 외부에서 진리를 찾고있는 것은 실수라고 비난한다. 브룬너에 따르면 칸트의 종교 해석은 도덕에 기생하는 생기없는 일종의 부가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 종교적 인식의 대상물들인 신, 영원한 생명, 그리고 자유는 실천적인 도덕적 이성의 단순한 요구로서 등장한다.3) 그러나 브룬너는 진리는 사실성의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종교 의식이라는 체험 속에서 의식의 특성을 분석함으로서 확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브룬너는 비판적으로 근원을 따지지 않으려는 낭만적인 인식 성향을 보였다. 그는 이러한 근거를 지그바르트(H. Sigwart), 빈델반트(W. Windelband), 그리고 리커르트(H. Rickert)의 논문 속에서 찾고 있다. 특별히 베르그송(H. Bergson)의 인식 방법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베르그송은 지식의 대상으로서 생기 없는 정적인 세계(Statische Welt)와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통일적이고 동적인 세계(Belebte Welt) 사이를, 공간과 시간, 소재와 의식 사이를 나누는 것처럼 날카롭게 분리시킨 바 있다.4)

 

브룬너도 단지 이러한 사고 체계의 틀 속에서만이 종교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동의했다. 브룬너는 그로부터 인식론적 주지주의 비판을 인용한다. 여기서 필자는 브룬너의 초기 종교적 인식론을 베르그송의 철학적 기초에 꼭 관계 지우려는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단지 그가 자신의 종교관에 베르그송의 직관적 인식 방법을 접붙임 했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브룬너는 여러 종류의 정신 활동이 오직 직관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보고 직관의 불가피성을 간파한 듯 하다. 브룬너는 직관적으로 얻어진 지식은 어느 경우든 "공간적 사물"이나, '지식'과 같은 일반적 표현의 틀 속에서 표현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직관은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것, 독특한 것, 반복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지식이거나 ... 공간적 사물과 관계들의 인식과 같은 류의 척도가 아닌 직접적인 지식이다."5)

 

브룬너는 더욱 깊이 내재하는 인식의 원천을 밝혀냄으로써 새로운 진리 개념에
다가서고자 했다. 이러한 지식은 이성이 아닌, 체험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의식의 구체적인 부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내적 정관(Innere Anschauung) 즉, 직관의 특별한 인식 형태로 규정한다.6) 필자는 이 개념을 이 연구의 실제적인 열쇠 개념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본 소고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모든 철학적 전제들은 모두 직관으로 용해되어, 그 토대 위에 그의 종교적 인식론의 틀이 세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인식을 위한 직관

 

각각의 인식론은 먼저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 즉 인간이 어떻게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 스콜라철학은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어지는 질료(Material)는 인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공되어진다."7)

 

여기서 인식의 실질적인 도구는 이해(Verstand)이고 감각들(Sinne)은 인식을 위한 매개물이 된다. 감각들은 인식되어 질 수 있는 질료를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성은 두 가지 면을 지니고 있다. 수동적인 면과 능동적인 면이 그것이다. 즉 사물에 대한 인식은 수동적 이해가 지각 개념들을 받아들이고 능동적 이해가 감각적인 질료로부터 비감각적인 개념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생겨난다.

 

이 개념들은 사물의 실제적인 존재를 내포한다. 능동적 이해는 논리적인 개념들을 서로 관련 지움으로써 판단을 형성시키는데, 이렇게 관련된 것들은 지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판단들은 하나의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 혹은, 더 많은 대상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나타낸다.8) 브룬너는, 검증되지 않은 관찰들을 명확하고 공리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그 위에 세계관을 세우는 스콜라 철학을 비판한다.9)

 

헤겔(Hegel)은 스콜라철학적인 성향을 계속 나타냈다. 그는 이성의 산물들 즉, 개념들을 인식획득의 기본 토대로 삼았다.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이해의 반복과 그로 인한 개념들의 논리를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므로, 헤겔에 있어서 이성은 실질적인 인식요인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주지주의는 신을 사색과 논리, 인과 법칙의 적용을 통해서 인식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적인 법칙들과 비슷한 신을 하나의 불변적인 실재로서 서술했다. 반대로 헤겔은 의식, 자기의식, 이성의 단계를 거쳐서 정신, 종교, 절대지식에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생성의 신을 선언했다. 헤겔은 의식되는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관련지어, 신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전개한다.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는 그 자체로부터 대립물 즉 유한적이고 상대적인 존재인 세계를 상정한다.

 

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는 동시에 세계를 대립물로 부정하고 또는 정신화시키며, 지양된 대립물 속에서 스스로를 정신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자기관찰은 절대 존재의 자의식으로 창출되어진다.10) 신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전개시키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는 철학은 절대적 표상, 즉 신의 표상의 인식에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것으로 규정되어져 있다. 이러한 절대적 인식은 신에 대해 인식하게 되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속에서 스스로 신을 인식하는 것이 된다.11)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의 신 개념이 형성되어지는데, 이 개념은 그 자체로부터 전개되고 발전되어 영원히 즉자적럽育愍岵막?존재하는 이념이 된다. 이러한 이념은 절대적 정신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결국 종교적 인식을 위한 출발점을 형성한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즉자적럽育愍岵막?존재하는 이념의 근원이나 특별히 종교적 인간의 직관적인 기본 행위를 통한 제한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확대하지 않았다. 그는 신인식의 존재론적 차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브룬너는 헤겔의 이러한 종교 이해를 비판한다.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 규범들은 그것들의 무제약성의 요구와 함께 본질적인 요소를 이룬다. 도덕적 규범들의 합법칙성은 경험을 통로로 종교적인 인식을 가능케 한다. "칸트에게 있어서 이성적인 것, 즉 규범적 타당성에 대한 결정적인 관심이 종교에 모아지는데 그것이 곧 실천이성이다. 과학적인 원칙들에 맞는 타당성의 대체물을 그는 도덕적인 규범 속에서 발견한다."12)

 

칸트가 종교와 과학을 분리시키는 반면에 쉴라이어마허는 종교와 윤리성을 구분한다. 쉴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종교적 인식의 원천은 신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절대 의존성이다. 이러한 의식을 그는 본래적으로 '경건한 감정'이라고 명명했다.

 

종교의 대상은 신적 존재에 대한 절대 의존감정에 이끌리는 그 어떤 것이다.13) 쉴라이어마허에 있어 신에 대한 절대의존의 의식은 칸트에게 있어서 규범에 대한 무제약성의 요구의 경험을 수용하는 것이다. 쉴라이어마허는 칸트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칸트처럼 신을 감각적이고 합리적으로 인지 가능한 외부 세계의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신을 인간의 내면에서 찾고자 했다. 쉴라이어마허는 칸트의 인식론에 대한 비판적 결론을 그의 최초의 신학인 "종교 철학"에 적절히 적용했다.14)

 

"칸트가 철학의 나머지 영역에서 이루려던 것을 쉴라이어마허는 그의 종교철학에 관철시켰다. 칸트는 비판철학의 아버지이긴 하지만, 종교철학에서는 선 비판적 관념에 속박되어 있다. 쉴라이어마허는 비판적인 종교철학자이다."15)

 

이상의 근거로 보아, 브룬너가 칸트적 세계형질 이념이라는 이율배반 위에 자신의 종교관을 세운 것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양자의 사고 구조 속에 형식적인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브룬너와 칸트의 관계는 여전히 불명확한 관계로 남는 것 같다.16) 다만 다음과 같이 언급할 수는 있겠다.

 

즉 칸트가 그의 윤리학을 하나의 도덕법칙을 따르는 예지적 자아(Intelligibles Ich)의 자유 위에 두고 있는 반면, 브룬너는 전술한 이율배반 위에 그의 종교철학의 출발점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와 조화되지 않은 권위에, 주관이 종속되는 문제가 여전히 브룬너의 인식론의 과제로 남는다.

 

브룬너는, 쉴라이어마허가 종교를 본질적으로 경건한 감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환상주의적 경향 아래 파악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브룬너는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에 대한 내적 관찰의 가능성을 받아들임으로서 이러한 종교적 인식의 유약함을 극복해 보려고 한다. 이러한 내적 관찰을 브룬너는 베르그송과 칸트에 의존해서 '직관'(Intuition) 혹은 '내적 정관'(Innere Anschauung)으로 이해한다. 그는 그것이 인간의 감정과 사고, 그리고 의식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초월성(Transzendenz), 즉 신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이라고 보고 있다.17)

 

특별히 자의식에 대한 직관은 베르그송에게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바 있다. 베르그송에 있어서 직관은, 인식의 영역들이 통일되는 신비적인 차원의 특성들을 포함한다. 직관은 모든 지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그리고 개념적인 것들로부터 총괄된 형이상학적인 것에 도달하고자 한다. 원래 직관은 철학사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인식의 한계점을 경험하기 마련인데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러한 한계론을 뛰어 넘고 있다. 그것은 그가 과거, 철학의 적으로 규정된 바 있는 지성(Intellekt)으로 철학적 사고를 전개했기 때문이다.18)

 

브룬너는, 인간이 그의 정신적 인성을 자발적으로 나타내고자 할 때 스스로 종교적 세계와 그 진리에 이르는 통로를 열 수 있다고 힘주어 설명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인간을 규정하는 도덕규범 의식을 함께 고려할 때 가능하다.19) 이러한 개개의 직관적 관찰을 요구하는 종교적 세계는 개방적으로 나타난다. 직관은 바로 주관과 객관을 서로에게 향하게 한다.

 

직관의 도움을 통해 자유로운 정신적 인성은 주관으로서 의식되어지고,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와의 연관관계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종교적 세계와 도덕적 규범에 의해 규정된 인간성의 차이는 극복되어진다. 브룬너는 '내면으로부터의 초주관적인 통일'이라는 관념을 통해서 종교적 직관의 주관성과 객관성의 간격을 극복하고자 한다. 종교적 직관과 그것을 통한 인간의 신적 표상이 가능하다는 브룬너의 주장은 다른 많은 신들의 표상들도 관찰이 가능하다는 개연성을 열어두고 있다.

 

 


직관 이외의 종교적 인식


종교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브룬너에 따르면, 종교는 종교 의식의 생성에 대한 동기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며, 개개의 종교는 역사 이전부터 계속 전해져 온 불가피한 종교적 기본인식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종교는 인간의 자아판단 인간의 자기의식 속에서 그 동기를 갖는다"20)


따라서 인간이 그의 정신 속에서 경험하는 직관적 자기의식은 종교적인 원초적 행위로서 설명된다. 브룬너에 따르면 이러한 전제는 단지 자기의식의 도움으로만 도달될 수 있는 직접적인 신과의 관계가 원래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지시한다. 그렇지 않은가! 신을 경험하지 않고는 종교란 기본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기본체험들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중의 하나가 위대한 종교적 인물들의 삶을 종교적 인식의 확고한 현상으로 연구하는 방법이다.

 

확실히 종교 영웅들의 초자연적인 영적 활동과 그들의 종교적 자의식이 우리들 평범한 사람들의 체험보다 훨씬 더 강하고, 순수할 뿐 아니라, 명확하게 종교적 현상을 그려낸다.21)

 

이러한 영적 인간은 그들의 내면에 신과의 초주관적인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들의 초주관적이고 선험적인 현실은 절대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의 경험과 연관되어 있음이 확실하다. 주관은 이러한 종교적 영웅들의 가치에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종교적 인식이 직관적으로 영감 받은 개별 인물들의 교훈이나 빛을 통해 비상하게 표현되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브룬너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위대한 종교인들이 각 개인들에게 특별한 영향과 교훈을 준 사실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다. 이것은 종교 인식의 유망한 통로인 직관이 개별적 종교이해로 그친다는 오해를 불식시켜 준다. 그리하여 브룬너는 자신의 반대자들로부터, 자신의 견해가 주관적이고 신비적이라는 종교 비판을 태연히 받아 들였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입장에서 칸트의 결정론적 반신비주의를 비판했다.22) 그는 직관과 그것의 신비성을 '종교의 심장'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각 개인의 신비적 체험에 영향을 끼치는 객관적인 계시 요소쯤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브룬너에 있어서 정신적 증거, 즉 '영원한 성령의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도 직관적 인식과 상호 관련이 있다. 그는 직관을 신에 의해 야기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객관적 계시의 차용은 '신비로운 주님과 하나로서'(unio mystica cum christo), 그리스도와의 동형화 되어지는 것이다.23) 종교적 체험은 절대를 경험함으로써 성립되는데, 이러한 절대는 객관적이고 주관의 욕구들로부터 독립적이며 그 자체로써 타당한 그 어떤 것이다. 따라서 종교적 인식은 다음의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작용되어진다. 그것은 직관 혹은 정신적 증거와 객관적 계시이다.

 

그러나 종교적 직관의 내용이 어떻게 나타나고, 주관과 객관이 종교적 체험 속에서 동일시되고 있는지 하는 문제를 먼저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논점의 근본적인 동기는 직관에 대한 고찰이다. 종교적 영웅들의 신적 표상들도 실제로 그들의 직관의 작용을 통해서 표현된 객관적인 소여로서 설명될 수 있는 것들이다. 브룬너는 '초월적 세계'라는 상징으로 이러한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의 초월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주관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를 통해 종교적 체험 속에서 규정되는 것이다.24)

 

중재(Vermittlung)와 객관적인 계시의 수렴(Aneignung)은 두 가지 모두 브룬너에게 있어서 직관과 관련이 있는데, 객관적인 계시는 소멸되거나 효과가 상실되지 않는다. 선재 하는 종교적 인식들은 이러한 직관을 토대로 의미를 상실하고 전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종교적 전통들은 단지 제한적인 타당성을 지닐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종교적 인식의 최종적인 규범으로서 소여적인 것, 예컨데 교리가 아니라 정신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것은 사상이나 관념을 교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직관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내적 정관을 교시하기 때문이다.25) 그래서 브룬너는 종교적 근본 내용을 서술함에 있어 종교 인식으로의 첫 번째 길은 '직관'이라고 확정한다.

 



종교적 인식을 위한 직관


각각의 인식론은 먼저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 즉 인간이 어떻게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 스콜라철학은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어지는 질료(Material)는 인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공되어진다."7)


여기서 인식의 실질적인 도구는 이해(Verstand)이고 감각들(Sinne)은 인식을 위한 매개물이 된다. 감각들은 인식되어 질 수 있는 질료를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성은 두 가지 면을 지니고 있다. 수동적인 면과 능동적인 면이 그것이다. 즉 사물에 대한 인식은 수동적 이해가 지각 개념들을 받아들이고 능동적 이해가 감각적인 질료로부터 비감각적인 개념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생겨난다.

 

이 개념들은 사물의 실제적인 존재를 내포한다. 능동적 이해는 논리적인 개념들을 서로 관련 지움으로써 판단을 형성시키는데, 이렇게 관련된 것들은 지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판단들은 하나의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 혹은, 더 많은 대상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나타낸다.8) 브룬너는, 검증되지 않은 관찰들을 명확하고 공리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그 위에 세계관을 세우는 스콜라 철학을 비판한다.9)

 

헤겔(Hegel)은 스콜라철학적인 성향을 계속 나타냈다. 그는 이성의 산물들 즉, 개념들을 인식획득의 기본 토대로 삼았다.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이해의 반복과 그로 인한 개념들의 논리를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므로, 헤겔에 있어서 이성은 실질적인 인식요인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주지주의는 신을 사색과 논리, 인과 법칙의 적용을 통해서 인식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적인 법칙들과 비슷한 신을 하나의 불변적인 실재로서 서술했다. 반대로 헤겔은 의식, 자기의식, 이성의 단계를 거쳐서 정신, 종교, 절대지식에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생성의 신을 선언했다. 헤겔은 의식되는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관련지어, 신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전개한다.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는 그 자체로부터 대립물 즉 유한적이고 상대적인 존재인 세계를 상정한다.

 

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는 동시에 세계를 대립물로 부정하고 또는 정신화시키며, 지양된 대립물 속에서 스스로를 정신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자기관찰은 절대 존재의 자의식으로 창출되어진다.10) 신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전개시키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는 철학은 절대적 표상, 즉 신의 표상의 인식에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것으로 규정되어져 있다. 이러한 절대적 인식은 신에 대해 인식하게 되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속에서 스스로 신을 인식하는 것이 된다.11)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의 신 개념이 형성되어지는데, 이 개념은 그 자체로부터 전개되고 발전되어 영원히 즉자적럽育愍岵막?존재하는 이념이 된다. 이러한 이념은 절대적 정신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결국 종교적 인식을 위한 출발점을 형성한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즉자적럽育愍岵막?존재하는 이념의 근원이나 특별히 종교적 인간의 직관적인 기본 행위를 통한 제한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확대하지 않았다. 그는 신인식의 존재론적 차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브룬너는 헤겔의 이러한 종교 이해를 비판한다.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 규범들은 그것들의 무제약성의 요구와 함께 본질적인 요소를 이룬다. 도덕적 규범들의 합법칙성은 경험을 통로로 종교적인 인식을 가능케 한다. "칸트에게 있어서 이성적인 것, 즉 규범적 타당성에 대한 결정적인 관심이 종교에 모아지는데 그것이 곧 실천이성이다. 과학적인 원칙들에 맞는 타당성의 대체물을 그는 도덕적인 규범 속에서 발견한다."12)

 

칸트가 종교와 과학을 분리시키는 반면에 쉴라이어마허는 종교와 윤리성을 구분한다. 쉴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종교적 인식의 원천은 신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절대 의존성이다. 이러한 의식을 그는 본래적으로 '경건한 감정'이라고 명명했다. 종교의 대상은 신적 존재에 대한 절대 의존감정에 이끌리는 그 어떤 것이다.13) 쉴라이어마허에 있어 신에 대한 절대의존의 의식은 칸트에게 있어서 규범에 대한 무제약성의 요구의 경험을 수용하는 것이다. 쉴라이어마허는 칸트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칸트처럼 신을 감각적이고 합리적으로 인지 가능한 외부 세계의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신을 인간의 내면에서 찾고자 했다. 쉴라이어마허는 칸트의 인식론에 대한 비판적 결론을 그의 최초의 신학인 "종교 철학"에 적절히 적용했다.14)

 

"칸트가 철학의 나머지 영역에서 이루려던 것을 쉴라이어마허는 그의 종교철학에 관철시켰다. 칸트는 비판철학의 아버지이긴 하지만, 종교철학에서는 선 비판적 관념에 속박되어 있다. 쉴라이어마허는 비판적인 종교철학자이다."15)

 

이상의 근거로 보아, 브룬너가 칸트적 세계형질 이념이라는 이율배반 위에 자신의 종교관을 세운 것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양자의 사고 구조 속에 형식적인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브룬너와 칸트의 관계는 여전히 불명확한 관계로 남는 것 같다.16) 다만 다음과 같이 언급할 수는 있겠다. 즉 칸트가 그의 윤리학을 하나의 도덕법칙을 따르는 예지적 자아(Intelligibles Ich)의 자유 위에 두고 있는 반면, 브룬너는 전술한 이율배반 위에 그의 종교철학의 출발점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와 조화되지 않은 권위에, 주관이 종속되는 문제가 여전히 브룬너의 인식론의 과제로 남는다.

 

브룬너는, 쉴라이어마허가 종교를 본질적으로 경건한 감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환상주의적 경향 아래 파악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브룬너는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에 대한 내적 관찰의 가능성을 받아들임으로서 이러한 종교적 인식의 유약함을 극복해 보려고 한다. 이러한 내적 관찰을 브룬너는 베르그송과 칸트에 의존해서 '직관'(Intuition) 혹은 '내적 정관'(Innere Anschauung)으로 이해한다. 그는 그것이 인간의 감정과 사고, 그리고 의식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초월성(Transzendenz), 즉 신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이라고 보고 있다.17)

 

특별히 자의식에 대한 직관은 베르그송에게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바 있다. 베르그송에 있어서 직관은, 인식의 영역들이 통일되는 신비적인 차원의 특성들을 포함한다. 직관은 모든 지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그리고 개념적인 것들로부터 총괄된 형이상학적인 것에 도달하고자 한다. 원래 직관은 철학사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인식의 한계점을 경험하기 마련인데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러한 한계론을 뛰어 넘고 있다. 그것은 그가 과거, 철학의 적으로 규정된 바 있는 지성(Intellekt)으로 철학적 사고를 전개했기 때문이다.18)

 

브룬너는, 인간이 그의 정신적 인성을 자발적으로 나타내고자 할 때 스스로 종교적 세계와 그 진리에 이르는 통로를 열 수 있다고 힘주어 설명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인간을 규정하는 도덕규범 의식을 함께 고려할 때 가능하다.19) 이러한 개개의 직관적 관찰을 요구하는 종교적 세계는 개방적으로 나타난다. 직관은 바로 주관과 객관을 서로에게 향하게 한다. 직관의 도움을 통해 자유로운 정신적 인성은 주관으로서 의식되어지고,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와의 연관관계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종교적 세계와 도덕적 규범에 의해 규정된 인간성의 차이는 극복되어진다. 브룬너는 '내면으로부터의 초주관적인 통일'이라는 관념을 통해서 종교적 직관의 주관성과 객관성의 간격을 극복하고자 한다. 종교적 직관과 그것을 통한 인간의 신적 표상이 가능하다는 브룬너의 주장은 다른 많은 신들의 표상들도 관찰이 가능하다는 개연성을 열어두고 있다.

 


종교 인식의 개념: '영적인 세계'와 '초인적 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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