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개 요
Ⅰ. 바울 서신
Ⅱ-1. 바울 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생애와 활동
Ⅱ-2.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생애와 활동
Ⅲ. 바울의 연대기(Chronology)
Ⅳ. 바울 서신의 중심 주제
Ⅰ. 바울 서신
살전?후, 갈, 고전?후, 롬, 빌, 몬 ; 골, 엡; 딤전?후, 딛
옥중서신 목회서신
50년 봄 54년 54/55년 56년 │→ 후기 바울
고린도 에 베 소 고린도
(행 18:11) (행 19:9) (행 20:3)
후기 교회 상황
① 교회론의 변화(보편교회)
② 그리스도론의 변화(우주적 기독론)
③ 종말론의 변화(권면)
Ⅱ-1. 바울 서신에 나타난 생애와 활동
바울 이해의 전제
① 바울은 신학자이기 이전에 선교사, 목회자였다(선교?목회적 동기).
② 바울서신은 신약 성경이 되기 이전에 상황 서신이었다.
A. 바울의 생애
바울 서신은 상황 서신이었다. 즉 바울 서신 자체는 바울의 선교 활동의 한 부분이다. 바울 서신은 당시 상황과 관련되어 있어서 바울 활동을 재건하는 것은 단지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바울의 생애 이력과 선교 활동 과정은 온전하게 복원될 수 없다. 다만, 바울의 생애와 활동은 바울 서신 안에 산재(散在)되어 있는 바울 생애에 대한 진술에서 제한적으로 복원될 수 있다.
(갈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유대인에 속해 있었다.
(고후 11:22)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빌 3:5)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히브리인 = 온전한 의미에서의 유대인)
(롬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고후 11:22)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바울은 이스라엘인이었다.
(빌 3:5)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베냐민 지파, 난지 팔 일 만에 할례 받은 자, 바리새인)
(롬 11:1)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이스라엘인, 베냐민 지파,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
(갈 1:13-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갈 1:23)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고전 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유대교에서 흠 없는 생활)
(갈 1:13)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갈 1:23)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계명 성취에 있어 열성자. 기독교 교회를 핍박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바울은 특별한 사건을 통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갈 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빌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고전 9:1)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전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후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어떤 사건을 통해 자신의 생애에 의미가 부여되었으며 변화가 일어났다.
(고전 7:7-8)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고전 7:33) 장가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고전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바울은 독신이었다. 반면에 랍비들은 결혼하였다).
(살전 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고전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고전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생활비를 직접 벌었다. 이것은 그를 억누르는 어떤 압박과 관련되어 있다. 바울의 직업은 쉽게 알 수 없다. 다만, 사도행전 18장 3절에서만 그를 천막 만드는 사람으로 말한다.
(고후 11:23-28)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은 건강한 사람이었다(아주 바빴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고 육체에 있는 사탄의 사자, 가시; 바울은 자신을 발작하는 병이 있는 사람으로 알았다. 간질병이 아닌가? 최근의 의학 연구에 의하면 간질병이 아니라 내적인 우울증으로 보기도 한다. 즉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때때로 경험하는 기분 교체로 보기도 한다.
(갈 4:15)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바울은 눈병을 앓았을 것이다. 이것이 고린도후서 12장 7절의 육체의 가시와 관련되는가?
(고후 10: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바울이 몸으로 나타났을 때에 약했으며 말에 있어서 시원치 않았다. 빈약한 신체인가? 이 구절은 바울 적대자들의 비난과 관련되어 있다. 적은 몸집에 대머리이며 발이 굽고 건강하게 뵈며 찌푸리는 명상이지만 코가 높고 그러나 자애가 가득 찬 바울을 발견하였다(바울행전 3).
(몬 9-10)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바울은 노인이 되었다.)
B. 바울의 활동
바울은 자신의 활동을 갈라디아서 1장 11절-2장 10절에서 집중적으로 서술한다.
(갈 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회심 이후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
더 정확한 언급이 없다. 아라비아는 다메섹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막이 아니다. 다메섹에서 선교를 바울은 직접 말하지 않는다(행 9:19-22 참조).
(고후 11:32-33)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바울은 주전 64년부터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던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을 피해 광주리를 타고 탈출하였다.)
(갈 1:18-20) 그 후 삼 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바울은 그 3년 후 게바와 교제하기 위해(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와서 게바의 집에서 보름을 지냈으나 게바와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를 만나지 못했다.
(갈 1:21-24)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그 후는 예루살렘 방문 직후이다. 바울은 곧바로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다. 즉 곧바로 이방 기독교 지역인 안디옥(다소)으로 갔다. 이곳은 바울 당시 기독교 중심지였다. 23절에 의하면 바울은 선교 활동을 했다. 22-24절에 의하면 유대에 있는 기독교 교회들은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후에도 바울을 얼굴로 알지 못했다.
(갈 2:1-10) 십 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떠한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가하여 준 것이 없고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그 후 14년이 지나 바울은 다시 (두번째)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이때는 바나바와 이방인 기독교인인 디도와 함께 갔다. 여기서는 이방인 가운데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인정받는 것이 문제였다. 바울은 임의로 복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해서 전했다(2절). 그것은 바울 자신 밖에서 유래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지시하셨다(1:16). 하나님께서 바울의 생애에 개입하셨다(고전 15장; 행 13:1-3). 사도행전 13장 1-3절에 의하면 안디옥 교회가 제1차 선교 여행을 위해 계시에 의해 바울에게 안수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바울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라, 바울 스스로 계시에 의해 예루살렘에 왔다(2절).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인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인정)를 청하였다(9절). 또 유대(紐帶)를 위한 결정에 합의하였다(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를 생각할 것을 부탁, 10절).
바울의 두번째 예루살렘 방문 이유:
바울은 자신의 선교 사역이 헛일이 되지 않았는지 염려하였다. 자신의 사역을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기둥들(야고보, 게바, 요한)이 인정해야 한다(9절). 즉, 갈라디아서 2장 1-10절 단락에서는 전체(보편) 교회의 관심사가 문제이다(“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이 단락에서 바울의 전체 교회적인 관심이 기본 개념으로서 나타난다. 문제는 바울 자신이 주도적인 예루살렘 교회에 소속됨이 없이 이미 수년 동안 행했던 선교 활동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바울이 완전히 자유롭게 활동하던 (하나님께서 친히 임명하신) 자신의 사도직을 내세우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구원의 수단으로서 할례와 율법 준수를 거부한 이방인 선교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문제였다.
※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에 기술된 안디옥 사건: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함께 식사하던 중 예루살렘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을 보고 자리를 피함. 이때 바나바와 다른 유대인도 자리를 뜸.
C. 바울의 활동 장소
(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빌 4:15-16)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는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데살로니가에서 활동. 바울은 시간적으로 데살로니가에 앞서 빌립보에 있었다.
(살전 1:5-2:12)
(살전 2: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바울은 잠시 그 교회를 떠났다. 데살로니가 교회설립자 바울.
(살전 3:1-2)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바울은 아덴에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냈다.
(살전 3: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디모데의 보고에 의하면 교회는 좋은 상태에 있었다. 바울은 빨리 떠나야 했다(행 17:1-9 참조).
(고전 4:17)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전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고린도에 편지를 보내기 얼마 전에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냈다. 이때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러 있었다(고전 16: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고후 1:8-10)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아시아(아마도 에베소)에서 아주 어려웠던 위험에 처했다.
(고후 2:12-13)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고후 7: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고후 9:2)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냐로 가는 여행. 마게도냐에 있는 바울.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사이에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 언급된 고린도전?후서 사이의 소위 ‘중간 편지’(고린도3서)가 있었다.
(빌 1:7, 13, 17) 나의 매임
(몬 1, 9, 10, 23절) 갇힌 자
바울은 잡힌 몸이다(로마 또는 에베소).
로마서에 바울의 특정 관심이 분명하게 강조되었다(특히 1장과 15장 25-29절에서).
25절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7절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절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29절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줄을 아노라
15장 19절에 의하면 바울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현 유고 지역)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두루 편만하게 전하였다(채웠노라). 바울은 아마도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썼다. 그리고 바울은 서바나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다(15:23). 그러나 그전에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다. 헌금을 전하고 그 후 그는 로마로 갔다. 로마서는 바울의 선교 사역에서 유언(遺言)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편지였다.
모금 활동의 조사를 통해서도 바울과 그의 활동 연대기를 알 수 없다. 바울서신은 상황 서신이다. 초기의 기독교는 복음서에서 비로소 생애를 순서에 따라 서술하게 되었다(60년대 이후, 최초로 마가복음). 바울의 경우(50년대) 아직 이런 것은 없었다.
Ⅱ-2. 사도행전에 나타난 생애와 활동
사도행전(使徒行傳)에 나타난 바울의 모습, 생애와 활동은 어떤 것일까?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생애와 삶을 묘사한 일대기나 전기(傳記)가 아니다. 자칫 ‘사도행전’이란 명칭에서 그런 전기적인 오해를 하기 쉽다. ‘사도행전’에 해당하는 헬라어 제목은 ‘사도들의 활동들’(Prakseis apostol?n)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으로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도행적(使徒行蹟)’이란 명칭이 원래의 책제목에 적절하다.
우리는 사도들의 행적(활동)에 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 다른 사도들에 비해 비교적 많이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많은 부분(9-28장)이 바울의 생애와 활동에 관해 서술하기 때문이다. 이 본문 단락은 특히 바울의 청년기에서 노년에 로마에 체류할 때까지 바울의 선교 행적을 묘사한다. 사도향전에 나타난 바울의 활동을 살펴보자.
누가는 바울 행적의 스케치에서 먼저 기독교인 박해자로서의 바울상에서 출발한다.
(행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울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행 9: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해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
(행 9:13-14)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다메섹]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사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기독교인을 결박할 권세를 위임 받았다. 그러나 누가의 바울 묘사의 목적은 바울을 기독인의 박해자로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회심(9:1-30)을 묘사하는 것이다. 즉, 회심 기사 가운데 박해자 바울이 묘사되어 있다.
(행 9:10-19) 누가는 바울의 회심에 대해 언급하나 바울은 자신의 회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갈 1:11-18 참조). 여기서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즉, 바울서신은 실제로 보낸 상황서신이지 전기가 아니다.
(행 9:10-19)
20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절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23절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절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26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28절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절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절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다메섹 교회는 회심한 박해자 바울을 받아들였다. 회심 후 바울은 다메섹의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9:20)과 그리스도이심(9:22)을 증거하였다. 많은 유대인들이 이를 받아들이자 유대인들이 사울 살해를 공모하였다(9:23). 바울은 이 죽음의 위험을 피해 다메섹을 빠져나와(9:25) 예루살렘에 가서 바나바의 중재로 예수의 제자들과 만났다(9:26). 바울과 헬라파 유대인들의 변론으로 인하여 헬라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하자 바울은 가이사랴를 거쳐 고향인 다소로 갔다(행 9:30). 바울의 회심 기사에서 누가는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을 전체 교회의 조화 속에서 서술하였으나(행 9:27),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자신의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하였다(갈 1:17, 18-19).
(갈 1:17-24)
17절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절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일을 유할새
19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21절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절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23절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절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누가에 의해 해석된 교회 성장사 (초대 교회사 = 교회 성장사; 사도행전 = 성령 행전) (2:41) 이날에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2:42. 43-47 참조).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5천이나 되었더라.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19:20)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0:32) ···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 (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시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
(행 10장) 가이사랴 주둔 이달리야대 백부장 고넬료의 회심. 이 기사의 중심에 베드로가 있다.
(행 11:19-24)
19절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절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절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24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스데반의 순교로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에 흩어졌던 자들의 전도를 받은 유대인 중에서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몇 명이 안디옥에서 헬라인에게도 전도하였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었다.
(행 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가 다소로 가서 바울을 데리고 안디옥에 와서 안디옥 교회에서 1년 동안 무리를 가르쳤으며 이때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다.
(행 11:27-30)
27절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절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절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바울 편으로 예루살렘교회에 부조를 보냄 (글라우디오 흉년).
(행 12: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바나바와 바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옴 (바울의 제 2차 예루살렘 방문).
♣ 세 번의 선교여행:
제1차 선교여행(13:1-14:28)
예루살렘 사도회의(15:1-35)
제2차 선교여행(15:36-18:22)
제3차 선교여행(18:23-21:14)
제1차 선교여행(13-14장)
안디옥 교회가 선지자들과 교사들(바나바, 니게르 시므온, 구레네인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사울) 가운데 두 사람, 곧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고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행 13:4) 실루기아 항에서 배 타고 구브로로 감.
(행 13:5) 살라미(구브로 섬)에서 유대인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수종자: 마가 요한).
(행 13:6-12) 바보에 이름. 총독 서기오 바울이 바나바와 바울을 초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 이를 방해하던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 엘루마는 소경이 됨.
(행 13:13)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름. 마가 요한과 헤어짐(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감. 15:37-38 참조,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행 13:14)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감.
(행 13:14-52) 바울이 세 안식일 동안 안디옥 회당에서 설교. 유대인들 가운데 시기한 자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쫓아내어 이고니온으로 감(52절).
(행 14:1-5)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유대인과 헬라인(경건한)의 큰 무리(sebomenoi)에게 설교하여 무리가 두 패로 나누어짐. 반대파가 돌로 치려함.
(행 14:6-7) 루가오니아 지방의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에서 복음을 전함.
(행 14:8-18) 바울이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를 고침.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3:1-10, 특히 6절).
바나바는 쓰스(Zeus), 바울은 허메(Hermes)로 여겨짐.
(행 14:19) 안디옥과 이고니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불러내어 돌로 치고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림.
(행 14:20) 다음날 바울은 루스드라로 가서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함.
(행 14:24) 비시디아 지방 가운데로 지나 밤빌리아에서 전도.
(행 14:25) 앗달리아 항구로 가서 거기서 배타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되돌아옴.
(행 14:26-28) 두 사도가 안디옥의 한 곳, 선교 여행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였던 곳에서 선교 보고.
제 1?2차 선교 여행 사이에 있었던 예루살렘에서의 사도공회에 관한 보고(15:1-35).
(행 15:1) 문제: 안디옥에서 유대로부터 내려온 자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 받을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내 걸었다.
(행 15:2상) 이 일로 인해 그들 일행과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남.
(행 15:2하)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을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파송.
(행 15:6-21) 사도 회의. 베드로의 변론(7-11)와 야고보의 변론(13-21): 이방인 선교 인정, 이방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율법(우상 제물,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하라) 요구(20절).
(행 15:22-29) 결의된 합의 사항, 편지를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유다(바사바 라고 하는)와 실라 편으로 안디옥 교회에 보냄.
편지 내용
1. 안디옥, 수리아,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기독교인에게 문안(23절)
2. 문제점 지적(24절)
3. 특사로서 유다와 실라 파송(25절)
4. 결정 내용: 요긴한 것 외에 율법의 짐 제거. 다만 우상제물, 피, 목매어 죽인 것, 음행을 피하라(28-29상반절).
5. 결미 인사: 평안 기원(29하반절)
1?2차 선교 여행 사이에 있었던 예루살렘 사도 공회에 관한 보고(15:1-35)에서 바울에 관한 진술이 거의 없다. 바울의 중심적인 역할이 뒤로 물러나 있다. 사도 공회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권위자들 아래로 편입되었다.
제2차 선교 여행(15:36-18:22): 바울과 바나바가 각기 따로 선교
(행 15:36-41)
36절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37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절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40절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절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바울이 바나바에게 제 1차 선교 여행 기간 중 전도한 지역 방문 제의.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려 가려고 하고, 바울은 제 1차 선교 여행시 마가 요한이 밤빌리아에서 그들을 떠났던 이유를 들어(13:13), 실라를 데려 가려함.
이에 각자 선교하기로 결정. 바나바와 마가 요한은 구브로로, 바울과 실라는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따로 선교 여행을 떠났다.
(바울과 실라는 안디옥 교회 출신, 바나바와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 교회 출신)
이로써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예루살렘 사도공회 이후의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공동 협력 선교 활동을 강조한다.
(행 16:1-5)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러 디모데(부친은 헬라인, 모친은 믿는 유대인)를 만나 할례를 행함.
(행 16:6-10)성령이 아시아 전도를 막아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다니다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려할 때, 예수의 영이 이를 막아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가서 거기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봄.
(행 16:11-15)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섬을 지나 네압볼리로 해서 빌립보(마게도냐의 첫 성)에 도착, 거기서 두아디라 출신인 자주(紫紬) 장사 루디아(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인, sebomen?)의 집안이 세례를 받음.
(행 16:16-18) 바울이 빌립보에서 점(占)하는 귀신 들린 한 여종에게서 귀신을 좇아냄.
(행 16:19-40) 여종의 주인이 관원에 고발하여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힘. 옥문이 열리는 사건으로 인해 간수가 회심하고 세례 받음.
(행 17:1-9)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지나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서 세 안식일동안 성경을 강론. 이때 청중의 서로 다른 두 반응. 유대인의 시기를 받음.
(행 17:10-15) 바울과 그 일행(실라, 디모데)이 베뢰아에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
소동이 일어남.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두고 안내하는 형제를 따라 아덴으로 감.
(행 17:16-34) 바울이 아덴에서 철학자들(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과 토론한 후 아레오 바고(아덴 언덕에 있는 공회소)에서 연설. 아레오바고 관원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 라는 여인 등이 믿음.
(행 18:1-11)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로마에서 추방당한 유대인 기독교인)를 만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 이때 베뢰아로부터 실라와 디모데가 내려 옴.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sebomenos)인 디도 유스도의 집을 심방(7절). 회당장 그리스보가 회심하고(고전 1:14) 세례 받음. 1년 반을 고린도에 유(留)함(11절).
(행 18:12-17) 아가야 주 총독 갈리오 앞에 유대인이 송사를 요청. 바울이 유대인을 피함.
(행 18:18-22) 아굴라 부부와 함께 고린도를 떠나 외항인 겐그레아에서 배 타고 에베소에 이르러 에베소에 아굴라 부부를 두고 배 타고 가이사랴에 상륙. 예루살렘에 들렸다가 다시 안디옥으로 갔다.
제3차 선교 여행(18:23-21:14)(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19:21-21:14)
(행 18:23) 바울이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재 방문.
(행 18:24-28) 요한의 세례만 아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학자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활동.
(행 19:1-41) 에베소에서 바울의 활동.
(행 19:1-7)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바울로부터 세례받고 바울의 안수로 성령을 받음.
(행 19:8-12) 회당에서 석 달 동안 강론. 두란노 서원에서 두해 동안 강론. 병자를 고침(베드로의 치유 활동, 5:15-16).
(행 19:13-20) 마술하는 유대인이 시험적으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다가 벗은 몸으로 도망. 이로 인해 은 오만의 가치가 있는 마술 책을 불사름.
(행 19:21-23) 바울이 여행 계획(마게도냐 → 아가야 → 예루살렘 → 로마).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신은 아시아에 머뭄.
(행 19:24-41) 우상을 만드는 은장색 데메드리오에 의해 일어난 연극장에서의 유대인들의 회집. 바울과 함께 다니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소동을 일으킨 후 서기장의 중재로 모임을 자진 해산하게 됨.
(행 20:1-3) 소요 후 마게도냐로 건너감. 헬라 지역(고린도)에 석 달을 유함. 유대인의 공모로 수리아로 가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다시 돌아가려함.
(‘우리’-문체 서술, 16:1-17; 20:5-21:18; 27:1-28:16. 이는 저자 누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있다.)
(행 20:4-6) 빌립보에서 배 타고 드로아로 감(아시아까지의 동행인: 베뢰아인 소바더, 데살로니가인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더베인 가이오와 디모데, 아시아인 두기고와 드로비보).
(행 20:7-12) 드로아에서 유두고를 살림(베드로는 다비다를 살림, 9:36-42 참조).
(행 20:13-16) 앗소에서 배타고 미둘레네→ 기오→ 사모→ 밀레도로.
(행 20:17-38)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기 위해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 고별 설교(18-35절). 설교 중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는 환란예고. 에베소 교회 당부.
(행 21:1-6) 고스→ 로도→ 바다라→ 두로로.
(행 21:7-14) 두로→ 돌레마이→ 가이사랴의 전도자 빌립 집사 집에 유함. 유대의 선지자 아가보가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결박되리라는 예언함.
예루살렘에서(21:15-23:30) 그리고 가이사랴에서(23:31-26:32)
(행 21:15-26:32) 예루살렘에 도착(21:15f). 바울이 체포되고 다섯 차례에 걸쳐 심문을 받음. 가이사에 상소(26:32).
(행 21:17-26) 바울의 성전 결례(潔禮).
(행 21:27-39) 성전에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힘.
(행 21:40) 층대 위에서 유대인을 향하여 히브리 방언으로 바울이 연설함.
(행 22:1-21) 바울의 연설내용.
(행 22:17-21)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환상. 이것은 회심기사 중의 9장 23-30절(특히 29절)과 연결되지 않는다.
(22장)
17절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절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절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절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
21절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9장)
23절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절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26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28절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절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절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안으로 통합된다. 그래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다. 누가는 자신의 이전에 있었던 전승들을 참조하였다(롬 15: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예루살렘에서 복음 전파가 시작됨).
누가에 의하면 바울은 이방인에게만 파송된 것이 아니라 열방에게로 보냄을 받았다.
바울의 다섯 심문 장면(눅 22-23장과 행 22-25장 비교)
1. (행 22:22-29) 유대 군중들로 말미암아 천부장 루시아의 명으로 영문(군영 내)에서 심문.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주장함.
2. (행 22:30-23:10) 공회(산헤드린) 앞에서의 심문(공회 앞에 서신 예수, 눅 22:66-71; 게다가 공회 앞에선 베드로, 행 4:5-22 참조).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율법에 있어서 유대인으로 이해한다(바울은 일찍이 서원하여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라[18:18], 21:18-28 참조).
21장 18-28절에서 바울은 서원한 사람(나실인)의 결례(민 6장 참조)에 참여하였다. 즉, 바울은 자신을 바리새인으로 이해하였다.
(행 23:12-35) 유대인의 바울 살해 공모를 바울 생질이 천부장에게 알려 천부장이 벨릭스 총독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바울을 가이사랴로 이송함. 바울이 가이사랴의 헤롯 궁에 유함.
3. (행 24:1-23) 벨릭스 총독 앞에서의 심문(빌라도의 심문, 눅 23:1-5 참조).
바울이 종교적 문제(죽은 자의 부활)로 송사되었음을 밝힘. 여기서 바울은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었음을 말한다(24:14-15,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자유가 보장된 구류 생활을 함(24:27,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4. (행 24:24-25) 사적(私的)으로 벨릭스 총독의 심문을 받음.
바울은 당시 유대인들이 긍정적으로 수용 할 수 있었던 주제인,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관하여 말하였다.
(행 24:27) 벨릭스 총독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
5. (행 25:1-12) 베스도 총독 앞에 선 바울.
바울이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 대해 전적으로 무죄함을 진술(8절). 가이사에게 상소함(11절).
누가의 세 번째 바울 회심에 관한 보고(행 26장)
첫번째 회심보고(9:1-30): 그리스도인의 핍박자 사울의 다메섹 도상(途上)에서의 회심.
두 번째 회심보고(22:1-21): 영문으로 들어가는 층대 위에서 바울의 연설.
세 번째 회심보고(26:1-32): 바울은 조상들의 신앙을 인증하여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서 변호한다. 바울의 메시지는 모세나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바울은 구속사적인 근거를 든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 이외 다른 것을 행하지 않았다. 누가에 의하면 바울은 무죄하다. 바울은 그의 동족을 비난하지 않았다.
로마로 이송 (행 27-28장):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해로(海路)로 로마로 이송됨.
(행 27:1-13) 가이사랴→ 시돈(3절)→ 무라(5절)→ 살모네(7절)→ 라새아에 가까운 미항(8절).
(행 27:14-38) 광풍 유라굴라로 인하여 표류하게 .
(행 28:1-10) 멜리데(1절)에서 이적을 행함.
(행 28:11-16) 수라구사(12절)→ 레기온(13절)→ 보디올(13절)→ 압비오 저자(15절)→ 삼관(15절, 영빈관)
(행 28:16-31) 이태를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함.
바울은 모든 위험을 자신의 하나님과 함께 이겨 나갔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바울이 묘사된다. 누가가 바울의 생애와 활동의 특징으로 묘사하는 것은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된 하나님의 사자(전령)’라는 점이다.
누가의 사도행전에서 대부분의 사도의 경우 그 개인적인 모습은 묘사되지 않는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은 개인적으로 묘사되는데, 그 묘사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누가에 의하면, 베드로는 열 두 사도의 대표자이다. 그렇기는 하나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이 실제로 선교의 활동을 하며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한 유일한 사람이다. 바울은 단지 13-14장에서만 바나바와 함께 ‘사도’로 불림을 받는다(13:43; 14:1, 14). 누가에 의하면 바울은 누가가 사용하는 ‘사도’라는 용어의 의미에서 사도가 아니다. 누가에 따른 사도 직분의 조건(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 부활의 증인)은 1장 21-22절에 나타난다. 처음부터 예수의 제자로 있었던 자만이 사도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것은 바울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그런 한편, 사도는 예수 부활의 증인이어야 한다. 바울은 이런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된 자이다. 이것이 바로 누가의 바울상이었다. 누가에 의하면 바울은 예수 부활의 한 증인이었다(22:14-15,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행 1:8)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21) 사도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만이 될 수 있다.
(행 22:14-15) 아나니아가 바울이 증인으로 선택되었음을 말함.
(행 26:16-18) 환상 중에 나타난 예수께서 바울을 증인으로 선택하심을 바울이 말함. 증거하는 일에서 바울은 사도적인 직무를 다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보았던 것, 그리고 자신에게 보여진 것의 증인이요, 섬기는 자였다.
즉, 누가에 의하면 바울은 확대된 의미에서의 사도(부활의 증인으로서)이다. 바울은 세상의 법정 앞에서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선다.
Ⅲ. 바울의 연대기 (Chronology)
바울 서신이나 사도행전은 바울의 연대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의 연대기는 단지 추론을 통해서만 작성될 수 있다. 이것이 바울 연대기 재건의 어려움과 다양한 바울 연대기가 추측될 수 있는 이유이다.
바울의 연대기는 어떻게 작성될 수 있을까? 바울의 연대기 작성의 자료로는 바울서신과 사도행전, 일반 역사가의 사기(史記), 고고학적 발굴물, 신약성경 외경이 사용된다.
연대기 작성을 위한 방법론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바울서신이 연대기 복원에서 우선권을 갖는다.
2. 사도행전만이 바울 생애의 사건을 보고하고 있다면 사도행전을 참고한다.
3. 절대적 연대기의 출발점을 찾는다. 이를 위해 일반 역사서나 고고학적인 발굴물을 참조한다.
4. 상대적 연대기를 재건한다.
5. 정경에서 언급하지 않지만 외경에 언급된 보고들을 고려한다.
A. 절대적인 연대기 설정
절대적 연대기의 확정을 위해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행 13:7이하)의 연대나 벨릭스?베스도 총독의 이?취임(행 24:27)의 연대가 고려되기도 하지만, 바울 연대기 작성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개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 통치하(주후 41-54년)에 일어났던 로마에서의 유대인의 추방(행 18:2하)과 아가야 지방의 총독 갈리오(Lucius Gallio)의 재임 기간(주후 51-52년)이 절대적 연대기 작성에 도움을 준다. 사도행전 18장 1-2절에 의하면,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났는데 이는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연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고린도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들 부부를 제 2차 선교 여행 기간 중에 있던 바울이 만나게 되었다. 또 사도행전 18장 12-18절에 의하면, 고린도에서 갈리오 총독의 임기 말년에 바울이 그의 법정에 고소되었다.
1. 글라우디오 황제에 의해 공포된 로마로부터의 유대인 추방 칙령
역사가 수에톤(Sueton)의 ‘글라우디오의 생애’(Cl 25:4)의 보고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유대인들이 크레투스의 선동으로 소요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글라우디오]는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Claudius 25:4).
5세기의 기독교 역사가 오로시우스(Orosius)에 의하면 이 사건의 연대는 글라우디오 통치 제 9년, 곧 주후 49년이다.
2. 갈리오 비문(Gallio-Inschrift)
사도행전 18장 12절에 언급된 아가야 총독 갈리오 재임 기간은 갈리오 비문을 통해 상당히 정확하게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이 비문의 제작 시기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26번째 담화문이 공고된 때이며, 따라서 갈리오 총독의 재임 기간(1년)은 51년 봄에서 52년 봄 또는 51년 초여름에서 52년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또 로마로부터 추방당한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는 바울이 고린도에 오기 얼마 전에 이미 고린도에 와 있었다(행 18:2). 이렇게 본다면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한 것은 50년경이었다. 바울이 50년 초에 고린도에 도착했다는 것이 상대적인 바울 연대기를 작성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절대적인 연대기이다.
(행 18:1-2)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행 18:11-12)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B. 상대적인 연대기
1. 바울의 고린도 체류 이전 연대기
바울의 소아시아와 헬라 지방 선교여행(제 2차) 기간은 48년 말-51(52)년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사도공회(갈 2:1-11)는 48년 봄, 안디옥에서 일어난 바울과 게바와의 우발적인 충돌 사건(갈 2:12-14)의 시기는 48년 여름으로 본다.
사도공회 이전의 선교활동에 대해서는 갈라디아 1장 16절-2장 1절에 개괄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바울은 회심 후 아라비아에 있었으며(갈 1:17), 그 후 ‘3년 뒤’ 예루살렘을 방문하고(갈 1:18) 난 후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머물렀으며 ‘그 후 14년이 지나’(갈 2:1)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 사도공회(48년)에 참석하였다(갈 2:1-11). 이렇게 볼 때 바울이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서 체류했던 시기는 34/35-48년이며, 그의 회심 연대는 32/33년일 것이다. 예수의 사망 추정일이 30년 니산월 제 14일(4월 7일)이므로 예수의 십자가사건이후 바울의 회심 사이는 2-3년의 기간이 있었으며, 이 기간은 예루살렘 원시 기독교가 성장하여 박해를 받을 만한 사회적인 크기의 집단으로 등장하기에 충분하였다. 따라서 바울의 연대기와 예수의 연대기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2. 바울의 고린도 체류 이후 연대기
사도행전 18장 18-23절(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에 묘사되어 있는 고린도에서 안디옥으로 귀환하는 여행은 51년 여름에서 52년 초의 시기에 있었으며, 그 후 바울은 제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서 52년 여름부터 55년 봄까지 약 2년 9개월간을 체류하였다(행 19:8-10; 20:31).
(행 19:8-10)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20:1-3)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고린도)에 이르러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행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에베소 체류 후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다닌 모금 여행이 있었고, 바울은 56년 봄 고린도에 도착하여 거기서 3 개월간 머물렀다(행 20:3). 바울은 본래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곧바로 수리아로 계속 여행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것을 방해하여 그는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야만 했다.
사도행전 20장 6절(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에 의하면, 바울은 드로아에서 앗소를 거쳐 밀레도에 이르기 위해 고린도에서 빌립보로, 그러고 나서 드로아로 갔다. 바울은 56년 오순절에(행 20: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배를 타고 가이사랴로 가는 여행을 계속하였다(행 21: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그 이후의 연대기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사도행전 24장 27절(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에 기록된 총독 벨릭스를 대신한 베스도의 부임 연대이다. 사도행전 24장 10절(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에 의하면, 벨릭스는 이미 몇 년 동안 유대 총독으로 지냈으며 총독 이·취임시 바울은 이미 2년 동안 갇혀 있었다. 벨릭스의 부임 시기는 52/53년에 시작되었을 것이며(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Ⅱ, 247), 그의 이임연대는 58년으로 추정된다 (로마 황제 네로의 통치 시기, 54-68년). 네로는 54년 10월에 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으며 사도행전 24장 1절(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은 벨릭스 총독의 이임시기인 58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24장 1절에 언급된, 바울을 고소한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47-59년경에 재임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총독 베스도 앞에서 가이사에게 상소했기 때문에 (행 25:11-12,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58년 한 로마 백부장의 인솔 아래 잡힌 몸으로 로마로 이송되었다(행 27:1-28:16).
로마 여행은 58/59년 겨울에 있었으며, 바울은 59년 봄에 세상의 수도인 로마에 도착했다. 사도행전 28장 30-31절의 증거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에서 상당히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으며, 두 해 동안 방해 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의 기거하는 집에서 설교를 행할 수 있었다(행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바울의 사망 년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외경인 클레멘스전서로써 추측해보면 그는 네로의 기독교인 박해가 진행되는 동안 64년 로마에서 순교자로 죽었다(클레멘스전서 5:5-7).
초기 기독교의 사도적 교부인 클레멘스전서 5장 5-7절
질투와 싸움 때문에 바울은 싸움에서 인내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여섯 번 사슬에 묶였으며, 추방당했으며, 돌에 맞았으며, 동방과 서방에서 그는 자신의 믿음으로 진정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온 세상에 의를 가르쳤으며 서방 끝까지 가서 권세자들 앞에서 증거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세상을 떠나 거룩한 곳에 이르렀으며 가장 위대한 인내의 본이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을 고려해 볼 때, 바울 생애의 연대기를 다음과 같이 확정지을 수 있다.
補說. 바울 생애의 연대기표
바울의 출생 | 5-6년 |
예수의 죽음 | 30년 4월 7일 (니산월 제14일, 유월절) |
바울의 회심(행 9장) | 32/33년 *(2-3년) 바울의 박해 활동: 교회성장 기간 |
수리아와 길리기아에서의 체류(갈 1:21) | 34/35-48년 |
예루살렘 사도공회(갈 2:1-10) | 48년 봄 (동기: 이방선교에서 율법의 의미에 대한 異見) |
안디옥에서 게바와 우발적 충돌(갈 2:11-14) | 48년 여름 |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 칙령(행 18:2) | 49년(글라우디오 제 9년) |
바울의 고린도 도착 | 50년(1년 반 동안 고린도 체류) |
갈리오 총독의 고린도 재임 기간(행 18:12) | 51년 봄(여름)-52년 봄(여름) |
고린도에서 안디옥으로(행 18:18-23) | 51년 여름- 52년 초 |
약 3년간 에베소에 체류 | 52년 여름- 55년 봄 |
(제3차 선교 여행 기간 중) | (2년 9개월) |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모금 여행 | |
고린도에 마지막 체류(3개월간)[행 20:1-3] | 55년/ 56년 초(이 기간 중 로마서 기록) |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
56년 봄 (20:6) 56년 오순절에(20:16) 예루살렘에 도착을 위해 가이사랴로 가는 여행 |
가이사랴에서 2년 감금(행 24:10, 감금 중) | |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의 이?취임(행 24:27) | 58년(네로의 통치 기간 중, 54-68년) |
로마 여행 (베스도 총독 앞에서 가이사에게 호소/25:11) (행 27:1-28:16) | 58년 말-59년 초 |
로마 도착 | 59년 봄 |
로마에서 자유로운 선교 활동(2년간)(행 28:30) | 61년 초 |
바울의 죽음 (네로의 박해 기간 중, 로마에서 순교) [클레멘스전서 5:5-7] |
64년(?) |
Ⅳ. 바울서신의 중심 주제
1. 전승
가. 전승의 의미: 바울 이전의 신앙과의 연속성
나. 전승의 출처: 구약성경, 바울 이전 원시 기독교 전승
다. 전승의 판정기준: 전승 도입문, 용어적인 특성, 비(非) 바울적인 표현 등
라. 전승의 내용: 그리스도 신앙고백, 세례신앙고백, 윤리, 성만찬, 종말, 칭의
마. 전승의 해석: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 (다메섹 도상의 회심사건)
2. 복음(euanggelion)
가. 복음의 기원: 하나님의 복음: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11: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나. 복음의 내용: 그리스도(롬 1:3-4; 고전 9:12; 갈 1:7; 빌 1:27), 십자가의 도(고전 1:18).
(롬 1:3-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다. 복음의 전달자: “나(바울)의 복음”
(롬 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롬 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라. 복음의 특징:
1) 계시성: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 역동성: 하나님의 능력(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3) 선포성: 전파됨(고전 15: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4) 규범성: 다른 복음은 없다(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5) 약속성: 복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구체적인 실현이다(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즉, 약속은 복음의 원형이다.
6) 보편성: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유효하다(롬 1:16; 10:12; 갈 2:7).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3. 죄
가. 인간이해와 관련: 죄의 보편성(롬 1:18-3:20, 특히 3:10-12, 19)
(롬 3:10-12)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나. 칭의론의 전제: 핑계 댈 수 없는 인간(롬 1:18-3:20, 특히 3:19)
(롬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다. 권세로서 죄(hamartia): 왕 노릇하는 의인화된 권세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라. 죄의 삯은 사망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4. 그리스도
가. 예수에 대한 바울의 칭호
1) 그리스도(christos): 선포적 그리스도.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2) 사람(anthropos): 창조 중재자이시며 마지막 사람.
(고전 15:45, 47)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3) 주님(kyrios): 하나님에 의해 주님이 되심(롬 10:9); 올리우신 주님(고전 15:57)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4) 하나님의 아들: 선재(先在)하신 하나님의 아들(롬 1:2-3; 갈 4:4).
(롬 1:2-3)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나. 기독론적 주제
1) 성육신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2) 영이신 주님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3)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4) 그리스도의 선재(先在)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5) 십자가: 그리스도 안에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6) 유일한 구원의 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5. 하나님의 의
가. 선물(롬 10:3; 빌 3:9)로서의 하나님의 의과 권세로서의 하나님의 의(롬 1:16-17). 수동적인 의와 능동적인 의.
(롬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롬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나. 칭의와 성화: 성화는 칭의의 구체적인 적용이다.
1) 법정적인 칭의(iustitia forensis)
2) 효과적인 칭의(iustitia effectiva)
6. 이신칭의: 바울은 속죄사건을 칭의 사건과 관련시켰다.
가. 믿음과 칭의: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나. 화해(롬 5:1. 10):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7. 율법
가. 변증법적인 율법이해(롬 7:5-6과 롬 7:12, 14)
(롬 7:5-6)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 그리스도로부터 율법을 이해: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다.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8. 인간이해
가. 사람(anthropos)
① 하나님에 대항하는 사람: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② 지음 받은 사람: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③ 세상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
(롬 3:5-6)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나. 육체(sarks): 어떤 권세의 지배를 받는 인간
(롬 2:28-29)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다. 혼(psyche): 살아있는 인간
(고후 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라. 영(pneuma): 심령(갈 6:18; 빌 4:23)
(갈 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빌 4: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마. 마음(kardia): 생각하고 느끼는 인간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바. 이성(nous): 이해하고 인식하고 결단하는 인간
(롬 7:23-25)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사. 양심(syneidesis): 자신의 행동을 비평적으로 볼 수 있는 책임적인 인간이다.
(고후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롬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아. 몸(soma): 하나님이 나를 만나시는 자리이며(고전 6:19-20),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예배의 처소(롬 12:1)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합리적 예배니라
9. 교회(ekklesia)
가. 개 교회와 전체 교회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나. 그리스도의 몸(고전 12:4-27; 롬 12:4이하)
(고전 12:27-28)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종말론적 구원공동체(성도)
(고후 9:1)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고후 9: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라. 예배하는 공동체
(고전 14:4-5)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10. 성례
가. 세례: 그리스도의 몸에 일회적으로 참여 - 칭의와 결합(롬 6장)
(롬 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롬 6:6-11, 세례와 칭의의 결합)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7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나. 성찬: 그리스도의 몸에 반복적으로 참여(기억, 회상)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koinonia)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koinonia)이 아니냐
11. 종말
가. 옛 시대와 새시대의 공존
(살전 4:13-17, 자는 자들에 관하여)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재림 사상: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 살아남은 자도 그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를 영접. 이 단락에 현재와 미래가 공존(共存)해 있다.
바울은 구원의 현재가 주어져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을 열었다.
(고전 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후 5:10)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에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빌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고전 7:29-31)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하나님의 의가 현재에 이미 일어났으나, 최종적인 의는 아직 밖에 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갈 5:5)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기다리는 의의 소망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위의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구원의 현재와 구원의 미래는 서로 뒤섞여 있다. 바울은 유대교의 일반적인 기대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아들의 파송 안에서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그러나 바울은 오고 있는 세대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에 관해 말한다.
나. 선취적(先取的) 종말론
(고전 15:3-5, 부활의 증거)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이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다. 죄와 싸우는 삶:
(롬 6:13)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라. 소망의 기다림 속에 있는 삶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으로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롬 8:22-25) 피조물뿐 아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12. 성령
가. 새 언약의 특징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나. 성령의 열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다. 종말론적인 보증(고후 1:22)이요, 소망의 근거(롬 5:5)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롬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라.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롬 8:9; 갈 4:6):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갈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마. 양자(하나님의 자녀됨)의 영
(롬 8:15-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3. 윤리
가. 그리스도 안에 일어난 하나님의 자비하심(구원)이 윤리의 근거이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parakal?)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합리적 예배니라
나. 신적인 권고(paraklesis, 참조. paraenesis)(롬 12:1, 8)
(롬 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parakl?sis)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다. 세대교체에 따른 주권 교체(롬 6:12-14; 세례-칭의-성화가 한 단위)
(롬 6:12-14)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라. 성령으로 행함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마. 종말론적인 윤리(롬 13:11-14; 고전 7:29-31)
(롬 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고전 7:29-31)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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