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정리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의 개인들과 교회들에게 대부분의 교훈적인 편지를 쓰도록 위탁하신 사람은 사도바울이었다.
바울의 유대인으로서의 배경과 초대교회에 대한 열렬한 핍박, 다메섹 도상에서의 주님과의 개인적 만남 등의 여건이 어느 누구보다도 복음을 잘 이해하도록 해주었다. 13개 편지들-교회에 9개, 개인에4개-은 약 20년 간(AD48-68)에 걸쳐 3회의 선교여행 가운데 바울에 의해 쓰여졌다.
갈라디아서
바울의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서신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사도가 실제로 가르친 것과 하나님의 계시로 받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갈1:12) 많은 사람들은 이 서신을 “짧은 로마서”로 서술했다.실로 로마서는 갈라디아서를 확대한 것이라 말할수 있다. 교회지도자들은 갈라디아서를 높이 평가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고,신앙지도의 원천이 되었다.종교개혁시대의 개혁자들에게 갈라디아서는 다른 어느책보다도 성경적 진리의 자유와 부흥을 위한 더 위대한 선언서가 되었다.이 서신은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서신이었다.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힘과 자기의 개혁사업을 위한 무기고를 발견했다. 갈라디아서는 자체속에 지니고 있는 지극히 고차원적인 교리적 내용과 변증적 상격과 또한 시적 아름다움의 결여 때문에 항상 교회사의 몇몇 시대에 잘 알려지거나 열렬하게 총애를 받아오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의 그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고 초대교회가 그 속에 나타난 특수성을 알게 되었다.
수신자
옥중 서신인 에베소서를 제외하고는 본서가 특별히 교회의 한 집단을 대상으로한 유일한 바울 서신이다.
기록된 시기와 장소
갈라디아서의 저작시기는 수신지에 의해서 결정될수 있다.
(1) 북부 갈라디아설에 따른 저작연대
북부 갈라디아설의 입장에서는 이 서신이 매우 늦은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맨 먼저 제안된 저작 연대는 에베소 전도 사역 초기이다.
주로 갈1:6의 타게오스라는 단어에 의해 갈라디아서가 바울이 방문한 직후에 신속하게 씌어졌다는 것이다.
(2) 남부 갈라디아설에 따른 저작연대
남부 갈라디아설은 이 서신이 일찍 기록되었다는 것으로 본다. 남부 갈라디아설은 갈4:13에 나오는 두차례의 갈라디아 빙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두가지의 저작설이 생긴다.
(3) 예루살렘 방문
사도행전이나 갈라디아서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또 두 경우 모두 그들은 강한 저항을 극복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같은 유사점들은 남부 갈라디아서를 지지하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도전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들의 항의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북부 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행15장과 갈2장의 내용을 같은 내용으로 볼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해 분명한 의의가 있다. 그것은 갈2:1절의 “다시”라는 말에 몇가지 의문점이 있고,더구나 갈2장과 행15장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한층 더 난점은 베드로와 바울간의 논쟁이다. 그래서 결국 선택할수 있는 대안은 갈2장과 행15장은 동일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사역을 한지 1년쯤 되었을때 유대에 있는 교회의 상황을 듣고, 교회는 교회를 돕기위해 구제헌금을 가지고,예루살렘으로 가도록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문제를 결정했다.
② 디도가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있었을때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제에 관한 문제가 아주 중요한 문제로 등장했다.
③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바울을 무할례자들의 사도로 보았다 그러나 바울에게 가난한 자들을 구제할 임무를 부여해 주었다.
④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함께 교제할 것을 권면하였다.
⑤ 베드로의 외식 사건 직후에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에게 전도사역을 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⑥ 바울과 바나바의 지도를 받는 안디옥 교회는 이와같은 중대한 문제를 논의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익명의 여러 사람들을 예루살렘에 대표자로 보냈다. 그래서 그 결정을 위한 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본서가 기록 되었다고 볼수 있는 장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는데 첫째는 사도행전18:1-7절의 시기 다시 말해서 데살로니가 전서가 기록되기전후에 고린도에서, 둘째는 사도행전18:22절의 시기, 즉 안디옥에서, 세째는 행19장의 시기에 에베소에서 혹은 네째로 행20:1-3의 시기에 마게도냐나 아가야에서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바울이 에베소에 오랬동안 머무른 것을 참작해 볼때 본서는 에베서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주제 및 특징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구원의 방법으로서의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와 은혜에 의한 구원을 뜻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
사도의 가장 큰 염려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유일하고 참된 복음을 붙잡히는 일을 경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음을 분명히 알게 한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모른다. 그 복음의 진수는 “사람이 의롭게 함을 얻는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요,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맘미암을줄 아노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의 대 주제는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의 복음을 그 훼방자에 대항하여,옹호하는 것이다.
2. 역사적인 배경
A.D 50년을 전후한 약 10여년간의 초기 교회는 가끔 교리적인 큰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복음이 주로 유대인에 의하여 유대인에게 전파되었을때는 교회가 평탄하게 발전 하였다.
갈라디아서는 소 아시아의 한 지역에서 있었던 이러한 형태의 갈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인 바울은 비유대사회에서 복음을 전했을때 유대 율법에 합당한가 하는 문제들을 일부러 제시하지 않았다.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두번에 걸친 설교를 했는데 그때마다 그렇게 했다. 사도바울은 이 지역에서 오직 복음만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들은 복음을 잘 받아드렸다.
3. 저술목적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파급된 유대주의 선동가들의 해독을 제거하고, 나아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재강조함으로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순전한 신앙을 되찾기 원하였다. 바울은 이 기회에 자신을 비난하며, 대적하는 자들과 맞서서 그 자신이 그리스도의 참된 사도이며,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의 진정한 복음임을 천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계기와 목적 속에서 본 서신을 저술하게 되었다.
데살로니가전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데살로니가 전서가 바울이 기록한 서신이라고 하는 확실성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인정되고 있다.
첫째, 본 서신은 바울에 의하여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다른 서신들보다 교리적 성격을 훨씬 결여하고 있다. 본 서신은 교리상의 내용에서 볼때 오히려 무의미하다.
둘째로, 본 서신은 율법의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하는 생각을 공격치 않는다.
세째로, 데살로니가의 새 신자들이 불과 몇개월 이내의 기간에 살전1:7,8 및 4:10에 묘사되어 있는 바와같이 내외적으로 그토록 선한 영향을 끼칠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네째로 유대인들에 관해서 살전2:14-16절에서 쓰고 있는 “격렬한 말”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 나의 형제로 말미암아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바라”라는 진정을 토로한 기자에 의해서는 사용될수 없었을 것이다.
다섯째로,본 서신은 너무나 바울적 성격을 띠고 있다. 본 서신에는 틀림없이 바울이 기록한 서신들에 나오는 귀절들과 닮은 귀절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이는 분명히 위조자의 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서신이 바울의 저자임을 명백히 알수 있다.외적인 증거로서는 바울의 전집을 수집한 마르키온의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다.
2) 수신자
데살로니가가 수신처라는 전통적인 학설은 거의 확실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여기에는 더이상의 반론이 없다. 데살로니가는 카산더가 창설한 도시인데 명칭은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자매인 카산더의 아내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살로니카라 부르고 있다. 이 도시에는 마케도냐 지방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요,그 지역의 수도이기도 한다. 데살로니가는 항구도시이며,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이며,바울의 선교전략상 이상적인 도시였다.
3) 저작연대 및 장소
본 서신의 저작 연대는 바울이 고린도에 체류하였던 기간과 일치하기 때문에 상당히 정확하게 측정할수 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때 끌려갔던 갈리오 법정과 관계있는 갈리오에 있는 내용이 델피근처에서 발견된 한 비문에 소개된 바가 있다. 이 비문에는 갈리오가 A.D 51-53년 어간에 1,2년정도 총독으로 있었음이 나타나는데 바울은 본 서신을 기록하기 전에 고린도에 혼자 있다가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한뒤 본 서신을 기록하였다. 그래서 거의 이 시기를 A.D 51-52년정도이다.
4) 신학적 가치
데살로니가에 보낸 두개의 서신들은 우리가 바울의 신학적 개관을 이해 하는데 크게 이바지 한다.
데살로니가전후서가 신학적으로 최대의 공헌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 두 서신들에는 종말론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이 종말론을 요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데살로니가전후에서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종말에 관한 여러가지 용어들과 주제들을 조사하는 일이다. “강림하심” 혹은“나타나심”은 가장 빈번히 사용되어 있는 용어들이다.
2. 역사적인 배경
1)데살로니가 시의 역사
이 도시는 살로니가만의 윗 부분에 위치한 온천 지대로서 빌립보 성을 건설한 마케도냐의 왕 빌립2세의 양자인 카산더에 의해 B.C 315년에 건축되었다. 또한 이 도시의 이름은 카산더의 부인이며,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누이인 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그후 로마가 마게도냐를 지배했을때 이 도시는 로마의 네 행정구역중 한 지방의 수도가 되었으나 B.C 146년에는 마게도냐 전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2) 데살로니가 교회
① 데살로니가 교회의 설립 경위
마게도냐의 첫성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증거하였다.(행17:1) 이때 바울은 3주일 동안 회당에서 가르쳤는데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무른 기간은 3주간이 훨씬 넘은것 같다.
②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
바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지만 이러한 외부의 압력을 데살로니가 교회는 잘 견디고 있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문제가 되는 것은 내부에서 일어난 잘못된 종말관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생활이 문란해진 점이었다. 그들은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여 일도 하지 않고 세상에서 해야 할 육신의 일을 등한시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전에 죽은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염려하여 신앙생활에 많은 혼란을 빚고 있었다.
3. 저술 목적
바울이 본 서신을 쓰도록 자극했을뿐 아니라 그 내용을 결정한 것은 디모데를 통해 전해들은 특별한 소식이었음이 분명하다. 먼저 바울은 교회의 성정에 만족을 표시하였으며, 서신전체에서 그의 기쁨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비겁하며, 자기유익만을 도모하는 자라는 유대인 반대자들의 비난에 대해 답변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2:1-12). 그는 유대인의 반대와 핍박에 직면하여서도 인내할 것을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로 새롭게 개종한 사람들을 다시 옛날의 기준으로 되돌리려는 이교도들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보화기 위해서 기독교의 도덕이 이교의 것보다 우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재림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의 보고에 대한 응답으로서 세가지의 주요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서신을 기록하였다. 첫째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만족을 표하기 위해서 였으며, 둘째는 바울 자신과 그의 동역자들에 대해서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대항하여 강력하게 본을 세우기 위해서이며, 세째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서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거룩함을 계속 구함에 따라 그들이 이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강력히 행한바 있는 행위들을 증진시킬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데살로니가후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데살로니가 후서가 사도바울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은 의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전적으로나, 혹은 부분적으로 데살로니가 후서가 바울이 기록한 서신임을 부정하는 주장들은 개개주장에 따라 상이하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2)연대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정확한 것이라고 믿는다면,데살로니가후서는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러 있을때 씌여졌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그 이후에 다시 만났는지의 여부가 알려져 있기 않기 때문이다. 바울의 상황은 대체적으로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을때의 상황과 동일하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데살로니가후서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씌어졌음이 틀림없다.왜냐하면, 데살로니가 전서속의 자서전적 부분을 볼때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는것과 그 편지 자체가 일치 한다는데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첫째로 본 서신에는 앞서 써 보낸 편지를 확실히 지적하는 구절이 있다(2:15)
둘째로 살전4:1-12 ; 5:12-28에는 몇개의 명령이 있는데 본 서신에서는 그 명령들중 일부가 더욱 강하게 표현 되어 있으며, 불순종하는 자들을 어떻게 대할것인지에 대한 명백한 지시가 있다.
세째는 살전1:6 ; 2:13절에서는 데살로니가 인들이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음을 암시하고 있으며,본 서신1:3절에서는 그들의 신앙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바울이 감사의 표시를 하고 있다.
3) 저작 장소와 수신인
데살로니가 전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이 두번째 서신역시 고린도에서 썼다. 우리가 아는 한 그 후에는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있지 얺았다. 베뢰아와 빌립보 교회가 이 서신의 수신처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유대인들이 바울과 그 동역자들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데살로니가후서에 구약의 인용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베뢰아가 수신처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타당성 있는 주장으로 생각된다.빌립보가 수신처라는 이론은 폴리갑의 인용문에 의해 뒷받침을 받는데 이는 폴리갑이 빌립보를 데살로니가후서의 여러 귀절들의 수신처로 지명한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4) 신학적 가치
데살로니가전서의 신학적 가치와 동일하다.
2. 배경
데살로니가의 회심자들에 대한 바울의 관심은 첫번째 서신을 보냄으로서 끝난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역은 그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자들을 계속적으로 훈련 시키는 일이었다.
3. 저술목적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온 순서가 정확하다고 가정 한다면 데살로니가 전서는 게으름의 문제를 다루는데에 바울이 기대한 만큼 효과적이지 않았으며,재림에 대한 새로운 오해들이 발생하였다고 결론 내릴수 있을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들은 주의 날이 이미 지나갔다는 가짜 바울 서신을 받았으며,그러한 인상을 시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경로를 통해 잘못된 가르침이 바울의 이름과 연관 되었고 바울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데살로니가 후서를 썼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고린도전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고린도전서 속에 나타나 있는 자료가 바울에게서 온 자료이건 아니건 간에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저자라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되어 왔다. 더욱이 본서는 고등비평학자들에게도 가장 논란이 적은 책중의 하나로 인정받을 만큼 확실한 정경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볼때 바울 저작설에 대해서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먼저 내적 증거로는 본서의 내용가운데 바울이 저자라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1:1-3,12-17; 3:4,6,22; 16:21) 그리고 본 서신의 문체와 언어,사상등이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일치한다. 또한 고린도 교회가 본 서신을 바울의 편지로 받아들여 본존해 온 사실도 바울 저작설에 대한 강한 입증이 된다. 그리고 본서에 언급된 사건들과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고린도 전도 여행기가 일치한다.
2) 수신자
사도바울은 본 서신의 서두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있기를 원하노라”(1:1-3)는 인사말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인사말을 볼때 본서의 수신자는 바울이 손수 개척했던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주축으로 하여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 들였던 모든 성도들임을 알수 있다.
3) 기록연대 및 장소
우리는 이 서신의 기록연대를 이 서신의 내용과 관련하여 추정할수 있다. 이 서신은 바울이 오랫동안 에베소에 체류하던 마지막 무렵에 에베소에서 기록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마게도냐를 방문할 예정이며,그 후에 고린도에 갈 계획이지만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무를 것이라고 고린도교회에 말하고 있다(16:5-8) 이 점과 관련하여 행19:20; 20:1,2의 언급과 일치하는 16:19절을 보면 이 서신은 A.D56년 곧 바울이 고린도를 처음 방문한지 5년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 증거를 보면,먼저 바울 자신이 이 편지를 에베소에서 썼다고 말하고 있다.(고전16:8,9,19) 둘째로 바울은 A.D51년 가을에 고린도를 처음 떠난후 몇년동안에 걸쳐서 이 편지를 썼다.
4) 신학적의의 및 가치
몇가지 점에 있어서 바울과 고린도교회는 매우 특별한 관계를 띠고 있다. 그는 이 교회를 세웠으며, 동시에 이 교회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계속 유지 하였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을 근심하게 했었다. 바울은 이교회를 매우 지혜롭게 처리해야 했으며, 따라서 바울은 이일을 위하여 오래 참고 견뎌야 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는 때때로 바울에게 깊은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 교회가 날로 확장되며, 주위에 영향력을 미치기를 소망하였다. 따라서 이 교회를 향한 그의 사랑은 특별히 강했다. 그래서 이 서신은 그의 개인적인 성품을 잘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이 서신의 특별한 관심은 분명하게 이교와 투쟁하는 기독교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방사회속에 설립된 교회의 실천적인 문제들과 기독교 사회속에 세워진 교회의 실천적인 문제들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고린도전후서응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 역사적 배경
1) 일반 역사적 자료 및 고고학적 자료를 통한 배경
고린도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면서 먼저 일반적인 역사적 자료를 통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것 같다. 먼저 고대의 고린도시는 북동쪽의 아티카와 남쪽의 헬라땅 펠로폰네소스 사이에 있는 지협에 위치해 있었다. 고린도시를 두고 동쪽으로 8Km정도 떨러져 에게해가 있으며,서쪽으로는 이오니아해가 있다. 고린도의 동편항구 겐그레아는 살로니카 만에 접해 있었고 서편은 고린도 만에 접한 레게온 항구가 있었다.
고린도는 이처럼 바다가 인접해 있었고, 북동쪽으로 72Km밖에 떨러지지 않는 가까운 지점에 아덴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전략적인 상업중심지와 군사 요충지로서의 역활을 담당했다. 고린도 시는 아프로디테 신전을 모시고 있는 높이 540m나 되는 높은 암석 요새인 아크로 고린도의 북쪽 가파른 경사지 아래 위치해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고린도는 소아시아,수리아 베니게,애굽에서, 온 배들을 비롯하여,이달리야,시실리,그리고 서버나에서 온 배까지도 드나 들었다. 고린도는 “바다의 교량”이라고 불리우기도 했고,또한 “펜로폰네스의 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고린도를 부유하고,모든 것이 풍부한 도시로 생각했었다.
2) 신약시대의 고린도
신약시대에 고린도는 아가야 라는 로마행정구역의 수도였으며,그 지역 총독의 거주지였다. 사실상 바울 시대에 고린도는 그리이스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이 도시는 B.C146년 뭄비우스 집정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소수의 신전들과 기둥들만이 남았다. 그때오 부터 1세기가 지난후에 항구와 군사기지로서 이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쥴이어스 시이져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이탈리아인들을 거주하게 하였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자유민 이었다. 이 도시는 급속히 성장하였다.
3) 고린도교회의 설립경위 및 상황
고린도 교회의 설립겨우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고린도인들이 처음으로 복음을 대하게 된 시기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도중인 A.D50년 경이다. 그 당시 아덴으로 부터 이곳으로 왔던 바울은 처음에는 타락하고,부패한 이 도시의 죄악상을 목격하고,심히 두려워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박히신것을 전파하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결심후에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라는 훌륭한 동역자를 만나게 되었으며, 얼마 안되어 마게도냐로 파견 되었던 디모데와 실라가 돌아옴으로서 본격적으로 고린도의 복음 사역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규례대로 안식일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을 대상으로 성경을 강론 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는데 유대인들로부터 격렬한 반대를 받아 급기야는 이방인에게로 돌아가리라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바울은 회당 옆에 있는 “디도 유스도”라는 이방인의 집으로 옮겨 회당장 그리스보를 비롯해 많은 고린된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3. 저술 목적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은 1:11과 16:17절을 통해 나타나는 다음 두가지 사실에 있다.
첫째로,바울은 글로에의 집 사람들의 보고를 통해서 제기된 고린도 교회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주고자 본서를 기록하였다. 그 문제들이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바울의 사역에 대한 오해(1-4장),근친상간과 간음죄를 비롯해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들(5장),법정에서 다른 성도들을 송사하는 비 그리스도적인 행위(6장)등이다.
둘째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대표자들에게서 온 편지(7:1)를 받고 거기에 제기되어 있는 몇가지 질문에 답변을 주고자 본서를 기록하였다. 그 질문 사항들은 혼인에 관한 문제(7장),우상의 제물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함으로서 생기는 방종한 행위에 관한 문제(8-10장),공공 기도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일,무질서한 만찬, 성령의 은사의 활용등과 같은 예배에 관련된 여러가지 무질서한 행위들에 관한 문제,(11-14장),그리스도의 부활 및 육체의 부활에 대해 그릇되게 이해하는 문제(15장) 등이다.
고린도후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및 수신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라는 견해가 정설로 되어 있다.19세기 독일의 자유주의 학파의 기수로서 13권의 바울서신중 무려 9권을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튀빙겐 학파의 창시자인 바우르 조차도 본서를 고린도전서, 갈라디아서,ㄹㅎ마서와 함께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했다. 본 서신이 바울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알려주는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를 살펴보기로 하자.
저 내적 증거로는 본서의 내용에도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이 바울이라고 두번 언급되어 있다(1:1; 10:1) 그리고 외적증거를 든다면,폴리갑, 이레니우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그리고 터툴리안과 같은 초대교회 교부들은 본서를 바울의 서신으로 인용했다. 또한 본 서신은 마르시온의 아포스톨리콘과 무라토리 단편에도 바울의 서신으로 수록되어 있다.
2) 기록연대 및 장소
본 서신의 기록연대는 고린도전서의 기록연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여러가지 자료를 통하여 잠정적으로 결론에 도달할수 밖에 없다.
첫째로,고린도 전서는 봄, 아마도 유월전 직전에 씌어져 고린도 교회로 보내졌을 것이다.(고전5:7-8, 15:20절 참고)
둘째로 고린도후서는 아마 가을에 씌어졌을 것이다.(행20:6, 20:3, 고후12:14, 13:1을 참고하여 보면 암시한다)
세째로 고린도 전서와 후서는 18개월 이상의 시간적인 간격을 사이에 두고 씌어졌을 것이다. 물론 같은 해로 추정할수 있겠지만 고전16:6절에 언급되어 있는 겨울이 행20:3절에 암시되어 있는 겨울로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고후1:15,16절의 기록되어 있는 계획과 사실상 다를바 없는 잠정적인 계획을 말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후8:10; 9:2절의 지난해가 6개월의 시간적인 간격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3) 통일성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고린도후서의 통일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들은 본 서신이 고린도에 보낸 바울의 초기 편지들의 단편을 하나로 묶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그들이 근거로 삼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고린도후서2:14-7:4절의 말씀이다.
몇몇 학자들은 본서신의 6:14-7:1절을 제외한 2:14-7:4부분을 “준엄한 편지”이전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낸 독립된 편지라고 주장한다.
둘째는 고린도후서6:14-7:1절의 말씀이다.
이들이 문제를 삼는 이유는 이 귀절은 독립적인 단위를 형성하고 있으며,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대해 어떤 특별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귀절은 6:13로부터 7:2절에 이르는 사상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귀절은 자유의 사도인 바울과는 온당치 않게 바리세파 사람들의 배타주의를 밝혀 놓은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이귀절은 쿰란 종파의 신학과 매우 흡사한 점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바울의 사상 전개 방식이 현대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전혀 문제시 되지 않는다.
세째는 고후 8-9장이다.
어떤 학자들은 9장은 8장의 중복일뿐만 아니라,바울이 고린도가 아닌 아가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게 보낸 독립적인 서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주장은 증거가 없으며,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8,9장을 대한다면, 단순한 반복이 아님을 알수 있을 것이다.
네째는 고린도후서 10-13장의 말씀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고린도후서 10-13장이 고린도후서 1-9장보다 이전에 씌여졌다는 견해가 있으며, 고린도후서10-13장이 고린도후서 1-9장보다 이후에 씌여졌다는 견해가 있다. 이들의 주장은 공통적으로 본 서신10:1에서 어조가 전환되어 있다고 보고 본 서신이 1-9장과 10-13장의 독립된 부분이 결합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본서의 전후 문맥과 내용을 볼때 이러한 견해들에 대한 뚜렸한 증거를 찾을수 없다.
2. 역사적 배경
고린도시와 교회에 대한것들은 고리도 전서의 역사적 배경을 참고
바울의 에베소 전도에 대한 언급을 잠깐 하기로 하겠다. 바울의 전도여행중에서 에베소와 그 인근지역에서 보냈던 30개월 내외의 기간만큼 정확히 재구성하기 힘든 기간은 없을 것이다. 이 기간은 소란스러웠던 기간이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많이 가졌으며,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베풀고,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 시켰다. 바울은 복음전도에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이에 병행하여 그를 시기하는 적대자들도 많았다. 더메드리오 소동이 실제로 바울로 하여금 에베소를 떠나게 한 원인이 되었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의 반대에 직면했던 것은 말할것도 없고 아데미 신전의 신봉자들의 자신에 대한 적대감이 극도에 달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음에 틀림없다.
3. 저술목적
바울이 이 서신을 쓴 데에는 몇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첫째 바울은 디도에 의해 전달 되었고 보완되었던 자신의 준엄한 편지에 대해 고린도교회 성도드르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자신에게 대단한 위로와 기쁨이 되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둘째는 자신의 다음 방문전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예루 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그들의 약속된 연보를 완수하도록 권면하고 싶었다.
세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자신들을 시험해 봄으로서 곧 있을 바울의 방문을 준비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참사도와 거짓사도들을 구별하는 타당한 기준을 찾을수 있으며,바울도 훈련시켜야 할 수고를 덜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썼다는데 대해서는 큰 이론이 없다. 그러나 바울의 전체서신안에 나타난 교리적인 면을 따져보면,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썼다고는 할수 없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로마서는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후서와 함께 바울의 가르침에 중요하고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해주는 네 서신중의 하나이다. 바울과 로마서의 저자 갈라디아서의 저자,고린도전후서의 저자가 동일인물로 명백하게 인정되어 오기 때문에 어떤 신학적 목적을 위해서 이 서신들의 저자를 문제삼는 것은 유익하지 못하다.
2) 기록장소와 연대
바울의 활동과 관련된 연대는 거의 확실치 않다. 그러나 몇몇 확실한 연대들 가운데 하나는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려고 고린도에 온 A.D51년 여름이다.
로마서를 기록한 장소는 고린도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고린도의 동쪽 항구인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 일꾼 뵈뵈에게 본 서신 전달의 책임을 맡겼던 것으로 보아 분명하다. 고린도시의 재무관이었던 에라스도가 문안하는 내용이 언급된 것도 좋은 증거라 할수 있다. 딤후4:20절에 의하면,그는 고린도에 거주 하였으며,1929년에 발견된 고린도의 비문에도 그가 그 지역 공화당의 관장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3) 수신처
본 서신의 수신자는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자 라고 ”표현 하였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본 서신의 서두에 로마인들에게 라는 간단한 표제어가 붙어 있다. 본 서신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견해를 첨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몇몇 사본들에는 이 표제어가 생략되어 있는데 이것을 이유로 혹자는 본 서신을 특정한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회람 서신”으로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견해는 본 서신의 수신자가 로마교회의 성도들이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2. 역사적인 배경
로마교회의 상황을 보면, 로마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참으로 모호하다. 자연 발생적인지 아니면 사도에 의해 설립되었는지 확실한 증거가 없이 모호한 상태이다.
3. 저술목적
저술 목적을엄밀하게 규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울의 직접적 목적은 그의 서버나 선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1) 논쟁적 목적.
바우어와 그의 학파는 바울이 겨냥한 주된 목표는 유대적 기독교 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별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2) 타협적 목적.
로마의 교회가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그의 이방인에 대한 위임을 변호하고, 유대적 요소들과 이방적 요소들을조화시키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의 설명은 분명히 거리가 멀다.
3) 교리적 목적.
이는 전통적인 설명으로서 이 서신안에 바울의 교리적 입장이 충분히 진술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
4) 바울의 현재 경험을 요약하려는 목적.
사도는 그의 선교사역에서 전환점에 도달했다. 그의 관심은 예루살렘과 로마를 향했고, 그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확인할수 없었다.
5) 독자들의 직접적 필요를 충족시킬 목적.
바울은 로마의 교회에 대한 상당한 포괄적인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는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어떤 지적인 문제들을 알고 있는듯 하며,그것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 하였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의 기본 원리인 “의”의 원리를 다루었으며,그후에 이스라엘의 실패와 이스라엘이 보편적 기도교회와 갖는 관계를 논했다.
빌립보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빌립보서를 쓴 이는 사도바울 이었다. 확실히 바울은 디모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라고 서두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제1인칭 단수로 전체를 썼다는 사실은 양자 중 바울에게 주된 책임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밝혀진다. 빌립보서의 저자는 디모데가 아니라 바울이었다.
2) 기록연대 및 장소
바울은 감옥에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는 바울의 투옥사실을 확인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견해는 그 투옥장소가 로마라고 생각해 왔으나 이것은 두가지 다른 이론들인 가이사랴 이론과 에베소 이론에 도전을 받고 있다.
① 가이사랴설
이 가설은 다른 두이론들 보다 훨씬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으며, 오늘날 이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먼저, 바울의 투옥은 최근의 일로 보이며, 따라서 투옥 기간은 짧았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리고 3장에 있는 유대인 교사들에 대한 노박은 본 서신이 유대인 이방인의 갈등이 있던 기간에 쓰여졌으며, 그것은 빌립보서와 유사성을 가지는 바울의 초기 서신들과 같은 저작연대를 보여주는 증거로 보았다. 그리고, 빌립보서1:13에 언급된 시위대는 사도랭전23:25에서 언급된 것처럼 헤롯궁전으로 이해 될수 있을 것이다. 빌립보서는 바울의 투옥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음을 명백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규모의 교회를 가진 장소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② 에베소설
에베소에 투옥되었다고 가정할때 그곳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있는가? 최근에 많은 학자들이 그와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다.다른 옥중 서신들 보다도 빌립보서가 에베소에서 쓰여진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이제 그 이론의 근거는 선물문제와 방문들, 그리고 바울과 빌립보 사이의 잦는 서신 왕래, 문헌적인 연관, 유대인 논쟁의 문제, 재판의 문제, 시위대와 사이사의 가솔들, 그리고 누가의 위치의 문제를 근거로 삼고 있다.
③ 로마설
본 서신이 로마에서 쓰여진 것으로 A.D 59-61년사이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로서 가장 강력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 이론은 시위대(1:13)와 가이사 집(4:22)을 가장 자연스럽게 해석하는 것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 사도에 관한 재판은 진행중 이었던 것처럼 보이며, 그는 임박한 느낌으로 삶과 죽음을 결정할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던것 같다. 그런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용기 있게 복음을 전파한것은 상당한 규모의 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로마에서의 일로 쉽게 이해 될수 있으며, 이것은 가이사랴보다는 로마라는 이론에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개인적 형편은 로마 투옥의 상황과 쉽게 일치한다.
2. 역사적 배경
본 서신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빌립보 시의 역사와 빌립보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빌립보시의 역사
빌립보는 에게해에서 내륙으로 약1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작은 우물”이라는 뜻을 지닌 “크레니데스”였으며,이 부근에는 유명한 판게우스의 금광이 있다. 그런데 B.C 356년 마게도냐왕 필립 2세가 그곳의 많은 사람을 이주 시키고 도시를 확장,증축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본다. 따라서 이 도시의 이름을 빌립보라고 칭하였다. 그후 여러번의 정복 과정을 거쳐서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으며,B.C42년 삼두 정치의 동맹자와 로마 공화주의자 사이에 유명한 빌립보 전쟁이 터졌다. 여기서 삼두 정치 동맹자들이 승리하고 곧 이어 B.C 31년 악티움 전쟁에서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를 패퇴시켜 로마의 실권자가 되면서 그의 퇴역한 군인들을 빌립보로 이주 시켰다. 이때에 빌립보의 위치가 상승하여 빌립보 시민들에게는 로마 시민권이 주어졌으며,자연히 그들은 로마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릴수 있게 되었다.
② 빌립보 교회
빌립보교회는 A.D50년경 바울의 2차 전도여행중에 세워졌다. 사도바울은 드로아에 있을 당시 환상중에 마게도냐를 향해 계속 나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그 결과 빌립보는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유럽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유럽의 첫번째 교회인 빌립보 교회의 기원에 관한 설명은 사도랭전16장에 특별히 생생하게 기록 되어 있다.여기에는 빌립보에서 기독교의 능력이 나타난 세 경우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먼저 아시아로 부터 온 자주장사이며,신실한 개종자인 루디아 그녀는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잘된 자들의 대표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점하는 귀신 들린 여인, 바울에 의해 그 귀신이 쫒겨나게 된다. 이것은 어두움의 세력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시하고 있다. 또 하나는 지진에 의해 자신의 곤경을 알게 된 간수 그와 그의 전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그는 온 가족을 변화 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준다.
3. 저술 목적
첫째로 감옥에서 쓰고 있다는 것이다.감옥에서 편지를 쓰면서 디모데와 에베브로 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천거하고 있다.
둘째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빌립보교회가 보낸편지, 헌금을 잘 받았다는 영수증을 떼어 주고 있는거자.
세째는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몇가지 문제들을 이 편지에서 다루고 있다.에바브로디도에 의해서 바울에게 보고된 빌리보교회내의 분쟁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교회 전체가 하나됨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하나됨을 위해서 서로 겸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것을 강조하고 있다.
네째는 빌립보 교회는 어쩌면 고린도후서10-13장에서 우리가 볼수 있는 유대 기독교 열광주의자들에 의해서 복음의 이해에 혼돈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혼돈을 가져오는 문제들을 갖게 된것 같다. 마지막으로 빌립보 교회는 또 외부 세력의 계속되는 핍박아래 놓여 있었던것 같다.
바울의 목적은 먼저 글로서 그의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로 하는 영적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서, 빌립보 교인들의 생각과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기 위하여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몇가지를 이야기 한다면,디모데가 머지 않아 방문할 것을 통보하고, 가능하다면 가까운 장래에 그들을 방문하려는 사도 바울 자신의 의도등도 있었음을 볼수 있다.
제 8 장 골로새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및 수신자
골로새서는 바울의 서신임에 틀림이 없다. 바울의 저작을 부인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이 서신 스스로가 바울의 저작임을 보여주고 있으며,(골1:1;4:18) 다른 서신에서 처럼 바울적인 성격도 분며히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골로새서는 에베소서와 매우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로 골로새서는 그 저자가 거의 모두가 바울의 서신으로 인정하는 로마서, 고린도후서,갈라디아서에서 언급된 저자와 같은 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본 서신의 수신자는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다.(1:2)
2) 기록장소 및 시기
에베소서와 빌립보서처럼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도 옥중 서신에 속한다. 한 서신의 저작시기와 장소가 대체적으로 4서신들 모두의 시기와 장소를 결정한다.
골로새서,빌레몬서,에베소서는 두기고와 오네시모가 한번의 여행 길에서 각 목적지들에 전달한 서신들이다.(골4:7-9; 몬10-12절,엡6:21-22)
바울은 이 서신들을 쓸때 죄수의 몸으로 있었다.(골1:24; 4:3,10,18; 몬1:9,23) 오네시모 이외에도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서는 다른 인물들의 이름도 등장한다. 이들은 바울의 동역자들이다. 누가, 아리스다고,마가,에베브라,데마 그리고 디모데의 이름도 양 서신의 문안 인사에 바울의 이름과 함께 나온다. 바울은 어느정도 복음 전파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놓임받기를 원했다.
2. 역사적인 배경
골로새 시는 미엔더 강의 지류인 루커스강 계곡지대에 있었는데 이는 현 터어키의 서부 지대에 위치한 고대 브루기아의 남부지대였다.이 도시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가는 주요 무역로 상에 위치 하였다. B.C5세기에 헤로도투스는 골로새를 가리켜 군세기의 가장 위대한 도시라고 불렀고, 한세기후에 연대기 작가 크세노폰은 부와 그 크기에 있어 인구가 조밀한 도시라고 기술했다. 한편 골로새는 모직과 피륙공업의 상업중심지 였으므로 이 도시는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와서 골로새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되었다. 왜냐하면,라오디게아와 히에라 폴리스 같은 이웃도시들이 자라났고,점점 더 번창해 졌기 때문이다. 기독교 시대가 시작될때에,지리학자 스트라보는 골로새를 하나의 작은 도시로 기술했다. 현재 이 도시의 유적지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바울이 골로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을 당시에 이 도시의 주민은 브루기아 토착민과 희랍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그러나 역사가 요세푸스는 안티오쿠스 3세가 2세기 초에 메소포타미아와 바빌로니아로 부터 수천명의 유대인들을 이주시켜 루디아와 브루기아에 정착하여 살게 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골로새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적 요소가 서로 만나고 혼합된 범 세계적 도시였다.한가지 기억할 만한 중요한 사실은 골로새의 이단의 기원을 찾을수 있다는 것이다.
3. 저술 목적
바울이 첫번째로 로마 감옥에 갖혀 있는 동안 골로새의 목사 에바브라의 방문을 받았다.에바브라는 교회의 사정을 바울에게 이야기 했다. 그 보고 내용은 대체로 매우 좋은 것이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그들중에 명백히 있었다. 복음은 그 열매를 더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전의 엄청난 습관성 죄악으로 되돌아갈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더우기 이 순간에도 거짓선생들은 그에 대한 해결책이 자신에게 있다고 교회를 미혹하고있으나 그 해결은 아니고 오히려 사태는 악화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리가 신실한 일꾼의 순수한 가르침을 떠나서 횡행치 못하도록 편지를 써야만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쓴 이 서신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바울은 골로새인들에게 영혼을 파멸케 하는 이전의 악한 행실로 되돌아가지 말도록 경고하고,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해결책이란 것에 대하여 경고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2) 골로새인들의 관심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에게로 돌려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고 경배하기 위함이다.
3) 또한 그들의 신실한 사역자 에바브라에 대한 존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다.
4) 골로새인들에게 용서와 자비의 덕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5) 무엇보다도 골로새의 이단 즉 거짓 가르침의 위협은 시정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었으며,이것이 본서신의 진정한 저작 목적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두가지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관련된 교리적인 문제였고,다른 하나는 기독교의 삶과관련된 실천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본 서신에는 고도의 기독론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피조물 및 창조자체보다도 먼저 계신 분이시다. 사실상 만물은 그에 의하여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다.그는우주의 중심이시며,모든 정사와 권세 및 모든 세력들 다시 말해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것들을 다스리신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에베소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에베소서는 인간 최고의 신적 문장,기독교신앙의 정수를 뽑아 낸 본질, 기독교 신앙의 가장 권위 있고 완전한 개요,고상하고 중요한 교리로 가득찬 서신등으로 불리워 왔다.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모든 국적을 가진 전문적 학자들과 평신도들 그리고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인상을 주어왔다. 따라서 에베소서의 저작자가 주님에게서 풍부한 재능을 부여받은 바울이라는 초대교회의 보편적 증언을 부인하는 어떠한 이들에게는 무모한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저작에 대한 부인이 바우어에 의해 마구 성행하게 되었고,그러한 제의가 계속되어 왔다. 바울의 저작권에 대한 부인은 크게 둘로 나눌수 있다.
[1] 너무 많은 유사점을 가진다.
① 에베소서는 골로새서와 유사하다. 그래서 바울이 골로새서를 썼다면,에베소서를 쓸수 없었다는 것이다.
② 에베소서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너무도 유사점이 많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하면, 바울의 제자중,바울의 여러 서신이나 심지어 단어 ,어귀 등에 밝은 한 유능한 사람이 선생을 모방하여 에베소서를 썼다는 것이다.
③ 에베소서는 베드로 전서와 유사하다. 바울서신이 아닌 다른 신약의 문서들과 유사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④ 에베소서는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과 유사점을 가진다.
⑤ 에베소서는 요한의 저작과 유사점을 가진다.
⑥ 에베소서는 히브리서와 유사점을 가진다.
⑦ 에베소서는 야고보서와 유사점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2] 차이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① 단어의 차이이다.
에베소서가 너무나 많은 예외적 단어, 즉 새로운 단어들을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소위 바울 서신은 물론 신약성경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단어가 에베소서에서 발견되므로 바울의 저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② 의미의 차이를 들고 있다.
③ 문체의 차이를 들고 있다.
④ 교리의 차이를 들고 있다.
먼저 신론에 있어서는 에베소서는 인간의 구원의 근거를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에 두고 있으나 다른 서신에서는 바울은 십자가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2) 수신자 및 기록연대
서신의 목적지는 “에베소”였다. 즉 에베소와 그 주변의 교회들 이었다. 서신을 기록한 장소는 로마였으며,시기는 A.D 61-63의 어느 시기이었을 것이다.
3) 기록 장소
이 부분은 본 보고서의 빌립보서의 기록연대와 장소부분을 참고.
2. 역사적 배경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 그의 제 2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기초가 세워졌다. 그리이스로 부터 시리아로 향해 가는 길에 사도바울은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를 동반하고,에베소를 방문 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이들을 이 도시에 남겨 두고 떠났다.방문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서둘러 가는 도중에 잠시 머물렀던 것에 불과 하다 그러나 그는 그 지역 회당의 유대 지도자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그는 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따라서 그들은 바울에게 그곳에 머물러 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는 그의 계획을 바꿀수가 없었다.그래서 그는 자신이 돌라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돌아오겠노라고 그들에게 약속 했다. 이러한 사실은 확실히 이루어졌다 왜냐하면,그는 그 다음 전도 여행 일정에 에베소를 포함 시켰고,실제로 에베소에서 3년 이상을 머물렀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곳이 전도 전략상 상당히 유력한 지역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 지역의 중심 도시였으며, 동서를 잇는 대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에베소의 주위에는 230개의 독립된 공동체 사회가 아시아의 로마 지경내에 산재해 있었다. 만약 기독교의 신앙이 이와 같은 수도에 확고히 세워진다면,그것은 마치 바퀴의 중심에서 테두리로 힘을 옮겨지는 것과 같이 확산 될수 있을 것이다.
3. 저술 목적
수신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는 본 서신의 저작동기와 목적을 확실하게 결정하기란 어렵다. 만일 우리가 회람이론을 가정한다면,우리는 독자들의 상황보다는 저자의 상황으로부터 목적을 제시할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이러한 사실은 그 서신이 훨씬 더 명상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음과 함께 그가 다루고 있는 특별한 상황에 관련된 긴장이 없음을 잘 설명해 준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고 결국 영광 받는 기독론과 그리스도안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을 높이 찬양하게 되었다.
본 서신과 골로새서의 밀점한 관련은 에베소서의 저작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 두 서신은 다소 방법상의 차이는 있으나 동일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의 교리를 여전히 마음속에 생각하면서 이단이 존재하는 특별한 배경없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다시 썼다고 생각할수 있다.
빌레몬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본 서신의 저자가 사도바울임은 다음의 외적,내적증거에의해 분명히 드러난다. 먼저 외적 증거로는 본서가 사도바울에 의해 기록된 편지라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초대교부인 익나티우스,터툴리안,오리겐등은 바울이 본 서신을 쓴 것으로 인정하였고,무라토리 단편과 마르시온 정경도 본 서신이 바울의 저작임을 인정한다.
내적 증거로는 바울은 본 서신의 서두에서 부터 자신이 발신자임을 밝히고 있으며(1:1) 후반부에서는 자신이 친필로 본 서신을 기록했음을 고백하고 있다(1:19)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은 본 서신의 내용문맥 속에서도 자신이 저자임을 암시하고 있는바, 그는 자기 개인의 신상에 관하여,언급하면서 자신만의 톡특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즉 자신이 갖힌 상태에 있다는 것,기도의 부탁,그의 동역자들의 문안인사,등 그 만이 전개할수 있는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을 언급함으로서 바울 자신이 본 서신의 저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2) 수신자
본 서신의 수신자는 소아시아의 루쿠스 계곡에 살았던 빌레몬이라는 한 개인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본 서신의 수신자는 빌레몬 한 사람외에 여러 사람을 포함한다. 그 이유는 본 서신의 서두에는 빌레몬 한 사람이 수신인으로 되어 있지 않고 빌레몬과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1:2)라 하여 여러 사람이 수신인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한 서신의 끝 인사도 복수인 “너희”(22,25절) 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3) 기록장소 및 연대
옥중서신의 내용과 동일. 따라서 빌립보서의 부분을 참고.
2. 역사적 배경
빌레몬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위해 쓴 서신을 받은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 였다. 성경에 보면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 집에서 모인것으로 되어 있다. 바울은 그를 우리의 사랑하는 자요,동역자 라고 불렀다. 빌레몬서의 기록에 보면,그는 골로새 사람이요,종을 가질 정도로 재산이 있는 사람이었으며,바울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고, 성도들을 후대한 사람이었고,골로새 교회의 직원이었던 것 같다. 빌레몬서1:2절에 보면,그는 한짐의 가장이요, 압비아는 아내요,아킵보는 아들이었던 것 같다. 바울이 골로새에 전도할 기회가 없었음을 생각할때에 그가 에베소에 있는 동안 전도했던것 같다.전설에 의하면,빌레몬은 골로새의 감독이 되었다가 네로 박해때에 그 아내와 아들과 오네시모와 함께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한다.
3. 저술 목적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빌레몬서를 쓴 이유에 대하여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였다.이것은 낙스와 굳스피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중심인물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주님과 형제들을 사랑하였고,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재차 삼차 나타내었다(7절) 그는 직접적이든,간접적이든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었다. 하나님은 빌레몬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바울을 사용하셨다. 그의 새로운 인생은 그 자신은 물론 그의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주님을 영접한 친구들은 예배드리기 위하여 그들의 집에 정규적으로 모였다. 에베브라가 없을 때에는 아마도 아킵보가 예배를 인도한것 같다. 그는 디모데 처럼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는 청년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빌레몬서를 쓴 목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수 있다.
① 오네시모에 대한 용서를 확실히 하기 위함
②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노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 주도록 지혜롭게 요구함으로서 노예제도의 근본을 겨누어 지적하기 위함
③ 그가 놓인후에 자신을 위한 처소를 예비케 하기 위함이라고 말할수 있다.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및 디도서)
딤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오랫동안 목회서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용어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우리가 이 서신들을 목회신학의 교과서라고 부를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회서신이라는 용어는 이 서신들을 다른 책들로부터 구별해 주는 표현으로서는 편리한 것이라 할수 있다. 따라서 이 서신들을 다룸에 있어서 단일 서신으로 서론을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및 수신자
본 서신들은 바울의 어떤 서신들 보다도 그 잔정성에 대한 도전이 강하게 있었다. 따라서 이 문제가 목회서신에서 가장 크게 대두 된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바울 저작권에 대한 반론에는 크게 네가지 분야 즉 역사적, 교회적, 교리적,언어적 분야가 있다. 차례로 소개 하고자 한다.
[1] 역사적 문제
세권의 목회서신 모두에는 바울과 그의 동료들의 삶에 관한 역사적 언급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① 바울은 마게도냐로 이동중인 반면,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맡기 위해 그곳으로 떠났다.(딤전1:3)
② 마찬가지로 어느때인가 디도도 그레데 교회를 맡기 위해 그곳에 남겨 졌다(딛1:5) ③ 바울은 로마에 있을때 자신을 부지런히 찾아 만난 오네시보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딤후1:16,17) 이는 편지를 쓸 당시 바울이 로마에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바울이 로마에 있었다는 것은 결정적이다. 그는 당시 분면 죄수의 몸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드로아에 두고 온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면서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 미보는 병들어 밀레도에 있다는 등의 최근 발생한 사건들을 알려주고 있다.(4:13,20)
[2] 교회적 문제
목회서신속에 어떤 교회 질서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이는 바울 시대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발전된 것이며, 따라서 목회서신은 바울 시대의 것으로 볼수 없다는 이론이 있다. 이 계통의 비평들은 다음 네가지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첫째, 바울은 교회를 조직하는데 대하여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전 서신들에 비추어 볼때 그의 교회안에 어떤 획일적 정형이 있었던것 같지는 않으며,오히려 바울은 공식적 조직체계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둘째, 이 이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목회서신이 보여주는 교회 구조속에 반영된 장로의 역활은 주로 전승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째로,목회서신에 반영된 상황은 어느정도 시간이 경과 했을 것을 요구 한다는 것이다.
네째로,디모데와 디도의 지위가 대개 2세기 초의 군주적 감독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3] 교리적 문제
여기서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울의 교리라고 주장되는 것들과 그렇지 않는 것들이 서로 섞여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목회서신들 속에 바울 신학의 여러 특징적인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다만 바울의 진정한 글로부터 발췌한 어구들을 그대로 옮겨서 사용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본다. 주된 반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목회서신속에 바울의 특징적 교리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과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더 상투적인 접근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로부터이다. 전자의 예로서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성령의 사역등의 위대한 교리들이 있다. 그런데 이와같은 것들이 바울의 초기 서신들에 비해 목회서신속에서는 그렇게 탁월하게 부각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근본적인 교리들에 대해 논함이 없이 바울이 이 세 서신들을 쓸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된다.
목회서신속에 “믿음‘ 맡김, ’선한교훈‘ 등의 용어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큰 비중이 부여되고 있다.
[4] 언어적 문제
다른 바울서신들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바울서신을 제외한 다른 신약성경 속에서는 자주 발견되는 용어들이 목회서신에서 다량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을 주된 근거로 삼고 많은 학자들은 목회서신의 진정성을 거부하고 있다.그리고 이것은 단어에서 뿐만 아니라 문체에서도 그런다고 주장한다.
2) 연대 및 장소
바울의 첫번째 로마 투옥 연대는 아마 A.D 59-61년 이었던 것 같다. 초대교회는 바울이 A.D68년 6월에 자살한 네로 황제에 의해 처형당한 것을 이의없이 증언하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겨울전에(딤후4:21) 자기에게 오라고 편지한 점으로 보아 디모데 후서는 A.D67년 이전에 씌여진 것이 분명하다. 더 이르다면,65년 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디모데전서와 디도서가 A.D 62년과 66년 사이에 씌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사도행전 기사에서 자세한 일에 대한 기록이 생략되었다는 것을 감안 한다면 더 앞선 연대도 가능하다.
2. 역사적 배경
모든 역사적 증거로 보아 바울이 그의 1차 로마투옥에서 석방된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바울은 그가 석방된후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그런데 목회서신에는 분명히 여러 차례의 여행을 한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면 많은 것들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소개하기로 하자.
1) 바울은 석방되자마자 곧 디모데를 빌립보로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도록 했다. 아마도 주후 63년 안팍이었을 것이다. 주후 64년 7월19일에서 24일이후로는 석방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2) 바울은 소아시아를 향하여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디도를 그레데 섬에 떨어뜨려두어 거기에 세워졌던 교회의 조직을 완료시키도록 하였다.
3) 사도는 에베소에 도착하고 그가 계획했던 대로 골로새에 이르기 까지 계속여행을 한후에 다시 에베소로 돌아왔다.
4) 여기서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디모데와 합류했다. 그리고 떠나려 할때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여 에베소에 남도록 하였는바 그곳은 디모데를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5) 바울은 그가 계획했던 대로 마케도냐로 갔다.그는 에베소로 돌아오기를 희망했다.마케도냐에서 그는 서로 내용이 아주 비슷한 두통의 편지,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썼다. 그는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사랑하는 형제에게 청하여 니고볼리에서 그를 만날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6) 사도는 이고니아 바다 동쪽 해안에 위치한 니고볼리로 여행했다. 여기서 그는 겨울을 지냈으며,디도와 합류했다.
7) 바울은 서반아로 여행했다.
8) 서반아에서 돌아온후 바울은 소아시아로 가서 드로비모가 병듦으로 그를 에베소남쪽,밀레도에 남겨 두었다.
9) 드로아에서 그는 가보를 방문했다가 자기 외투를 그의 집에 놓아 두었다. 에라스도가 머물러 있었던 고린도를 경유하여 그는 로마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다시 체포되었다.
10) 따라서 바울은 서반아에서 돌아온 후로는 더이상 정치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의 2차 로마 투옥은 가혹하였다. 그리고 그의 투옥은 오래가지 않았다. 2차 투옥 기간중 누가만이 그와 함께 있었다. 데마는 이세상을 사랑하여 그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 버렸다.그레스게는 갈라디아 또는 갈리아로 갔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빨리 자기한테 오라고 명하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했다.
3. 저술 목적
만약 바울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세 서신들의 목적은 자명하다.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서 사도는 자신의 절친한 두 동역자들에게 그들이 당시 책임지고 있던 각 교회의 문제 처리 방법을 문서를 통해 교훈해 주려하고 있다. 이 교훈들중 많은 것들이 이전에 말로 전해 졌으며,따라서 이 서신들은 성격상 확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디모데후서에서는 매우 다른 상황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제 감옥안에 있으며, 그의 생의 마지막에 직면해 있는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성취해온 일들을 뒤돌아보고 있고 자신이 고대하고 있는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다. 서신은 교회 조직에 관해 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서신의 기록 목적을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수 있을 것이다.
1) 디모데 전서
① 그가 받은 은사(4:14)와 그의 선한증거(6:12)와 그에게 부탁한 것을 디모데에게 일깨워 줌으로서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하는데 있다.
② 에베소 교회에 퍼져 있었던 영혼을 멸망시키는 거짓된 교훈들과 맞부딪칠수 있는 지침을 주고 디모데로 하여금 바른 교훈에 계속 거하도록 권면해 주려는데 있다.
③ 공중예배시의 바른 행실에 대한 지침을 두려는데 있다(2장)
2) 디도서
① 그레데에서 일을 대신 맡아 볼 사람이 거기에 도착하여 인계를 맡게 되는 대로 바울에게 디도를 니고볼리로 오도록 명하기 위해서다(3:12)
② 교법사 세나와 말에 능한 전도자 아볼로가 급히 그들의 여행을 계속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3:13)
③ 회중,개인,가정, 그리고,사회관계에서의 성결된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데 필요한 지침들을 주려고이다. 이처럼 디도서는 삼중의 목적을 가지고 기록 되었으며, 이중에서 마지막것이 디도서의 대부분에 걸쳐 언급되어 있다.
3) 디모데 후서
① 사도가 이 세상을 떠날 기약이 임박한 것을 알고서 될수 있는 대로 빨리 디모데로 하여금 로마로 올수 있도록 재촉하려고(4:9,21,참조 4:6-8)
② 그를 권하여 바른 교리를 굳게 지키며, 모든 거짓 교훈으로 부터 그것을 변명하며, 선한 군사로서 고난을 인내하도록 하려고 기록 하였다. 이 두번째 목적이 전체 서신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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