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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목회자(가나다순)

담임목사는 最善을 讓步하고 次善을 收容 할 수 있어야.

by 【고동엽】 2022. 2. 14.

담임목사는 最善을 讓步하고 次善을 收容 할 수 있어야.

담임 목사의 안은 목회에 있어서 最善이고 장로의 안은 次善일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목사가 일을 우선시하여 최선만 고집 한다면 인간 관계가 부서지고 인간 관계가 부서지면 모든 것이 쥐틀리기 시작한다. 자동차 엔진에 부속하나만 고장나도 그 차는 정상적으로는 갈수가 없고 찜바한다. 당회도 그러하다.
장로의 소리가 교회를 위한 오히려 최선일수 있다. 목사만 교회를 위하여 하는소가 아니다. 그것을 부정하는자는 民主 共同體에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설득하다 아니되면 인간 관계를 最 우선으로 하는 입장에서 장로의 次善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수용함이 최선을 고집함 보다 교회와 목회에 유익하다. 교회를 시대에 맞게 잘 지어도 영원한것아니다. 갈지자로 지어도 멀지않아 재건축 할거것인데 왜?

손해와 유익, 적자와 흑자, 언제나 敎會를 最 우선시하여 私를 버리고 흑자편을 選擇하여야 한다. 그 계산을 할줄 모르는 목사는, 목사는 목사인데 石頭 목사이다. 석두목사 때문에 문제가 많다. 한사람의 생각이 아무리 좋아도 열사람 생각보다 못하다는 말이있다. 빨리가도 손해가 있고 늦게가도 유익이 있다. 젊은 아마추어 목사와 골통 목사들은 빨리만 가면 유익 한줄로 錯覺하고 마구밀어 붙인다. 양들이 깔려 다리가 부러지던지 뇌진탕이 걸리든지 죽든지 추리하지 못하고 개이치 않고 마구 미러붙인다. 자신은 잘났다고 자부하지만 고로 石頭이다.
필자가아는 지방 한 시골교회 교인은 40여명 되는데 젊은 목사가 200명 앉을수 있는 교회를 마구 미러붙여 지어놓고 빛만 잔뜩남겨놓고 싸우고 복다가 떠났다. 10년후 지금도 40여명이 모인다. 왜 그렇게 무리하게 지역에 맞지않은 건축을 하고 상처를 내어놓고 떠난는가?

목회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당회는 共同牧會 機構이다. 대통령도 혼자 국정을 운영하는것이 아니다. 목회는 김정일 식으로, 전두환 식으로 하면 안된다. 그러면 5.18의 극참을 초래한다. 아마추어들은 뜨거운 감자를 한번 먹어본 다음에야 후회하고 목회 설개를 다시한다. 우리속담에 방구질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는 말과 같이 다시 설계할 시간도 없어 종지부를 찍는 목회자들도 많다. 이런 목사들의 공통적인 후회의 한숨 소리는 이제 다시 시작한다면!

그래서 담임목사 청빙교회가 담임5년 또는 10년 유경험자를 찾는이유가 거기에 있다. 실폐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헸던가? 어머니가 없는 출생은 있을수가 없다.
아마추어 목사들과 골통 목사들은 자기가 정한 최선이 하늘에 소리요 眞理인냐 끝까지 고집하다가 인간관계가 부서지고 교회를 소란케하고 목회를 그르치고 눈물을 삼키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 리 모델링을 하여 놓고 무엇을 하나해놓았다는 성취감을 느낄런지 몰라도 교회는 유익하지 않다. 초임목사와 골통 목사는 대체로 그런 공통점을 갖고있다. 그것은 목회자 자기불행이요, 교회에 불행이다.

최선을 양보 할 줄 모르는 목사들은 인간관계를 부서트리는 목사로서 담임목사 자격이 없다. 목회는 인간관계가 가장 重要함을 알아야한다.

直接經驗을 통해 깨닫는목사는 머리가 니쁜 목사이고,
머리가 좋은 목사는 間接經驗으로 체득하고 울지 않고 후회없는 평탄한 목회를 한 평생한다.

그럼으로 담임목사는 最善이라고 생각되는 自己생각을 양보하고 장로의 次善 수용에 아량을 가저야한다. 일보다 당회원과의 인간 관계를 最우선 할 줄 알아야 평탄한 장기목회를 할수있는 담임목사 자격이 있다.
장로제도가 있는 장로교회는 堂會運營만 잘하면 목회는 누워 떡먹기다. 싸울일도 없고 울일도 없다. 그리하여야 신바람나는 목회를 할수있다.

필자는 평생 목회하면서 초임에 뜨거운 감자 한번 먹어본 후로는 교회문제로 기도원에 간일도, 금식한 일도, 철야기도 한 적도 울어본 적도없다. 그냥 물이 흐르듯이 흘러왔다. 목회를 역으로 하지말고 순리로하면 그렇게된다. 뜨거운 감자를 한번 이상 먹는 목사는 표준 지능이 못되는 목사이다.
옛날 일본말로 갱까도리목사에 별명이 붙은 목사가 있었는데 이 목사는 가는 교회마다 싸움 박질하는목사를 가르쳤다. 지금도 갱까도리 목사가 있는것을 종종본다.

인간 관계가 최우선 안되는 목사는 다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도 목회는 괴롭고, 갈등하고, 신경쇄약에 걸리고, 병에걸리고 지처스러지고, 실폐하고, 쫓겨난다.
인간관계가 부서진교회는 평탄하게 갈수가없다. 원인을 찾아 그것부터 고치고 목회하여야 갈등없는 교회가되고 목사장로가 같이 즐거운 당회를 할수가 있다.

부서저도 쫓겨나지 않고 버티는 목사는 자기파를 만들어 억지로 버티는데 당회를 지옥으로 만들고 교회는 생동력을 잃는다.
그리하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 된다. 반대자가 있어도 지지자가 있으니까.
그러나 행복한 목회는 할수없다.
그 목회는 ,목회는 목회인데 重병든 목회이다.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고집부리지 말고 스스로 당장고침이 교회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건강과 신앙에 유익하다. 목사가 너무 갈등하고 괴로워하면 사모도 병이든다. 부부일신이니까.

필자는 어려움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목회는 늘 행복하였다.

고로 잘났던 못났던 어떤일이 있어도 당회원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간관계를 최 우선하여야 한다.

필자가 섬기던 교회에는 중학 이상 졸업한 장로가 없었고 잘사는 장로가 없었다. 가장하층 생활을 하는 형편이었다. 종로에서 쫓겨난 빈민들의 터전으로시작된 곳이 였기에.
그러나 그분들을 무식하다던가 가난하여 교회도 잘 봉사 못하고 자기에게 맞추어 목사 월급을 작게준다고 불평하거나 무시한적 없다. 항상 교회에서는 최고의 당회원으로 예우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아무리 학벌있고 돈있고 잘난교인이 들어와도 그 뒷줄에 서게하였다. 어느공동체나 위계질서는 중요하다.
은퇴 직전에는 학벌있는사람 재력있는사람도 당회에 들어 왔지만. 당회원들의 위계질서를 세워놓고 나왔다.

最善을 양보하고 次善을 受用할수 있는 자여야 담임목사로서 평탄하게 長期 목회를 할 수 있고 교인들을 平安하게 牧羊 할수있다.

 

목회는 교인을 등나무라하고 등나무를 3등분하여 목회균형을 맞추어하면 평탄하다.

1.뿌리와 원둥치

2.원둥치에 붙어있는 중간가지

3.중간 가지에 붙어있는 세발가지

 

원둥치는 당회이다.

원둥치만 꽉잡고 하나되어 나가면 그 다음 가지들은 신경쓸것 없다. 자연 스럽게 따라온다.

철닥사니 없는 아마추어 들은 원둥치는 말을 잘 안듣고 힘이 드니까 잘 따라주는 가지를 잡고 목회하려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반드시 뜨거운 감자를 먹게 되어있다.

원둥치와 하나되고 잘 끌고가는 방법은 동역자들인 당회의 말을 100%수용하고 가면 된다.

당회를 평안이 품어 앉고 가지 못하는 목사는 힘이들고, 괴롭고,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러면 목회는 안된다.

원둥치를 품어안고 강물처럼 흘러가면 마침내 큰 강물을 이루어 대양에 도착한다.

그렇지 않고 가지를 잡고 목회하면 반드시 시험에 든다.

 

가지를 잡고 목회하는 자들은 반드시 시험에 든다. 시험드는 일은 아무리 좋아도 하지 말아야한다.

 

싸우고 갈등하는 목사는 교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파를 갈르고, 지지소리, 반대소리, 욕하는 소리, 저주소리를 창출한다. 그런 목사는 목회를,아주 아주 잘못하는,목사이다. 낙재목사이다.
뎃글에서 손자병법을 이용하여 싸움을 붙처 놓고 목회한다는 목사도 있다는데 그것은 손자 兵法이지 예수님의 가르처주신 牧會병법은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손자병법으로 싸움을 붙여춘추전국시대를 만들어놓고 목회한다면 평화를 만드라는 우리대장 예수님의 군사는아니다. 마귀군사이다.
그렇게 목회하면 버틸수는있으나 교회는 생동력을 잃는다.

목회는 며칠하고 끝나는것이 아니다.

조급하게 굴지말라. 건방지게 굴지말라. 고집부리지 말라. 양보할줄 알아라. 낮아저라. 사심을 버리라. 그리하면 교회는 강물처럼 평화롭게 흘러 갈 수 있다.
담임목사는 방향만 틀어주면 마침내 대양에 도착한다. 그것이 목회이다. 그 목회자는 목회에 幸福을 누린다.
필자의 후임은 목회경험이 없엇서 방향을 잘못틀면 노숙하신 장로님들이 방향을 잡아주고 있는것을 보면서 감사한다. 젊은 목사가 고집을 부릴까봐 이메일로 장로님들의 뜻을 따르라고 권고문을 보낸다.
고집부리고 싸움하는 목사는 대양에 도착전에 중간에 전복되고 침몰하거나 아니면 김포대교에 걸려 가지도 못한다.

어떤목사는 한강믈을 빨리 가게하려고 워커힐에서 뚝섬을 짤르려는 목사도있다. 짤르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도랑도 팔 능력도 없는자가 이상만 가지고 그런목회를 하겠다고 날뛰는 어리석은 목사들도 있는데 철닥사니 없는 목사라고 장로들이 웃는다.
그런 목사와 共同牧會를하려니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초임목사와 젊은 목사들은 후회말고 신중하라.

독재는 나쁜정치이다. 가장좋은 정치는 민주정치이다.
최선이 안되면 차선을 수용하라. 最善을 고집하다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犯罪行爲 이다.

最善을 固執말고 次善을 受用하라.
最善을 固執말고 次善을 受用하라.
그 方法이 羊들을 즐겁게, 敎會를 平安하게, 즐거운 民主共同體 교회를 만든다.

후배 목사여러분!
잘못 되었다면 지금바로 목회 파라다임을 바꾸세요. 무릎을 꾸세요. 용서를 비세요. 그러면 용서합니다.

牧會는 羊들을 푸른초장으로 잔잔한 물가로 引導하는것이 예수님이 부여하신 예수님 목회전법이요, 任務이다.

성탄절에도 바른 목회가 어떤것인지 생각하여보자.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가장낮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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