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자의 노래! (빌 4:10-20)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지금 다시 일어난 것을 보고,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나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의 고난에 동참한 것은 잘 한 일입니다.
빌립보의 교우 여러분, 여러분도 아는 바와 같이, 내가 복음을 전파하던 초기에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에게 협력한 교회는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16 내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내가 쓸 것을 몇 번 보내어 주었습니다.
나는 선물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장부에 유익한 열매가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나는 모든 것을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보내 준 것을 에바브로디도로부터 받아서 풍족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향기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입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영광이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어느 성도님이 건강진단을 받고 몸에 이상을 발견하신 다음,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아, 내가 헛살았구나! 아둥바둥, 주일도 없이 돈 벌어 가지고 얻은 것이 결국 질병인가?’그래서 주일에 가게 문을 닫고 완전히 쉬고 예배를 드린답니다. 그 분의 가게가 잘되는 것을 아시는 어느 교우가 말하더랍니다.“믿음으로 살려고 큰 손해를 감수하시는군요. 대단합니다.”그 분의 말을 듣고‘큰 손해’라는 말이 계속 생각되더랍니다. 내가 큰 손해를 보는 것인가? 아니더랍니다.‘큰 손해라니요. 요즘 저는 돈으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복을 누리고 삽니다.’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질병이 감사하였답니다. 주일에 예배드리고 쉴 결단을 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얼굴에서 행복을 보았습니다.
오늘 설교는 빌립보서 마지막 강해입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의 편지, 마지막 부분입니다. 본문을 읽고 또 읽다가 저는 행복한 자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노래를 여러분에게도 들려 주셨으면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 마지막 부분에 헌금을 보내 준 일에 대하여 감사 인사를 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이미 여러 차례 사도 바울에게 필요한 것들을 모아서 보내주었습니다. 15-16절을 읽어 보면 이렇게 헌금을 보내 준 교회는 빌립보 교회 뿐이었습니다. 한번 그렇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후원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로 크게 기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꼭 도움을 받아서 감사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늘 하던 표현이지만, 여전히 주목하게 되는 표현이 나옵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10절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지금 다시 일어난 것을 보고,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주 님 안에서 기쁜 것은 어떤 기쁨입니까? 궁금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11절에서 실제로 궁핍하였었고, 헌금을 받아서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기뻐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어떤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1-12절 …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여기서 저는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감동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엄청난 일이지 않습니까? ‘풍족한 상태에서나 비천하고 굶주리고 궁핍한 상태에서나 언제나 만족한 비결을 배웠다.’ 정말 그럴 수 있는 것입니까? 정말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까? 집 때문에, 차 때문에, 옷 때문에, 지위 때문에, 학교 때문에, 염려하고 갈등하고 좌절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문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13절에서 그 대답을 하십니다.
13절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고 눈물이 났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의 노래가 아닙니까?
그 동안 이 구절, 빌립보서 4장 13절은 많이 읽었고, 들었습니다. 부흥회 때 특히 많이 들었습니다. 요절 중 요절입니다. 그러나 이번 처럼 마음 깊이 감동적이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요절이 아니라 노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가 있습니까?
저나 여러분 모두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자는 만족의 조건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다 외적인 조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행복의 이유를 알지 못한 사람이 외적인 조건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리고 좌절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외적인 조건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키가 자그만하신데, 한번은 결혼하실 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사모님이 키가 크신데, 결혼하기 전 대학생 때,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키가 큰 남자들을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결혼 조건도 키가 큰 남자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 거듭난 후 결혼 대상의 기도제목이 바뀌었습니다. 키는 킨데 "영적인 키!"로 바뀌었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과 결혼하시게 되었노라고 우스개 소리처럼 하셨습니다.
마음으로 외모가 가려져야 합니다. 외모로 마음이 가려진다면 불행의 씨앗입니다.
2010년 10월 TV, 책 등으로 행복전도사로 알려졌던 분이 자살을 하여 충격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여성의 행복과 희망'. '밥은 굶어도 희망은 굶지 마라' '웃음 헤픈 여자가 성공한다.' 등 모두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느낌의 책들을 썼습니다. 그런데 자살했습니다. 행복은 깨달음이나 신념으로 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서만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가 또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서 보내온 헌금을 받아들고 울었을 것입니다. 너무 감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고린도후서에서 언급하였습니다. 당시 비교적 부자 교회였던 고린도 교회에게 기근을 당한 예루살렘에 헌금을 보내라고 권면하면서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언급한 것입니다.
고후 8:1-2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빌립보 교회가 “큰 환란과 시련” 겪고 있었고 “극심한 가난” 쪼들린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헌금은 그들에게서만 왔습니다. 그것도 “기쁨이 넘치고” “넉넉한 마음으로” 왔습니다.
그러니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 준 헌금을 받아든 사도 바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헌금이 아니라 행복한 자의 노래였을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예수 믿고서 환란을 당했고, 극히 가난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빌립보 교인들의 중심은 행복했다는 말입니다. 만족했다는 말입니다. 기쁨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헌금이 그 증거요, 노래였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고 기쁨을 누리기 위해 부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헌금은 부요함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나눔은 돈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교인들의 헌금을 받아들고 기뻤던 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받을 하나님의 복이 참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4절 그러나 여러분이 나의 고난에 동참한 것은 잘 한 일입니다.
17절 나는 선물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장부에 유익한 열매가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 헌금으로 인하여 빌립보 교인들이 받을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헌금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18절 나는 모든 것을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보내 준 것을 에바브로디도로부터 받아서 풍족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향기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갚아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19절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런 축복을 하였을까요?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자신을 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군이라는 자부심이 아주 컸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의 섬김에 대하여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잘했다고 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1절에서도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이 헌금은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라고 단언하였습니다.
고후 8:1-2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의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히 채워주시려고 먼저 바울을 돕는 헌금을 보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을 돕고자 헌금을 보낸 것은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빌 4:10 … 사실, 여러분은 나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선교헌금, 건축헌금, 십일조 헌금이 기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비록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누구나, 교회라도 형편이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남을 돕는 일, 헌금, 선교비를 줄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자신들도 어려우면서도 지속적으로 바울의 선교를 돕고 후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고, 그들을 풍성하게 하였습니다.
어려워서 헌금 못합니까? 돕지 못합니까? 어려워 해야 합니다.
헌금은 축복의 씨를 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후 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어려운데 축복의 씨도 심지 않으면 미래는 절망인 것입니다.
이런 헌금은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이 있는 자, 진정 행복한 자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빌립보 교인들이 헌금하고 복을 받은 것은 헌금이 행복한 자의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 건축헌금, 1년에 한번 헌금하고 싶은 교인들만 모여서 합니다.“왜 내가 구걸하는 자가 되게 하느냐! 헌금이 기쁜 자만 하게 하라!”
헌금은 정말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는 것 보다 못하면 안하느니만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의 중심에 계시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증인입니다. 빌립보 교인들도 증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 사는 자입니다. 행복한 노래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며 영성일기를 쓰면서 여기 저기서 행복한 자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선한사마리아인 교회, 주목자 사역, 행복한 자의 노래를 듣습니다.
도무지 감당이 안되는 노인 한분이 계셨는데, 참다 참다 한 마디 한 것 때문에 구구절절 회개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 회개의 고백에서 행복한 자의 노래를 듣는 것 같은 것이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젊은이교회에서 주목자 사역을 합니다. 주목자란“주님이 주목하는 자들”입니다. 그 젊은이들과 밥을 한번 같이 먹은 적이 있었는데, 얼굴에 행복한 자의 노래가 묻어났습니다.
어느 목사님 영성일기
점심을 먹고 급하게 사무실에 내려가는데 현관에 어떤 중년 남자분이 말을 건넨다. "여기 12시에 목사들 모임 어디서 하나요?" 순간 안내 데스크를 돌아보았는데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냥 가려다가 전화기를 들고 목회기획 사무실에, 그리고 사무국에 전화를 해서 장소가 예약되어 있는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모르신다. 그래서 또 그냥 가려다가, 혹시 모임에 오시는 동료 분에게 연락이 안되냐고 여쭈었다. 상담이 잡혀 있어서 마음이 바빴으나 현관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연락 기다리시는 동안 제가 커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로뎀으로 모시고 갔다. 다행이 금방 동료 분들과 바로 연락이 되자 비로서 웃으시며 모임 장소로 찾아가셨다. 그제서야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약 10분간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그 분을 돕지 않았다면 내내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짧은 10분의 시간 사용으로 처음 뵌 분이지만 이렇게 서로 기분 좋을 수 있다니.
또 한 목사님의 영성일기
“젊은이들이라 그런지 미래와 배우자를 위한 기도제목이 많았습니다. 준비된 배우자를 만나고자 하는 마음은 크지만, 자신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자신이 좋은 배우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제목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안수기도했던 젊은이들 중에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결혼한 성도들 중에는 자신이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게 해 달라, 좋은 아내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쓴 이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다 보니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행복 사람의 노래를 부릅시다.
새해에는 온 교인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모든 교우들이 행복한 자의 노래를 부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 합창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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