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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으로 예수님을 말한다! (사 9;6-7)

by 【고동엽】 202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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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으로 예수님을 말한다! (사 9;6-7)

 


메리 크리스마스

작년에 나는 워싱톤에 가서 코스비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장군 시절 노르만디 작전을 하였습니다. 그 때 아이젠하워 장군 부대에서 군목으로 일하던 목사님이십니다.
노르만디 작전에 병사들이 투입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한 병사가 목사님에게 뛰어 오더니 숨을 헐떡이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5분후 나는 전쟁터로 나갑니다. 불안합니다. 죽을 것만 같습니다. 저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확신을 주십시오.>
코스비 목사님은 무슨 이야기를 할가 생각하다가 5분이 지나갔습니다. 호각소리와 함께 그 병사는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얼마후 전사자 명단이 올라왔습니다. 방금 왔었던 그 병사가 전사자 명단에 들어 있었습니다.
코스비 목사님은 가슴을 치면서 울었습니다.
<나는 5분 동안 예수님 이야기를 정확하게 할 수 없는 무능한 목사로구나!>
그 후 그는 짧은 시간에 예수님을 설명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성탄절에 예수님의 별명을 통하여 10분 동안 예수님을 확실하게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탄생하신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일가요?

사람들은 이름외에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별명이고 다른 하나는 호입니다.
호는 고상하게 붙이는 것이고 별명은 재미있게 붙이는 이름입니다. 호는 소망이 담겨 있고 별명은 특징을 나타냅니다. 호는 자기가 붙이는 것이고 별명은 남이 붙여 주는 것입니다.
호를 들으면 존경하게 되고 별명을 들으면 웃게 됩니다.

나도 별명이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낙지>였습니다. 내 이름이 문호이기에 문어로 변경시커서 낙지라는 별명이 나왔습니다. 요즈음 우리 지방 장로님들이 나를 만나면 <주지 목사>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우리 지방 장로님 100여명이 송년 모임을 우리 교회에서 가졌습니다. 그 때 내가 설교하였습니다. 그 때 불교 신자가 우리 교회를 찾아와서 주지 목사를 찾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장로님들은 나를 만나면 주지 목사라고 별명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별명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의 별명은 생령입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영이십니다.

<살리는 것이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만드시고 영을 부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접하면 영이 살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접촉하면 영이 살아납니다.

나는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많이 보고 죽는 것도 많이 봅니다.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1년 동안 장례에만도 10번 이상 참석합니다. 60년 참석하였다고 하더라도 약 600명 장례를 보았습니다.
얼마전에는 곽 유근 형제와 이 윤아 자매님 아이가 태어난 지 5일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부와 나 셋이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 지 눈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그 때도 나는 죽음을 극복할 분이 없을가를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월남 전쟁에 참전하여서는 얼마나 많은 시체를 보았는 지 끔찍할 정도입니다. 나트랑 비행장에서 일년 동안 근무하였습니다. 작전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시체들이 비행기로 날라 공항 활주로 옆에 내려 놓았습니다. 즐비하게 날라서 아스팔트 위에 둔 시체를 보면서 저 시체를 다시 살릴 방법이 없을가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유가족들의 울부짖는 울음과 슬픔에 나와 관계없는 사람인 데도 항상 같이 울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죽음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사람은 없을가?>

지금 세계적으로 하루에 25만명이 죽고 있습니다. 한 시간에 약 1만명이 죽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동안에도 1만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분에170명이 죽습니다. 1초에 3명이 죽습니다. 숨 한번 쉴 때마다 10명 가량이 죽는 셈입니다.
모두 얼마나 슬퍼할가요? 이 때마다 나는 물어 봅니다.
<죽음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사람은 없을가?>

재벌 한 분이 몇 년전에 세상을 떠날 때 자기가 만들어 놓은 병원 의사 30명을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내 생명을 10년만 연장시켜 준다면 1000억을 내놓겠다.> 그러나 의사들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물어 봅니다.
<죽음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사람은 없을가?>

지난 주 금요일 아침 내가 사랑하던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새문안 교회 권사님입니다. 내가 배재 다닐 때 도시락을 못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 때 도시락을 둘 싸서 보내시던 어머니가 아산 병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온 몸중에 머리칼에만 암이 없고 온통 모든 분야에 암이 생깁니다. 그런데 암중에서 가장 못 된 암이 췌장암과 담낭암입니다. 담낭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4개월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2억원이 들어갔습니다. 한 달 더 살게 하는 데 5000만원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수억원의 축복을 받으며 사는 셈입니다. 나는 나에게 물었습니다.
<죽음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사람은 없을가?>

그런데 죽음을 해결할 분이 있다면 그가 바로 메시야입니다. 죽음 해결자가 이 세상에 꼭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오늘 탄생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접하게 되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여 생명이다.>

예수님은 힘있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생령입니다.

알프스 산에서 직업적으로 산 길을 안내하는 안내원 호세 이야기입니다. 그는 길 안내로 늙었습니다. 미국 청년이 알프스 산을 올라갈 때에 호세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산을 오르다가 미끄러져 바위 끝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호세는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내 손을 붙잡으세요.>
그 청년은 약하게 생긴 호세의 팔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나를 끌어 올리기에는 너무 약해요. 다른 사람을 불러 주세요.> 그 때 호세가 말했습니다.
<젊은이. 내 팔은 20년 동안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죽을 모든 사람들아! 내 팔을 잡아라. 내 팔은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단다.>
오늘 성탄절에 예수님이 손을 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과 접하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살리는 영입니다. 생령입니다.

2. 예수님의 별명은 새 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2:2-5)
그러므로 순은 예수님이십니다.

스가랴는 말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슥 6;12)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순입니다. 순은 작습니다. 그러나 시간만 지나면 가지가 됩니다. 뻗어 나갑니다. 큰 나무가 됩니다. 수 십 미터 자라게 될 것입니다. 갈수록 창대하여 지는 것이 순입니다.
봄이 되면 추운 겨울에 얼어 붙었던 가지에서 새 순이 돋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아스팔트를 들추고 나와서 아스팔트를 벌어지게 하는 풀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력입니다. 하와이 하나우만 근처에 가면 산더미 같은 바위가 두 쪽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나무 뿌리가 삐죽 나와 있습니다. 나무 뿌리가 바위 틈으로 들어가서 서서히 자라더니 바위가 벌어진 모습니다. 이렇게 생명력은 위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순이십니다. 예수님과 접하면 새 순과 같이 힘이 솟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새 순되시는 예수님과 접하여 새 순의 능력이 생겨서 바위도 쪼갤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느 전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략상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기지를 232명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데 적군 3,000 여명이 쳐들어 오고 있었습니다. 10:1의 전쟁이었습니다. 이는 이미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전략기지였습니다. 적장은 기세등등하게 외쳤습니다.
<싸우지 말자. 싸우면 우리도 많은 군사들이 죽겠지만 너희들은 몰살이다. 차라리 항복하라. 그러면 포로로 생명만은 구할 수 있다.>
이런 외침을 들으면 지휘관은 잠시 심각하게 생각하다가 비장한 각오를 하고 군사들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땅에 금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사람은 이 선을 넘어 나에게 와라. 그러나 전쟁이 두려운 사람은 지금 이 자리를 떠나도 좋다. 적은 우리의 10배다. 잘 생각하라. 비장한 각오로 싸울 사람과만 이 동지가 되는 것이 전쟁에 유리하라.>
조금 있더니 231명이 생명을 걸고 싸우겠다고 그 선을 넘어 지휘관쪽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한 병사만이 그 선을 넘지 않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한 명 남은 병사에게 시선을 모았습니다. 그 때 그 병사가 말했습니다.
<지휘관님! 저는 부상으로 걸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선을 내 뒤에 그려 줄 수는 없겠습니까?>
232명은 그 병사 때문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232명은 3,000명을 대항하여 그 날 밤 밤새도록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232명이 이겼습니다. 생명력이 철철 넘치는 군사들로 구성된 군대였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있는 순은 기어코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실을 맺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력 없는 3000명보다 생명력이 넘치는 232명이 더 큰 군대였습니다. 수가 문제가 아니라 순이 문제입니다.
우리 교인들 한 명이 다른 교인들 1당 100의 일을 하여야 합니다. 새 순 되시는 예수님과 접하면 같이 자라게 됩니다. 새 순은 능력입니다. 오늘 1225명은 전도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2월 25일 성탄절에 1225명 전도 대단히 의미있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것 때문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새 순입니다.

나는 중국 목사님 지미 초이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아내와 그렇게 맞지 않는 것이 많았습니다. 아내와 별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군목이 되었습니다. 아내 생각을 잊으려고 월남 군목으로 지원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죽음을 대하면서 고독을 느꼈습니다. 그는 옛 아내 생각이 나서 편지를 쓰며 외로움을 달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도 헤어졌지만 외로운 남자 과거 남편을 위하여 답장을 하여 주었습니다. 서로 편지가 오고 갔습니다. 서로 사랑의 순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귀국하여 둘은 다시 부부로 결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새 순입니다.

성탄절마다 모든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런데 어디에 강조점이 있나요? <기쁘다>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주 오셨네>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오늘 탄생하신 예수님의 별명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령입니다. 살리는 영이십니다.
예수님은 새 순입니다. 생명력있고 능력있는 새 순이십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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