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결산을 생각할 때입니다
고린도전서 4:1-5
유명한 거장 화가인 미켈란젤로가 씨스틴 채플의 그 천장 벽화 프레스 코를 거의 완성할 때의 일이었습니 다. 작품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여 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천장 을 향해서 마지막 그 finish 터치를 위한 손질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도왔던 조수들 가운데 한 사람 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 님, 이젠 끝나지 않으셨습니까?"
"
자네 눈에는 끝난 것으로 보이는가? 내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 내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그리고 몇 달을 더 그는 계속해서 이 작품 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작업은 완 전히 마쳐진 것으로 판단이 되었습 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작업 도 구를 치우지 않고 계속 천장을 응시 하면서 그 장소를 맴돌았습니다. 다 시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 다. 선생님 이제는 정말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미켈란젤로는 이 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내 눈에는 끝났는데 주님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지"
주님 보시기에는 어 떨지 모르지"
이것이 바로 장인 정 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걸작을 낳은 일종의 프로 정 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적 용어를 빌린다면 이것은 철저한 청지기 정신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청지기 정신' 11월은 한 해를 결산하는 달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우리의 일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라도 우리는 지나온 시절을 종종 되 돌이 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 지막 후회 없는 결산을 위한 일종의 중간 결산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작 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그 런데 인생을 결산할 때 중요한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관 점에서 내 인생을 평가해야 하느냐 인 것입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인생 을 평가해야 할 것이냐는 물음입니 다. 1세기의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 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체험했 고 또 성령의 풍성한 은사들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자라지 못했고 그 사회 속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 들 사이에는 끝없는 분열과 불화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이 전진하지 못하고 있 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 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자 기들의 인생에 대한 '냉정한 결산'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되 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메시 지를 씁니다. 자 고린도 교인들에게 필요했던 인생의 중간 결산 우리에 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인 생이 지금 결산되어야 한다면 어떤 관점에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결 산될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바울 사도는 자기의 관점에 서 본 결산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하 다고 말합니다. 나의 관점에서만 본 결산 그것은 올바른 결산이 될 수가 없다고 바울은 가르칩니다. 자 3절 에 보시면요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합 니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 니"
한 번 따라서 해 봅시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자 기의 인생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겠 다는 그런 선언이 아닙니다. 판단 은 필요한데 나의 관점에서만 본 나 에 대한 판단 그것은 적합하지 않다 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 의 그 지렛대, 자기의 판단의 기준 만을 가지고 스스로를 판단할 때 우 린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언제나 극단적인 두 개의 경향에 빠 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의 극단은 뭐냐하면 자학이에요 자학 이것은 지나친 과도한 자기 비판의 결과라 고 할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 만 사람이 지나친 자기 비판을 하게 되고 자학에 빠지게되면 몇 가지 문 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상실하게 됩니 다. 다시 재기할 수 없어요 자존감 이 상처를 입고 자신이 무너지는 사 람들은 인생을 향한 다른 도전이 시 작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런 의미에서 자학은 인생의 결코 어떤 복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또 하나의 극단적인 자기 판단이 있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교만' 지나치게 과도한 자기 사랑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흔히 이런 판단 속에 빠지는 사람들은 거 짓된 자기 허상을 바라보고 자기 실 제 모습이 아니라 허상의 이미지 그 이미지를 설정해 놓고 그것이 자기 라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면 되지도 못하고 된 줄 로 착각하는 사람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굉장히 이상적 인 인간인 것처럼 판단하고 착각 속 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일종의 나르시스적인 인간상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여학 교 선생님 한 분이 학생들에게 나르 시즘을 설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르시즘이란 단어는 본래 희랍신화 에 나오는 나르시서스라는 어떤 청 년에 대한 얘기로부터 비롯된 것인 데 이 청년이 깊은 숲 속에 들어갔 다가 은빛 찬란한 고요한 호수하나 를 발견합니다. 호수에 비친 자기모 습 그것이 자기 모습인 줄 모르고 이 청년은 '야 참 아름답구나' 하고 호수에 비친 사람과 사랑에 빠집니 다. 그래서 그 호숫가를 떠나지 못 하고 계속 맴돕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아의병 자기를 사랑하는 병 일수 가 있다. 이렇게 설명을 했더니 어 떤 여학생이 손을 들고 '선생님 제 가 아무래도 그 병에 걸린 것 같아 요' 그래서 왜 그러니 하니까 '아침 에 거울을 보면 황홀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선생님 가라사대 '그것은 자 애병이 아니라 착각이라는 병이란 다' 그런 착각 속에 인생을 사는 사 람들이 종종 있어요 허상의 이미지 를 자기 이미지라고 착각하는 경우 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 단 이런 판단 속에 빠진 사람은 자 기 인생에 개선이 불가능해요 성숙 이 불가능합니다. 자기 약점을 성청 하지 못하는 사람 자기 앞에 정직하 게 직면해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잘못이나 결점을 고치면서 발전해 나갈 수가 없잖아요 이런 사람일 수 록 이웃에 눈에 있는 티를 보는 일 에는 민감하지만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일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 절대로 발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자기 판단 그것은 유해하다는 것을 알았 어요 자기 판단의 오류, 인간 판단 의 주관적 그 오류를 충분히 인식하 고 있었던 바울 사도는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자 바울의 고백 은 계속됩니다. 4절 다같이 읽어보 겠습니다. 본문의 4절 다같이 읽겠 습니다. 시작!
"내가 자책할 아무 것 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 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내 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자책할 어떤 것을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지 만 그렇다고 내가 의롭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내가 아무리 정의롭다고 스스로 주장해도 그것으 로 내가 의롭다는 마지막 판단을 받 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주관적 판단의 오류성을 충분히 인 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 다. 내 인생의 판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만 나를 판단하는 것 그것은 매우 위험할 수기 있습니 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의 관점에 서 본 내 인생의 결산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로 바울 사도는 타인의 관점에서 본 결 산도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 합니다. 타인의 관점에서 본 내 인 생의 결산 그것도 바람직하지 못하 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이웃의 나를 향한 충고에 귀를 열고 들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충고를 도무지 못 듣 는 사람이 있죠 이 사람 자라갈 수 가 없습니다. 잠언에 보면 '충고의 유익' 이 충고의 아름다운 축복에 관한 교훈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웃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 들을 줄 아는 귀, 복된 귀입니다. 복된 인생 입니다. 이 잠언서에 보면 구약에 잠언 뿐 만 아니라 여러 군데 보면 모사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죠 '모사' 이 모사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우리 말 뉘앙스로는 아주 안 좋게 들려요 그렇지요 '모사' 그러면 무슨 이상한 일을 꾸미는 사람처럼 들립니다마는 성경에 모사가 많으면 그 사람은 지 혜로운 사람이다 이 모사라는 말이 영어 성경 번역에 보시면 counselor 라고 되어 있어요 'counselor 상담 자' 내 약점을 알면서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따뜻하게 내 마음을 열고 나를 세워줄 줄 아는 이런 위 로자 이런 충고자 이런 격려자 이런 counselor 친구들을 내 인생에서 가 진 사람 행복한 사람이에요 사랑하 시는 여러분! 충고는 필요한 것입니 다. 이웃의 관점에서 내 인생에 대 한 그 맹목성을 진단하고 비판할 때 우리는 겸허히 귀를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 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참고 사항일 뿐 내 인생에 대한 마지막 판단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이 잘못될 수가 있는 것처럼 종종 이웃 들의 나를 향한 판단도 거기 바이어 스가 있어요 거기도 편견이 있을 수 가 있습니다. 나를 향한 이웃의 판 단 그것은 결코 마지막 판단의 증거 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판단 할 때도 그래서 참 조 심해야 합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 야 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판단의 악을 경계합니다. 판단하지 말라, 비 판하지 말라, 너희가 이웃을 비판하 는 비판으로 도리어 비판을 받을 것 을 각오하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로마서14장은 판단의 장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여러분 이 판단에 대한 레슨을 공부하고 싶으시면 로마서 14장을 공부해 보세요 우리는
"서로 판단하지 말자 우리가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말자"
판단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깨져서는 안 된다 왜 냐하면 판단에는 항상 편견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도 심히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어떤 여 집사님의 얘기를 들었어요 듣고 얼마나 재미 있었는지 하루종일 웃었는데 여러분 은 웃을지 안 웃을지 모르겠어요 어 여 집사님이 미국 회사에 다니시는 분인데 상당히 출세해서 높은 지위 에 까지 올라갔어요 그래서 여행을 자주 하시는 분이에요 비행기를 타 고 많이 다니시는 분이십니다. 출장 을 다니시는데 어떤 공항에 도착했 을 때 비행기 연결이 잘 안 되자 되 지 않아서 시간이 좀 늦어졌다 고해 요 비행기 시간이 출발 시간이 좀 지연이 된 겁니다. 그런데 이분은 이런 일에 익숙해 있어서 항상 준비 를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자기 핸 드백에다가 늘 책을 갖고 다녀요 그 래서 비행기가 늦었구나 뭐 조바심 하지 않고 느긋하게 마음먹고 다리 쭉 뻗고 핸드백에서 자기가 가져온 책을 가져다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또 이런 때를 대비해서 핸 드백에다 늘 이분은 치즈 크랙커를 가지고 다녔다고 해요 그래서 책을 보면서도 치즈 크랙커를 꺼내놓고 책을 한참 보면서 독서 삼매경에 들 어갔습니다. 그러다 뭘 좀 씹고 싶 어 가지고 어 자기가 가지고 다니는 치즈 크랙커 비스킷 같은 것이 이제 다섯 개가 들어 있었대요 그래서 그 걸 먹으려고 손을 뻗치려고 하는데 그때 바로 누가 옆에 와서 앉더래요 그러니까 옆에 자기 핸드백이 있으 니까 고 의자는 남겨놓고 옆에 와서 어떤 신사가 앉더래요 그래서 와서 앉는 모양이다 했는데 앉자마자 얼 마 안 돼서 자기가 놓은 그 치즈 크 래커 하나를 그 신사가 집어 먹더래 요 야... 이상한 사람 다 있다 그 다음부터는 자꾸만 책으로 신경이 안가고 옆에 사람에게 신경이 쓰이 는 것이에요 그래도 하나가 먹고 싶 었던 모양이다 그냥 놔두고 그 다음 에 자기가 두 번째 것을 먹었대요 그러니까 세 번째 것을 먹더래요 또 양해도 구하지 않고 그냥 먹어버렸 어요 그래서 자기도 네 번째 것을 먹었습니다 이 때 하나밖에 안 남았 는데 하나밖에 안 남으니까 자꾸 이 게 신경이 쓰이더래요 그래 책으로 신경이 안가고 자꾸만 옆에만 보는 거에요 근데 아니나 다를까 다섯 번 째 것을 낼름 이 신사가 짚더래요 그러더니 그게 두 개가 요렇게 붙어 있는 건데 그 가운데 반을 딱 뜯더 니 놔두고 자기가 반쪽을 다 먹더래 요 아 그래 속으로 열 받은 거에요 너무나 괘씸해 가지고 사람이 도대 체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 자기는 반 쪽 탁 집어 갖고 옆에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싸움을 걸 순 없고 불쾌 하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자기 핸드백에서 탁 팽개쳐 버렸어요 그 리고 한참 있다가 조금 있다가 이제 비행기시간 아나운스멘트가 광고가 나와서 비행기 안으로 딱 들어가는 데 들어가고 나서도 분이 새겨지지 않더래요 세상에 그렇게 무례한 사 람이 어디 있나 그래 조금 시간이 지나가고 인제 진정을 하면서 자기 핸드백을 딱 열었답니다. 열어보니 까 왠 걸 그 자기 치즈 크랙커가 그 대로 다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부인이 신사걸 집어 잡수신 겁니다. 그러고 나니까 갑자기 그 신사가 다 르게 생각이 되드래요 야 얼마나 멋있는 신사에요 자기가 집어 먹는 동안에 한 마디 얘기도 않고 마지막 에 하나 남은 그 치즈 크랙커를 반 을 딱 잘라서 먹으라고 줄 수가 있 었던 그 여유가 야! 진짜 젠틀맨 이 로구나 젠틀맨 조금까지의 열 받았 던 그 인간 하다가 야! 역시 참 신 사로구나 여러분 사람의 판단이라 는 것은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나 쉽게 우리 가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을 속단해서 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비 록 나쁘게 평가하더라도 그것 때문 에 내 인생을 끝난 것처럼 좌절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조금 칭찬했다고 해서 너무 뭐 내가 정상에 도달한 것처럼 그렇게 흥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때로 나를 향한 다른 사람의 판단에 지나 치게 일희일비하는 경향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건강한 인생은 힘든 것입 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건강한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 한 것이 있다면 여러분 우리 인생의 판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판단을 지나치게 의존하지 마십시오 귀를 기울여 들으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중요한 마지막 판단으로 수용할 필 요는 없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 다. 자 오늘 본문에 읽어보시면 3절 말씀이 그 말씀이죠? 3절 말씀 다같 이 읽겠습니다. 3절 다같이 시작!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네 너희에 게나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이 무시할 일이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뭐라 그랬습니까? 작은 일이라 귀담 아 들어야 하고 참고할 필요가 있습 니다. 고치면 내게 유익입니다. 그러 나 그것은 내 인생에 대한 마지막 선언일 수 없어요 이웃들이 내 인생 에 대한 결정을 할 수는 없는 것입 니다. 소중하게 참고하십시오 그러 나 내 인생에 마지막 선언처럼 이웃 의 판단을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 떤 사람의 관점에서 내 인생은 판단 되어야 마땅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강조하시는 그리고 바울이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관점을 가 지고 내 인생을 결산하자는 것입니 다. 그리스도의 관점, 사랑하는 주님 의 시각과 관점에서 내 인생을 보십 시오. 주님의 판단으로 나를 판단해 보십시오. 이것이야말로 내 인생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어 야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관점에 서의 결산 바로 이 결산을 주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요구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자 4절을 다시 한 번 읽 어보겠습니다. 한 번 더 4절 다같이 시작!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 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 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 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자 마지막 부분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죠? 뭐라 그랬어요?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다같이 '다만 나를 판단하 실 이는 주시니라' 누가 나를 판단 해야 마땅합니까? 주님이 십니다. 내 삶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신 바로 그 분, 나를 창조하신 그 분, 나를 섭리하시는 그 분 마지막날 나 를 심판하실 그 분, 그 분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그리고 가장 정확하 게 그리고 가장 공정하게 나를 판단 하실 주님 인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 그 판단의 마지막 때를 정확하게 그 분은 정하고 계십 니다. 그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그분 이 친히 여러분과 저를 판단하실 것 입니다. 그때는 가까워오고 있습니 다. 자 본문의 5절을 같이 한 번 읽 어보실 까요? 5절 다같이 시작!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 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 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 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아멘 때가 이르기 전 그 마지막 판단의 때가 오기 전에 너무 서둘러 내 자 신이 자신을 판단하거나 이웃들의 판단을 마지막 판단처럼 수용할 필 요는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때에 주께서 친히 판단하실 것입니 다.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들 어내고 그리고 내 마음의 속 깊은 뜻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분은 겉 으로 드러난 그 행동만 보신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했 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었 던 내 행동에 모티브와 동기까지 살 피시는 바로 그분, 그분만이 나에 대한 마지막 판단자가 되실 것입니 다. 그리고 그 때 그분이 그렇게 완 벽하게 판단하시는 그날 각 사람에 게 하나님께로부터 뭐가 있으리라 그랬어요? 칭찬이 있으리라 여기 참 주님의 중요한 의도를 여러분이 읽 어보셔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주 님의 자녀들을 판단하실 때 그 의도 는 처벌에 있지 않습니다. 잘 들으 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판단 하실 때 그분의 마지막 의도는 처벌 이 아니에요 우리를 처벌하기 위해 서 내 마음의 동기를 살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대한 파괴적인 판단, 파괴적 인 비판, 그 정죄,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이 미 그 심판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 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느니 라 믿으십니까 여러분? 정죄 함이 없어요 자 우리가 잘 아는 요한 복 음 5장 24절에 보시면
"
내가 진실 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 을 듣고"
아직도 이 구절 못 외어 요? 간첩이에요? 자 내 말을 듣고 그 다음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 는 세 가지 약속 첫째는 뭐에요? '영생을 얻었고' 그렇습니다. 복음 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은 모든 사람 들 영원한 생명을 이미 얻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약속 은 뭐에요?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 나니 정죄의 심판 형벌의 심판에 도 달할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죄 사 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결코 주님이 그들을 마지막 형벌의 자리에 던지지 않습니다. 그럼 여기 서 말하는 판단은 뭘까요? 마지막 주께서 주의 자녀들을 판단하실 때 그 판단의 의도는 동기는 어디에 있 다구요? 칭찬에 있습니다. '칭찬할 것 없나' 칭찬할 것 없나? 여러분, 부모님 여러분! 우리 자녀 들을 키울 때도 칭찬할 걸 좀 찾아 보셔야 되요. 네 말짱... 그냥 밟아 버릴 것만 보이죠? 야단 칠 것만 보 여요. 칭찬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칭찬할 만한 뭐가 없을까? 칭찬을 찾고 계신 주님, 그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의도를 읽을 수가 있어야 합 니다. 그분의 마지막 판단의 의도, 칭찬에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일관 성 있는 성경의 가르침가운데 하나 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보시 면
"너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 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다시 말하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세 가 지 약속을 하셨어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주님 다 시 오시는 그날 주의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주고 싶어하십니다. 첫째가 뭡니까? 칭찬이고 두 번째는 영광 이고 세 번째는 존귀입니다. 그 분 은 우리를 칭찬하고 싶어하십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고 싶어하세 요. 우리를 존귀케 하고 싶어하시는 주님 그래서 그 분은 우리의 삶 속 에 칭찬할 거리를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때 주님 앞에 서서 우리가 칭찬 받으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주께서 우리의 삶을 칭찬하실 때에 칭찬할 만한 가장 중요한 quality 가장 중요한 요소로 주님이 찾고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성실성이라고 할 수 가 있습니다. 자 본문의 2절, 2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장 2절 다 같이 시작!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자 맡은 자 들에게 구할 것이 뭐에요? '충성이 다' 바꿔 말하면 충성이라는 단어는 성실성이라는 낱말로 바꾸어도 조금 도 상관이 없습니다. 영어로는 이게 faithfulness, faithfulness, 충성으로 번역해도 괜찮고 성실함으로 번역해 도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주께서 여러분과 저의 삶에서 제일 보고 싶 어하는 것 제일 찾고 싶어하는 요소 그것은 맡겨 주신 것들에 대해서 우 리가 얼마나 성실하게 임하고 있느 냐? 그 성실성을 보고 싶어하는 거 에요. 충성스러움, 성실함, A.T. Robertson 이라는 유명한 성서 원 어학자는 여기서 충성이라는 단어를 그가 정의하기를 여기서 말하는 충 성이라는 단어는 공개적으로 인정받 을 수 있는 성실함이다. 자타가 공 인하는 '아 저 사람 정말 성실하지' 자타가 나나 다른 사람에 의해서 함 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성실성 이 성실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말 이에요 주께서는 이 성실함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보시자 마 자 그것을 칭찬하시고 싶어하시는 주님 그 주님이 한 해를 결산하는 이 마당에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런 성실함의 요소들을 보고 계실 까요? 금년 한 해 동안도 주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맡겨 주 셨습니다. 시간을 맡겨 주셨습니다. 똑같은 시간 1년, 열 한 달을 지나 고 우리는 열 두 번째 달을 맞이합 니다. 그러나 주께서 맡겨주신 시간 이 타임을 어떻게 성실하게 관리하 며 한 해를 사셨습니까? 탈란트를 주셨습니다. 재능을 주셨어요 그 재 능에 종류와 취향은 다 다르지만 재 능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다 른 재능이 있을 따름입니다. 자 주 님이 마지막 판단하실 때에 너는 재 능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것을 인해 서 상급을 주시지 않아요 맡겨주신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성실하게 내 삶의 장에 임했느냐? 그것이 마지막 판단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자 금 년 안에 주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많 고 적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 모두에 게 어떤 재물을 맡겨주셨습니다. 재 물에 대한 관리 한 해 동안 맡겨주 신 재물을 얼마나 성실하게 우리가 관리했을까요? 오늘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주시는 시련의 이유가 어 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민족 의 맡겨주신 재물과 축복에 대한 불 성실성 과소비와 낭비와 그리고 쾌 락주의 속에 흥청망청 했던 이 민족 을 향한 하나님의 시련은 차라리 당 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 까? 우리는 새롭게 주님 앞에 서야 할 시간입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이 한 해를 우리는 살았을까요? 자 그 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본문에서 주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특별히 한 가지 맡겨주신 것에 대한 성실성을 특별히 주님은 주목하십니다. 무엇 일까요? 1절 우리 다같이 읽어보시 겠습니다. 본문의 1절, 4장1절 다같 이 시작!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로 여길지어다"
그리스도의 일군 들 에게만 맡겨주신 것이 있습니다. 이 것은 불신자에겐 주시지 않은 거에 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만 주의 백 성들에게만 그리스도의 일군 들 에 게만 맡겨주신 중요한 것 하나가 있 습니다. 뭐라고 말했습니까? 1절에 하나님의 비밀 비밀을 맡겨 주셨다 '하나님의 비밀' 'mystery'라고 되 어 있는데 '미스테리' 하나님의 비 밀, 이 비밀이 뭘까요? 바울 서신에 보면 바울이 자주 이 비밀이라는 단 어를 사용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이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변화 시켜주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었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우 리에게 선물로 주었어요 얼마나 이 말씀을 붙들고 사셨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좁은 의미에서는 이 하나님 의 말씀가운데서 십자가의 복음을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 음' 자 고린도 전서 지금 우리가 4 장을 보고 있습니다마는 2장을 한 번 돌아가서 보세요 고린도 전서 2 장 7절입니다. 고린도 전서2장 7절 입니다. 다같이 읽을까요? 2장7절 시작!
"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 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
이 비밀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것 때가 찬 어느날 하나님이 드디어 역사 속에 계시하신 비밀 자 이 비밀스러운 지혜의 정체는 그 다 음절입니다. 8절, 고린도 전서 2장 8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 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 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 하 였으리라"
복음입니다. 예수께서 십 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 여러분과 저 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기 위해 십 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앞에 나와 여기 나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마다 죄사함을 받습니다. 믿으십니 까? 그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 을 영접하는 사람마다 새로운 생명 을 얻습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 받 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새로운 생명 을 가지고 살 수가 있다는 사실, '복 음 이 'gospel 이 good news 복음 내 운명을 변화시키고 내 삶을 변화 시켰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 복 음을 맡겨 주셨어요 이 복음 한 해 동안 이 복음을 맡은 자로 어떻게 살아 오셨습니까? 이거 우리의 결산 그리스도인의 평가에 있어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평가의 한 중요한 제목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 는 복음을 맡은 자로 어떻게 살아왔 는가? 복음 증거 하셨습니까? .또 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셨습니까? 나를 변화시켜 주셨던 하나님의 말 씀 자 이 말씀을 따라 계속 살아 오 셨습니까? 이 말씀을 전하셨습니 까? 성경공부는 매우 필요한 것입니 다. 그러나 성경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늘 빠지기 쉬운 한 가지 함정이 있어요 성경공부 조금하면 지식이 생겨요 그 지식을 가졌을 때 에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것이 아는 것이 내 삶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습 니다. 아는 것이 내 수준이라고 착 각해요 그렇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과 상관없이 내 삶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동떨 어진 자리에서 이 한 해를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 얼마나 말씀에 응답 하는 그 말씀을 성취하는 삶을 살았 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성실하다고 말할 때에 그 '성'이라는 단어가 한 문으로 말씀 언 변에 이룰 성자이지 요? '말씀대로 이룬다' '말씀대로 이 룬다' 성실의 반대는 까꾸로 읽으면 되요 실성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 씀을 붙들고 얼마나 그 말씀 앞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 왔다고 고백할 수가 있을까요? 때로 말씀을 순종하 는 것이 왜 어렵다고 느껴지십니까? 하나님 말씀 순종하고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이 때로는 힘겹고 버겁게 느 껴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 님의 의도를 몰라서 그래요 왜 그런 줄 아세요? 말씀을 주신 이유, 나의 축복을 위한 것입니다 일감을 맡기 신 이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칭찬 칭찬하고 싶어 하는 주님 일감을 맡기신 거에요 때로 우리는 그 하나 님의 의도를 살피지 못하고 주님을 향한 봉사의 장에서도 얼마나 자주 원망과 불평으로 이 한 해를 살아 왔는지요? 우리 나라 옛날 야사에 이런 얘기가 나와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시골 부자가 자식이 없었습 니다. 그래서 입양을 했는데 아들 둘을 입양을 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이십이 넘었습니다. 이십이 넘자 이 제는 그 아들들이 독립을 시켜달라 고 요청을 합니다. 아버지 우리도 한양가서 과거 시험도 치르고 벼슬 도 하고 싶습니다. 우리 좀 떠날 수 있도록 좀 해 주십시오 하도 졸라대 니까 아버지가 마침내 허락을 하셨 어요 내일이면 이제 떠나는 날입니 다. 그런데 내일 떠나기 전날 두 아 들을 불러 놓고 이 아버지가 아 조 금 있으면 겨울이 오는데 너희들 떠 나기 전에 오늘 저녁 마지막 좀 일 을 해달라 하고 새끼를 좀 꼬아 달 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큰 아들이 불평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친자식이 아니라 그렇지 이 마지막 떠나기 전날 저녁까지 이렇게 일을 시키실 필요가 뭐가 있다는 말이냐 이를 갈면서 뭐 억지로 적당히 일을 했겠죠 그러나 둘째아들은 나를 지 금까지 키워 주신 아버지 참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정성을 다해서 새끼 를 꼬았답니다. 이튿날 아침 출발의 즈음해서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러 내십니다. 그리고 하인에게 광을 열 고 가마니 하나를 가지고 내오라고 그러더래요 가마니 안에는 은화가 돈이 가득 들어 있는데 그 은화를 꺼내게 한 다음에 두 아들보고 하는 소리가 너희들 어제 저녁 정성을 다 해서 꼰 그 새끼 꼰 만큼 거기에다 가 돈을 은전을 꿰어 갖고 출발하도 록 하라 적당히 어제 밤에 .불평하 고 원망했던 그 큰아들은 얼마나 후 회하는 시간을 가졌을까요? 여러분 주께서 일감을 맡기실 때 주님의 의 도를 아셔야합니다. 나를 칭찬하고 싶어하시는 주님 마지막 심판의 날 주 앞에 섰을 때 칭찬과 영광과 존 귀를 가지고 그 앞에 세워지기 위하 여 오늘 조금 버겁게 느껴지는 일감 을 맡기셨을 때 불평하지 마십시다. 기쁨으로 주님의 의도를 읽고 내 인 생의 남은 여로 충성을 다 할 수가 있다면 성실하게 내 삶의 장에 설 수가 있다면 마지막 그날 우리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있을 것입니 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은 결 산을 생각해야할 순간입니다. 기도 하십시다.
고린도전서 4:1-5
유명한 거장 화가인 미켈란젤로가 씨스틴 채플의 그 천장 벽화 프레스 코를 거의 완성할 때의 일이었습니 다. 작품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여 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천장 을 향해서 마지막 그 finish 터치를 위한 손질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도왔던 조수들 가운데 한 사람 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 님, 이젠 끝나지 않으셨습니까?"
"
자네 눈에는 끝난 것으로 보이는가? 내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 내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그리고 몇 달을 더 그는 계속해서 이 작품 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작업은 완 전히 마쳐진 것으로 판단이 되었습 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작업 도 구를 치우지 않고 계속 천장을 응시 하면서 그 장소를 맴돌았습니다. 다 시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 다. 선생님 이제는 정말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미켈란젤로는 이 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내 눈에는 끝났는데 주님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지"
주님 보시기에는 어 떨지 모르지"
이것이 바로 장인 정 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걸작을 낳은 일종의 프로 정 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적 용어를 빌린다면 이것은 철저한 청지기 정신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청지기 정신' 11월은 한 해를 결산하는 달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우리의 일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라도 우리는 지나온 시절을 종종 되 돌이 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 지막 후회 없는 결산을 위한 일종의 중간 결산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작 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그 런데 인생을 결산할 때 중요한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관 점에서 내 인생을 평가해야 하느냐 인 것입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인생 을 평가해야 할 것이냐는 물음입니 다. 1세기의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 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체험했 고 또 성령의 풍성한 은사들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자라지 못했고 그 사회 속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 들 사이에는 끝없는 분열과 불화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이 전진하지 못하고 있 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 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자 기들의 인생에 대한 '냉정한 결산'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되 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메시 지를 씁니다. 자 고린도 교인들에게 필요했던 인생의 중간 결산 우리에 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인 생이 지금 결산되어야 한다면 어떤 관점에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결 산될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바울 사도는 자기의 관점에 서 본 결산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하 다고 말합니다. 나의 관점에서만 본 결산 그것은 올바른 결산이 될 수가 없다고 바울은 가르칩니다. 자 3절 에 보시면요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합 니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 니"
한 번 따라서 해 봅시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자 기의 인생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겠 다는 그런 선언이 아닙니다. 판단 은 필요한데 나의 관점에서만 본 나 에 대한 판단 그것은 적합하지 않다 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 의 그 지렛대, 자기의 판단의 기준 만을 가지고 스스로를 판단할 때 우 린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언제나 극단적인 두 개의 경향에 빠 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의 극단은 뭐냐하면 자학이에요 자학 이것은 지나친 과도한 자기 비판의 결과라 고 할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 만 사람이 지나친 자기 비판을 하게 되고 자학에 빠지게되면 몇 가지 문 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상실하게 됩니 다. 다시 재기할 수 없어요 자존감 이 상처를 입고 자신이 무너지는 사 람들은 인생을 향한 다른 도전이 시 작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런 의미에서 자학은 인생의 결코 어떤 복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또 하나의 극단적인 자기 판단이 있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교만' 지나치게 과도한 자기 사랑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흔히 이런 판단 속에 빠지는 사람들은 거 짓된 자기 허상을 바라보고 자기 실 제 모습이 아니라 허상의 이미지 그 이미지를 설정해 놓고 그것이 자기 라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면 되지도 못하고 된 줄 로 착각하는 사람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굉장히 이상적 인 인간인 것처럼 판단하고 착각 속 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일종의 나르시스적인 인간상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여학 교 선생님 한 분이 학생들에게 나르 시즘을 설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르시즘이란 단어는 본래 희랍신화 에 나오는 나르시서스라는 어떤 청 년에 대한 얘기로부터 비롯된 것인 데 이 청년이 깊은 숲 속에 들어갔 다가 은빛 찬란한 고요한 호수하나 를 발견합니다. 호수에 비친 자기모 습 그것이 자기 모습인 줄 모르고 이 청년은 '야 참 아름답구나' 하고 호수에 비친 사람과 사랑에 빠집니 다. 그래서 그 호숫가를 떠나지 못 하고 계속 맴돕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아의병 자기를 사랑하는 병 일수 가 있다. 이렇게 설명을 했더니 어 떤 여학생이 손을 들고 '선생님 제 가 아무래도 그 병에 걸린 것 같아 요' 그래서 왜 그러니 하니까 '아침 에 거울을 보면 황홀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선생님 가라사대 '그것은 자 애병이 아니라 착각이라는 병이란 다' 그런 착각 속에 인생을 사는 사 람들이 종종 있어요 허상의 이미지 를 자기 이미지라고 착각하는 경우 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 단 이런 판단 속에 빠진 사람은 자 기 인생에 개선이 불가능해요 성숙 이 불가능합니다. 자기 약점을 성청 하지 못하는 사람 자기 앞에 정직하 게 직면해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잘못이나 결점을 고치면서 발전해 나갈 수가 없잖아요 이런 사람일 수 록 이웃에 눈에 있는 티를 보는 일 에는 민감하지만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일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 절대로 발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자기 판단 그것은 유해하다는 것을 알았 어요 자기 판단의 오류, 인간 판단 의 주관적 그 오류를 충분히 인식하 고 있었던 바울 사도는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자 바울의 고백 은 계속됩니다. 4절 다같이 읽어보 겠습니다. 본문의 4절 다같이 읽겠 습니다. 시작!
"내가 자책할 아무 것 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 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내 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자책할 어떤 것을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지 만 그렇다고 내가 의롭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내가 아무리 정의롭다고 스스로 주장해도 그것으 로 내가 의롭다는 마지막 판단을 받 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주관적 판단의 오류성을 충분히 인 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 다. 내 인생의 판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만 나를 판단하는 것 그것은 매우 위험할 수기 있습니 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의 관점에 서 본 내 인생의 결산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로 바울 사도는 타인의 관점에서 본 결 산도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 합니다. 타인의 관점에서 본 내 인 생의 결산 그것도 바람직하지 못하 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이웃의 나를 향한 충고에 귀를 열고 들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충고를 도무지 못 듣 는 사람이 있죠 이 사람 자라갈 수 가 없습니다. 잠언에 보면 '충고의 유익' 이 충고의 아름다운 축복에 관한 교훈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웃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 들을 줄 아는 귀, 복된 귀입니다. 복된 인생 입니다. 이 잠언서에 보면 구약에 잠언 뿐 만 아니라 여러 군데 보면 모사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죠 '모사' 이 모사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우리 말 뉘앙스로는 아주 안 좋게 들려요 그렇지요 '모사' 그러면 무슨 이상한 일을 꾸미는 사람처럼 들립니다마는 성경에 모사가 많으면 그 사람은 지 혜로운 사람이다 이 모사라는 말이 영어 성경 번역에 보시면 counselor 라고 되어 있어요 'counselor 상담 자' 내 약점을 알면서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따뜻하게 내 마음을 열고 나를 세워줄 줄 아는 이런 위 로자 이런 충고자 이런 격려자 이런 counselor 친구들을 내 인생에서 가 진 사람 행복한 사람이에요 사랑하 시는 여러분! 충고는 필요한 것입니 다. 이웃의 관점에서 내 인생에 대 한 그 맹목성을 진단하고 비판할 때 우리는 겸허히 귀를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 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참고 사항일 뿐 내 인생에 대한 마지막 판단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이 잘못될 수가 있는 것처럼 종종 이웃 들의 나를 향한 판단도 거기 바이어 스가 있어요 거기도 편견이 있을 수 가 있습니다. 나를 향한 이웃의 판 단 그것은 결코 마지막 판단의 증거 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판단 할 때도 그래서 참 조 심해야 합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 야 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판단의 악을 경계합니다. 판단하지 말라, 비 판하지 말라, 너희가 이웃을 비판하 는 비판으로 도리어 비판을 받을 것 을 각오하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로마서14장은 판단의 장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여러분 이 판단에 대한 레슨을 공부하고 싶으시면 로마서 14장을 공부해 보세요 우리는
"서로 판단하지 말자 우리가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말자"
판단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깨져서는 안 된다 왜 냐하면 판단에는 항상 편견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도 심히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어떤 여 집사님의 얘기를 들었어요 듣고 얼마나 재미 있었는지 하루종일 웃었는데 여러분 은 웃을지 안 웃을지 모르겠어요 어 여 집사님이 미국 회사에 다니시는 분인데 상당히 출세해서 높은 지위 에 까지 올라갔어요 그래서 여행을 자주 하시는 분이에요 비행기를 타 고 많이 다니시는 분이십니다. 출장 을 다니시는데 어떤 공항에 도착했 을 때 비행기 연결이 잘 안 되자 되 지 않아서 시간이 좀 늦어졌다 고해 요 비행기 시간이 출발 시간이 좀 지연이 된 겁니다. 그런데 이분은 이런 일에 익숙해 있어서 항상 준비 를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자기 핸 드백에다가 늘 책을 갖고 다녀요 그 래서 비행기가 늦었구나 뭐 조바심 하지 않고 느긋하게 마음먹고 다리 쭉 뻗고 핸드백에서 자기가 가져온 책을 가져다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또 이런 때를 대비해서 핸 드백에다 늘 이분은 치즈 크랙커를 가지고 다녔다고 해요 그래서 책을 보면서도 치즈 크랙커를 꺼내놓고 책을 한참 보면서 독서 삼매경에 들 어갔습니다. 그러다 뭘 좀 씹고 싶 어 가지고 어 자기가 가지고 다니는 치즈 크랙커 비스킷 같은 것이 이제 다섯 개가 들어 있었대요 그래서 그 걸 먹으려고 손을 뻗치려고 하는데 그때 바로 누가 옆에 와서 앉더래요 그러니까 옆에 자기 핸드백이 있으 니까 고 의자는 남겨놓고 옆에 와서 어떤 신사가 앉더래요 그래서 와서 앉는 모양이다 했는데 앉자마자 얼 마 안 돼서 자기가 놓은 그 치즈 크 래커 하나를 그 신사가 집어 먹더래 요 야... 이상한 사람 다 있다 그 다음부터는 자꾸만 책으로 신경이 안가고 옆에 사람에게 신경이 쓰이 는 것이에요 그래도 하나가 먹고 싶 었던 모양이다 그냥 놔두고 그 다음 에 자기가 두 번째 것을 먹었대요 그러니까 세 번째 것을 먹더래요 또 양해도 구하지 않고 그냥 먹어버렸 어요 그래서 자기도 네 번째 것을 먹었습니다 이 때 하나밖에 안 남았 는데 하나밖에 안 남으니까 자꾸 이 게 신경이 쓰이더래요 그래 책으로 신경이 안가고 자꾸만 옆에만 보는 거에요 근데 아니나 다를까 다섯 번 째 것을 낼름 이 신사가 짚더래요 그러더니 그게 두 개가 요렇게 붙어 있는 건데 그 가운데 반을 딱 뜯더 니 놔두고 자기가 반쪽을 다 먹더래 요 아 그래 속으로 열 받은 거에요 너무나 괘씸해 가지고 사람이 도대 체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 자기는 반 쪽 탁 집어 갖고 옆에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싸움을 걸 순 없고 불쾌 하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자기 핸드백에서 탁 팽개쳐 버렸어요 그 리고 한참 있다가 조금 있다가 이제 비행기시간 아나운스멘트가 광고가 나와서 비행기 안으로 딱 들어가는 데 들어가고 나서도 분이 새겨지지 않더래요 세상에 그렇게 무례한 사 람이 어디 있나 그래 조금 시간이 지나가고 인제 진정을 하면서 자기 핸드백을 딱 열었답니다. 열어보니 까 왠 걸 그 자기 치즈 크랙커가 그 대로 다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부인이 신사걸 집어 잡수신 겁니다. 그러고 나니까 갑자기 그 신사가 다 르게 생각이 되드래요 야 얼마나 멋있는 신사에요 자기가 집어 먹는 동안에 한 마디 얘기도 않고 마지막 에 하나 남은 그 치즈 크랙커를 반 을 딱 잘라서 먹으라고 줄 수가 있 었던 그 여유가 야! 진짜 젠틀맨 이 로구나 젠틀맨 조금까지의 열 받았 던 그 인간 하다가 야! 역시 참 신 사로구나 여러분 사람의 판단이라 는 것은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나 쉽게 우리 가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을 속단해서 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비 록 나쁘게 평가하더라도 그것 때문 에 내 인생을 끝난 것처럼 좌절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조금 칭찬했다고 해서 너무 뭐 내가 정상에 도달한 것처럼 그렇게 흥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때로 나를 향한 다른 사람의 판단에 지나 치게 일희일비하는 경향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건강한 인생은 힘든 것입 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건강한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 한 것이 있다면 여러분 우리 인생의 판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판단을 지나치게 의존하지 마십시오 귀를 기울여 들으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중요한 마지막 판단으로 수용할 필 요는 없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 다. 자 오늘 본문에 읽어보시면 3절 말씀이 그 말씀이죠? 3절 말씀 다같 이 읽겠습니다. 3절 다같이 시작!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네 너희에 게나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이 무시할 일이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뭐라 그랬습니까? 작은 일이라 귀담 아 들어야 하고 참고할 필요가 있습 니다. 고치면 내게 유익입니다. 그러 나 그것은 내 인생에 대한 마지막 선언일 수 없어요 이웃들이 내 인생 에 대한 결정을 할 수는 없는 것입 니다. 소중하게 참고하십시오 그러 나 내 인생에 마지막 선언처럼 이웃 의 판단을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 떤 사람의 관점에서 내 인생은 판단 되어야 마땅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강조하시는 그리고 바울이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관점을 가 지고 내 인생을 결산하자는 것입니 다. 그리스도의 관점, 사랑하는 주님 의 시각과 관점에서 내 인생을 보십 시오. 주님의 판단으로 나를 판단해 보십시오. 이것이야말로 내 인생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어 야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관점에 서의 결산 바로 이 결산을 주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요구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자 4절을 다시 한 번 읽 어보겠습니다. 한 번 더 4절 다같이 시작!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 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 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 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자 마지막 부분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죠? 뭐라 그랬어요?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다같이 '다만 나를 판단하 실 이는 주시니라' 누가 나를 판단 해야 마땅합니까? 주님이 십니다. 내 삶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신 바로 그 분, 나를 창조하신 그 분, 나를 섭리하시는 그 분 마지막날 나 를 심판하실 그 분, 그 분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그리고 가장 정확하 게 그리고 가장 공정하게 나를 판단 하실 주님 인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 그 판단의 마지막 때를 정확하게 그 분은 정하고 계십 니다. 그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그분 이 친히 여러분과 저를 판단하실 것 입니다. 그때는 가까워오고 있습니 다. 자 본문의 5절을 같이 한 번 읽 어보실 까요? 5절 다같이 시작!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 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 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 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아멘 때가 이르기 전 그 마지막 판단의 때가 오기 전에 너무 서둘러 내 자 신이 자신을 판단하거나 이웃들의 판단을 마지막 판단처럼 수용할 필 요는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때에 주께서 친히 판단하실 것입니 다.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들 어내고 그리고 내 마음의 속 깊은 뜻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분은 겉 으로 드러난 그 행동만 보신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했 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었 던 내 행동에 모티브와 동기까지 살 피시는 바로 그분, 그분만이 나에 대한 마지막 판단자가 되실 것입니 다. 그리고 그 때 그분이 그렇게 완 벽하게 판단하시는 그날 각 사람에 게 하나님께로부터 뭐가 있으리라 그랬어요? 칭찬이 있으리라 여기 참 주님의 중요한 의도를 여러분이 읽 어보셔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주 님의 자녀들을 판단하실 때 그 의도 는 처벌에 있지 않습니다. 잘 들으 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판단 하실 때 그분의 마지막 의도는 처벌 이 아니에요 우리를 처벌하기 위해 서 내 마음의 동기를 살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대한 파괴적인 판단, 파괴적 인 비판, 그 정죄,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이 미 그 심판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 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느니 라 믿으십니까 여러분? 정죄 함이 없어요 자 우리가 잘 아는 요한 복 음 5장 24절에 보시면
"
내가 진실 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 을 듣고"
아직도 이 구절 못 외어 요? 간첩이에요? 자 내 말을 듣고 그 다음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 는 세 가지 약속 첫째는 뭐에요? '영생을 얻었고' 그렇습니다. 복음 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은 모든 사람 들 영원한 생명을 이미 얻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약속 은 뭐에요?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 나니 정죄의 심판 형벌의 심판에 도 달할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죄 사 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결코 주님이 그들을 마지막 형벌의 자리에 던지지 않습니다. 그럼 여기 서 말하는 판단은 뭘까요? 마지막 주께서 주의 자녀들을 판단하실 때 그 판단의 의도는 동기는 어디에 있 다구요? 칭찬에 있습니다. '칭찬할 것 없나' 칭찬할 것 없나? 여러분, 부모님 여러분! 우리 자녀 들을 키울 때도 칭찬할 걸 좀 찾아 보셔야 되요. 네 말짱... 그냥 밟아 버릴 것만 보이죠? 야단 칠 것만 보 여요. 칭찬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칭찬할 만한 뭐가 없을까? 칭찬을 찾고 계신 주님, 그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의도를 읽을 수가 있어야 합 니다. 그분의 마지막 판단의 의도, 칭찬에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일관 성 있는 성경의 가르침가운데 하나 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보시 면
"너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 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다시 말하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세 가 지 약속을 하셨어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주님 다 시 오시는 그날 주의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주고 싶어하십니다. 첫째가 뭡니까? 칭찬이고 두 번째는 영광 이고 세 번째는 존귀입니다. 그 분 은 우리를 칭찬하고 싶어하십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고 싶어하세 요. 우리를 존귀케 하고 싶어하시는 주님 그래서 그 분은 우리의 삶 속 에 칭찬할 거리를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때 주님 앞에 서서 우리가 칭찬 받으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주께서 우리의 삶을 칭찬하실 때에 칭찬할 만한 가장 중요한 quality 가장 중요한 요소로 주님이 찾고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성실성이라고 할 수 가 있습니다. 자 본문의 2절, 2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장 2절 다 같이 시작!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자 맡은 자 들에게 구할 것이 뭐에요? '충성이 다' 바꿔 말하면 충성이라는 단어는 성실성이라는 낱말로 바꾸어도 조금 도 상관이 없습니다. 영어로는 이게 faithfulness, faithfulness, 충성으로 번역해도 괜찮고 성실함으로 번역해 도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주께서 여러분과 저의 삶에서 제일 보고 싶 어하는 것 제일 찾고 싶어하는 요소 그것은 맡겨 주신 것들에 대해서 우 리가 얼마나 성실하게 임하고 있느 냐? 그 성실성을 보고 싶어하는 거 에요. 충성스러움, 성실함, A.T. Robertson 이라는 유명한 성서 원 어학자는 여기서 충성이라는 단어를 그가 정의하기를 여기서 말하는 충 성이라는 단어는 공개적으로 인정받 을 수 있는 성실함이다. 자타가 공 인하는 '아 저 사람 정말 성실하지' 자타가 나나 다른 사람에 의해서 함 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성실성 이 성실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말 이에요 주께서는 이 성실함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보시자 마 자 그것을 칭찬하시고 싶어하시는 주님 그 주님이 한 해를 결산하는 이 마당에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런 성실함의 요소들을 보고 계실 까요? 금년 한 해 동안도 주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맡겨 주 셨습니다. 시간을 맡겨 주셨습니다. 똑같은 시간 1년, 열 한 달을 지나 고 우리는 열 두 번째 달을 맞이합 니다. 그러나 주께서 맡겨주신 시간 이 타임을 어떻게 성실하게 관리하 며 한 해를 사셨습니까? 탈란트를 주셨습니다. 재능을 주셨어요 그 재 능에 종류와 취향은 다 다르지만 재 능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다 른 재능이 있을 따름입니다. 자 주 님이 마지막 판단하실 때에 너는 재 능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것을 인해 서 상급을 주시지 않아요 맡겨주신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성실하게 내 삶의 장에 임했느냐? 그것이 마지막 판단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자 금 년 안에 주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많 고 적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 모두에 게 어떤 재물을 맡겨주셨습니다. 재 물에 대한 관리 한 해 동안 맡겨주 신 재물을 얼마나 성실하게 우리가 관리했을까요? 오늘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주시는 시련의 이유가 어 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민족 의 맡겨주신 재물과 축복에 대한 불 성실성 과소비와 낭비와 그리고 쾌 락주의 속에 흥청망청 했던 이 민족 을 향한 하나님의 시련은 차라리 당 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 까? 우리는 새롭게 주님 앞에 서야 할 시간입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이 한 해를 우리는 살았을까요? 자 그 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본문에서 주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특별히 한 가지 맡겨주신 것에 대한 성실성을 특별히 주님은 주목하십니다. 무엇 일까요? 1절 우리 다같이 읽어보시 겠습니다. 본문의 1절, 4장1절 다같 이 시작!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로 여길지어다"
그리스도의 일군 들 에게만 맡겨주신 것이 있습니다. 이 것은 불신자에겐 주시지 않은 거에 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만 주의 백 성들에게만 그리스도의 일군 들 에 게만 맡겨주신 중요한 것 하나가 있 습니다. 뭐라고 말했습니까? 1절에 하나님의 비밀 비밀을 맡겨 주셨다 '하나님의 비밀' 'mystery'라고 되 어 있는데 '미스테리' 하나님의 비 밀, 이 비밀이 뭘까요? 바울 서신에 보면 바울이 자주 이 비밀이라는 단 어를 사용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이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변화 시켜주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었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우 리에게 선물로 주었어요 얼마나 이 말씀을 붙들고 사셨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좁은 의미에서는 이 하나님 의 말씀가운데서 십자가의 복음을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 음' 자 고린도 전서 지금 우리가 4 장을 보고 있습니다마는 2장을 한 번 돌아가서 보세요 고린도 전서 2 장 7절입니다. 고린도 전서2장 7절 입니다. 다같이 읽을까요? 2장7절 시작!
"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 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
이 비밀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것 때가 찬 어느날 하나님이 드디어 역사 속에 계시하신 비밀 자 이 비밀스러운 지혜의 정체는 그 다 음절입니다. 8절, 고린도 전서 2장 8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 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 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 하 였으리라"
복음입니다. 예수께서 십 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 여러분과 저 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기 위해 십 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앞에 나와 여기 나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마다 죄사함을 받습니다. 믿으십니 까? 그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 을 영접하는 사람마다 새로운 생명 을 얻습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 받 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새로운 생명 을 가지고 살 수가 있다는 사실, '복 음 이 'gospel 이 good news 복음 내 운명을 변화시키고 내 삶을 변화 시켰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 복 음을 맡겨 주셨어요 이 복음 한 해 동안 이 복음을 맡은 자로 어떻게 살아 오셨습니까? 이거 우리의 결산 그리스도인의 평가에 있어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평가의 한 중요한 제목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 는 복음을 맡은 자로 어떻게 살아왔 는가? 복음 증거 하셨습니까? .또 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셨습니까? 나를 변화시켜 주셨던 하나님의 말 씀 자 이 말씀을 따라 계속 살아 오 셨습니까? 이 말씀을 전하셨습니 까? 성경공부는 매우 필요한 것입니 다. 그러나 성경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늘 빠지기 쉬운 한 가지 함정이 있어요 성경공부 조금하면 지식이 생겨요 그 지식을 가졌을 때 에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것이 아는 것이 내 삶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습 니다. 아는 것이 내 수준이라고 착 각해요 그렇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과 상관없이 내 삶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동떨 어진 자리에서 이 한 해를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 얼마나 말씀에 응답 하는 그 말씀을 성취하는 삶을 살았 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성실하다고 말할 때에 그 '성'이라는 단어가 한 문으로 말씀 언 변에 이룰 성자이지 요? '말씀대로 이룬다' '말씀대로 이 룬다' 성실의 반대는 까꾸로 읽으면 되요 실성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 씀을 붙들고 얼마나 그 말씀 앞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 왔다고 고백할 수가 있을까요? 때로 말씀을 순종하 는 것이 왜 어렵다고 느껴지십니까? 하나님 말씀 순종하고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이 때로는 힘겹고 버겁게 느 껴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 님의 의도를 몰라서 그래요 왜 그런 줄 아세요? 말씀을 주신 이유, 나의 축복을 위한 것입니다 일감을 맡기 신 이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칭찬 칭찬하고 싶어 하는 주님 일감을 맡기신 거에요 때로 우리는 그 하나 님의 의도를 살피지 못하고 주님을 향한 봉사의 장에서도 얼마나 자주 원망과 불평으로 이 한 해를 살아 왔는지요? 우리 나라 옛날 야사에 이런 얘기가 나와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시골 부자가 자식이 없었습 니다. 그래서 입양을 했는데 아들 둘을 입양을 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이십이 넘었습니다. 이십이 넘자 이 제는 그 아들들이 독립을 시켜달라 고 요청을 합니다. 아버지 우리도 한양가서 과거 시험도 치르고 벼슬 도 하고 싶습니다. 우리 좀 떠날 수 있도록 좀 해 주십시오 하도 졸라대 니까 아버지가 마침내 허락을 하셨 어요 내일이면 이제 떠나는 날입니 다. 그런데 내일 떠나기 전날 두 아 들을 불러 놓고 이 아버지가 아 조 금 있으면 겨울이 오는데 너희들 떠 나기 전에 오늘 저녁 마지막 좀 일 을 해달라 하고 새끼를 좀 꼬아 달 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큰 아들이 불평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친자식이 아니라 그렇지 이 마지막 떠나기 전날 저녁까지 이렇게 일을 시키실 필요가 뭐가 있다는 말이냐 이를 갈면서 뭐 억지로 적당히 일을 했겠죠 그러나 둘째아들은 나를 지 금까지 키워 주신 아버지 참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정성을 다해서 새끼 를 꼬았답니다. 이튿날 아침 출발의 즈음해서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러 내십니다. 그리고 하인에게 광을 열 고 가마니 하나를 가지고 내오라고 그러더래요 가마니 안에는 은화가 돈이 가득 들어 있는데 그 은화를 꺼내게 한 다음에 두 아들보고 하는 소리가 너희들 어제 저녁 정성을 다 해서 꼰 그 새끼 꼰 만큼 거기에다 가 돈을 은전을 꿰어 갖고 출발하도 록 하라 적당히 어제 밤에 .불평하 고 원망했던 그 큰아들은 얼마나 후 회하는 시간을 가졌을까요? 여러분 주께서 일감을 맡기실 때 주님의 의 도를 아셔야합니다. 나를 칭찬하고 싶어하시는 주님 마지막 심판의 날 주 앞에 섰을 때 칭찬과 영광과 존 귀를 가지고 그 앞에 세워지기 위하 여 오늘 조금 버겁게 느껴지는 일감 을 맡기셨을 때 불평하지 마십시다. 기쁨으로 주님의 의도를 읽고 내 인 생의 남은 여로 충성을 다 할 수가 있다면 성실하게 내 삶의 장에 설 수가 있다면 마지막 그날 우리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있을 것입니 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은 결 산을 생각해야할 순간입니다. 기도 하십시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행의 죄/고린도전서 6:9-20 (0) | 2021.11.29 |
---|---|
음행의 죄/고린도전서 5장 (0) | 2021.11.29 |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 신년 통독 사경회- (0) | 2021.11.29 |
통독용 이사야서 요약본 (0) | 2021.11.29 |
숭실대 기독교학과 정기학술심포지움 발표논문 (0) | 2021.11.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