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n>화란개혁교회의 장로직제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화란개혁교회는 역사적으로 제네바의 존 칼빈에게 직접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교회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회보다도 칼빈의 가르침과 사상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장로교회도 칼빈의 신학체계를 그 기본으로 하고 있는 점에 있어서는 개혁교회와 동일하지만, 실제 교회 형성에 있어서는 칼빈에게서 배웠던 존 녹스에 의하여 스코틀란드에서 발전된 “스코틀란드 장로교회”에 직접적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교회 사이에 교리나 기본신학면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교회제도나 예배형태 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개혁교회에서는 서리집사나 권사제도가 없으며, 또한 성가대가 없다든지 예배 시에 시편찬송을 부른다든지 하는 것도 눈에 띄는 차이들이다.
현재의 화란에는 여러 다양한 “개혁교회” 교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먼저 언급해야만 하겠다. 지금 한국에서는 “화란개혁교회”라고 하면 마치 하나의 단일한 교단이 존재하는 듯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큰 착각이다. 한국장로교회라고 할 때 어느 교단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신학적 입장과 교회 실태가 많이 다른데, 마치 하나의 한국장로교회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잘못임과 같다. 현재 화란에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것만 따져서 대략 여섯, 일곱 개의 개혁교회가 있다. 영어로는 구별이 잘 안되고 화란어로도 똑같은 경우도 있기 대문에, 신학교의 주소와 신학교 교수들, 교단 지도자들을 일일이 물어서 확인하지 않으면 실수하기가 쉽다. 이들 교단 가운데서 큰 교단 둘은 이미 오래 전에 신학이 자유화되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동성연애가 그들 교단 교회에서 오래 전부터 용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대다수 화란개혁교회의 실정일진대 이들 교회에게서 장로직제의 운영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필자는 과거의 개혁교회의 전통을 잘 지키고 있는 전통적 개혁교회 몇 교단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우선 화란 개혁교회는 신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교회운영 면에 있어서도 잘 정비되고 체계화되어 있어서 직분들 사이의 구별이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교회에는 세 직분이 있는데, 곧 “말씀의 수종자”(다르게는 “설교자”라고도 불리는데 목사를 뜻한다)와 “장로”와 “집사”이다 (교회헌법 제 2조).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합법적으로 부름 받기 전에는 위 직분을 수행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제 3조). 따라서 설교자의 직분과 장로의 직분은 분명히 구별된다. 화란개혁교회에서는 장로가 설교하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설교란 합당한 신학교육을 받고 노회의 시험에 합격하고 청빙을 받아 안수 받은 “말씀의 수종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직분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을 경우에 예외적으로 신학 교육을 받지 않고 설교자가 되는 길이 열려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반드시 총노회의 허락을 받아 노회에서 시험을 치러 합격할 경우에 한하며, 그럴 경우에도 일정 기간을 정하여 “강도사”로서 시험해본 후에 노회가 최종결정한다 (제 8조).
목사가 없는 교회이거나 설교자를 구할 수 없을 때에는 장로가 강단에 올라가서 다른 목사의 설교를 대신 “낭독”한다. 이런 경우의 예배를 소위 “낭독예배”라고 부르는데, 어떤 교단에서는 설교자가 매우 부족하여 태반이 넘는 교회에서 “낭독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때 장로들이 여럿 있을 경우 그 중에서 경건하며 낭독을 잘하는 분이 올라가서 낭독하는데, 사전에 연습을 많이 해서 제법 손짓도 하며 억양도 넣고 해서 목사의 설교 못지 않게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화란에서는 오래 전부터 출판사에서 정기적으로 좋은 설교들을 모아서 출판하여 낭독예배를 도와주고 있다. 필자가 참석한 어떤 예배에서는 무려 7,80년전의 어떤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낭독하는데, 그 내용의 깊이와 경건함 때문에 은혜를 많이 받은 적이 있다.
화란개혁교회에 있어서 장로의 주요한 직무 중의 하나는 심방이다. 한국교회에서는 교역자들이 주로 심방하지만 화란개혁교회에서 심방은 일차적으로 장로의 직무에 속한다. 물론 목사도 심방을 하지만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한하고 가능한 한 설교 준비와 교리교육에 시간을 투자하도록 교회에서 배려해주고 있다. 따라서 교인관리는 교회에서 구역을 나누어 각 구역마다 장로 1인과 집사 1인이 배정되어서 자기 구역 식구들의 영적 상태와 생활 상태를 돌아본다. 장로는 1년에 두 차례씩 정기 심방을 하고 그 외에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심방하여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당회에 보고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대개는 교제와 격려의 기회로 삼는다.
화란개혁교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장로직의 임기제이다. 이 제도는 화란에 개혁교회가 형성되면서 얼마 안되어서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 당시 장로들의 지나친 권력행사를 막기 위해서 도입되었다. 장로는 4년 정도 (그 기간은 개교회의 규정에 따라 다르다) 봉사 후에 장로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다시 장로로 피택될 수 있다. 투표방법은 먼저 당회에서 장로 후보를 2배수 공천하여 교인으로 하여금 투표로 선택하게 한다. 이 투표에서 당선되면 다시 장로직을 수행할 수 있다. 그 사이의 1년 동안은 휴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장로직에서 물러나서 평신도로 지내게 된다. 필자가 화란에 있을 때 평소에 알고 지내던 장로님을 길에서 만나 “장로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더니, 자기는 이제 장로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한국에서 온 필자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장로직을 명예직으로 또는 권세직으로 생각지 않고 순수히 봉사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번 장로직을 맡으면 열심히 자기 구역 식구를 돌아본다. 그래서 한 4년간 봉사하고 나면 스스로 원해서 쉬고 싶어한다. 그래서 1년이 지나고 나서도 다시 장로 후보로 선출되는 것을 사양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그래서 필자가 다녔던 그 개혁교회에서는 지금 장로지원자가 부족하여 은퇴하신 신학교 교수님들이 장로로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먼 꿈나라 이야기 같지만 지금도 12시간 정도만 비행기로 날아서 가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이다.
물론 화란개혁교회의 장로임기제를 보면서 필자는 이것이 너무 기능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보았다. 과연 성경에서 장로직에 대해 임기제로 말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했던 화란개혁교회의 조상들이 이러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이룩한 바 공로는 대단히 컸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요, 자신을 희생해서 성도를 봉사하는 직분이라는 것을 교회에서도 그대로 실천해왔던 것이다. 주일 날 예배를 마치고 나면 학생들을 초청해서 바하의 곡을 들려주면서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즐겁게 담소하던 그 친절하신 장로님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장로님들을 생각할 때마다, 아무런 외적 권위는 없어 보이고 어깨에 힘주는 것도 없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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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적 분별력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화란개혁교회는 역사적으로 제네바의 존 칼빈에게 직접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교회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회보다도 칼빈의 가르침과 사상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장로교회도 칼빈의 신학체계를 그 기본으로 하고 있는 점에 있어서는 개혁교회와 동일하지만, 실제 교회 형성에 있어서는 칼빈에게서 배웠던 존 녹스에 의하여 스코틀란드에서 발전된 “스코틀란드 장로교회”에 직접적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교회 사이에 교리나 기본신학면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교회제도나 예배형태 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개혁교회에서는 서리집사나 권사제도가 없으며, 또한 성가대가 없다든지 예배 시에 시편찬송을 부른다든지 하는 것도 눈에 띄는 차이들이다.
현재의 화란에는 여러 다양한 “개혁교회” 교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먼저 언급해야만 하겠다. 지금 한국에서는 “화란개혁교회”라고 하면 마치 하나의 단일한 교단이 존재하는 듯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큰 착각이다. 한국장로교회라고 할 때 어느 교단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신학적 입장과 교회 실태가 많이 다른데, 마치 하나의 한국장로교회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잘못임과 같다. 현재 화란에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것만 따져서 대략 여섯, 일곱 개의 개혁교회가 있다. 영어로는 구별이 잘 안되고 화란어로도 똑같은 경우도 있기 대문에, 신학교의 주소와 신학교 교수들, 교단 지도자들을 일일이 물어서 확인하지 않으면 실수하기가 쉽다. 이들 교단 가운데서 큰 교단 둘은 이미 오래 전에 신학이 자유화되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동성연애가 그들 교단 교회에서 오래 전부터 용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대다수 화란개혁교회의 실정일진대 이들 교회에게서 장로직제의 운영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필자는 과거의 개혁교회의 전통을 잘 지키고 있는 전통적 개혁교회 몇 교단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우선 화란 개혁교회는 신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교회운영 면에 있어서도 잘 정비되고 체계화되어 있어서 직분들 사이의 구별이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교회에는 세 직분이 있는데, 곧 “말씀의 수종자”(다르게는 “설교자”라고도 불리는데 목사를 뜻한다)와 “장로”와 “집사”이다 (교회헌법 제 2조).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합법적으로 부름 받기 전에는 위 직분을 수행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제 3조). 따라서 설교자의 직분과 장로의 직분은 분명히 구별된다. 화란개혁교회에서는 장로가 설교하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설교란 합당한 신학교육을 받고 노회의 시험에 합격하고 청빙을 받아 안수 받은 “말씀의 수종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직분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을 경우에 예외적으로 신학 교육을 받지 않고 설교자가 되는 길이 열려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반드시 총노회의 허락을 받아 노회에서 시험을 치러 합격할 경우에 한하며, 그럴 경우에도 일정 기간을 정하여 “강도사”로서 시험해본 후에 노회가 최종결정한다 (제 8조).
목사가 없는 교회이거나 설교자를 구할 수 없을 때에는 장로가 강단에 올라가서 다른 목사의 설교를 대신 “낭독”한다. 이런 경우의 예배를 소위 “낭독예배”라고 부르는데, 어떤 교단에서는 설교자가 매우 부족하여 태반이 넘는 교회에서 “낭독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때 장로들이 여럿 있을 경우 그 중에서 경건하며 낭독을 잘하는 분이 올라가서 낭독하는데, 사전에 연습을 많이 해서 제법 손짓도 하며 억양도 넣고 해서 목사의 설교 못지 않게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화란에서는 오래 전부터 출판사에서 정기적으로 좋은 설교들을 모아서 출판하여 낭독예배를 도와주고 있다. 필자가 참석한 어떤 예배에서는 무려 7,80년전의 어떤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낭독하는데, 그 내용의 깊이와 경건함 때문에 은혜를 많이 받은 적이 있다.
화란개혁교회에 있어서 장로의 주요한 직무 중의 하나는 심방이다. 한국교회에서는 교역자들이 주로 심방하지만 화란개혁교회에서 심방은 일차적으로 장로의 직무에 속한다. 물론 목사도 심방을 하지만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한하고 가능한 한 설교 준비와 교리교육에 시간을 투자하도록 교회에서 배려해주고 있다. 따라서 교인관리는 교회에서 구역을 나누어 각 구역마다 장로 1인과 집사 1인이 배정되어서 자기 구역 식구들의 영적 상태와 생활 상태를 돌아본다. 장로는 1년에 두 차례씩 정기 심방을 하고 그 외에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심방하여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당회에 보고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대개는 교제와 격려의 기회로 삼는다.
화란개혁교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장로직의 임기제이다. 이 제도는 화란에 개혁교회가 형성되면서 얼마 안되어서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 당시 장로들의 지나친 권력행사를 막기 위해서 도입되었다. 장로는 4년 정도 (그 기간은 개교회의 규정에 따라 다르다) 봉사 후에 장로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다시 장로로 피택될 수 있다. 투표방법은 먼저 당회에서 장로 후보를 2배수 공천하여 교인으로 하여금 투표로 선택하게 한다. 이 투표에서 당선되면 다시 장로직을 수행할 수 있다. 그 사이의 1년 동안은 휴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장로직에서 물러나서 평신도로 지내게 된다. 필자가 화란에 있을 때 평소에 알고 지내던 장로님을 길에서 만나 “장로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더니, 자기는 이제 장로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한국에서 온 필자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장로직을 명예직으로 또는 권세직으로 생각지 않고 순수히 봉사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번 장로직을 맡으면 열심히 자기 구역 식구를 돌아본다. 그래서 한 4년간 봉사하고 나면 스스로 원해서 쉬고 싶어한다. 그래서 1년이 지나고 나서도 다시 장로 후보로 선출되는 것을 사양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그래서 필자가 다녔던 그 개혁교회에서는 지금 장로지원자가 부족하여 은퇴하신 신학교 교수님들이 장로로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먼 꿈나라 이야기 같지만 지금도 12시간 정도만 비행기로 날아서 가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이다.
물론 화란개혁교회의 장로임기제를 보면서 필자는 이것이 너무 기능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보았다. 과연 성경에서 장로직에 대해 임기제로 말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했던 화란개혁교회의 조상들이 이러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이룩한 바 공로는 대단히 컸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요, 자신을 희생해서 성도를 봉사하는 직분이라는 것을 교회에서도 그대로 실천해왔던 것이다. 주일 날 예배를 마치고 나면 학생들을 초청해서 바하의 곡을 들려주면서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즐겁게 담소하던 그 친절하신 장로님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장로님들을 생각할 때마다, 아무런 외적 권위는 없어 보이고 어깨에 힘주는 것도 없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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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적 분별력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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