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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청교도란 어떤 자들인가?

by 【고동엽】 2021. 10. 22.

(진리의 깃발 1999년 6월호 1~6쪽의 내용을 요약하였습니다)


    옛 영국의 청교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자 이요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하나님의 지도하에 움직였던 자이다. 청교도의 첫 임무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요,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을 일삼았으며 하나님 말씀을 경건한 삶과 예배의 규범으로 삼았다. 

    청교도는 하나님의 집에 있어서 예전(order)을 가장 높이 여겼으나 사용함에 있어서 지극히 형식적이고 영혼을 파멸케 하는 미신적인 예전에 자신을 복종시키지 않았다. 청교도는 영역 안에서 지킬 수 있는 권위를 존중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위정자들에게 복종하는 체 하지는 않았다.

    청교도는 하나님의 모든 규례들을 마음을 다하여 받아드렸다. 물론 그 중에 어떤 것을 더 높이 간주하기도 했다. 기도에 많은 시간을 투자 하였고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쳤다. 기도에 있어서 청교도는 가장 가까운 자들, 가족들 및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였다.

    청교도는 하나님의 규례(ordinance of God)로서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성경읽기를 존중하였다. 그러나 성경 읽기를 설교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읽는 성경 말씀을 더욱 권위 있는 것으로 여겼지만 선포된 말씀이 더 효력이 있다고 보았다(but Word preaches of more efficiency). 청교도는 설교사역을 최고의 사역으로 간주하였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최고로 드높이고 인간을 낮추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헛되이 웃기는 이야기나 말 잔치가 쇠퇴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우세해질 때 인간의 모습은 감추어지고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커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더욱 사모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청교도는 준비된 명확함과 미숙한 게으름 사이를 구별할 수 있었다. 청교도는 명확성을 설교자의 최상의 은혜로 간주하였다. 이해와 열정 및 기억을 할 수 있게 하는 명백성이야말로 최상의 설교요 최고의 메시지라고 보았다. 그러나 교리나 이해 및 적용에 공헌하지 못하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았다. 청교도는 양심에 가장 근접하는 설교를 최고의 설교로 간주 하였다. 양심을 일깨우는 설교를 선호한 것이지 인격을 손상시키는 설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주일을 주님께서 정하신 날로 존중하였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겼다. 이날을 기억하려고 애썼으며, 집에서 준비하며 마음으로 지키려고 힘을 기울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온종일을 거룩히 지키려고 생각과 마음을 단속하였다. 그가 공 예배 시간에 들은 것은 사적인 삶에 적용하였다. 합법적인 오락조차도 이 날에 행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였으며 합법적이지 못한 것은 더욱 혐오스러운 일로 여겼다. 그러나 청교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의 재충전을 위하여 필요한 여가 활동을 가질 자유를 주셨다고 생각하였다.

    주님의 성찬은 영혼의 한 양식으로 간주 하였다. 그리스도와 가장 근접한 자리에서 만찬을 나누는 예식으로 성찬을 존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을 가장 정확하게 준비해야 할 예식으로 여겼다. 

    청교도의 우선적인 관심은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었으나 선한 행실이든지 아니면 직무상이든지 또는 사랑의 행위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시선을 잃지 않았다. 청교도는 교회 내에서 불명예스러운 짓들을 허용치 않기 위하여 애를 썼다. 청교도는 미신적인 행위들과 로마 카톨릭적인 금식일의 헛됨을 정죄하였다. 청교도는 카톨릭의 opus operatum(성례행위 그 자체가 은혜임을 강조하면서 화체설을 주장하는 미사 행위를 말함, 이에 비해 개신교는 opus operantis를 주장하는데 이것은 수찬자에게 임하는 영적인 은혜를 강조하는 상징적인 성례행위를 말함 –역자주)을 역겨워 하였다. 실제로 청교도는 성례행위 자체에 안주하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머물렀다. 

    청교도는 하나님께서 치리를 위하여 한 규칙을 남기셨다고 생각하였다. 즉 그것은 감독직에 의한 계급적인 정치제도라든지 사람들에 의하여 좌우되는 민주적인 제도가 아니라 장로에 의한 소수귀족정치(aristocratical by elders)였다. 올바른 권징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안녕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청교도는 장로들에 의하여 치리 되고 있는 교회가 가장 순결한 교회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장로가 없는 교회는 조직된 교회가 아니라고 했다.

    교회에서 완전성을 소망 사항이라기 보다는 추구되어 질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결점이 전혀 없는 교회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교회 안에 있을 수 있는 타락에 대해서는 개혁정신을 가지고 주의시키는 일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비록 교회에 부패성이 있을지라도 자신을 공 예배에서 분리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론 타락에 물들도록 자신을 허용한 것도 아니었다. 청교도는 유대인들이 성전을 신성시한 것처럼 교회당을 신성시하지 않았다. 청교도는 복음이 화려한 외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었다. 

    청교도의 가장 중요한 음악은 시편을 노래하는 것이었고 이 일을 통해서 목소리로 노래하는 일을 상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야 한다고 믿었다. 청교도는 감각적인 자극을 주는 음악을 배척하였다. 그러한 음악은 영적 성장과 깊이에 방해물이라고 생각하였다.

    청교도는 참된 종교를 존속시키는 한 부분으로서 위정자들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청교도는 권위와 위정자들의 야욕 사이를 구별하였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을 어 옳게 여겼다.

    청교도는 가정을 교회로 만들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말씀과 기도로 가족 식구들을 축복하였으며 최선을 다하여 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하였다.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하려는 것처럼 가족 식구들을 훈육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책망뿐 아니라 수치스런 일들을 억제하도록 교육하였다.

    청교도는 불의를 불경건함과 마찬가지로 혐오스런 것으로 알았고, 경건과 마찬가지로 공평성을 마음을 다하여 지켰다. 약속하는 일에 매우 신중을 기하였으나 실천에 있어서도 신중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한번 말한 것에 대하여는 약속만큼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했으며 자신의 죄에 민감하였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비참함에 동정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하나님의 자비가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으로 생각지 않았다.

    청교도는 이 세상의 것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신중하였다.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기 보다는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려고 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원하였으며 재물을 주신 하나님을 잊고 살지 않도록 과다한 것을 피하려고 했다. 습관에 있어서 청교도는 비싼 것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헛된 것을 원하지 않았다.

    청교도는 자신의 삶을 영적 전쟁에서의 삶으로 간주하였다. 그 전쟁에서 그리스도는 대장이시며, 십자가는 청교도의 깃발이요, 고난을 정복하는 자라는 것이 청교도의 대명사였다. 청교도는 모든 시대의 요지부동한 사람이요, 그리하여 사람들이 참된 종교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견이 불확실할 때는 항상 청교도에게 달려가 자문을 구하는 견고한 인물들이 청교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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