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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되신 예수 그리스도

by 【고동엽】 2021. 9. 30.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
본문 마21:1-11
서울경동제일교회/이기경목사


조직신학에서는 예수님의 직분을 셋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입니다. 구약 때는 이 세 직분이 따로따로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한 가지씩 가졌던 직분입니다. 즉, 삼권분립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엄격한 구분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 상 13:8 이하의 기록을 보면, 사무엘이 정한 기한인 7일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왕이었던 사울은 부득이하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막 끝내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해는커녕 도리어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고 책망하면서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고 말하게 됩니다. 얼마나 엄격한 직분들이었습니까?


그렇게도 엄격했던 직분이 예수님께는 한 몸에 세 직분을 모두 감당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였고, 제사장이었고, 왕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1:11에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고 하셨고, 46절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앎이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였으며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제사장이 되시는 사역도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9:11˜12에서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왕이 되신 왕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사야 9:6에서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니라.■ 하셨고, 이사야 32:1˜4에서는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하셨는데 이 말씀들은 예수님이 왕으로 오신다는 예언입니다. 요한 계시록 19:16에서는 재림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셨고, 제사장이셨으며,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예수님의 그 모습을 우리에게 잘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이라고도 부르며, 고난주일이라고도 부릅니다.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이 일은 예수님 생애에 있어서 이 세상적인 일로서는 최대의 사건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 모습에서, 예수님은 선지자가 되시고, 제사장이 되시고, 왕이 되신 모습을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1. 사람이 타보지 않은 나귀,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람을 태워 본 일이 없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일입니다.


이것은 선지자, 위대하신 스승의 모습입니다. 고결한 인격자이시며 하나님의 권리와 계시의 선포자라는 뜻입니다.


명예를 찾아 쫓아다니던 나귀도 아니요, 돈 냄새를 맡고 침을 흘리며 다니던 나귀도 아닙니다. 선지자가 타야 하는 나귀는 아무도 타보지 않은 신선한 나귀입니다.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길에는 서툴 것이고, 사람을 태워 본 경험이 없어서 약간은 뒤틀거리기도 할 것입니다. 때에 맞게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세련미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충실할 것입니다. 경험이 부족하기에 더욱 정성을 쏟을 것이고, 뒤틀거리기 때문에 더욱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 외에는 어떤 것도 전할 수 없는 독특한 길, 선지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삶이 바로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타는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모여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나귀를 타고 들어오시는 나사렛 출신의 선지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약간 어색하고, 나귀나 나귀를 타고 있는 사람이나 서로 타 본 적도 없고, 태워 본 경험도 없어서 뒤틀거리기는 하지만, 그 깨끗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모습을 지닌, 선지자 예수를 보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발락의 말을 듣고 찾아가다가 벽에 부딪쳐 상처를 입는 발람 선지자 같은 모습은 생각할 수 없는 참 선지자 예수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2.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심은 제사장으로 입성하심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1:29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세상 죄를 지고 나귀에 실려, 죽어야 하는 곳을 향하여 들어오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21에서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마태복음 9:12에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해마다 드리던 속죄제물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한 사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로 대속죄일에 드리던 아사셀(레 16:8) 제물입니다. 대속죄일이 되면 흠없는 짐승 한 마리(염소)를 잡아다가 동네 입구에 두고, 온 동네 사람들은 그 짐승 등에 모든 죄를 기록한 종이를 싣고, 돌아올 수 없는 광야로 끌고 나가 낭떠러지 절벽에서 그 제물을 밀어 떨어져 죽게 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눈으로 보고 있는 장소에서, 자신들의 모든 부정과 죄악을 싣고 그 먼 곳으로 갔다 버리게 하는 의식은 그들 자신이 볼 때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하고 분명한 속죄의 길이었습니다. 바로 그 아사셀 제물이 지금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거리로 들어오고 계십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속죄의 길 없이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만인의 죄를 지시고, 속량하시기 위해서 깨끗한 제물로 입성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제사장되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속죄하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제사장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시므로 나귀를 타셨습니다.


왕이시기 때문에 나귀를 타셨습니다.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에 새끼 나귀, 아무도 타보지 않은 깨끗한 나귀를 타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려는 음모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약한 빈민층 백성들은 예수님같이 영력이 있는 분이 유대인의 왕이 되어 주시기를 실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그 부스러기가 12광주리에 찼다는 소식은 유대 나라 전체를 흔들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것 뿐입니까? 절름발이가 걷고, 소경이 눈을 떠 보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소식들은 그들을 흥분시키고도 남는 사건들이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왕이 되어 주시기만 한다면 건강문제, 식량문제는 단번에 해결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로마를 물리치고, 단번에 해방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고 싶거나, 모셔야 한다는 소망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왕이 되신다는 뜻은 세상적인 왕이 아닙니다. 그들이 바라던 정치적인 왕이 아닙니다. 더욱이 유대인들만을 위하는, 유대인들만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전세계 사람 모두를 정복하는 마음의 나라, 사랑의 나라, 정의의 나라, 평화의 나라,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는 이 세상과 함께 망하는 나라입니다. 이 세상 나라는 국경이 다르고, 민족이 중심이 되고, 정치가 있고, 각기 다른 문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모든 나라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나라를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국경이 없으나, 국경을 초월하여 건설되는, 영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 나라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고 계십니다. 그 나라의 왕이시기 때문에 어린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사단의 왕국을 파괴시킬 왕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불의와 고통과 인간의 실패로만 기뻐하는 사단의 나라, 예수님은 그 나라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사단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영광의 왕,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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