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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인 전도대 헌신 예배

by 【고동엽】 2021.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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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인 전도대 헌신 예배
기드온의 300명 용사
사사기 7:15-25


적진을 정탐하고 적군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기드온과 부라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조용히 적진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300명의 용사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들에게 그들을 붙이셨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다.”하고 군대를 100명씩 세떼로 나누고 각 사람의 손에 횃불 하나씩을 들리고 그 횃불은 항아리에 감추고, 한 손에는 나팔을 들리고 전직을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군호가 떨어지거든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 하며 큰 소리를 했습니다. 밤 이경이 되여 체번할 때가 되여 군호가 떨어지니 적군을 포위하였던 이스라엘 군이 일제히 항아리를 깨뜨려 횃불을 흔들면서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을 받아라 하니 적군들이 달음질을 하고 부르짖으며 도망을 하는데 다시 나팔을 일제히 부니 그들이 큰 혼란 속에 빠져 서로 자기편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미디안 군인과 앗수르 군인과 동방에서 온 군인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들까지 서로 살육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군은 대 승리를 하고 기드온은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평화를 누리게 되였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에서 기드온 300면 용사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그들은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위해 자원한 사람들입니다.
위험한 전쟁입니다. 7년 동안을 압박을 당하면서 숨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죽어 살아야 했던 상대입니다. 이 전쟁에서 그들은 생명을 잃을지 모릅니다.


사람은 어차피 무엇인가에 자신을 헌신하고 살아가게 되여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헌신하고 어떤 일을 위해 살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가치와 의미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는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고, 돈을 위해 사는 사람을 수전노라고 하며, 쾌락을 위해 사는 사람은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잠언의 기자는 “(잠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라고 하여 돈 보다 명예가 더 귀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더 귀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하셨으니 주님을 위해 살고 죽은 것이 가장 귀한 일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자신을 버려 죄인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일을 하실 때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고 죽고자 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그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자들을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 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 하시고 이어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에게 서원하는 것을 갚은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시116:12-14)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여러분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아실 것입니다. 이 곡은 달밤의 말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을 노래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고 이 곡이 한 눈먼 소녀를 위해 작곡되었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소녀는 달밤의 아름다움과 나무와 관목과 풀잎 위에 은빛으로 빛나는 달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반짝이는 영롱한 별들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소녀를 만난 베토벤은 그 소녀를 위해 아름다운 밤을 그 소녀가 볼 수 있도록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는 말이 아니라 노래로 그 밤의 아름다움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노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이 세상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한 음악가의 한 눈먼 소녀를 위한 수고가 이렇게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오거늘 전능하신 하나님을 위해 몸을 바친 하나님의 종들의 헌신이 얼마나 이 세상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까?


2. 그들은 신중한 사람입니다.
물을 혀로 핥아먹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이 전쟁의 의미를 알고 지원한 것을 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77:12)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라고 하셨고 “(잠15: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시64:9)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린이 시간에 동물의 세계를 보면 한결같은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먹는 것에 대해 말하고, 둘째는 번식에 대한 것을 말하고(짝짓기), 셋째는 자기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있습니다.
즉 동물은 짝짓기와 먹는 것과 자기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살뿐이지 다른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사상도 없고, 사랑도 없고, 문화도 없으면 문명도 없습니다. 오직 동물적 본능에 의한 세 가지 원초적인 행동만을 본능적으로 할뿐입니다. 만일 사람도 짝짓기 하는 것, 먹는 것, 땅을 많이 차지하고 살려고 하는 것에 지배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동물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자신을 깊이 생각하고, 이웃을 깊이 생각하고, 살 이유를 깊이 생각하고, 헌신할 이유를 깊이 생각하고, 죽을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것을 깊이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3.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기드온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기드온이 물을 마시라 하면 물을 마시고 기다리라 하면 기다리고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을 준비하라 하면 준비하고 조용히 하라 하면 말하지 않고 움직이라 하면 움직이고 포위하라 하면 포위하고 깨뜨리리 하면 깨뜨리고 소리를 질러라 하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이 순종을 했기 때문에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승리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살고 싶을 것입니다.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전쟁하는 사람들이 칼도 창도 없으니 무척 굼굼하고 걱정이 많았을 것입니다. 미리 미리 어떻게 하겠다고 전략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굼굼 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과 지도자들 앞에서 똑똑한 사람을 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알아야 순종을 하던지 말던지 하지, 무엇을 어떻게 순종하라는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밖에 없으니 그것은 “예, 예”로 했습니다. “(고후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모세는 그의 백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신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 무조건 “아멘”하라는 것입니다.


앗시스의 프랜시스가 경영하는 수도원에 어느 날 견습 수도사가 들어 왔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그들을 데리고 수도원의 농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배추를 심으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뿌리는 땅위로 드러나게 하고, 줄거리는 땅 속에 묻어라”
그 중에 한 사람은 시키는 데로하고 다른 사람은 그렇게 심으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프랜시스는 “아, 이 사람, 자네는 너무 똑똑해서 우리 수도원에 적합하지를 않네.”라고 하면서 내보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예”라하고 아멘 이라고 합시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모자라서 거역하는 사람을 쓰시겠으며 알지도 못하고 따지고 들고 믿지도 아니하면서 잘난 척하는 사람을 쓰시겠습니다. 오늘도 이 세상에는 주님을 위해 생명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같은 못난 사람을 하나님의 일군 삼아 주시고 큰 축복의 소리를 듣게 해 주신 것만도 감지덕지할 일입니다.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엡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 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골1:25)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라고 하여 하나님 일군 된 은혜에 넘치는 감사를 하고 죽도록 충성을 하였습니다.


<솔론>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지배하는 것을 배우기 전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에게도 하지만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해야 합니다.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 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하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4. 항아리에 횃불을 가진 사람들
기드온의 군대는 실제로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이 동네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욕이나 얻어먹을 것입니다. 이 동네 사람이 미디안 군인들도 아니고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영적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전12:6)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애4:2) 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하셨으니 이런 말씀들을 보면 항아리는 사람 또는 사람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횃불은 “(창15:17) 해가 저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사62:1)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겔1:13)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단10:6)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개 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슥12:6) 그날에 내가 유다 두목들로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국민을 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거하게 되리라”라고 하셔서 하나님 자신이나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항아리를 깨뜨려 횃불은 높이 쳐들었다”는 말씀은 우리들의 마음에 깨뜨려져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깨뜨려 지는 것입니까?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레11:33) 그것 중 어떤 것이 어느 질그릇에 떨어지면 그 속에 있는 것이 다 부정하여지나니 너는 그 그릇을 깨뜨리리” 주님에게 정성을 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막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우리들의 나약한 인간성, 욕심, 이기심, 불 신앙, 어리석음, 뒤돌아보는 것, 개으름, 주저하는 것들이 깨여진 우리들의 마음 밖으로 뚱겨져 나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나타나야 합니다.


5. 나팔을 가지고 분 사람들
그들은 나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팔은 선지자들이 그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할 때 썼던 군호용 신호기였고,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사58:1)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렘4:5)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겔33:6) 그러나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욜2: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라고 하여 선지자들의 말씀 선포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이 나팔을 분 것은 적군들을 혼란에 빠뜨려 스스로 자기 아군을 죽이기 위한 고도의 전술이 였지만 복음 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사단의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단 하나님의 무기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것은 적들을 물리치는 가장 첨단적인 최신예 무기입니다. 마지막 주님이 사단과의 싸움에서도 말씀의 검을 가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계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 우더라”


6. 여호와와 기드온의 만세를 부른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여호와와 기드온에게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적들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300명으로 그들을 포위했다고 해도 촘촘히 포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듬성듬성 거리를 띄어 그들은 섰습니다. 그들이 촘촘히 섰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역경과 무서움을 믿음으로 다 극복을 했습니다. 군호가 떨어지자 그들의 입에서 제일 먼저 나온 말은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는 말이 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믿고 하나님의 종 기드온을 믿었습니다. 여호와는 그들을 승리케 해 주실 신으로 믿고, 기드온은 하나님의 종으로 믿었습니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올바른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막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믿음으로 죄용서를 받습니다. “(눅5: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믿음으로 죽은 자을 살립니다. “(눅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믿음은 우리의 소망을 확실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으로 우리들의 심령이 깨끗해집니다. “(행15: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 (고전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믿음은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십니다. “(고전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 영생을 얻습니다.“(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여호와 만세를 부른 사람들, 기드온의 만세를 부른 사람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종을 믿는 사람들이 였습니다.
몽테뉴라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만큼 굳게 믿어지는 것도 없다”라고 말하고 톨스토이는 “믿음은 인생의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신앙은 이성의 힘을 초월하는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잘 모르니 더욱 잘 믿어야 합니다.


그들은 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였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위대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 당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큰 믿음을 바라십니다. 여호와의 만세를 부릅시다. 복음의 횃불을 높이 들고 나팔을 붑시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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