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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항상 지나감이다.

by 【고동엽】 2020. 7. 16.

 

 

 

 

 

 

 

 

 

하루는 8만6400초다.

한 달은 259만2200초.

일년이면 3110만4000초다.

 

초로 계산하면 상당히 긴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1초를 1000조(兆)로 나눈게 펨토초(femto秒)이다. 계측할 수 있는 가장 짧은 단위의 시간이다.

 

펨토초의 세계에서 보면 인간은 움직이지 않는 영원의 존재다.

찰나로 흘러가는 시간은 반복을 모른다.

붙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영원에 대조되어 시간이란 '항상 지나감'이다.

 

그러나 영원은 모든 동시 현재적이다.

'과거란 항상 미래에 의해 밀려나고

미래는 항상 과거를 뒤쫒지만,

과거와 미래는 둘 다,

영원한 현재 안에서 창조되고 흐른다'.

 

창조 이전엔 시간이란 없다,

창조와 함께,

창조와 더불어 존재하게 된 피조물의 존재방식이다.

 

하나님은 세계를 ‘시간 안에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한 현재”이다.

“영원한 현재”로서 자존하시는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거나, 미래의 하나님이 아니고,

언제나 현재의 하나님이시고, 그런 의미에서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라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미래가 미래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아직 없는 것’이 되고,

과거가 과거로만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창조는 미래의 ‘아직 있지 않음’으로부터 나와서 현재의 ‘순간 있음’을 거쳐

과거의 ‘더이상 있지 않음’이라는 시간의 흐름으로서 경험된다.

 

‘과거 일의 현재’,

'현재 일의 현재',

‘미래 일의 현재’

 

세 가지의 시간은 우리의 영혼(마음) 안에 존재하고 있다.

과거 일의 현재는 기억이요,

현재 일의 현재는 직관이며,

미래 일의 현재는 기대이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숨쉬고 있다.

현재는 항상 변한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파생된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를 조건짓고 있으며,

미래로 넘어가고 있다.

 

영원한 현재는 “항상 머물러 있는 현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현재 앞에서 모든 존재가,

모든 날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현존한다.

 

시간의 흐르는 방향이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 과거에로 흐른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계셨고,

현재로서 계시며,

미래에 오실 자이기 때문에 그 시간의 세 가지 존재방식은

하나님의 시간성에 있어서는 제한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동시적으로 통전되어 있다.

 

죽음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죽음자체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主요 시간의 주이신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 할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서 우리를 만나시는 하나님이시다.

 

신자들이 죽음이후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고

영원한 생명을 확신하는 것은

유한한 인간생명의 시간성이 종말을 맞이한 이후에

유한 인간생명을 영원한 시간 속으로 받아주시고

새로운 시간성으로 덧입혀주시는 은혜로운 초청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안에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에 그 증명된 역사적 구원이 장차올 구원의 예표 또는 전형 이라고 선포한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공통된 주제이다.

즉 성경에서 구원은 역사적이며 종말론적 현실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구원이 종말론적인 구원으로 변화되는것이 독특한 성경의 특징이므로

과거 하나님의 행위는 미래에 있어서 하나님의 행위의 전형이거나 예표가 된다.

따라서 역사안에서 성취된 구원은 마지막때에 있을 구원의 약속이며 보증이다.

 

새로운 창조는 비록 현 세대에서는 신앙의 눈으로만 볼수 있기는 하지만 이미 존재한다.

구원 받은자는 아직도 마지막 구원 즉 옛 질서가 사라지고,

위대한 창조와 구원 행위에 의해서 새 하늘과 새땅이 나타날 것을 기다린다.

 

구원을 종말론적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구원이 단지 미래의 사건 혹은 미래의 현실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종말론적 현실이란 바로 지금 현실적이고 현재적이며 활동중이며 동시에 아직 실현되지 않은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며(믿음을 제외하고는),또한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신구약 전체에서 구원은 실재적이고, 성취되었으며,

그리고 활동적 이지만 그러나 구원은 아직도 완전히 실현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결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을 통해 이미 우리의 것으로된 구원을 확신한다.

이미 지금 현재에 활동중인 종말론적 구원은 역사적인 구원이 예시하고,

약속해준 그 역사를 넘어 최종적으로 실현된다.

 

신약에서 구원은 예수의 부활을 포함한 전 그리스도 사건이 하나님의 구원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구원은 그리스도의 탄생,죽음과 부활의 전 관계성이다.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은 그 자체가 하나님과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 안에서 만나게 되는 구원 행위이다.

역사적인 구원{바로지금}과 종말론적인 구원{아직아닌} 사이에 신약에서는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구원 하시는 의는 역사적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믿음근거 한에서 계시된 것이다.

 

그리고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세대에서 믿음을 위한 믿음을 통해 전파된다.

예수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현재의 구원 경험은 말하자면 장차 올 구원의 실재앞에 던져진 그림자이다.

 

이런의미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구원도 그 자체가 종말론적이며 다가올 구원의 전계시라고 말할수 있다. 신약의 구원개념은 철저하게 종말론적이며 신앙을 통해 바로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미래의 현실인 것이다.

 

신앙을 떠나서는 구원을 알수없는데 그 이유는 신앙이 역사의 세대에서는 지식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러간다는것과 생명에 들어간다는 것은 동일한 표현이다.

 

이 두가지 표현은 모두 종말론적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데

구원받는다는 것은 바로 지금 믿음에 의해 장차 올 세대의 생명에 들어가는것이며,

또한 바로 지금 종말론적으로 생명을 소유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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