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퍼 박사는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지난 세대의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그 밖의 생활 사이에 뚜렷한 구분을 설정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주장했다. 즉, 종교적 경험에만 일차적인 강조점을 두고 그것을 “상층”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밖의 사회적, 문화적, 법적인 관심사들은 그보다 하위의 것, 보다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쉐퍼 박사는 생활의 모든 영역이 바로 모두 영적인 것이며 그 모두가 통합된 전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의 전 저작을 통하여 쉐퍼 박사는 개인의 내면적인 세계관과 그의 외부로 나타나는 행위가 일관성있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강조했다. 한 개인이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존재의미에 대하여 가진 관점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중요성에 대하여 가지는 관점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바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요 주로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복음전도자’라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칭호가 자신에게 가잔 알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즉 복음전도, 교회출석, 성경공부, 기도모임에서의 참석 등과 같은 일을 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복음주의란 그리스도께서 “종교적인 일들”을 주관하시는 주(Lord)이실 뿐 아니라 동시에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주이시라는 사실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 되도록 그리스도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나타나는 절대적인 진리를 의지하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간 생명의 신성함과 귀중함에 대하여, 그리고 이웃과 친구와의 관계에 대하여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는 바로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다. 따라서 그 말씀은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신중하고도 완전히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쉐퍼 박사는 그의 다른 책,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낙태의 불법성을 날카롭게 비판하였고, 미국의 최고재판소가 어떻게 해서 주요한 과두집단으로 변모하게 되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주었다. “그 판례(로우 대 웨이드 사건의 판결)는 헌법의 13조와 14조 수정조항의 취지를 내팽개치고, 대신에 자의적인 절대성을 기준으로 세워 놓았다.” 그의 논의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인간이 바로 법이며 어떤 절대적인 것이 아닌 모호한 상대성이 사회를 움직여 가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 속으로 우리 사회가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쉐퍼 박사는, 만약 이러한 경향이 저지되어 역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권위주의적인 지배체제 아래에 예속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쉐퍼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현대의) 법은 유일한 가변성만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현대의 대부분의 법은 과거에 존재했던 법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즉 그것은 과거의 법률적 결정과 연속성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헌법은 대단히 광범위한 재량권을 가진 현재의 법정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대로 얼마든지 개조될 수가 있다. 법정은 그 당시에 사회학적으로 유용하다고 느끼기만 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 이렇게 내려진 판결들은 순간적으로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이런 식의 관행이 시작되면, 하찮은 것들도 얼마든지 법률이 될 수 있게 될 것이고, 결국 인간들의 자의적인 판단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말 것이다.”
“최고재판소는 행정적인 행위와 입법적인 행위들 모두에 대하여 최종적인 결정권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가변적인 법률이라는 개념을 무기로 하여 사법부는 점점 더 권력의 핵심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는 가히 ”제국주의적 사법부“라고까지 불릴만한 현상이다. 법원의 권한이 그 진정한 근거를 상실해 버린다면, 그것은 바로 무제한의 권력의 도구,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발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위험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의 종교적 행위와 복음주의, 그리고 자신들의 생활양식이 방해받지만 않는다면 침묵을 지키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의 문화와 사회가 과거에 그리했던 것만큼 기독교적인 사상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하여 침묵하는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 언제나 수적으로 다수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경고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법정에서 변호활동을 통하여 싸움을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 법률가들을 포함하여, 우리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기독교적인 헌신을 통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다.
- 레인 데니스, 「프란시스 쉐퍼의 생애와 사상」, ‘가르침과 삶과 행동으로’(죤 헤드) pp 25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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