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결한 마음을 주옵소서
성경: 시 51: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영을 새롭게 하소서."
고대의 함무라비 법전을 보면, "다른 사람의 물건을 도적질한 사람은 그 손을 자르고, 다른 사람의 아내를 탐한 사람은 그 사람의 눈을 뽑는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엄격한 형벌 원리가 적용된 것입니다. 지금도 함무라비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똑같은 처벌 원칙에 따르는 문화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부하의 아내인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 부하를 죽인 다윗이, 만일 그 죄를 용서받겠다고, 이런 식으로, 자기 눈을 뽑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다윗은, {아무리 자기 눈을 뽑아도, 자신을 죄로 이끈 정욕의 눈까지 뽑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뿌리는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아파하면서, 하나님 앞에 {깨끗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간절히 구하는 것을 보면, 다윗이 {그의 죄가 시작된 뿌리가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은 다시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죄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편 51편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의 삶에서 가장 뼈아픈 경험을 통해 다윗에게 가장 귀한 교훈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을 지켜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역사하심)이 참으로 오묘하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일 다윗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처럼 뼈아픈 회개의 순간이 없었다면, 다윗은 어쩌면 {자기 안에 있는 정한 마음까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지키시지 않으시면 안될 뿐만 아니라, 의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영영 깨닫지 못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도록 기도하시는 귀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2. 거룩해야 한다.
참으로 거룩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우리가 거룩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과 같아져야 한다. 베드로가 교훈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은 거룩해야 한다. 우리는 점진적으로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신 것과 같이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래 사욕과 악을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은 주님의 거룩하심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 삶에 나타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선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디는 "거룩한 삶에 관해 말하는 것보다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휠씬 좋다. 등대들은 그 빛으로 주의를 끌기 위해 종을 치거
나 대포를 쏘지 않는다. 등대들은 그저 빛을 비출 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파스칼은 "거룩한 삶의 고요한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힘
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갈 때에 주님의 거룩함의 능력과 역사가 우리 삶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지는 못하면서 입술로만 거룩을 말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에 붙들려 살게 하옵소서.
3. 우리를 부르심은 거룩케 함이니
성경: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4: 7,8)
사람은 어떻게 불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위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또 누가 불러주느냐에 따라 그 파장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만일 당신에게 미국의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 자체로 가슴이 뿌듯해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직접 부르시고 당신을 찾아오셨다고 가정해보자. 사람이 부른 것과 견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직접 우리를 자녀로 불러 주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위상에 합당한 삶을 살자.
4. 백합꽃 예찬
우리 교회 강단은 매주마다 꽃꽂이 향기로 넘쳐난다.벌써 몇년을 매주마다 꽃꽂이로 아름답게 강단을 장식하는 성도님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꽃향기처럼 아름답고 풍성하게 내리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남하신 것처럼 아마도 하나님은 꽃 향기처럼 그의 마음과 헌신을 받으셨을 줄로 믿는다. 다른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지난주는 특히 부활주일이어서 주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흰 백합꽃으로 꽃꽂이를 했다. 처음 할 때는 봉오리를 졌던 것이 며칠을 지나는 동안에 모두 활짝 피어 향기를 토해낸다. 그 향기가 얼마나 진하게 후각을 자극하는지 할수있으면 향기를 담아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백합! 그것은 정말 우아하고 깨끗하고 숭고하고 향기롭다. 이 세상의 무슨 꽃이 백합화와 같은가? 백합의 꽃말은 "순결"이라고 하던가? 정말 백합처럼 순결하고 자태가 고상한 꽃도 흔하지 않다. 나는 봄만 되면 활짝 핀 백합의 순결함과 우아함과 그 진한 향기에 빠져든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아6:2)
5. 성결한 삶
미국의 기독실업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아더 미다스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때 미국의 10대 재벌 중의 한 사람이었고, 한국의 대학생 선교단체에 50만 달러를 기증하고, 7억 달러를 들여 선교재단을 설립하는 등 남을 돕는 일에 물질을 사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그에게 ‘신앙과 인생에 성공비결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내게는 아주 간단한 다섯 가지의 신앙철학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첫째, 주일성수
둘째, 온전한 십일조
셋째,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
넷째, 내 가정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모셔들이는 것
다섯째, 시간과 돈을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것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뜻에 순종하는 사람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뱃속만 차리는 부자는 부유할지는 몰라도 행복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알지는 못합니다. 당신은 미다스 장로의 신앙철학 중에 몇 가지를 실천하며 살고 계십니까?
6. 다섯가지 왕국
세상에는 다섯 종류의 왕국이 있다. 광물의 왕국, 그곳엔 생명이 없다. 식물의 왕국, 그곳은 생명은 있으나 자유가 없다. 동물의 왕국, 그곳은 생명, 본능, 자유가 있다. 그 위에 인간의 왕국이 있다. 생명, 감성, 이성, 의지, 자유가 있다. 광물은 자기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할 것이다. 식물도, 동물도 자기가 극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위에 인간의 세계가 있다. 인간도 인간 이상 없다고 한다. 세속적 휴머니즘이다. 그런데 인간은 위로부터 압력을 느낀다. 소망, 꿈, 사랑, 기대, 영적 갈망을 느낀다. 생명의 근원이 생명을 부른다. 거룩한 분이 거룩하지 않은 자를 부르고 계시다. 그 분이 새 삶의 중심이 되신다. 새로운 소원, 새로운 목적, 새로운 언어를 주신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 3:3)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7. 직업과 거룩한 소명
대검찰청 신우회 연말 예배에 설교자로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식사 시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교제하다가, 검찰 총장이 앞에 나와서 하는 인사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면 성경을 읽은 다음에 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의 눈에 꼭 드는 검찰청이 되게 하옵소서.’
남은 임기 동안 제가 최우선순위를 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검찰 복음화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약과였습니다. 기독교 교도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선진국처럼 교회가 경영하는 교도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런 운동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데, 일부 기독교 단체가 교도소를 운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천 지검장 되시는 분이 대뜸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기독교 교도소가 만들어지면 내가 소장으로 가겠습니다. 거기에 가면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잖아요? 얼마나 좋은 황금 어장인가
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검장의 자리가 높습니까, 교도소 소장의 자리가 높습니까?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직업이 검사지만, 마음은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있으니, 그 직업이 얼마나 거룩한 하나님의 소명이 되겠습니까?
「요한이 전한 복음」/ 옥한흠
8. 거룩한 희생
아프리카 오지의 한 마을이 복음화되었는데 그 까닭은 이렇했다. 어느 날 서양인 선교사가 마을 근처에 선교 캠프를 세운 후 전도에 나서자 동료 선교사가 “이 근처는 매우 잔인하고 미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반드시 총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면서 총을 주었다. 그가 마을에 접근했을 때 원주민 전사들이 창을 겨누며 다가섰다. 그는 웃으면서 미리 배운 원주민 말로 “저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들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라고 말했다. 그 때 원주민 전사들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포위했다. 긴박한 순간 총 잡은 손에 힘을 준 그는 잠시 갈등하다가 총을 내려놓았다. 결국 그는 원주민 전사들의 공격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그들이 선교사 주검 곁으로 다가갔을 때 실탄이 장전된 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은 총보다 위대했다. 그들은 거룩한 희생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후 마을 전체가 복음화된 것이다. 사랑의 힘으로, 순교의 밀알로….
/김상길 논설위원 (국민일보)
9. 경건한 사람
3세기 카르타고 교회의 주교인 키프리아누스느 크리스천에 대해 이렇게 말 했다. "세상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악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세상에서 생의 위대한 비밀을 깨달은 경건하고 선한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세속이 주는 기쁨보다 천 배, 아니 그 이상의 기쁨과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멸시를 당하고 박해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고난에 염려치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영혼의 주인이며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들은 바로 기독교인이며 나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10. 참된 경건
옛날에 경건한 사람들은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길을 걸어 다니다가 나무에 이마를 부딪혀 피를 흘리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마에 피가 흐르는 사람을 보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 말을 듣고 싶어하던 바리새인들이 아예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이마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며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건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토마스 왓슨이 말한 대로 거짓 경건은 이중 죄악입니다. 경건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정적이며 고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경건에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경건이란 동적이고 활기찬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참된 경건은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고,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은 세상 속에서의 삶과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참된 경건은 사람을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잘 살면서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이원적으로 분리해서 사는 것은 바른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은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해야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것입니다.
「도시 속의 사막」/ 이성희
11. 경건을 연습하라
성경: 딤전4:7-8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해리 에머슨 포스딕(Herry Emerson Fosdick)은 크리스챤 설교자는 아니었습니만, 우리 그리스도인이 한 번 쯤, 귀 기울여야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채찍질을 하지 않고 말을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압력을 가하지 않고 수증기나 기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동력기를 통과하지 않고 물을 빛이나 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인생도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헌신하고 훈련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해리 에머슨 포스딕의 말에 공감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7절과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오늘도 경건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Http://www.je333.com)
12. 성결한 생활
성경: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지어다"(잠31:3)
경건한 사람으로 유명한 존 구호가 그의 생애 마지막인,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청년 집회에서 단상에 올라서자마자 이렇게 외쳤습니다. "젊은이들이여, 성결한 생활을 하십시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같은 말을 또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의아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사가 똑같은 말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존 구호는, "젊은이들이여, 성결한 생활을..." 하며,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단 위에서 그대로 쓰러지는 것입니다. 이미 늙고 쇠약해진 그는 죽음을 맞이하면서까지 '성결한 삶'을 외친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강연자로서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에게 '성결한 생활'을 강조해온 그의 과거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방탕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 신앙의 뿌리가 그를 붙들었고 결국 그는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 절에서 지혜자는 성적 방종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왕이 전력을 다해 국사를 보지 않고 민심을 살피지 않으며 색욕을 좇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며, 나라의 쇠퇴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 묵상: 당신은 많은 유혹으로부터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있습니까?
13. 마음에 대한 통제력
언젠가 관광지에서 아주 인상 깊은 광경을 보았습니다. 가족 단위로 오는 여행객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여러 사람들 속에 묻혀 있어도 유독 눈에 띄는 두 가족이 있었습니다. 한 쪽은 아이들이 너무나 진지하게 부모님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고, 또 다른 한 쪽은 제 맘대로 뛰어다니는 두 아이들을 부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쫓아다니고 있어서 시선이 끌렸습니다. 아이들을 이끌어 많은 것들을 보여 주며 가르치던 부모의 모습과, 지친 채 짜증 섞인 얼굴로 아이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또 다른 부모의 모습은 제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신자와 마음의 관계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통제하며 사는 신자가 있는가 하면, 마음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사는 신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자의 삶에 비해 후자의 삶은 경건의 진보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야생동물과 같습니다. 잘 길들여지거나 가두어져 있을 때는 안전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느 순간에 야수의 본성을 드러낼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순간도 마음에 대해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 안에 살면서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동안에는 부패한 욕구에 굴복하지 않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언제든지 야수와 방불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자신의 마음에 통제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음지킴」/ 김남준
14. 흰 담비
북구라파에 사는 흰 담비는 털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흰 담비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사냥꾼들은 흰 담비의 이렇나 속성을 이용해 흰 담비를 잡는다고 합니다. 즉, 흰 담비가 사는 굴입구에 숯검정을 칠해 놓고 숲속에서 놀고 있는 흰담비를 굴 속으로 모는 것입니다. 굴 입구에 다다른 흰 담비는 자신의 흰털을 더럽히기 보다는 죽음을 택한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15. 비둘기 같은 순결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것은 '빛'과 '바다'와 '소금'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소금이 가장 순결한 것으로 인정을 받는데 왜냐하면 순수한 빛과 순수한 바다가 합쳐져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소금처럼 순결하라' 고 하시지 않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소금 대신 '비둘기'를 말씀하셨을까요?
'비둘기'로 사용된 단어는 '페리스테라'인데 '집비둘기'를 가리킵니다. 집비둘기는 주인에게 아주 충성스럽습니다. 그래서 편지나 전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 이 집비둘기를 훈련 시켜서 주인의 편지를 전달하게 했는데 그러한 비둘기를 '전서구'라 하였지요. 수많은 비둘기가 무리를 지어 먼 거리를 날아도 주인이 있는 비둘기는 자기 주인을 정확히 찾아 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은 '온순해라', '순진해라' '평화로워라' 하는 뜻이 아니고 '이 세상과 뒤섞여 살다가 주인을 잃어버리지 말고, 오직 비둘기처럼 주님 한 분에게만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순결은 도덕적인 순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순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온순한 믿음, 순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 최용우
16. 물에 빠져 죽은 오리
자동차 서비스 회사에 근무하는 동생이 오랫동안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일산에 있는 회사의 부품 창고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울적해진 동생은 기분도 달랠 겸 창고 옆에 오리를 키울 수 있는 작은 수영장을 만들었다. 수영장이래야 꼬마들이 물장구나 치며 놀 만한 크기의 널찍한 물통이 전부였다. 그러고 나서 퇴근하기 전에 오리 농장에 달려가 청둥오리 한 마리를 사서 물에 넣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밤새 안녕할 것을 기대하며 출근을 해 보니 오리가 물통 속에서 죽어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오리를 이리저리 뒤척여 봐도 짐승에게 물린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수영이 ‘전문’인 오리가 물통 턱을 기어올라 오지도 못하고 30cm 정도밖에 안 되는 얕은 물에 빠져 죽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결국 오리 농장에 가서 주인에게 따져 물었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들은 농장 주인은 그것도 몰랐느냐는 듯이 말했다. “이 오리는 오리 농장에서 부화하고 키운 오리입니다. 그래서 수영을 할 줄 모르지요. 게다가 이 오리는 어릴 때부터 물속에 집어넣지 않았기 때문에 깃털에 기름이 분비되지 않아 물에 잘 뜨지도 못합니다.”
외모가 오리라고 모든 오리가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듯, 교회에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으로 바르게 사는 것은 아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면서 뱀같이 지혜로울 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경건이요 성경적 세계관을 따르는 삶임을 기억하자.
「물에 빠져 죽은 오리」/ 양승훈
17. 거룩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상담가들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결코 음주량을 줄이거나 저녁에만 조금씩 마시라는 조언을 하지 않습니다. 판사는 상습 절도범에게 절대로 “좀 참으세요. 주말에만 도둑질하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성결한 삶은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죄는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거룩에의 요청 앞에 서있습니다. 생각이 거룩해지고 말이 거룩해야 하며 행실이 거룩해야 합니다. 심지어 침실까지도. 마치 그것은 선교지를 향한 우리의 소명만큼이나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송길원 목사
18. 조각가의 거룩한 손
독일의 어느 조각가가 예수의 초상을 볼 마음이 생겨 시작한 지 4년 만에 완성했다. 그는 만족하여 주일학교 학생을 불러서 자기가 조각한 것을 보여 주며, "이것이 누구와 같으냐?"라고 물었다. 학생은 "어떤 유명한 사람과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작업에 들어가 6년 만에 예수의 초상을 조각한 후에 그 학생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 학생은 놀라며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하신 예수님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제서야 그는 만족하였다. 그 후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에서 국신(國神)인 비너스 조각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그는 "내 손은 예수를 조각한 거룩한 손이므로 당신 나라의 더러운 신의 초상을 조각할 수 없소."라고 거절하였다.(겔42:20, 고후1:12)
19. 거룩한 삶
거룩한 삶은 마땅히 투자가 있어야 한다. 거룩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대는 모든 것이 인스턴트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하나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곧바로 거룩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거룩은 순간순간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룩한 삶보다 주님을 세상에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길은 없다. 거룩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신자들에게는 유익을 가져다준다. 한편, 성도들이 거룩하지 않으면 범죄하는 신자처럼 주님의 이름에 불명예와 부끄러움을 가져다준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불한 값, 그리고 우리에게 부여하신 은혜가 거룩한 삶을 위한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거룩은 발전되어가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얻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성령님은 한 단계씩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그 조건들 중에 몇몇은 고백과 상환, 항복, 성경공부, 기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 주를 섬기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다. 거룩은 우리의 성생활과 언어생활, 기질 그리고 의복과 연관이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아야 한다.(히12:14)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옵니다. 분주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조용히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오늘 나의 삶의 동기와 목적 속에 하나님을 잊지 말게 하소서. 죄의 자은 것이라도 분별하고 거절하게 하시고 거룩을 따라 살게 하소서.
/한태완 목사(http://www.je333.com)
20. 거룩한 교제를 힘쓰라
그리피스 존은 20년이 넘도록 중국에서 지내면서 젊은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경건해지도록 힘쓰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1877년 상하이에서 열린 선교회의에서 그는 “선교사는 무엇보다도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중국사람들은 선교사들이 거룩한 사람이길 기대합니다. 나는 별로 경건하지 않은 채 큰 영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회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목회자는 착한 사람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의 언어와 문학을 익힐 뿐만 아니라 경건해지기에 힘써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바로 이 큰 나라가 우리를 통해 변화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삼위일체시요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를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시간을 나누십시오. 이처럼 거룩한 교제를 위해 시간을 내어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친히 우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십니다. 끊이지 않는 교제를 경험하십시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습니다.”라고 했다.
21. 영적 엥겔 계수
통계학에 '엥겔 지수'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한 가정이나 사회 또는 국가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전체 생계비 지출 총액에서 음식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따라서 엥겔 계수가 높을수록 후진국에 속한다. 말하자면 자기 소득 중에서 먹는 것에 쓰는 비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후진국에 가깝다. 반대로 그 비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그만큼 여유 있는 삶을 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엥겔 계수도 똑같다. 하루에 자기 육체의 본능을 위하여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을수록 그는 덜 경건한 사람이다. 반면에 경건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그것을 반복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기를 원한다면 경건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장엄한 성가가 울려 퍼지는 예배당 안에서가 아니라 불꽃 튀는 유혹과 욕망의 현장에서 말이다. 자기 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말이다. 나의 인기나 명예가 짓밝히려는 바로 그 곳에서 말이다. 그 때 거기에서 하나님을 좇아 행동하는 경건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느 하루가 아니라 매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경건이란 훈련의 결과요 반복의 열매이다. 이와 같이 경건한 사람을 살기 위해서, 지금 그대는 하루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어느 정도의 힘을 쏟고 있는가? /이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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