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심을 저버린 현장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컨닝의 다섯 가지 도(道)가 있다. 먼저 감독자와 우등생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을 '지'(知)라 하고, 이를 안 연후에 감독자가 바로 앞에 있어도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을 '용'(勇)이라 하며, 컨닝한 답이 이상해도 이를 의심하지 않는 것을 '신'(信), 남이 컨닝하다 들켰을 때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인'(仁), 그리고 보여준 사람보다 점수가 약간 낮게 나오도록 베끼고 일찍 나가는 것을 '예'(禮)라 한다.
대학의 신문사가 이 대학 남녀재학생 2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1퍼센트가 "사정상 할 수도 있다"라고 대답했고 "절대 안 된다"가 33%였다. 컨닝을 한 경험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남학생 76퍼센트와 여학생 74퍼센트가 있다고 답했고 4학년은 무려 96퍼센트가 컨닝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 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도 자신의 죄와 행실을 컨닝으로 대신할 수 있을지.
2. 거짓, 아첨에 물든 시대…양심세력 출현 바란다
어느 날 저녁 왕과 신하들이 뜰을 걷고 있었다.하늘엔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다.왕은 한 신하에게 물었다.
“여보게 저 쪽에 떠있는 별이 보이는가?” “폐하, 잘 보입니다.유난히 반짝이는군요” 다른 신하에게 물었다.“너무나 잘 보입니다.영롱하게 빛나는 것이 나라에 경사가 있을 듯하옵니다” 왕은 또 다른 신하에게 물었다.“폐하, 찬란하기 그지 없습니다”
왕은 다시 뒤처져 따라 오는 신하에게 물었다.“자네 눈에도 저 별이 영롱하고 찬란하게 보이는가?” “폐하, 죄송하옵니다.제 눈엔 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 별이 정말 안 보이는가?” “예, 아무리 보아도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왕은 별이 안 보인다는 신하를 신임하고 그의 조언을 듣곤 했다.
지금 우리 시대도 온통 거짓과 아첨과 기만으로 뒤범벅이다.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온통 거짓과 허위로 치장하고 있다.별이 안 보인다고 말하는 양심세력의 출현이 요청된다.
3. 1백만 달러를 거부한 양심
한 대학교 총장이 학교 건물을 한창 짓고 있었다. 하지만 건물을 완성하는데 1백만달러가 모자랐다. 어려운 사정으로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정부 고위관리로부터 제의를 받았다.그의 말은 2장의 서류에 사인을 해주면 1백만달러를 희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즉 그가 사인을 하게 되면 고위관리에게는 3백만 달러가 생기고 총장에게는 건축에 필요한 1백만 달러가 생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총장이 그 서류를 자세히 검토해보니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만든 위조서류였다. 총장은 고민에 빠졌다. ‘눈을 감고 사인을 두 번만 하면 경제적으로 유익하고 아무에게도 손해를 주지 않고도 학교 건물을 완성할 수 있는데…’ 그러자 그 고위관리는 사인을 해도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그냥 해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총장은 결국 거절했다.이 사실은 그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도 아시기 때문이었다. 몇초만에 1백만 달러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양심에 의해 어리석은 자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경건은 우리가 혼자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사는 모습이다.“자족하는 마음과 경건이 있으면 큰 유익이라”(디모데전서 6:6)
4.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짜라투스트라는 "저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들을 상대로 말 할 수는 없구나. 나는 너무 오랫동안 산속에 살며 시냇물과 나무가 하는 말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였구나… "하며 깨닫지 못하는 군중을 보고 자신을 한탄하였고, 그의 글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진리가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그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고 그래서 신은 죽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결코 신이 살아 계신 것을 모르고는 신이 죽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고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세상의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시는 신을 향해 반발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당나귀처럼 귀를 세우고, 소처럼 묵묵히,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하며, 진지하게 생을 살면서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강제로서가 아닌 인격으로 부르는 신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이미선)
5. 맑은 눈동자의 양심
성경: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11:34-35)
하루는 김구 선생님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셨습니다. 관상학적으로 볼 때 임시정부를 맡을 만한 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수상(手相)을 봤고, 그것도 별 볼일 없어서 족상(足相)까지 봤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나라의 중책을 맡을 만한 근거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 김구 선생님이 내리신 결론은 바로 심상(心狀)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창인 눈이 성해야 온몸이 밝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 깨끗해야 그 사람의 삶이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몸을 씻는 것도 중요하고 새 옷으로 치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참회의 눈물로 맑은 양심을 유지하는 것이며 혼탁해진 영혼의 눈을 씻는 일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천진난만한 어린이와 같은 맑은 눈동자의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맑은 양심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 기도: 영혼의 눈을 맑게 씻어 주소서
6. 양심 마비증
뇌졸중을 비롯한 마비증세가 현대인의 심각한 질환으로 떠오르고 있다.심 지어 어린이 중풍까지 늘어나는 추세.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양심의 마비증 세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심! 신성한 본능이여, 하늘의 소리요 지성과 자유의 안내자, 선악에 대한 심판자. 인간 본능의 우수성과 도덕성의 근본. 그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단지 규율 없는 모성과 원리 없는 이성의 도움을 빌려서 잘못만을 저지르는 특권을 느낄 뿐이며 그 때는 누구나 짐승일 따름이다』
7. 양심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제자 한 사람이 어느 날 가게에서 신발을 한켤레 사고 난 후 주인에게 "돈은 내일 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이 제자가 돈을 들고 찾아가니 주인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는 신발을 공짜로 갖게 되었다고 속으로 좋아 했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잠깐, 양심에 걸려 매일 고통 속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좋아보이던 신발이 "흉측한 가시" 같았습니다. 결국 그는 돈을 들고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된 그 가게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가 죽었지만 제게는 살아 있습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딤전3:9-10)
8. 양심에 묻은 오물
선주가 친구의 가방을 뒤져 친구의 시계를 훔쳤는데 시계를 가지고 있으면 들킬 것 같아 방과후에 가져갈 생각으로 학교 뒷 뜰에다가 묻었습니다. 교실로 돌아오는데 손에 흙이 묻어 수돗가에가서 손을 씻었습니다. 교실에 돌아온 선주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먼저 들어와서 선주의 행동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선주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선주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난 널 용서할 수 있단다. 그렇지만 선주야, 네 손에 묻은 오물은 물로 씻어 내렸지만, 네 양심에 묻은 오물은 어떻게 씻어내지?”선주는 시계를 다시 친구의 가방에 넣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선주는 그 후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우리의 자랑거리는 우리의 양심이 또한 증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하되, 세상의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다는 사실입니다.(고린도후서 1:12)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곧 자신의 양심을 따르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양심이란 선과 악을 분별하고 부끄러움을 알게 합니다. 하지만 악한 일을 많이 하게 되면 양심이 굳어져서 결국에는 악한 일을 해도 그것이 악한 일인지도 모르게 됩니다. 성경은 오직 선한 양심만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간다고 말합니다. 선주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도 계속 남의 물건을 훔쳤다면 악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을 고쳤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9. 완악하고 교만한 양심
처음으로 직업 훈련소를 찾는 젊은이들의 손을 보면 무척 매끄럽고 부드럽다. 그러나 차츰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 매끄럽던 손이 거칠어지고 손바닥에는 딱딱한 굳은살이 돋아 웬만한 충격에도 아픔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죄와 인간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악한 일에 길들여져 있지 않을 때 그의 양심은 매우 민감하고 부드러워 죄라는 이물질이 들어오는 즉시 예민한 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점차로 악한 일에 익숙해지고 죄에 물들게 되면 양심은 굳어져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그만 죄에 길들여져 버리는 것이다.
애굽의 바로 왕도 강퍅한 마음으로 거짓 회개에 길들여져서 하나님과 맞서 대항하려는 완악한 마음을 품은 채 교만의 굳은살만 키워가고 있었다. 무디어진 그의 양심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끔찍한 재앙들을 여러 번이나 내리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다시 하나님께 대항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이러한 바로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자는 자신의 멸망을 앞당기는 어리석은 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혹시 우리가 수없이 직면해야 했던 고난과 역경이 우리의 완악한 양심, 교만한 마음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있는 완악하고 교만한 양심의 굳은살을 벗기고 부드러운 양심과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자.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다 큰 자유와 기쁨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10. 양심을 울리는 소리
기독교 저자이자 설교자인 알란 레드패스는 한때 공인 회계사였다. 영국의 4대 종합화학회사 중의 하나인 ICI에서 6년 동안 일했으며 노덤벌랜드 주의 럭비 선수로도 활약했다. 그 당시 알란은 교회에 다녔지만, 그의 기독교 신앙은 인생에서 단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고백했지만 다른 신들도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알란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구원 받은 영혼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군.”
알란은 그 친구의 말을 머리속에서 떨쳐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알란이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을 하든 그 친구의 말은 알란을 따라다니며 그의 양심을 괴롭혔다. 토요일에 그가 럭비를 하고 있을 때에도 그 말은 녹음기처럼 여전히 그의 귀에 쟁쟁거렸다. 경기가 끝난 후 악단은 단 한 가지 곡조 “구원 받은 영혼, 인생을 낭비하다”만을 연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중에도 기차 바퀴가 덜커덩거리며 “구원 받은 영혼, 인생을 낭비하다”를 외쳐 대는 듯했다. 마침내 알란은 하나님께 항복하고 말았다. “주님께서 내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다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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