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로대우 집사님
우리교회는 세례교인들의 2/3 득표를 얻어 장로에 임직한다. 1차투표에서 득표순대로 배수를 뽑고,2차 투표에서는 2/3표를 얻어야 한다. 권오술 안수집사가 1차투표에서 최다득점을 했다.
인사 시간에 나오더니 “나는 65세된 집사입니다. 남은 5년 동안 안수집사직도 제게는 큽니다. 젊은 사람 장로로 뽑아 교회를 젊게 하십시오.” 그의 양보 발언으로 젊은 사람들이 장로 반열에 올랐다. 그후 권 집사님을 한번도 집사로 생각한 적이 없다. 어느 자리든 상석에 앉혔다.
“그 일 누가 한들 못하겠는가 잘 해야겠다는 결심있겠지 지켜주고 도와주고 붙들어 격려하고 위로하면 하늘이 복 내려 좋은 세상 만들리라 혼자만 다 할 수 있겠는가 나눠서 하면 기회 오겠지 노력하고 준비하고 꿈꾸고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 다음의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리리라 최선이 축배를 들고 있을 때 차선도 아름다운 것이다 차라리 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는 없을 것이니. (졸작 「선거를 마치고」에서)
/고훈목사(안산제일교회)
2.양보와 기다림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초행길에 오던 차가 비켜서서 기다려주는 배려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이 양보하기를 강요하며 살아간다. 행복은 작은 배려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은 채 말이다. 기다리면 손해보는 것으로 인식되어 급행료와 새치기 문화가 한때 부정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기다리면 손해본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배려도 쉽지 않다. 기다려주는 여유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좁은 길을 서두르며 달려와 상대방보고 비켜달라고 삿대질하는 것은 한가위 명절의 기분을 망칠 수 있다. 한가위의 넉넉함을 양보와 기다려주는 배려로 시작하면 좋겠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이 들떠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수하기도 쉽다. 이럴수록 양보하고 기다리자.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는 성경 말씀을 살펴보자. 나만 우선이라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게 원수가 되기 쉽다. 마음은 벌써 고향인지라 서둘러 가려 한다. 이번 기회에 생각을 느긋하게 바꿔보자. 세상이 달라지고 가을하늘이 더 높게 보일 것이다.
/정종기 교수(인간관계회복연구소장)
3.After You!
예전 영국에서의 유학생활은 외롭고 낯선 환경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날 백화점에 들어서는데 마주 오던 한 사람이 뭐라고 말하며 먼저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그런 일을 몇 번 더 겪고 나서야 비로소 그말이 "After You"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운전을 할 때도, 익숙하지 않은 좌측 주행 방식 때문에 운전하는 일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은 즐거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양보가 습관이 된 운전자들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경적 소리에 머리가 지끈지끈할 정도였는데 말입니다. 번쩍 하는 상향등은 '당신 먼저' 라는 뜻이었고, 상대를 향해 힘껏 들어올린 오른손 엄지는 호의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마치 이들은 양보를 하기 위해 운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걸까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양보하면서 '당신 먼저' 라는 손짓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진우 (크리스천라이프센터 공동대표)
4. 정원초과
한국인의 모습을 풍자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각 나라를 대표하는 열 사람이 배를 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배의 수용 인원은 7명이었습니다. 7명인데 정원을 무시하고 10명이 탄것입니다. 배가 한참 항해를 계속하다가 물이 스며들어 오고 이 배가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세명을 이 배에서 내려놓지 않으면 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음의 운명 앞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눈치를보면서 누가 양보를 해 줄 것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맨 처음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대영제국의 국민입니다. 제가 신사도를 발휘해서 여러분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맨 먼저 다이빙을 해서 물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 다음에 또 누가 뛰어들 것인가를 눈치를 보는데 두 번째 사람이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아메리카에서 왔습니다. 세계 최대 강국의 제가 양보를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그리고 그 사람도 물 속에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외치고 나서 갑자기 옆에 있는 일본 사람을 쥐어박더니 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말할 때마다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를 자신에게 먼저 적용시켜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의 삶
5. 빙점의 탄생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일본의 유명한 여류작가입니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 그는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활에 도움을 얻고 손님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자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가게가 너무 잘돼 트럭으로 물건을 들여와야 할 정도로 번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분주히 일하는 아내를 안쓰럽게 여겨 “우리 가게가 이렇게 잘되는 것은 좋지만 주위 다른 가게들이 우리 때문에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하고 염려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는 아예 가게에 어떤 물건들은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그 물건을 찾으면 다른 가게로 안내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시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펜을 들어 글을 쓴 것이 빙점이라는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런 방법으로 보상해 주셨던 것입니다.
6.모두에게 평안을 주는 양보
인간은 각기 개성과 가치관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대립과 마찰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서로의 양보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가 야기될 것이다. 그러나 양보를 해야 할 경우에 자신이 모자라거나 손해보는 것으로 생각되어 망설이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양보하며 사는 길일까? 채근담에서는 "좁은 지름길에서는 한 걸음 멈추어 남을 가게 하고 맛 좋은 음식이 있을 때에는 삼분을 감해서 남에게 양보하며 맛보게 하라.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이라 하였다. "평생토록 길을 양보해도 백 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생토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 마지기를 잃지 않는다"는 소학(小學)의 교훈처럼 양보는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으나 두고두고 기쁨과 유익을 가져다 준다. 양보를 가능케 하는 것은 곧 겸양이다. 매사에 자기 자신의 공로와 능력을 내세우며 자랑하는 사람에게서 양보의 미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고 하였고, 허버트도 "겸양은 새로운 명예에 이르게 한다"고 하여 겸양의 가치를 숭상하였다. 겸손한 자의 양보는 마음을 평안케 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화평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내일을 여는 사색 / 조만제
7. 양보와 결단
조선조 태종은 세 명의 왕자를 뒀다. 양녕대군이 왕세자이고, 그 다음이 효령대군, 충녕대군 순이었다. 양녕과 효령은 부왕인 태종이 막내인 충녕에게 왕위를 승계하고 싶어함을 잘 알고 있었다. 왕권 찬탈을 위한 권력 투쟁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양녕대군은 주색잡기에 빠졌고, 왕자답지 않은 언행으로 왕위계승 가시권의 밖으로 맴돌았다. 둘째 효령도 불교에 심취, 가출을 일삼으며 왕권에서 멀어졌다. 결국 왕위는 충녕대군에게 돌아갔다. 그가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이 등극함은 우리 역사의 복이다. 하지만 양녕과 효령의 공로를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 본래가 일탈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인색한 평가가 많지만, 세종으로 하여금 선정(善政)을 베풀도록 양보하고 결단한 면목도 있었다고 믿는다. 그들의 공헌도 인정해야 마땅하다. 우리 역사와 사회에서도 양녕과 효령처럼 양보와 결단으로 뒷선에 물러선 이들을 돌아볼 줄 아는 배려가 필요하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8. 배려함이 유익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서로 대화를 할 때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우리지 않고 자신의 말만 늘어 놓는다는 것이다. 요즘 자동차가 거리에 즐비하게 늘려 있다. 어떤 땐 고속도로도 주차장인지 도로인지 모를 정도인 때가 있다. 이 시대는 자동차시대이다. 그 만큼 거기에 따른 자동차 에티켓이 필요하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앞 차를 추월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조금 속도를 늦춰 앞에 자리를 비워 양보해 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급가속을 해서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그런 사람은 이미 배려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굳은 사람이다. 운전습관에 따라 기름이 더욱 많이 소비된다고 한다. 특히 급가속이나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평소보다 많은 기름이 소비된다는 것이다. 운전할 때 오히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기름값도 유익을 얻을 수 있다. 대화도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우릴 때, 더 좋은 인관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양보하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써 봐야 오히려 속에서 분노만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양보하면 오히려 기분이 좋다. 선물을 준 사람처럼 말이다. 남을 배려할 때 손해보다는 오히려 유익이 더 많다는 것을 잊지 말자
9. 지킬 건 지켜야지
“지킬 건 지켜야지.” 얼마 전에 본 광고다. “여긴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 하던 젊은이의 모습이 좋아보였다. 하지만 요즘은 그 광고의 모습처럼 ‘지킬 것은 지키는’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다. 어제 안양 가는 전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경로석에는 스물이 갓 넘었을 법한 젊은이 셋이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갔지만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몇 번 눈치를 주다가 이내 포기했는지 불편한 자세로 기둥에 기대어 서 계셨다. 다른 승객들도 할아버지가 경로석에 앉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칸과 이어지는 문이 열리더니 한 청년이 들어왔다. 그가 대번에 눈에 띈 것은 어울리지 않게 옷깃을 세우고 선글라스를 꼈기 때문이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더니 인사를 꾸벅했다. “안녕하십니까!” 왜소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큰 목소리 때문에 사람들은 다 그 청년 쪽을 바라보았다. 물건을 파는 아르바이트 학생인 줄 알았다. 그 청년은 오늘이 처음인양 쭈뼛쭈뼛하더니 “경로석은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앉는 자리입니다.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다시 “경로석에는 어르신들이 앉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사실 저는 용기가 없고 너무 부끄러워서 선글라스를 꼈습니다.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꾸벅하고 후다닥 옆칸으로 뛰어갔다. 경로석에 앉아 있던 세 젊은이들이 콧등을 문지르며 일어나고 있었다. 승객들은 짐짓 모른 척하며 시선을 돌렸지만 입가에 퍼지는 웃음은 한결같았다.
- 최윤석, 월간 <낮은 울타리> 2001년 10월호에서
10. 정직한 마음보다 중요한 것
언제부터인가 저녁 가정예배 시간만 되면, 찬송가 한 권을 놓고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싸웠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작은아들이 그 찬송가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왜 그 찬송가를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은 그것이 ‘새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너희들이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면, 하나님이 누구를 더 사랑하실까? 선물받은 사람일까, 선물을 준 사람일까?” “선물을 준 사람이요.” “그럼 너희가 하나님께 사랑받으려면 선물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니,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니?” “주는 사람이요.” 이제는 적용할 차례였습니다. 먼저 작은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사랑받으려면, 이제 이 찬송가를 어떻게 해야 하니?” “형아에게 줘야 해요.” 승국이는 찬송가를 형에게 줬습니다. 뜻하지 않게 작은아들이 순순히 찬송가를 주자, 큰아들은 한동안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정직한 마음은요, 승국이가 양보했으니까 제가 갖는 거예요.” 이미 동생의 양보로 자기 소유가 된 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큰아들에게 아내가 말했습니다. “승훈아, 정직한 마음을 말한 것은 참 잘했어.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정직한 우리 마음이 원하는 것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단다.” 심각한 표정을 짓던 큰아들이 마침내 찬송가를 승국이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매일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그 찬송가를 갖도록 판결을 내려 주었습니다.
-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 이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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