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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죄의 행위는 죄의 의지를 그 동기로 삼는다고 할 수 있겠으나
무엇이 죄의 의지의 근원이었나?
어떻게 무죄한 의지가 죄있는 자처럼 생각하기 시작할 수 있었겠는가?
어거스틴은 이점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도 악한 의지의 충종한 동인을 찾으려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동인은 그 자체가 충족한 것이 아니라 결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함들의 원인들,
다시 말하거니와 충족한 것이 아니라 결함되어 있는 원인들을 찾는 것은
마치 어두움을 보려는 것이나 침묵을 들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 간단하게 말하자면 죄는 설명되어질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이런 정도에 내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첫 조상이 죄를 범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적인 허용바깥에서
일어나지 않았음은 여전한 진리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의 원인이 아니셨다.
그러나 허락은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뜻에 어긋나는 일들을 일어나도록 허락하실 수 있겠느냐하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오래전 어거스틴은 그것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주님의 하신 일들은 그의 의지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크고,
잘 숙고된 일이다’라는 진술의 의미는 이것이다.
즉 기이하고도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뜻에 어긋나게 행해진 일이라 할지라도
그의 뜻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혁주의 인간론 / 안토니 후크마> pp.224-225
[출처] 죄의 수수께끼 / 안토니 후크마|작성자 이피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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