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더해주는 감사신앙
2002-10-15 15:03:39 read : 7267
눅 17:11-19 // 021013
<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
오늘은 우리 교회에서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금년에도 엄청난 수마가 우리 나라와 이웃을 할퀴고 갔고 여러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 아픔 속에서도 우리가 건강하게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거리를 찾아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갈등하는 많은 문제는 사실 감사하지 못하는 삶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는 것! 바로 삶의 최대의 지혜입니다.
특히 어려울 때 감사해야 진짜 감사입니다.
어려울 때 한번 감사하는 것은 일이 잘 될 때 백 번 감사하는 것보다 가치 있습니다.
주님은 어려울 때 감사하면 "네 믿음이 크구나!" 하시면서 더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어려워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높으신 뜻이 있음을 믿고 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사람은 실패를 죽기보다 싫어하지만 실패를 잘 요리하면 성공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고상한 실패는 수많은 저속한 성공보다 더 소중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 더 많은 교훈을 얻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교훈만 얻습니까? 그때 바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실패 속에서 자기 연약함을 인정할수록 하나님 만날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얼마 전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의 저자 레나 마리아가 내한 공연을 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양손이 없었고, 한쪽 발도 짧았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발로 글을 쓰고, 발로 밥을 먹고,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고, 십자수도 놓았습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수영과 운전도 하게 되었고 장애인 올림픽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특히 얼마나 노래를 잘 하는지 아름다운 찬양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녀는 자기를 장애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다르게 사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천사의 표정을 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진정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하며 희망을 노래해야 하고,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은 크게 영광 받으시고, 큰 축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 살면서 시련도 있어야 합니다 >
때로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알고 보면 그 어려움 때문에 우리가 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됩니다.
편하고, 일이 잘 풀리고, 자녀가 잘 나가면 잘 믿을 것 같지만 더 못 믿게 됩니다.
대개 망하는 사람을 보면 환난 때문에 망하기보다 잘 되는 것 때문에 더 망합니다.
잘 된다고 흥청망청 살고, 음란하고, 안일하게 사니까 내 안에서 망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전혀 없기를 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더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어려움도 예상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어려움은 더 안 찾아오고, 어려움이 찾아와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고 돈과 권력과 지위와 건강이 있어야 행복합니까?
자기의 사람됨은 저 밑바닥에 있고, 자기 영혼은 병들었는데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추한 모습으로 건강하게 살기보다 건강은 약해도 아름답게 사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건강, 내 생명, 내 가는 길을 지켜 주셔야 우리는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평안하게 지냈습니까? 다른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외적으로 불안하니까 만리장성을 쌓았고, 내적으로 불안하니까 아방궁을 지었습니다.
건강이 불안하니까 동남동녀 3천 명을 동해 신선도로 보내 불로초를 구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대적은 다 죽였지만 오래 못 살고 아방궁에서 마흔 아홉 살에 죽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외적도 있고, 내적도 있고, 힘든 상황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기도하고, 그래야 우리가 바로 살고, 우리가 겸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시황처럼 별난 것을 먹고, 유별나게 살아야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잘 믿어야 참 행복과 위로부터 주시는 무한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어려움이 없으면 자기밖에 모르게 되지만,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은 남을 생각해 줍니다.
어떤 재벌 아들이 미국 가서는 편지 안 하더니 군대 가서는 편지를 잘 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역시 군대 잘 갔다. 군대 대학이 제일 좋은 대학이구나!" 했다고 합니다.
어려워봐야 부모가 보이고 형제가 보이고 감사한 마음이 생기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성도의 삶이란 어려움이 없는 삶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와도 감사하며 이겨내는 믿음의 삶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에도 하나님을 믿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축복을 얻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
오늘 본문은 10명의 문둥병자 얘기를 통해서 감사를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문둥병자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얼마나 절망적인 일입니까?
그들이 예수님 소식을 듣고, 멀리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세요!"하고 울부짖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의 한을 아시고, 고쳐주시기로 작정하시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
당시에는 제사장이 문둥병이 나았다고 판정해야 가족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떤 상처 때문에 불평이 늘어난 교만한 문둥병자가 이렇게 불평합니다.
"안수도 안해주고 이게 뭐야! 예수님이란 분도 별 수 없어! 우리가 더럽단 말이지!"
가장 큰 비극은 불행을 당했을 때 자기 불행에만 매달려 사는 거만한 모습입니다.
만약 이 문둥병 환자들이 불행에 매달렸다면 결코 그 병은 낫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행을 당했을 때 필요한 것은 불행보다 주님의 긍휼에 매달리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다행히 문둥병자들은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하며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러 떠났습니다.
문둥병자가 병도 낫지 않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순종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제사장에게 가다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꿈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가족들 만날 부푼 꿈을 안고 계속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한 명은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가다가 발길을 돌려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면 그런 행동을 '하나님께 영광 돌린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원한다는 고백을 많이 하고,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인지를 잘 모릅니다.
자기가 믿는 자로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믿는 자로서 실패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하는 사람들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란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면 좋은 일을 해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름을 드러낼수록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크기가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나면 감사하되, 이름을 억지로 내지 않을수록 하나님께서 더 영광 받으십니다.
얼마 전, 가난한 제 3세계 사람들에게 신학 공부를 시켜주는 안디옥 선교회를 갔을 때
이슬람권에서 온 학생들이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노동으로 피곤에 지친 얼굴을 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며 공부하는 그들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 관한 글을 인터넷에 게시하자 한 분이 조용히 한 사람 교육비를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의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등록금 보조를 받은 학생은 누가 자신을 도와주었는지 모르니 어떻게 합니까?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신학생이 도와준 분을 알고 큰절을 했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분이 이름 없이 선행을 하니까 결국 전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름 없이 선행을 하게 되었을까요? 은혜 받고 감사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인터넷으로 말씀을 대했지만 마음에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나 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감사하면 더 큰 감사거리를 주십니다 >
그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러 온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열 명이 다 깨끗하게 되었는데 나머지 아홉 명은 어디 있느냐?"
그리고 나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그 한 사람에게 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두 가지 큰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인정이었습니다. "너밖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없구나!"(18절)
이 세상 살면서 가장 큰 축복은 남에게 인정받는 것, 특히 주님에게 인정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절)
한 명의 감사를 표현한 문둥병자는 결국 '주님의 인정'과 '구원의 은혜'까지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비하면 문둥병자의 병이 나은 은혜는 오히려 작은 것이 아닐까요?
그처럼 감사할 것에 대해 감사하면 반드시 높은 이자와 함께 축복이 돌아오게 됩니다.
'감사의 문'이 열리면 '하늘 문'이 열리고, '행복의 문'도 반드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암에 걸렸습니다. 몸이 힘드니까 간호하던 자녀들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의 심방예배를 받으면서 이분은 모든 것을 감사하기로 다짐했습니다.
한번 감사하기로 작정하고 이분은 죽도록 감사하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병원에 오는 분마다 이분의 감사 고백을 듣고 오히려 용기를 얻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처럼 죽도록 감사를 실천하니까 암세포가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영혼과 육신의 암까지 치료되고, 더 많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 감사한 일이 있으면 바로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
나머지 아홉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마 그들 중에는 제사장에게 보여 완치 판정을 받고
가족들을 만난 후, 가족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감사하러 오겠다는 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일을 미루면 대개 감사하지 못하고 다시 자기 욕망대로 살게 됩니다.
병들었을 때는 "이 병만 고쳐주시면 제일 잘 믿을게요."라고 누구든지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병이 낫고 조금 시간이 흐르게 되면 다시 자기 욕망대로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감사의 때를 놓치지 말고, 특히 더 늦어 후회가 되기 전에 부모님께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 요구하는 모습은 많아 보여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은 적습니다.
육체가 무감각해지는 문둥병보다 은혜에 무감각해지는 영적 문둥병이 더 문제입니다.
은혜에 무감각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행복이 끝장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는 성령님께서 거하지만 불평하는 마음속에는 마귀가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할 때, 말로만 감사하기보다 시간으로도, 몸으로도, 물질로도 감사하십시오.
사실상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지 않습니까?
복음의 최전방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들도 역시 실질적으로 물질이 많이 필요합니다.
누가 그 필요를 채워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감사를 아는 우리가 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저는 믿음이 없어요. 사업 조금 더 하고 나중에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겠다는 분이 시간이 지나 선교하고 구제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지금 감동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지금 당장 다른 어려운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힘껏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금년을 보람있게 사셨습니까? 한번 속으로 남을 위해 해 준 것을 한번 꼽아보십시오.
오늘 집에 돌아가셔서 한번 펜을 가지고 종이에 남을 위해 해 준 것을 적어보십시오.
종이에 하나도 적지 못한다면 금년 한해도 별로 보람있게 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그 책임을 읽을 줄 알고, 그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진실로 감사를 아는 사람입니다.
< 참으로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
루터는 말했습니다.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항상 '있는 것'을 생각하는 선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나처럼 모자란 사람과 기쁘게 살아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떤 남편은 아내가 나 없이는 못 살 것 같으니까 참아가며 자기와 살아 주는 줄 압니다.
그런 생각은 가장 위대한 착각입니다. 그런 착각과 오해가 가정을 파괴하는 세균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이들이 많아서 가끔 예배에 방해가 됩니다. 그것도 사실 감사거리입니다.
이번 주에 어떤 작가의 고백을 듣고 아이들 떠드는 소리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의 고백에 의하면 작가에게는 사색과 명상을 위한 조용한 시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애들이 시끄럽게 하니까 줄거리가 잘 떠오르지 않고 짜증이 났습니다.
"조용한 곳에 혼자 얼마나 좋을까" 하는데 어느 날 진짜 조용한 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심한 위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하니까 조용해서 처음 열흘간은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그 조용한 시간이 금방 싫증이 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오히려 글쓰는 촉매제가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조용한 순간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시끌벅적한 순간도 필요합니다.
조용한 것이 좋아 보여도 신경성 정신질환은 대개 소리가 없는 환경에서 많이 생깁니다.
지나치게 조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에는 텔레비전 소리, 차 소리, 시장 소리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어린아이들 소리가 많다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을 보면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 중에 어렵게 사는 사람이 더 감사할 줄 안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풍족하게 사는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바로 감사하는 삶입니다.
요새 아이들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최대한 해주고 학교에도 자가용으로 모셔다줍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 감사하는 삶을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힘써 가르쳐야 합니다.
풍족해도 아이들에게 풍족함을 다 쏟아 붓지 마시고, 항상 감사하며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자녀가 잘 되는 길이고, 자녀의 눈빛이 빛나게 되고, 축복 받는 길입니다.
많이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적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복된 존재입니까?
'많이 가진 삶'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많이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조엘 해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을 다 얻었을 때는 더욱 조심하라. 살찌는 돼지는 운이 나쁜 돼지이다."
어떤 분은 참 어렵게 사는데 감사하는 말이 입에 붙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분입니다.
사람은 은혜 받을수록 은혜를 잘 모르지만 성도는 은혜 받을수록 더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서 부모가 큰아들을 위해 논 팔고, 소 팔아서 유학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결국 큰아들은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미국에 주저앉아 편지 한 통 없었습니다.
반면에 작은아들은 큰아들 공부시키느라고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고생한 노부모를 모시는 사람은 작은아들이라면 누가 복된 존재입니까?
여러분!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에 속하지 말고 감사할 줄 아는 한 명이 되십시오.
신앙생활의 목적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민을 가슴에 품고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일 중에서도 주님은 우리의 진실한 감사를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항상 범사에 감사하며, 남을 도우며,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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