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꿈을 가지라 (요한복음 1장 35-42절) < 영혼 구원에 힘쓰라 >
한때 공산주의가 짧은 기간에 지구 절반을 삼켰었다. 왜 그것이 가능했는가?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학습의 힘이다. 학습은 히틀러도 위대한 영도자로 믿게 만들고 잘못된 이론도 진리로 믿게 만든다. 둘째, 조직의 힘이다. 조직은 확산의 근거다. 공산주의는 두 명이 있어도 조직을 만들어 거기에 사람을 담았다. 셋째, 활동의 힘이다. 만원이 한 사람의 호주머니에 가만히 있으면 만원의 가치로만 남지만 열 사람을 거쳐서 돌면 10만원의 가치를 낳는다. 얼마나 활동하느냐에 따라 파워가 커진다. 그 활동을 공산주의에서는 ‘투쟁’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도 사실상 그 3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하나님 말씀을 학습시키고 그 다음으로 조직을 만든 후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 복음의 진리 안에서 활동하면 한 사람의 힘이 크게 증폭된다. 영혼 구원을 위해 직접 전도에도 힘쓰고 자기 분야에서의 성공적인 삶을 앞세워 간접 전도에도 힘쓰라. 내 재능과 시간과 물질을 힘써 활용하라. 관심과 전략을 가지고 서두르지는 말되 시간을 아껴 영혼 구원에 투자하고 사명적인 제자를 만드는데 일조하라.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이 첫 제자를 얻는 장면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첫째, 예수님의 공생애 첫 사역은 제자 삼는 사역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제자의 중요성을 잘 교훈한다. 주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교인으로 머물지 말고 늘 주님 안에 있는 신실한 성도가 되고 더 나아가 주님을 위해 활동하는 제자가 되라.
둘째, 예수님의 첫 두 제자는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본문 35절에 나오는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는 표현을 보면 그 두 제자는 세례 요한의 핵심 제자였을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첫 두 제자는 예수님 말씀을 듣기 전에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좇았다. 핵심 제자를 거리낌 없이 예수님의 제자로 보내는 장면에서 세례 요한의 위대성을 깨닫게 된다.
셋째, 두 제자는 주님을 좇으면서 주님 거처부터 물었다는 사실이다. 본문 38절을 보라.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그 질문을 통해 두 제자의 어떤 마음을 읽는가? 주님이 계신 곳으로 자신도 가겠다는 철저한 제자 의식을 읽는다. 결국 두 제자는 예수님을 만난 첫날부터 예수님과 함께 거했다(39절). 군소리나 변명이 없이 몸과 마음 전체를 던지는 그 모습을 보라.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줄 아는 헌신적인 사람들이었다.
넷째, 예수님의 첫 두 제자 중 하나는 안드레라는 사실이다(40절). 안드레는 먼저 자기 형인 베드로를 찾아 전도했다. 결국 안드레를 통해 가장 위대한 스승과 가장 위대한 제자가 만나게 되었다(41절). 그 사실을 통해 유명한 ‘안드레 전도법’이 생겼다. ‘안드레 전도법’에는 3대 핵심 원리가 있다. “첫째,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전도한다. 둘째, 전도할 핵심 내용은 예수님이 구세주(메시야)라는 사실이다. 셋째, 나를 통해 위대한 제자가 만들어질 수 있다.”
< 안드레는 어떤 사람인가? >
안드레 전도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드레란 인물 자체다. 사람들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로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진 베드로에 관심이 많지만 베드로가 베드로 되는데 공헌한 인물이 그의 동생인 안드레였다. 안드레란 이름은 ‘남자다운, 용감한’이란 뜻인데 그 이름처럼 그는 용감하게 살았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성경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작은 것을 살피는 사람
안드레와 베드로는 형제지만 성격은 많이 달랐다. 베드로는 활활 타는 휘발유 같다면 안드레는 타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타는 조개탄 같다. 성경에서 안드레가 처음 나오는 장면이 본문이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역사상 최초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개척자가 되었다. 그리고 개척자의 외로움을 해결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전도를 택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가장 먼저 형 베드로를 찾아 전도함으로 가족 전도의 최초 모델이 되었다.
특히 안드레의 전도는 한 사람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가르쳐준다. 그가 전도한 베드로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했는가? 베드로를 통해 이뤄진 전도 열매의 상당한 공은 안드레 몫이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지 못해도 한 영혼 구원이라도 힘쓰라. 대중을 향해 외치는 베드로도 소중하지만 한 영혼을 위해 구체적인 관심을 가진 안드레도 소중하다. 사람들은 대개 많은 것과 큰 것을 좋아하지만 한 사람을 향해 깊은 관심을 가진 안드레 같은 사람이 때로는 더 필요하다. 숫자가 적은 곳에서도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삶이 진실하고 복된 삶이다.
2. 겸손하고 속 깊은 사람
안드레는 최초의 신자이면서도 기득권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에 관한 기록이 성경에 12번 나오는데 대부분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 소개되어 나온다. 안드레가 그 기록을 봤다면 기분 나빴을지 모른다. 그는 주님이 가장 사랑했던 세 명의 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룹에서도 빠졌지만 그 상황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희생을 덜했기에 이름이 덜 빛난 것이 아니다. 그의 이름이 덜 빛난 이유는 그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겉만 그럴듯한 사람이 아닌 속 깊은 사람이었다.
안드레는 진리의 실천에 힘썼고 예수님을 높이는 데는 관심이 많았지만 자신을 높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예수님이 하셨던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는 말씀을 가장 잘 실천했던 사람이 안드레였다. 사람들은 안드레보다 베드로가 큰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천국에 가면 그 순서가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했다.
3. 희생할 줄 아는 사람
전설에 의하면 안드레는 나중에 러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한다. 지금도 러시아는 안드레를 수호성인으로 여긴다. 스코틀랜드와 그리스에서도 안드레를 제일 성인으로 친다. 안드레는 나중에 파트라 영주 아내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때 영주는 자기 아내가 예수님을 믿자 안드레를 십자가에 처형했다. 그때 십자가에서 안드레가 외쳤다. “죽는 모습이라도 예수님과 같지 않기를 원한다. 죽는 자세를 바꿔 달라.” 그 마지막 소원을 영주가 들어주어서 그는 엑스 자 형태로 기울어진 상태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사람들은 옳은 것을 좋아해도 그것을 위해 희생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익을 희생할 줄 알아야 더 유익을 얻는다. 신앙생활의 요체는 십자가의 희생이다. 십자가의 희생이 없이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역사도 없다. 늘 희생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좋은 선택을 위해 내놓을 줄 알라. 이기심은 하나님의 임재를 크게 막는다. 복된 삶을 원하면 자꾸 주는 훈련을 하라. 진리를 위해 희생하면 희생한 것 이상의 것을 얻는다. 진리가 진리 되게 하려고 희생의 대가를 치를 때 진리가 참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 인물의 꿈을 가지라 >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한 후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오자 예수님은 베드로의 가능성을 보고 장차 게바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라고 말씀했다(42절).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헬라어로는 베드로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보고 하신 말씀은 위대한 인물을 낳게 하는 중요한 요소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바로 꿈이다. 누군가의 꿈을 이해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꿈을 이해하고 “너는 지금 갈대지만 나중에는 반석이 된다.”고 하셨다. 그 말씀대로 베드로는 반석과 같은 최고 제자가 되었다. 왜 베드로는 예수님을 처음부터 열렬히 따랐는가? “이분은 내 꿈을 이해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완전한 작품 성도는 없다. 작품이 되어 교회에 나온 것이 아니라 현재는 부족하지만 더욱 나아지고 쓰임 받을 것이라는 꿈이 있기에 나온 것이다.
베드로는 초라한 자신에게 “네가 앞으로 작품이 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때부터 얼마나 가슴 벅찬 꿈을 가졌겠는가? 그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꿈과 가능성을 이해해주고 인정해주라. 현재의 모습만 보고 실망하면 사람에 대해 늘 실망하기 쉽다. 그러나 꿈과 꿈이 통하면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서 단점을 보는 눈은 닫히고 장점을 보는 눈이 열린다. 그때 마음의 문이 열리면 대화의 문도 열리고 동시에 축복의 문도 열린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지금도 내게 주시는 말씀이다. “아무개야! 네가 지금은 작품이 아니라도 장차 작품이 된다.” 그 말씀을 듣고 꿈을 새롭게 가지라. 자기 가능성을 낮게 보지 말고 믿음으로 고백하라. “나도 하나님의 큰일을 하는 거룩한 큰손이 될 수 있다. 꿈은 이뤄진다.” 그런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성공적인 삶을 추구하라. 믿음은 바라는 꿈의 실상이다. 믿음에 근거한 꿈을 가지면 조만간 믿음대로 된다.
어떤 꿈이 믿음에 근거한 꿈이고 어떤 꿈이 허황된 꿈인가? 꿈이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면 허황된 꿈이지만 꿈이 자신을 행동하게 만들고 사람답게 만들면 믿음에 근거한 꿈이다. 믿음에 근거한 구체적인 꿈을 가지라. 성도는 과거보다 미래가 더 좋게 된다. 하나님은 찬란한 꿈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나타나 만나주신다.
꿈을 가졌거든 그 꿈으로 남을 초청하라. 꿈이 내 안에서만 잠들게 하지 말라. 거룩한 꿈을 확산시키는 것이 전도다. 전도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영혼을 내가 구하겠다고 하면 부담이 커지고 전도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단순히 복음을 들을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생각하면 전도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믿으라.”고 하는 것도 전도지만 “와 보라.”고 하는 것도 전도다. 본문 39절을 보면 예수님도 “와서 보라.”고 하셨다. 빌립이 나타나엘을 찾아 전도할 때도 “와서 보라.”고 했다(46절).
성경 진리로 잘 무장해 복음의 원리를 정교하게 잘 전하려고 하면 전도가 어렵지만 “와서 보라.”고 하면 어렵지 않다. 실제로 제자훈련 공부를 많이 한 사람보다 초신자가 더 전도를 잘한다는 통계가 있다. 전도는 성경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열의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말씀의 현장인 교회로 “와서 보라.”고 초청할 때 때가 맞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늘 거룩한 꿈을 품고 남의 꿈을 이해해주면서 힘써 복음을 전파함으로 하늘나라의 귀한 초석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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