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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홍해의 광야 길! (출 13:17-22)

by 【고동엽】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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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의 광야 길! (출 13:17-22)


일사유사(逸士遺事) 라고 하는 우리나라 고전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양에 김학성씨라고 하는 유명한 분이 살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두아들, 형제를 서당에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여느 날과도 같이 그날도 집에서 삯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이 비오는 날 처맛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주룩 주룩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울림같은 여운이 나서 '이상하다' 여겨서 처마 밑을, 땅 밑을 파보았더니 커다란 가마솥이 있고, 그 솥뚜껑을 열어보니까 그 속에 은이, 은전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아마도 잦았던 난리로 인해서 누군가가 이 은을 이렇게 가마솥에 넣어서 땅에 묻어놓고 피난을 갔다가 못돌아오고 그 어디선가 죽어버렸던가봐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 가난한 어머니는 재빨리 그 뚜껑을 덮고 그리고 되묻어서 흙으로 다 묻어서 그 집을 팔고 조그마한 오막살이로 옮겨가서 어머니는 여전히 삯바느질을 하면서 두 아들을 애써 가르쳐서 훌륭한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었을 때 두 아들을 불러놓고 그 옛날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땀흘리지 아니한, 또 갑작스럽게 얻은 재물이라는 것은 곧 재앙을 부르는 것이다" 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같은 날 이런 일이 있었으면 축하파티를 했습니다.  신문에 났을 겁니다.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lucky라고, 팔자 고쳤다고, 이제 삯바느질 할 필요없다고 너희들 공부 걱정할 것 없다.  우리 운명이 이렇게 열렸고 복을 받았다고 기뻐하고 축하했을 것입니다.  공짜, 횡재, 그리고 불로소득, 이것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은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닙니다.  성공 다음에 오는 무서운 시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대표적인 영화사 중에 하나인 PARAMOUNT PICTURES라고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여기 회장님은 여자 분입니다.  쉐리 랜싱(Sherry Lansing) 이라고 하는 분인데 아주 밑바닥에서부터 많은 수고를 해서 회장의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입지전적인 인물이올시다.  이 유명한 랜싱 회장의 좌우명이 있습니다.  그 회사원들을 가르치는 교훈이 있습니다.  "과정을 즐겨라.  그리고 성공을 염려하지 마라."  성공할까 실패할까, 이거 두려워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과정 자체를 즐겨라 이 말이죠.  과정 자체 속에 우리의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어야되고, 결과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더 빠른 것이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훈계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가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을 합니다.  큰 권능으로 광야로 나오게 됩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었던가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인도해서 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이상하게도 말이에요 하나님이 정한 코스가 그 노정이 우리 인간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인간들의 상식으로 말하면 그대로 북쪽으로 올라가서 동쪽으로 가야됩니다.  그럼 육로로 갈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 올라가서 동쪽으로 가야 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이게 정코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상하게도 상식과는 달리 깊은 물이 무려 340m나 되는 수에즈만 앞바다, 홍해, Yam Suph로 인도했다는 겁니다.  얌수프라고 하는 이 홍해바다 길로 인도했습니다.  막다른 길로 인도했습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동으로 동으로 와보니 앞에는 홍해가 있습니다.  뒤에는 분노한 애굽군대가 지금 원수를 갚겠다고 따라오고 있어요.  상상을 해 보세요.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요 하나님이 가라고 한 길이요 모세가 인도한 길입니다.  그런데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점점 가까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저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속된 말로 독 안에 든 쥐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4장 11절에 보면 저들이 원망을 합니다.  정말 원망할만 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느냐? 왜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다가 죽이려느냐?  합리적인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합리한 노정을 하나님이 택해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때 그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 또 다른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와 경륜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무언가 많이 잘못되었는데 하나님께는 깊은 뜻이 있었어요.

첫째는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시고 저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증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떠나서 저 가나안 땅까지 가는 노정에는 말입니다.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고로 이 시간에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보호하고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다 더 확실하게 증명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깊은 인상을 가지고 깊은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기를 원해서 이런 드라마틱한 사건이 이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말씀대로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인도해서 주야로 항오를 벌여서 이렇게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자,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저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하는 것을 깊이깊이 인상을 주고 깊이 감동하고 감격한 가운데 확신을 가지고 광야 길을 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랑의 계시를 확증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사랑이 뭡니까?  상대방의 처지를 알고 저를 사랑하는 겁니다.  상대방이 어느 수준에 있는 지를 알고 그의 약점거리에 미숙한 점 이걸 다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성경말씀을 자세히 보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오기는 했지만은 아직도 확실한 신앙의 사람들이 못됩니다.  이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가다가 북쪽으로 올라가서 이 직행하는 길로 가다가 만일에 블레셋 사람들을 만나서 전쟁을 하게 되면 이거 본문에 분명히 말했어요.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습니다.  전쟁을 보는 순간 아이구 어쩌자구 우리가 여길 왔는가?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 돌아갈거라는 거죠.  꼭 그러리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저들은 약하고 미숙해요.  하나님은 그것을 아세요.  그러기 때문에 오늘 같은 큰 사건을 통해서 저들에게 믿음을 줄뿐만 아니라 놀라운 것은 귀로를 차단해 버렸어요.  다시 돌아올 수 없게.  홍해를 열었다가 닫아버렸어요.  이것을 보는 순간 '이제는 못 돌아간다' 그러한 확실함을 주기 위해서 이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죠.  귀로를 차단했다.  다시 옛 노예생활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했다.  돌아갈 수 있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은 다시는 못 돌아가게 길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얘기죠.  놀라운 배려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가운데도 종종 그런 경우가 많아요.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가 조금 어려운 일 당하면 옛날로 돌아가요.  옛 생활스타일로 돌아가려고 하는 그런 나약함이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는 '노 리턴(No Return)!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그렇게 홍해를 가로막았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것을 저들에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내가 말한 일은 내가 책임진다'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데 대한 것은 하나님이 책임을 집니다.  가라면 갈것이요, 오라면 올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책임을 집니다.  여러분 그것 아십니까?  진정한 순종은 나를 순종케 하시는 자에게 내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자유합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사람은 자유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마음이 늘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는 사람, 거역하는 사람, 자, 예를 들어서 남편의 말을 거역하고 또 부모의 말도 거역하고 누구의 말도 거역하고, 거역하는 순간 전개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됩니다.  이 책임이 누적되면서 소위 스트레스라는 게 생기는 겁니다.  스트레스는 거역하는 반발형의 사람에게 생기는 거예요.  온유 겸손해서 부모님이 말씀하시면 부모님께, 또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선생님께, 잘 순종해서 사는 사람은 심령이 자유롭습니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어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사람은 고집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 멋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홍해의 광야길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갑니다.  홍해가 딱 가로막혀 있습니다.  '아이고 이제는 죽었다' 하는데 '걱정하지 마라.  내가 가라고 한 일이니까 내가 책임진다' 이거 아닙니까?  간단한 이치예요.  내가 하라고 한 일에 대해선 내가 책임진다.  내가 명령한 데 대해 순종한 것은 내가 책임진다 그 말이예요.  그리고 저 가나안땅을 계속해서 약속해 주십니다.  '저 땅에 가는 것은 내가 허락한 것이니라, 내가 약속한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엔 큰 믿음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게 하기 위해서 출애굽 벽두에 이같은 큰 사건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데로 이같은 큰 권능과 능력을 출애굽 그리고 가나안으로 가는 노정에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종종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광야에 엎드러져 죽기도 하고, 많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거 왜 원망하느냐?  원망의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건망증이 심해서 그래요.  지난날에 받은 은혜가 큰데 그 큰 은혜를 오늘도 기억하고 있으면 되겠는데 자꾸만 잃어버려요.  그때는 감사 감격하고 심지어는 '이대로 죽어도 좋다' 할만큼 충만할 때가 있었지만은 곧 잃어버린다는 거죠.  이게 문제올시다.  여러분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이제 홍해가 열립니다.  홍해를 건넌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찬송을 했는지 그 감격은 우리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고 나서 그 감격이 얼마나 갔느냐 이거예요.  성경학자들이 잘 연구해 보면 꼭 열나흘 갔어요.  열나흘 갔다가 쪼금 어려운 일이 있다고 또 원망을 하는 거예요.  전일에 보호하신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앞으로도 인도하실 거 아니겠습니까?  전일의 큰 능력으로 나와 함께 하셨으면 또 앞으로 오늘과 내일도 함께 하실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믿음이 없는 겁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적게 믿는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느냐?"  여러분 이걸 아셔야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지난날에 받은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건망증 환자들이에요.  그래서 오늘의 문제에 대한 것을 바로 타계할 수가 없었어요.

또 하나는 너무 조급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 앞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라고 하는 책을 쓰신 이규태 씨, 그 이규태 교수님의 칼럼이 매일같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규태씨의 글 가운데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사람의 성품 중에, 의식구조 속에, 그 체질 중에 고쳐야 할 것 하나가 있다, 하고 강조합니다.  그게 뭐냐하면 쿼터리즘입니다.  쿼터리즘.  쿼터리즘이라고 이렇게 학술적인 용어를 썼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쿼터라는 말은 15분이라는 말이에요.  "15분주의" 그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정에 성숙하지 못하고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 초조해.  꼭 뭐든지 15분밖에 못합니다.  아침 신문보는 거 자세하게 논설도 읽고 해야 하는데 큰 글자만 요렇게 요렇게 15분.  뭐든지 15분으로 훌쩍 넘겨버려.  침착하게 오래오래 생각을 하고 그러지 못합니다.  이 15분이라고 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분이 지적한 대로 유원지에서 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보아도 놀이터에 어떤 놀이기구에 앉아서 노는 아이들을 보아도 가만히 보면 5분밖에 안놀아요. 5분 있고 짜증을 내는 거예요.  어른들은 15분 얘들은 5분.  이렇게 초조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요즘에 "느리게 사는 비결"이라는 책도 나오잖아요.  좀 느리게, 느긋하게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속전속결, 바로 거기에 우리의 인간성이 파괴되어가고 있는 것이예요.  그래서 문제란 말입니다.

제가 쿠알라룸프에 갔을 때, 어느 중국집에 가서 대접을 받고 저녁식사를 하는데 제가 아는 대로 중국집에서 식사라는 건 한접시가 나오면 다 먹고난 다음에 그 다음 접시가 나오고 또 다 먹은 다음에 그 다음, 그렇게 해서 보통 두시간 반동안 식사를 하는 것이 중국음식을 먹는 그 하나의 에티켓인데 가보았더니 한꺼번에 세접시씩 나와요.  그래서 궁금해서 왜 이러냐 물었더니 한국 사람들은 처음부터 빨리빨리 빨리빨리 그러기 때문에 아예 한국 사람 가면 안대요.  세접시씩 그냥 나온대요.  그것뿐만 아니라 빨리 먹고 가기 때문에 부탁을 안해도 음식값을 할인해 준답니다.  소문났어요.  아주 세계적으로 소문 났어요.  급하게 논다, 빨리빨리로 말해요.  그러니까 빨리 망하지.  이걸 아셔야 됩니다.  뭘 하나 제대로 한 게 없어요.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무슨 공사 뭐니….  좀 느긋하게 하질 못해요.  급하게 해놓고 축하파티하고 무너지지 않습니까.  왜 이모양 입니까?  걸려야 할 시간만큼은 걸려야 되는 거예요.  과정을 무시하는 거예요.  결과만 가지고 따지는 겁니다.  이것이 망조예요.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모든 것이 다, 보세요.  무엇 때문이에요?  쿼터리즘이에요.  조급해요.  조급합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가는데 왜 이렇게 조급해요?  조금 일이 잘되면 감사하고, 찬송하고, 조금만 안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종잇장처럼 벌컥벌컥 튀어요.  조급한 마음, 이것이 이렇게 원망으로치닫게 되는 것이예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어요.또 하나, 믿음이 없었어요.  많은 사건을 통해서 은총을 경험하고 있지만은 그 마음 심성 속에 깊이깊이 신앙이 없었어요.  문제올시다.  그래서 13장 14절에서 보면 모세는 말합니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날 여호와 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그 구원을 보라.  그 말 합니다.  구원을 보라.  Be still know that I am God, 조용하야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하나님 됨을 알라.  믿음을 요구합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을 돌보는 사람들을 호스피스라 합니다.  요새는 이 호스피스가 하는 직업이 대단히 중요한 직업입니다.  그들이 임종에 가까운 사람들을 봉사해 가면서 듣고 경험한 일을 집약해 놓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백만장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학자도 있고 그리고 무식한 사람도 있습니다.  천태만상의 사람이 자기들 앞에 와서 임종을 맞습니다.  그 지식과 재산 명예, 아무소용 없대요.  그들앞에는 다같이 어린아이예요.  마지막 임종할 때 공통적으로 세가지를 후회하는 것이에요.  첫째가 그때 좀 더 참고 인내할걸…….  조금 더 참았으면 좋았는데 참지 못한 데 대해서 후회가 있어요.  두 번째는 그때 좀더 베풀 걸…….  얼마든지 선한 일 할 수 있었는데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왜 인색했던가?  베풀지 못한 데 대한 후회.  세 번째가 그때 좀더 재미있게 살걸…….  뭐 불만도 많지만은 그만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는데 나는 왜 행복하지 못했던가.  좀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하는 것을 이제서 후회한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 이렇게 원망불평 해놓고 하나님이 큰 역사를 이루실 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볼 때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원망하지 말걸…….  아니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딘 길로 인도하십니까?  왜 직행하는 길을 빼놓고 먼길로 가라 하십니까?  왜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까?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길로, 왜 가까운 길 놔두고 먼 길로 가라하시는 것입니까?

실패와 위기, 우리가 당하는 사건, 그 속에 말씀이 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향한 특별한 배려가 있습니다.  우리의 약점을 아시고 우리로 하여금 옛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도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자만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더 이상 거짓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십니다.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이제 아무 불만없이 조용히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이 길로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으로 주신 이 길로, 묵묵히 감사하며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는 우리에게 은혜의 길로 인도하시건만 때때로 우리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원망하기도 하고 주께서는 우리를 사랑해서 주시는 시련이건만 우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힘에 부친다고 하나님을 원망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께서는 우리를 홍해의 광야길로 내몰고 인도하시는 줄 압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고 주께서 인도하시고 주께서 책임지시는 이 길로 우리가 따라가면서 조용히 참고 견디고 인내하면서 주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일사유사(逸士遺事) 라고 하는 우리나라 고전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양에 김학성씨라고 하는 유명한 분이 살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두아들, 형제를 서당에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여느 날과도 같이 그날도 집에서 삯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이 비오는 날 처맛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주룩 주룩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울림같은 여운이 나서 '이상하다' 여겨서 처마 밑을, 땅 밑을 파보았더니 커다란 가마솥이 있고, 그 솥뚜껑을 열어보니까 그 속에 은이, 은전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아마도 잦았던 난리로 인해서 누군가가 이 은을 이렇게 가마솥에 넣어서 땅에 묻어놓고 피난을 갔다가 못돌아오고 그 어디선가 죽어버렸던가봐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 가난한 어머니는 재빨리 그 뚜껑을 덮고 그리고 되묻어서 흙으로 다 묻어서 그 집을 팔고 조그마한 오막살이로 옮겨가서 어머니는 여전히 삯바느질을 하면서 두 아들을 애써 가르쳐서 훌륭한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었을 때 두 아들을 불러놓고 그 옛날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땀흘리지 아니한, 또 갑작스럽게 얻은 재물이라는 것은 곧 재앙을 부르는 것이다" 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같은 날 이런 일이 있었으면 축하파티를 했습니다.  신문에 났을 겁니다.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lucky라고, 팔자 고쳤다고, 이제 삯바느질 할 필요없다고 너희들 공부 걱정할 것 없다.  우리 운명이 이렇게 열렸고 복을 받았다고 기뻐하고 축하했을 것입니다.  공짜, 횡재, 그리고 불로소득, 이것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은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닙니다.  성공 다음에 오는 무서운 시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대표적인 영화사 중에 하나인 PARAMOUNT PICTURES라고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여기 회장님은 여자 분입니다.  쉐리 랜싱(Sherry Lansing) 이라고 하는 분인데 아주 밑바닥에서부터 많은 수고를 해서 회장의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입지전적인 인물이올시다.  이 유명한 랜싱 회장의 좌우명이 있습니다.  그 회사원들을 가르치는 교훈이 있습니다.  "과정을 즐겨라.  그리고 성공을 염려하지 마라."  성공할까 실패할까, 이거 두려워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과정 자체를 즐겨라 이 말이죠.  과정 자체 속에 우리의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어야되고, 결과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더 빠른 것이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훈계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가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을 합니다.  큰 권능으로 광야로 나오게 됩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었던가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인도해서 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이상하게도 말이에요 하나님이 정한 코스가 그 노정이 우리 인간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인간들의 상식으로 말하면 그대로 북쪽으로 올라가서 동쪽으로 가야됩니다.  그럼 육로로 갈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 올라가서 동쪽으로 가야 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이게 정코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상하게도 상식과는 달리 깊은 물이 무려 340m나 되는 수에즈만 앞바다, 홍해, Yam Suph로 인도했다는 겁니다.  얌수프라고 하는 이 홍해바다 길로 인도했습니다.  막다른 길로 인도했습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동으로 동으로 와보니 앞에는 홍해가 있습니다.  뒤에는 분노한 애굽군대가 지금 원수를 갚겠다고 따라오고 있어요.  상상을 해 보세요.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요 하나님이 가라고 한 길이요 모세가 인도한 길입니다.  그런데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점점 가까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저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속된 말로 독 안에 든 쥐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4장 11절에 보면 저들이 원망을 합니다.  정말 원망할만 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느냐? 왜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다가 죽이려느냐?  합리적인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합리한 노정을 하나님이 택해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때 그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 또 다른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와 경륜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무언가 많이 잘못되었는데 하나님께는 깊은 뜻이 있었어요.

첫째는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시고 저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증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떠나서 저 가나안 땅까지 가는 노정에는 말입니다.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고로 이 시간에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보호하고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다 더 확실하게 증명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깊은 인상을 가지고 깊은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기를 원해서 이런 드라마틱한 사건이 이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말씀대로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인도해서 주야로 항오를 벌여서 이렇게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자,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저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하는 것을 깊이깊이 인상을 주고 깊이 감동하고 감격한 가운데 확신을 가지고 광야 길을 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랑의 계시를 확증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사랑이 뭡니까?  상대방의 처지를 알고 저를 사랑하는 겁니다.  상대방이 어느 수준에 있는 지를 알고 그의 약점거리에 미숙한 점 이걸 다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성경말씀을 자세히 보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오기는 했지만은 아직도 확실한 신앙의 사람들이 못됩니다.  이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가다가 북쪽으로 올라가서 이 직행하는 길로 가다가 만일에 블레셋 사람들을 만나서 전쟁을 하게 되면 이거 본문에 분명히 말했어요.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습니다.  전쟁을 보는 순간 아이구 어쩌자구 우리가 여길 왔는가?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 돌아갈거라는 거죠.  꼭 그러리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저들은 약하고 미숙해요.  하나님은 그것을 아세요.  그러기 때문에 오늘 같은 큰 사건을 통해서 저들에게 믿음을 줄뿐만 아니라 놀라운 것은 귀로를 차단해 버렸어요.  다시 돌아올 수 없게.  홍해를 열었다가 닫아버렸어요.  이것을 보는 순간 '이제는 못 돌아간다' 그러한 확실함을 주기 위해서 이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죠.  귀로를 차단했다.  다시 옛 노예생활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했다.  돌아갈 수 있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은 다시는 못 돌아가게 길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얘기죠.  놀라운 배려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가운데도 종종 그런 경우가 많아요.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가 조금 어려운 일 당하면 옛날로 돌아가요.  옛 생활스타일로 돌아가려고 하는 그런 나약함이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는 '노 리턴(No Return)!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그렇게 홍해를 가로막았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것을 저들에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내가 말한 일은 내가 책임진다'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데 대한 것은 하나님이 책임을 집니다.  가라면 갈것이요, 오라면 올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책임을 집니다.  여러분 그것 아십니까?  진정한 순종은 나를 순종케 하시는 자에게 내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자유합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사람은 자유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마음이 늘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는 사람, 거역하는 사람, 자, 예를 들어서 남편의 말을 거역하고 또 부모의 말도 거역하고 누구의 말도 거역하고, 거역하는 순간 전개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됩니다.  이 책임이 누적되면서 소위 스트레스라는 게 생기는 겁니다.  스트레스는 거역하는 반발형의 사람에게 생기는 거예요.  온유 겸손해서 부모님이 말씀하시면 부모님께, 또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선생님께, 잘 순종해서 사는 사람은 심령이 자유롭습니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어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사람은 고집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 멋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홍해의 광야길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갑니다.  홍해가 딱 가로막혀 있습니다.  '아이고 이제는 죽었다' 하는데 '걱정하지 마라.  내가 가라고 한 일이니까 내가 책임진다' 이거 아닙니까?  간단한 이치예요.  내가 하라고 한 일에 대해선 내가 책임진다.  내가 명령한 데 대해 순종한 것은 내가 책임진다 그 말이예요.  그리고 저 가나안땅을 계속해서 약속해 주십니다.  '저 땅에 가는 것은 내가 허락한 것이니라, 내가 약속한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엔 큰 믿음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게 하기 위해서 출애굽 벽두에 이같은 큰 사건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데로 이같은 큰 권능과 능력을 출애굽 그리고 가나안으로 가는 노정에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종종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광야에 엎드러져 죽기도 하고, 많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거 왜 원망하느냐?  원망의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건망증이 심해서 그래요.  지난날에 받은 은혜가 큰데 그 큰 은혜를 오늘도 기억하고 있으면 되겠는데 자꾸만 잃어버려요.  그때는 감사 감격하고 심지어는 '이대로 죽어도 좋다' 할만큼 충만할 때가 있었지만은 곧 잃어버린다는 거죠.  이게 문제올시다.  여러분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이제 홍해가 열립니다.  홍해를 건넌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찬송을 했는지 그 감격은 우리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고 나서 그 감격이 얼마나 갔느냐 이거예요.  성경학자들이 잘 연구해 보면 꼭 열나흘 갔어요.  열나흘 갔다가 쪼금 어려운 일이 있다고 또 원망을 하는 거예요.  전일에 보호하신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앞으로도 인도하실 거 아니겠습니까?  전일의 큰 능력으로 나와 함께 하셨으면 또 앞으로 오늘과 내일도 함께 하실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믿음이 없는 겁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적게 믿는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느냐?"  여러분 이걸 아셔야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지난날에 받은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건망증 환자들이에요.  그래서 오늘의 문제에 대한 것을 바로 타계할 수가 없었어요.

또 하나는 너무 조급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 앞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라고 하는 책을 쓰신 이규태 씨, 그 이규태 교수님의 칼럼이 매일같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규태씨의 글 가운데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사람의 성품 중에, 의식구조 속에, 그 체질 중에 고쳐야 할 것 하나가 있다, 하고 강조합니다.  그게 뭐냐하면 쿼터리즘입니다.  쿼터리즘.  쿼터리즘이라고 이렇게 학술적인 용어를 썼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쿼터라는 말은 15분이라는 말이에요.  "15분주의" 그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정에 성숙하지 못하고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 초조해.  꼭 뭐든지 15분밖에 못합니다.  아침 신문보는 거 자세하게 논설도 읽고 해야 하는데 큰 글자만 요렇게 요렇게 15분.  뭐든지 15분으로 훌쩍 넘겨버려.  침착하게 오래오래 생각을 하고 그러지 못합니다.  이 15분이라고 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분이 지적한 대로 유원지에서 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보아도 놀이터에 어떤 놀이기구에 앉아서 노는 아이들을 보아도 가만히 보면 5분밖에 안놀아요. 5분 있고 짜증을 내는 거예요.  어른들은 15분 얘들은 5분.  이렇게 초조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요즘에 "느리게 사는 비결"이라는 책도 나오잖아요.  좀 느리게, 느긋하게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속전속결, 바로 거기에 우리의 인간성이 파괴되어가고 있는 것이예요.  그래서 문제란 말입니다.

제가 쿠알라룸프에 갔을 때, 어느 중국집에 가서 대접을 받고 저녁식사를 하는데 제가 아는 대로 중국집에서 식사라는 건 한접시가 나오면 다 먹고난 다음에 그 다음 접시가 나오고 또 다 먹은 다음에 그 다음, 그렇게 해서 보통 두시간 반동안 식사를 하는 것이 중국음식을 먹는 그 하나의 에티켓인데 가보았더니 한꺼번에 세접시씩 나와요.  그래서 궁금해서 왜 이러냐 물었더니 한국 사람들은 처음부터 빨리빨리 빨리빨리 그러기 때문에 아예 한국 사람 가면 안대요.  세접시씩 그냥 나온대요.  그것뿐만 아니라 빨리 먹고 가기 때문에 부탁을 안해도 음식값을 할인해 준답니다.  소문났어요.  아주 세계적으로 소문 났어요.  급하게 논다, 빨리빨리로 말해요.  그러니까 빨리 망하지.  이걸 아셔야 됩니다.  뭘 하나 제대로 한 게 없어요.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무슨 공사 뭐니….  좀 느긋하게 하질 못해요.  급하게 해놓고 축하파티하고 무너지지 않습니까.  왜 이모양 입니까?  걸려야 할 시간만큼은 걸려야 되는 거예요.  과정을 무시하는 거예요.  결과만 가지고 따지는 겁니다.  이것이 망조예요.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모든 것이 다, 보세요.  무엇 때문이에요?  쿼터리즘이에요.  조급해요.  조급합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가는데 왜 이렇게 조급해요?  조금 일이 잘되면 감사하고, 찬송하고, 조금만 안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종잇장처럼 벌컥벌컥 튀어요.  조급한 마음, 이것이 이렇게 원망으로치닫게 되는 것이예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어요.또 하나, 믿음이 없었어요.  많은 사건을 통해서 은총을 경험하고 있지만은 그 마음 심성 속에 깊이깊이 신앙이 없었어요.  문제올시다.  그래서 13장 14절에서 보면 모세는 말합니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날 여호와 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그 구원을 보라.  그 말 합니다.  구원을 보라.  Be still know that I am God, 조용하야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하나님 됨을 알라.  믿음을 요구합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을 돌보는 사람들을 호스피스라 합니다.  요새는 이 호스피스가 하는 직업이 대단히 중요한 직업입니다.  그들이 임종에 가까운 사람들을 봉사해 가면서 듣고 경험한 일을 집약해 놓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백만장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학자도 있고 그리고 무식한 사람도 있습니다.  천태만상의 사람이 자기들 앞에 와서 임종을 맞습니다.  그 지식과 재산 명예, 아무소용 없대요.  그들앞에는 다같이 어린아이예요.  마지막 임종할 때 공통적으로 세가지를 후회하는 것이에요.  첫째가 그때 좀 더 참고 인내할걸…….  조금 더 참았으면 좋았는데 참지 못한 데 대해서 후회가 있어요.  두 번째는 그때 좀더 베풀 걸…….  얼마든지 선한 일 할 수 있었는데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왜 인색했던가?  베풀지 못한 데 대한 후회.  세 번째가 그때 좀더 재미있게 살걸…….  뭐 불만도 많지만은 그만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는데 나는 왜 행복하지 못했던가.  좀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하는 것을 이제서 후회한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 이렇게 원망불평 해놓고 하나님이 큰 역사를 이루실 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볼 때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원망하지 말걸…….  아니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딘 길로 인도하십니까?  왜 직행하는 길을 빼놓고 먼길로 가라 하십니까?  왜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까?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길로, 왜 가까운 길 놔두고 먼 길로 가라하시는 것입니까?

실패와 위기, 우리가 당하는 사건, 그 속에 말씀이 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향한 특별한 배려가 있습니다.  우리의 약점을 아시고 우리로 하여금 옛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도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자만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더 이상 거짓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십니다.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이제 아무 불만없이 조용히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이 길로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으로 주신 이 길로, 묵묵히 감사하며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는 우리에게 은혜의 길로 인도하시건만 때때로 우리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원망하기도 하고 주께서는 우리를 사랑해서 주시는 시련이건만 우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힘에 부친다고 하나님을 원망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께서는 우리를 홍해의 광야길로 내몰고 인도하시는 줄 압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고 주께서 인도하시고 주께서 책임지시는 이 길로 우리가 따라가면서 조용히 참고 견디고 인내하면서 주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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