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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목사/한 수난자의 감사! (단 6:3-10)
이번 달 가이드 포스트에 실린 이야 기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기 프트 숍(Gift
Shop)' 그러니까 선물 가게를 운영하는 다나 베트슨 이라 고 하는 주부가 기고한 자기 경
험담 입니다. 그 제목은 '어 브라덜스 기 프트(A Brother's Gift)', '형제의 선 물'이라고 하
는 그런 글을 자기 경 험 속에서 실었습니다. 그녀는 전 남편에게서 낳은 스물 한 살 된 제
이슨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지금 결혼한, 재혼해서 얻은 열두살 된 럭키라고 하는 딸
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네살 된 꼬마가 있었는데 이 꼬마가 심각한 병에 걸려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 네살짜리가 아 주 악성 바이러스가 간에 침투되어 서 간장이 제 기능을 발휘
하지 못하 게 되었습니다. 열두시간 안에 간 이식을 받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 는 절박한
시간이 왔습니다. 의사 는 말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유일한 소망은 살아있는 간 기증자 를 구하는 겁니다."
자, 이 급한 시 간에 신장이 아니라 간입니다. 사 람은 신장은 둘을 가졌어요. 혹 마 음을
쓰면은 하나를 나누어 줄 수가 있지만은 간장이란 누구나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을 절
반을 잘라 서 주는 겁니다. 이 같은 위험한 수술을 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
습니까. 그것도 열두시 간 안에……. 모두가 염려하고 걱 정했고 이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
르 면서 지금 초조해하고 있는데 전 남 편의 아들인 제이슨이 자원했습니 다. 자기의 간을
나누어주겠다고. 그러나 알고 보면 이것은 이부형제 (異父兄弟)입니다. 어머니는 같지만 은
아버지는 다릅니다. 이것이 체 질적으로 맞을까 하는 것을 걱정했 습니다 만은 다행히 맞을
것 같다는 겁니다. 이런 불안한 가운데서 이 제 수술을 받게 됩니다. 제이슨이 라고 하는 아
들과 네 살 난 딸을 이 렇게 수술실에 넣어 놓고 수술 받는 동안 그는 열두살 된 딸의 손목
을 잡고 수술실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잘못하면 두 자식을 한꺼
번에 잃어버리게 됐 습니다. 초조와 불안, 걱정, 염려, 되기도 하고 있습니다 만은 그러나 한
편 생각하면 감사한 일 있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자기 친동생도 아닌 이부형제에게 생명처
럼 소중한 간을 나누어주겠다고 수술실에 들어갔어 요. 그 자원하는 마음이 너무 고마 워요.
이 아들이 너무 고마운 것이 요. 이같이 강퍅한 세상에 '그래 이 렇게 사랑스러운 내 아들
이 여기에 있다.' 사랑과 그 고마운 마음이 너 무 고마워서 한편으로는 감사의 기 도를 드
리고 수술 자체를 생각하면 걱정이고 생각하면 감사할 뿐이요. 우리 가정에 이렇게 거룩한
사랑이 있고 내 아들이 이렇게 귀한 사랑을 나타낸다는 말이요. 너무 감사해요. 한편으로 걱
정, 한편으로 감사. 이 렇게 초조한 가운데서 수술을 잘 마 쳐서 둘 다 성공했답니다. 이것
이 바로 Brother's Gift 입니다. 형제 가 준 가장 귀한 선물이었다. 이 일을 놓고 어머니는
깊이깊이 하나 님께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감사와 염려는 엇갈 리는 겁니다. 한쪽으
로 걱정이 됩 니다. 다시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이쪽에서 보면 걱정투성이요 이쪽에 서 보면
감사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이 세상사입니다. 그래서 아주 좋은 여건에서도 원망 불평으로
사 는 사람이 있고 남 보기에는 처참할 정도의 생을 살지만은 그는 생각이 달라요. 그래서
감사하며 살아가게 된답니다. 영어에서 '띵크(Think)', '땡크(Thank)'라는 말은 어원이 같
답니다. 생각한다, 감사한다, 그 뿌 리가 같다는 것이올시다. 그렇습니 다. 무엇을 생각하느
냐가 문제입니 다. 무엇부터 생각하느냐, 무엇을 먼저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어느 각도에서 생각하느 냐가 문제입니다. 환경이 달라져야 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달라
져 야 감사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감사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감사
하게 되는 것이 요. 겸손한 사람은 감사할 수 있어 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어
요. 사랑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여건에서도 감사, 감사할 수 있는 것이올시다. 유명
한 토마스 에디슨, 발명왕, 여러 분이 잘 아십니다. 그는 어느 날 긴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
는 발명 을 위해서 온 시간을 바치는 사람이 라 여행 중에서도 기차 안에다가 자 그마한 실
험실을 만들어 놓고 또 거 기서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그만 약병
하나 가 떨어지면서 이게 화학작용을 일 으켜서 그만 연구실이 불이 났어요. 그간에 연구해
왔던 자료, 몽땅 타 버리는 시간입니다. 자기 몸도 위 험하게 됐을 때 차장이 달려와서 그
를 차창 밖으로 내던졌어요. 결국 은 생명을 보전했습니다 만은 그 때 다쳐서 귀가 멀었습
니다. 듣지 못 하는 사람인 귀머거리가 됐습니다. 그는 한 평생 많은 연구를 했고 많 은 발
명을 했습니다. 발명왕이라는 이름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기를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연 구를 할 수 있었느냐고. 그는 말합 니다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 사합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나는 못 들으니까 내가 하는 연
구에 몰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다고요. 여러분, 어느 각도에서 보 느냐가 문제예요. 무엇을 생각하느 냐에
따라서 감사가 되고 원망이 될 수 있는 거예요. 환경이 바뀌고 여 건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
지기를 한 평생 기다려도 그 사람의 입에서는 '감사' 없습니다. 여러분 복이 무엇 입니까?
종은 울리면서 소리가 나 야 종이듯이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 야 복입니다. 잘 산다고 복이
아닙 니다, 가졌다고 복이 아닙니다, 출세 했다고 복은 아닙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하면
바로 그것이 복입 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를 자세 히 보면은 다니엘이라는 사람의
감 사 기도가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 엘 백성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할
때 포로되어 간 사람이었다. 역사가들의 연구대로 보면 한 오만명이, 이 젊은 사람 오 만명
이 포로 되어 갔답니다. 어디 까지나 포로입니다. 포로되어 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총명이 있어서 너무 지혜가 있는 분이라서 느브갓네살 왕이 그를 등용해서 정 치가를 삼습
니다. 세상이 바꿔서 바벨론이 망하고 메대바사가 일어났 습니다 만은 오늘 본문대로 다리
오 왕, 메대의 왕 다리오는 이 다니엘 을 또 정치가로 기용을 하게 됩니 다. 워낙 충성하고
총명하니깐. 자 이렇게 해서 정치가로 남의 나라에 가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모처럼 그는 참
영광을 누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은 120명의 방백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고 그
위에 세 명의 총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제 와서 세명 중에 또 다시 세명 위 에 한 사람
을 세우려고 하는데 거기 다 다니엘을 세워놓았어요. 이때에 시기, 질투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 들이. 특별히 이 바벨론 사람들이, 이 이방사람, 이 노예 출신을 가만 둘 리가 없지요.
그래서 헐뜯고 음 모하고 갖은 방법을 했지만 오늘 본 문대로 허물이 없는 사람이요. 전 혀
허물이 없는 사람이고 충성된 사 람이라서 다른 일로써는 고소할 수 없음을 알고 신앙문제
를 들고나옵니 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올무를 걸 었습니다. 이제부터 30일 동안 누 구든 왕
외에 신이든 사람이든 누구 에게 무엇을 구하는 자가 있으면 그 는 다리오 왕에 대한 역적
이다 이말 이요. 이 사람을 잡아서 사자 굴에 집어넣읍시다 그랬어요. 이런 금령 을 만들었
는데 오늘 본문대로 다리 오 왕이 그 조소에 어인을 찍었습니 다. 결재를 했다 그 말이요.
그런 데 오늘 본문에 보면은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서 그는 하 나님 앞에 감
사했어요. 아주 중요 한 깊은 의미가 있는 내용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
다. 진실되게 살았습니다,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충성되게 살았는데 왜 사자굴 입니까? 원망
하자면 원망거 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하 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내가 이렇 게 하나
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하여 진실되게 살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 것
입니까? 원망할만 하죠. 그러나 그는 율법 적 비판을 극복합니다.
"상관없습 니다. 지금까지 산 것으로 만족합 니다."
이렇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대로 '어인을 찍은 것을 알고도' 이 말은 이제
내가 하 나님 앞에 기도하면 그대로 사자 굴 에 끌려가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 운명을 다
알고, 알고도 하나님 앞 에 감사기도를 했다는 거죠. 폴 틸 리히라고 하는 신학자의 '커리지
투 비(Courage to Be)'라고 하는 유명 한 책이 있습니다. '존재의 용기' 이 책에서 말합니
다. 신앙이란 용 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하는 용기. 인간의 이성적 비판 이 거
다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그 럼에도 불구하고 떨치고 일어나는 용기, 여기에 다니엘이
있었던 거예 요. 그런데 그의 감사 내용을 가만히 보 면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 저
는 전에 행하던 대로 그랬어요. 오늘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에요. 감 사라는 것은 엑시던트
(Accident)가 아닙니다. 우연사가 아니란 말입니 다. 감사는 체질이 되야 되고 성품 이 되야
됩니다. 오랜 동안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 이 오래 가면 성품이 되는 거예
요. 이런 면에서 우리는 체질적으로 감 사를 할 줄을 몰라. 고마웠다는 말 한 마디를 할 줄
모르는 것이 큰 약 점입니다. 큰 흠집입니다. 조그마 한 일에도 그저 고맙다고
"감사합니 다,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이게 체질이 되고 습관이 되 고 문화가 되야 되는 거예요. 그리
고야 앞으로 큰 일을 당해도 또 감 사할 수가 있는 것이죠. 어느 순간 에 돌발적으로 이런
위대한 감사가 있을 수 없는 것이에요. 여러분 잘 생각하십시오. 조그마한 일에도 원 망 없
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야 되요. 저는 어느 미국 가정에서 그런 걸 보았습니다. 같 이 아침식사를 하는데
어린애가 좀 작아서 높은 의자에다 갔다가 묶어 놓았어요 허리를. 이렇게 놓고 같 이 식사
를 하는데 애가 식사하다가 숟가락을 떨어뜨렸어요. 어머니가 주어서 이것을 닦아 가지고
손에 들 려줍니다. 그대로 들자마자 먹으려 고 드니까
"쿵! 쿵!"
그래 얘가 눈이 똥그래 가지고 무슨 일인가 보 니까 가만히 보더니
"새이 썸띵 (Say something)",
"무언가 말해라"
그래요. 애가 미처 생각을 못해요 울먹울먹하니까 더 큰 소리로
"새이 썸띵(Say something)",
"무언가 말 해"
그러니까 정말 울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마지막엔
"새이 땡큐(Say thank you)",
"고맙다고 해라"
그 러니까 그때야 깨닫고
"땡큐 맘 (Thank you, Mom)"그랬더니
"먹 어"
그러더라고요. 여러분 고맙다 는 거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 요. 가르쳐야 되요. 조그만
일에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 다, 감사해요"
엄청난 일에도
"감사 합니다"
할 수 있는 거지 이게 하루 아침에 되나요? 안 그렇습니까? 또한 오늘 여기에 보니까 하루
에 세 번씩 일상화하는 거지요. 하루에 식사를 세 번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도 하나님 앞에
세 번! 시간을 정 하고 꼭 그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감사. 또 하나 있어요. 공
개적으로, 이게 죽음이 눈앞에 있는 걸 알면서 당당 하게 비굴하지 않게 공개적으로 하 루
에 세 번씩. 다시 말하면 일상화 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하고
감사하게 되는 거죠. 기 도하는 마음이 아니고는 감사할 수 가 없어요. 세상으로 생각하면
얘 기가 달라집니다. 그는 기도합니다. 무엇을 감사했느냐? 바벨론 포로에 서 포로된 자기가
지금 이와 같이 영화를 누리며 살았어요. 감사하고. 느브갓네살의 사랑을 받고 오늘은 다시
벨사살을 거쳐서 지금 세 번째 왕이요, 다리오왕의 사랑을 받고 살 았습니다. 이대로 감사합
니다. 그 는 신앙적으로 살았습니다. 비록 외국에 살고 이국 땅에, 이국 문화 속에 살지 만
은 음식도 가려먹고 우 상숭배 안하고 죄와 타협 없이 정의 롭게 거룩하게 선민의식을 가지
고 살았어요. 이제 그는 죽게 됩니다. 그러나 만족합니다. 여러분 감사는 만족함에서 오는
거예요. 만족 없 는 감사가 있다면 그건 조건부요. 마치 저 백화점에 있는 인형처럼 물 건을
사 가지고 나가는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고거까지만 하면 좋 겠지만
"또 오십시오"
그건 나빠요.
"또 오십시오"
하기 위해서
"감사합 니다"
이건 조건부예요. 우리는 하 나님 앞에 감사를 하던 헌금을 하던 봉사를 하던 이것은 절대
로 대가성 이 되선 안돼요. 무조건적이요. 오 늘 본문에 이제는 복 받을 것도 없 고 상 받을
것도 없어요. 왜요? 이대로 죽으니까. 죽을 걸 각오하 고 죽는 시점에서 감사하고 있는 거
예요. 만족합니다, 이대로 만족해 요. 거룩한 백성으로 의롭게 선하 게 이렇게 살고 깨끗하
게 죽어갑니 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바로 그 러한 위대한 감사요, 절대적 감사였 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하나님께 위탁하면서
"지금 저는 주님 앞으로 갑니다. 감사합니다"
종말적 감사 였습니다. 이런 우스운 얘기가 있 어요. 어느 곳에 착한 이발사가 하 나 있었는
데 한 신부가 이발소에 왔 어요. 정성껏 이발을 잘 해드린 다 음에
"그저 하나님께 봉사했다고 생 각하겠습니다. 이발료는 내지 마시 고 그냥 가시지요. 저도
하나님의 일 좀 하고 싶습니다"
"아이고 고 맙습니다"
이 신부가 감사하다고 하 고 가서 생각하니 너무 고마워요. 그래서 우편으로 기도문 책을,
교회 에서 쓰는 기도문 책을 몇 권 우편 으로 보냈어요. 이것을 배달 받았 습니다. 그 다음
에는 또 순경이 와 서 이발을 하게 되는데 순경이 이발 을 다 하고 나서 돈 내려고 하니까
"내지 마십시오. 저도 지역 사회에 봉사한 셈치고 좋은 일 한 번하고 싶습니다"
"그러세요?"
그리고 돌 아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고마 운 분이야, 참으로 고마워서 또 거 기다가 편
지 한 장과 도너츠 몇 개 봉투에 넣어서 그 문 앞에 갔다 놓 았어요. 다음 날에는 국회의원
이 왔어요. 또 이발을 다 해 드린 다 음에
"저도 국가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런고로 이발료 는 안 내셔도 되겠습니다"
하고 보 냈어요. 그 다음 날 보니까 국회의 원들이 그 문 앞에 줄 섰어요. 여러분 어떤 고마
운 일이 있어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지 마세요. 세상에 은혜를 당연히 입을 사람이 어
디에 있어요. 나는 이 고마운 이 러한 은혜를 입을 만한 자격이 없어 요. 그저 부족하고 허
물 많고 감사 하고 소중한 일이에요. 작은 일이 지만 소중한 것이에요. 그런데 '나 는 당연
하지. 나는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혜택을 입 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잘
못된 인격이에요.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하십시다. 나 자 신을 돌아봅시다.
의의 세계, 믿음 의 세계를 생각하고 받은 은혜를 생 각하고 또 받게 될 은혜를 생각하 고,
기도하는 자세로 생각하십시다. 세상을 보면 원망해요. 이웃을 보 면 불평이 나와요. 짜증이
나요.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면 오로지 감 사할 뿐이에요. 그리고 이 감사가 성품화 되고 생
활화되고 일상화 될 때, 우리는 많은 시험을 넉넉히 이 길 뿐만 아니라 앞으로 엄청난 시험
이 닥쳐와도 하나님 앞에서 다니엘 처럼 감사하며, 감사하며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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