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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되는 길(빌립보서 2장 1~11절)

by 【고동엽】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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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되는 길(빌립보서 211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힘의 역학 관계는 직선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가 될 때만이 힘이 있고 하나가 되어야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815 해방 직후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망한다"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으며 오늘에 와서는 "총화""국론통일"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가 되자는 말이며 하나가 되어야만 살며 힘이 있어진다는 말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가 되어야 할 줄을 알면서도 하나가 못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또 외치며 사실상 크게 힘을 쓰면서도 하나가 못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성경이 보여 주는 대로 하나가 못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가 못되도록 심판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내 광야에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이것은 교만이요, 불 신앙이요, 불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심판하사 마침내 언어를 혼란케 하셨고 또 분열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 신앙과 교만 즉 불 신앙적인 교만을 심판하십니다. 이 결과로써 분열이 오고 또 분쟁이 오며 따라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제아무리 하나가 되어 보려고 해도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죄의 원인이 되는 죄 즉 불 신앙적인 교만이 그 속에 있는 한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대부(代父)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마피아족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입니다만 그 깊이에는 귀한 진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의의 방법으로 의를 이루지 못하고 악한 방법으로 선을 이룰 수 없고 또한, 불의와 악을 중심하고서는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진리가 그 주제인 듯이 생각되었습니다.

하나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하나가 되는 길을 택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될 수밖에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진리에 역행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직 진리 안에서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의와 선, 그리고 공의를 택할 때 인간의 양심은 모두 그 곳으로 초점을 맞추게 되고 곧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총화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 성경 중에는 그 하나가 되는 길을 밝혀 주는 진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교회도 가정도 그리고 나라도 하나가 못되는 것입니다. 믿어야 하고 또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불신사조가 남아 있는 동안은 총화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또 그 신앙 안에서 사람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중에는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허영이란 결국 사실(Reality)의 반대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실에 입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추상적인 구호나 논리에 의해서 진리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가장 무서운 힘을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 확실한 사실에 뿌리를 박고 일어설 때에 하나의 길은 열리는 것입니다.

거짓을 통해서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허영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신앙이 중요합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과 진실이 합칠 때 여기에 힘이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다툼으로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다툼은 자기 충실의 반대를 뜻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처지와 사실은 잊어버리고 남이 한다고 하고 남이 간다고 가는 행위를 다툼 즉 경쟁심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기 충실이 근거가 된 그러한 행위가 먼저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하였고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이라고 풀이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문에서 겸손과 낮추는 마음, 또 빈(empty) 마음으로 설명합니다만 그의 근본 뜻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며 또 하나님께 복종하는 충성이란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신앙이 하나의 길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또 진리의 승리를 확신하며 모든 부조리하고 모순되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으로 믿는 믿음이 있고서야 이에 따르는 낮춤과 겸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이 결코 수단이나 방편이 될 수 없고, 양보가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신앙이 있어서 진리에 따르며 하나님께 복종하고 이 믿음에서부터 겸손과 양보가 유출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이 있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객관적 진리를 믿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의 능력과 지혜가 보증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믿을 때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거짓과 불의 그리고 이권을 위한 타협에는 야합이 있어도 하나되는 길은 없습니다. 의와 진리가 목적이 되고 이 목적이 사실로 화하여 진실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하나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구체적으로 그 길을 설명해 주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믿음을 근거로 하여 찾는 하나 되는 길은 모두가 신앙 안에서 자기를 알고 이웃을 알고 대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자기 자랑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신앙 안에 있는 자아의식 속에 자기 자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긍지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 긍지가 자랑으로 나타날 때 허영에 빠지며 마침내 거짓으로 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 안에 있는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가 있을 뿐이요, 나를 내세우는 자랑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인데 이외에도 자기 자랑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분쟁의 씨가 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고로 자기를 언제나 지극히 적은 자로 평하였고 심지어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까지 말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 죄는 함께 살아가고 자기가 고개를 들면 율법 앞에 매여야 한다는 신학적 원리를 익혀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가 커질 때 자기는 점점 작아져서 없어져 버리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만을 참된 자기로서 내세웠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랑이란 있을 수 없다고 바울은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특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특권 의식이 계급 의식을 만들어 내고 있어서 불성문의 법이 있고 보이지 않는 다른 하나의 엄연한 계급이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돈이 있을 때 있는 자의 계급을 형성하고, 지식이 있을 때 아는 자의 새 계급을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같이 상골을 따지는 봉건 사회적 계급은 아니나 현 사회에서는 또 다른 하나의 계급 의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특권 의식이 있는 한,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도 요즈음 와서는 특권 의식화 되어가는 경향을 엿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믿은 자의 특권 또는 직분을 믿음의 계급처럼 생각하는 어이가 없는 망상들이 엄연히 교회 안에 존재하며 이 특권 의식이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자기 뜻이면 다 옳고 자기 생각은 곧 성서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허망한 고집들이 마침내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을 받아서 결국 분열의 원인들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 직분은 계급이 아니며 특권도 아닙니다. 다만 기능적인 봉사의 직책입니다. 누구나 받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내가 맡은 것이며 내게 맡기신 것뿐입니다. 오히려 무자격한 중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 직분 자체가 특수한 것이지 그 일을 맡은 내가 특수한 사람은 절대로 아닌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 같은 죄인이며, 계속적인 죄인이요, 계속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런즉, 각각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일을 돌아 보아서 자기에 충실할 뿐더러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이란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서 그의 중심을 옮겨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며 이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고 위하여 죽으신 모든 이웃을 위하며 돌아보는 마음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리스도를 대하듯 하며 대 이웃 관계가 대 그리스도 관계로 화하게 되는 이웃관을 가질 때 여기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중심을 자기에게서 옮겨서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이웃에게로 향할 때 하나의 길은 열립니다. 자기 중심적 좁은 생각에 매이며 자기만을 생각하고 있는 한 하나되는 길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충실을 기하되 다시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볼 때 얼마든지 넓게 이해하며 화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도, 교회도, 가정도, 그리고 나 자신의 마음도 하나되는 바른 길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보여준 길뿐입니다. 이를 위하여 오셨고 또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하나되어 큰 역사를 이루시기를 바라며 또 기도하는 바입니다. 하나되게 하신 바를 힘써 지키십시다. 하나되는 축복이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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