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3:28.
서론
3,1운동 제88주년 기념을 맞이하여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시편저자는 기록하기를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 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하였다(시 137:1-9).
1.자신의 장래를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욜 2:12-14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회개의 기회가 남아있으며 돌이키기만 한다면 회생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입니다. 과거에야 어찌 하였든지 이제라도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하며 울라는 말 입이다.
2.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본문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예수는 자신을 위해 울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바 이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애통하고 슬퍼해야만 할 일이 전제되는 것인데 예수는 구원사적 의미에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는 것이며 그것은 인류 구원을 위해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길임을 암시하고 있다. 둘째는 애통해하는 관심의 대상이 잘못 되었다는 점입니다.
정작 마음 아프고 가슴칠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성이다. 이 같은 예수의 심정을 잘 묘사하고 있는 언급이 눅 19:41-44에 나오고 있습니다. 또 십자가상에서 기도한 내용 즉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라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본문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한 무지(無知)였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는 것을 생각하고 울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자신과 후손을 위하여 울어야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자신의 장래를 위하여 울어야 하고 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울어야 할 일입니다. 자신이 짓는 죄와 자녀들이 짓는 죄는 울어서 회개하야 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3.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눅 19:41-42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하였습니다.
예수가 성에 가까이 이르러 성을 바라보고 울었다는 이 묘사는 누가 만의 증언입니다. 예수가 울었다는 이야기는 복음서 중에서 여기와 요 11:35에서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서 울었던 것 모두 두 번 나오는데 히 5:7에서도 예수가 통곡하여 울었다는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이 같은 묘사는 예수의 인성(人性)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으며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인 환호와 찬양이 있은 후에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그 울음의 의미를 더 의미심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가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고 울었다는 점에서 이 눈물은 예루살렘의 장래를 애통해하는 메시야적인 눈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눈물이고 사랑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 울음은 예루살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보면서 인류의 아픔을 보고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의 고난까지도 생각하면서 우는 메시야적 눈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눈물은 자기 민족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당하고 있는 보편적 고난과 죄에 대한 애통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울면서 기도할 때에 그 나라는 강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히 울면서 기도하는 것은 자신과 민족이 태평성대를 누리며 사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러그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하였습니다.
"결론"
제 88주년 3,l절을 맞이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장래와 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울어야 하겠습니다.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둔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울면서 기도한 결과는 좋은 일이 있어 위로가 된다는 말입니다.
출처/이윤근 목사 설교 중에서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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