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절기 설교[1,404편]〓/어린이 주일설교

어린이를 주께로 (디모데후서 3:14~17)

by 【고동엽】 2022. 8. 22.
목차로 돌아가기
 
 

어린이를 주께로 (디모데후서 3:14~17)


해마다 이렇게 7월이 되고 8월이 되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신앙 수련 프로그램을 어느 교회나 가지고 있습니
다. 여름 성경학교와 수양회가 어린이와 청소년 신앙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평가 때문에 모든 교회들이 비교
적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실시합니다. 외국에서 처음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동기가 있는데 캐나다와 미국 같은 나
라에서는 겨울 방학을 아주 짧게 하고 여름 방학은 2, 3개월 동안 정도로 매우 깁니다. 이때 부모들은 전부 나가서
일을 하게 되고 그 긴 시간을 아이들이 별다르게 하는 일없이 지내다 보니까 아이들이 바람직하지 않게 정서적으로
많은 문제가 생기고, 안 좋은 일이 발생됨으로 말미암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부모들의 적지 아니한 고민거
리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나?' 그래서 사회 정서가 매우 어려운 1860년대에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라는 가정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교회가 Summer Vacation Bible School이라고 하는 여름성경학교, 방학학교
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3박4일, 일주일 이렇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교육
비를 학교 못지않게 받아 긴 방학동안 계속해서 이 프로그램을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국민들의 호응이 큰지
매우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1866년 보스턴 제일교회, 1894년 일리노이주 소망 데일 감리교회와 뉴욕 침례교회
가 성공한 사례를 신문에 발표하였습니다. 온 국민이 그것을 너무 좋아해서 '이것이 해결 방안이다.'라고 생각해서
가정의 문제,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었고, 아울러서 교회는 이 학교를 통해 선교의 효과를 많이 봤습니다. 온 마을
아이들이 누구나 다 와서 어린이들로 집중 전도가 되고 부모들이 열심히 교육비를 내가면서 자식들을 보낼 정도로
굉장한 호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2년에 평안도 선천에서 마펫 선교사 부인이 처음으로 여름성경
학교를 시작했고, 같은 해 서울 정동감리교회에서 200명의 어린이들이 모여 오락 순서와 함께 성경을 가르친 것이
우리나라 여름성경학교의 역사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도 훨씬 더 큰 선교 효과를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나
라에는 어린이 문화라는 것이 없던 시절입니다. 어린이들이 재미있는 것이 뭐가 있었습니까? 날마다 어른들 틈에서
어른들 노는 거 보면서 야단이나 맞고, 지금도 나는 귀에 쟁쟁합니다. 어린이들이 있으면 어른들이 "나가 놀아라!"
그런데 나가서 놀게 있어야지 놀고 싶어도 놀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60년 , 50년 전 사셨던 분들은 그때를 한번
생각해 보면, 요만한 주먹공 하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다가 부잣집 아이가 공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그 아이
는 동네에서 우상입니다. 그 아이의 마음이 열려야만 그 공 하나로 온 동네 아이들이 공차기하면서 놀 수 있으니까
너나 할 것 없이 그 아이 눈치만 보고, 공이 없을 때는 새끼를 꼬아서 그것을 둘둘둘 말아서 축구공처럼 만들어서
그걸 차고 놀았고, 어떤 때는 어른들이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그 오줌통이 가지고 거기에 바람을 집어넣어 공처
럼 만들어서 그것을 차고 놀았습니다. 어린이에게 좋은 문화가 하나도 없던 시절입니다. 그러한 시대에 교회는 앞
서가는 어린이 문화를 도입했습니다. 시청각을 사용하여 교육을 했습니다. 그래서 융판 동화, 인형극 이런 것들을
보여주니까 아이들이 쏟아져서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대에 맞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미국 선교부에서는 지방을 순회하면서 영화도 보여주고 재미있는 책도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어린이들을 위한 게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여름 성경학교는 대한민국의 어느 마을이나 일년 중에 최고의 어린이 축제였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모두 교회로 왔고, 그때 열심히 여름성경학교에 다니고 주일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이 지금 다 어른이 되
어서 대한민국 교회가 이렇게 성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틀림없는 통계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5만개의 교회
가 있다고 합니다. 주일학교 학생이 수천 명씩 되는 교회도 있습니다. 10명 미만의 학생이 있는 조그마한 교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평균 따져서 교회 하나에 학생 50명만 계산을 한다면 250만입니다. 이 아이들이 지금 교회에서
다 크리스천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주일학교는 지금 주일학교보다 훨씬 더 잘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지
금은 아이들이 교회에 오지 않아도 좋은 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사회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
다. 교회가 앞서갔습니다. 그 시절에는 누구든지 다 교회에 왔고, 농촌에는 더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절에 여름
성경학교, 주일학교 안 다닌 아이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다 자라서 어른이 되는 바람에 우리나
라 교회의 성장은 주일학교 교육, 여름성경학교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한 것입니다. 그
러니까 "지나간 100년 이상 주일학교 교육에 힘쓴 결과가 오늘의 한국 교회의 열매다." 이것이 확실한 통계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어린이 교육만 절대 놓치지 아니하면 한국 교회 장래는 매우 밝도록 되
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철학이 교회마다 분명하면 됩니다. 지금 저희 갈보리교회 교육부는 약 1,000명 정도 출
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어린이들은 자라서 금세 어른 예배에 들어옵니다. 아니, 제가 목사가 되고 처음 시골에 가
서 어린이 교육 중심으로 목회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어린이들 가운데 목사 된 사람이 내가 기억하는 것
만 해도 첫 번 목회지에서 다섯 명이 나왔습니다. 자라서 지도자들이 금방 됩니다. 왜 어린이 교육이 효과 면에서
훌륭한가?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하면 됩니다. 중국은 '정책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느냐? 자유를 주느냐?'에 대해 아
주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자유를 주겠다. 예수 믿는 것은 자유다. 그런데 18살까지는 안 된다." 그렇게
정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교회는 있지만 주일학교는 못합니다. 그저 몰래 몰래 하기는 해도 정책적으로 못하게
합니다. 공안원들이 나와서 못하게 하면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정했느냐 하면 18살까지만 사회주의 교육을
잘 시켜놓으면 그 다음에 가서는 절대로 안심할 수 있다는 확실한 교육적 심리를 이용해서 그렇게 정했는데 그 법
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풀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중국에 가면 주일학교가 없습니다. '종
교의 자유는 주지만 주일학교는 못한다. 18세까지는 교회 못나간다.' 이것을 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
리가 반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8세까지만 기독교 교육을 잘 시켜놓으면 평생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
실한 통계입니다. 사람의 기억 구조는 처음에, 즉 어린 시절에 입력된 것은 평생 기억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기억
해 보면, 어렸을 때 기억이 다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간에 들어왔던 기억은 다 나가버리고 맙니다. 어려서 무엇
을 어떻게 했느냐가 그 사람의 일생을 결정지어 줍니다. 그러니까 주일학교는 최고의 선교지라고 생각을 하고 우리
가 정책을 세워나가면 틀림없습니다. 지금 갈보리교회가 끊임없이 교육 시설 보완을 해나가는 것도 그 원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일학교 교육을 잘 해나가야만, 이것보다 더 좋은 선교는 없으니까 이렇게 해나가고 있는 것입니
다.
제가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미국 장로교회의 경우를 한번 말씀드리면, 현재 미국 장로 교단은 목사가 모자랍니
다. 아주 구체적으로 몇 명이나 모자라느냐하면 3,500명이 모자랍니다. 교회 수에 비해서 그렇게 목사 수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중국은 더욱 심합니다. 교인 10,000명당 목사 1명입니다. 왜 그러는가? 중국은 정책적으로 신학 교육
을 안 시켰기 때문에 신학교가 없었습니다. 이제서야 신학교가 생기고 있지만 그것도 아주 제한적으로 신학생을 받
고 있으니까 교인은 늘어나는데 목사가 없어서 거의 보면 집사님들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그렇게 귀합니
다. 그런데 미국은 경우가 다릅니다. 신학교 얼마든지 들어가고 장학금도 다 주고 공부하고 그러는데도 목회자를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목사가 부족한 상태라서 웬만한 청년이 신학교 들어온다고 하면 100퍼센트 모두
장학금을 주고 열심히 길러내려고 하는데도 잘 안 들어옵니다. 왜 그러는가? 우리 사회는 지금 점점 더 젊어집니
다. 어린아이들도 7살, 8살 되어야만 공부를 가르쳤는데 지금은 3살, 4살 때 벌써 공부 가르치기 시작하는 문화로
자꾸 변하고, 사회적 영향도 지금은 20대 후반이면 어떤 자리를 잡아야 되고, 30대면 완전히 자리 잡힌 그런 세대
이고, 40대 중반부터는 이제 점점 내리막길이 되는 문화가 지금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
니고 어느 나라나 지금 그렇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인생을 계획할 때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4년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현장에 나가야 합니다. 명문 대학의 우수한 졸업생은 졸업 후에 갈 길이 졸업반 때 거의 다 정해집니
다. 좋은 대학의 비즈니스 학교는 거의 웬만한 기업으로 벌써 다 예약이 됩니다. 이때 머리가 제일 좋고 우수하다
고 생각되는 사람을 영입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려는 사람은 남들은 벌써 나가서 좋은
자리에서 돈을 벌고 사회적 기반을 닦아 가는 그 때에 신학교 1학년에 들어가게 됩니다. 대학 다 졸업해서 학사 학
위 다 받았고 이제 나가서 돈 벌고 살아야 되는데 그때 신학교에 입학해 학문을 몇 년 동안 배우고 PCUSA 장로교단
에서 목사가 되려면 13번의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것을 통과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약점
이 있어도 목사를 안 시킵니다. 대학 졸업한 이후에 약 5년 내지 길면 7년 정도 공부해야만 목사가 됩니다. 목사가
되어서 처음으로 부임을 하게 되면 받는 월급이 결혼해서 두 식구가 살기 힘든 형편으로 목회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 대학 친구들을 보면 사회적으로 확실한 기반을 잡고 쫙쫙 뻗어나가는 사람이 되어 있으니 우수한 머리
들이 목사가 되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안 되는 겁니다. 우수한 머리들이 신학교를 지망을 안 하는 겁니다. 이
런 현상이 지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면에서 목회자가 넘쳐서 사정이 아주 좋은 편입
니다. 그러나 국민총생산(GNP)이 올라갈수록 교회 사정은 어려워지는 현상이 선진국이라고 할 때, 대한민국도 그
과정을 어떻게 앞으로 정리해 나갈 것인가? 앞으로의 한국 교회의 과정입니다. 지금은 어느 나라든지 인간 형성에
절대 필요한 정서 교육이나 도덕 교육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교육의 목적이 생산성입니다. 생산성 있는 인간 배
출이 교육의 목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덕, 윤리니 하는 과목 자체가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교육 제도가
그렇게 잘 되어 있다는 선진국인데도 사회악적인 문제는 점점 더 험악해져 가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인간 교육은
다 포기를 했습니다. 생산성 유지의 교육 목표가 인간됨의 가치관을 절대로 도와주질 못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마저
이것을 포기하면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 학생 한 명이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서 이민자들이 제일
많이 다니고 있는 LA 고등학교에 학교의 카운슬러를 만나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끼리 싸움을 했는데 태권도
선수인 이 학생이 흑인 아이들이 와서 찝쩍거리니까 돌려차기로 몇 명 학생들을 다 쓰러뜨려 버린 것입니다. "이
아이는 절대적으로 정당방위로 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이것이 흑인 학생들의 부모들이 학교에 항의를 하고 "이런
학생이 학교에 있는 한 우리 아이는 학교에 보낼 수 없다!"하면서 아주 거세게 나와서 학교에서 큰 문제가 되었습
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졸업을 3개월 남겨놓은 이 학생에게 퇴학 처분을 내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카운슬러를
만나서 따졌습니다. "아, 이 학생이 지난 3년 동안 학교 잘 다녔고, 소수 민족이라고 깔보는 아이들에게 태권도한
것은 정당방위입니다. 덤벼들면 방어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졸업이 3개월 밖에 안 남은 학생을 퇴학 처분한다면
이 학생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영어를 더듬더듬하던 시절이라서 한국말로 했다가 영어로 말했다가 하
면서 막 따졌는데, 그 선생의 대답이 이렇습니다. "그 학생의 장래가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나는 이 학생 때문에
골치 아파서 못 견디겠다. 내가 이 학교에서 가지고 있는 직책에 의해서 퇴학 처분하는 것이다. 만약 억울하면 법
정에다 고소할 수 있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선진국의 정서교육은 없어졌습니다. 생산성만 중요시
생각합니다. 미국 같은 경우 매 1초에 한 명씩 공립학교에서 학생이 정학을 당해 학교를 나갑니다. 매 9초마다 고
등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떠납니다. 매 1분마다 미혼모 아기가 한 명씩 탄생하고 두 시간마다 어린이, 또는 청소
년 한 명이 살해를 당합니다. 아버지에 의해서 성폭행을 당하는 소녀가 1년에 7만 명이 넘습니다. 인구의 8퍼센트
내지 9퍼센트가 동성연애자입니다. 살인강도들에 의해서 죽어 가는 사람이 1년에 3만 명이 됩니다. 25세 이하 청년
들의 에이즈 감염이 10시간에 하나씩 생깁니다. 아무리 먹고살기 좋은 선진국이 되었다면 뭐합니까? 사람 자체가
다 망가져 버리는데 생산성이 높으면 뭐합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 교육입니다. 그럼, 교회에서 하는 인간 교
육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그 자아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하나
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됨을 자아에서 발견할 때에만 참
행복이 있고, 인간됨의 가치를 알면서 살아간단 말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살아갈 때 이 세상에서 목표로 하는 어떤
것을 소유했을지라도 행복도 없고, 평안도 없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60, 70년 전에, 여기 지금 60세,
70세인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생활을 지금 우리가 다 하고 있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집에는 더운물, 찬물이 항상 나오고 에어콘, 히터가 번갈아 나오고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그러면 그때 사람보다 우
리가 지금 더 행복합니까? 자살률이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왜 그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상의 참 행복이
영적으로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깨달을 때에만 인간은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세상
의 어떤 것을 성취했다고 행복한 것이 절대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을 어린 시절부터 깨우쳐주고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소유하고 평생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성경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너무나도 가
난하게 고생만 하다가 죽었습니다. 인생이 너무 억울해서 염라대왕한테 가서 따졌습니다. "내 인생은 이게 뭡니
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나도 한번 세상에 나가서 재벌로 살고 싶소." "그래라. 그럼, 다시 한번 가서 재벌
로 살아라." 그래서 와서 재벌 총수가 되어서 잘 사는데 아니, 재벌 총수가 되면 참으로 행복하고 평안할 줄 알았
는데 재벌 총수도 자살하지요, 감옥에도 들어가지요, 도망도 가지요, 거기다 향락에 빠져 에이즈에 걸려 죽었습니
다. "그래, 만족했냐?" "어이구, 나는 다시는 재벌총수 안 하겠습니다." "그럼 됐다!" "근데 다른 거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내가 권력자, 대통령이 되어서 한번 살고 싶습니다." "그래라, 그러면 다시 보내주겠다." 그래서 임금
님이 되었습니다. 아니, 임금님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만 해도 국가 원수가 하와이로 도망가고, 총
맞아 죽고, 감옥에 들어가고 다 했잖아요? 아, 국가 원수 하다가 그렇게 해서 죽었습니다. "만족했냐?" "어휴, 다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이제 됐겠구나. 네가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하지 않았냐?"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해주십시오." "그게 뭐냐?" "해보니까 다 소용이 없고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생긴 여자, 제일 마음이 착한 여자, 남편을 하나님과 같이 받들 수 있는 그런 여자를 한 명 주시면 그녀와 함께 저
시골에 가서 욕심 없이 평안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 여자를 주십시오." 이 염라대왕이 "야, 이놈아! 그런 여자가
있으면 내가 갖지 널 주겠냐?" 이 세상은 참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런 여자를 데리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지
아니, 찰스 황태자도 그렇게 다른 여자와 결혼한 거 보세요. 이 세상은 참된 평화가 오직 하나님의 형상들이기 때
문에 영적 능력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어린 시절이 가져다줍니다.
1976년에 총회신학교에서 조사한 주일학교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교인 중 87퍼센트가 주일학교 다닌 경험이 있
다고 합니다. 미국 교인은 85퍼센트가 주일학교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선교사가 된 사람의 95퍼센트가 주일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다고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벌써 어린 시절에 마음속에 깊이 벌써 자리 잡게 되어 '내가 이 다음에
자라면 선교사가 되겠다!' 선교사 가운데 95퍼센트가 주일학교 때 마음먹은 겁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신앙
교육의 첫째 장소가 성경에서는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어떤 신앙 교육을 시키고 계십니까? 안
하지요? 그러면 가정에서 안하고, 학교는 절대 안하고, 교회에서 포기하면 앞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도 지금
의 교회가 생명입니다. 이것마저 안 되면 끝난 겁니다. 주일학교 과정은 하나님 자녀 만드는 공장입니다. 영적으로
우수한 제품의 하나님의 자녀 생산처가 바로 주일학교입니다. 그래서 갈보리교회가 이렇게 열심히 주일학교에 힘을
쓰는 겁니다. 제가 와보니까 교육관이 모자라서 "아니, 이거 가지고는 안 되지 않습니까? 빚을 져가면서 그래도 해
야 되지 않느냐?" 주일학교 과정을 고등학교 졸업식까지 잘 거치면 그 사람은 삐뚜로 나갔다가도 반드시 돌아옵니
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를 어린 시절에 확인한다면 그것은 그의 인생에 최대 행복의
조건입니다. 가장 훌륭한 가정이라면 아버지, 어머니의 훌륭한 신앙생활을 보여지게 하십시요. 아버지, 어머니의
훌륭하지 못한 면은 아이들에게 아무리 시설을 좋게 하여도 교육이 안 됩니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지어다." 외국에서는 이런 통계를 많이 보게 되는데, 불신자로 불량스럽게 살았던 막스 쥬스의 가문이
1,000명이 넘었을 때 그 가문이 어떻게 변했는가? 또, 주일학교 학생이었던 요나단 에드워드의 가문은 어떻게 되었
는가? 이렇게 조금 틔는 가문을 조사해서 발표하는 게 많습니다. 그런데 아주 불량스럽게 살았던 막스 쥬스의 가문
이 1,061명으로 자손이 번성했을 때 3년 이상의 전과자가 96명이 나왔습니다. 알콜 중독으로 인한 정신 이상자가
58명, 극빈자가 286명, 문맹자가 461명, 창녀가 65명, 사회 공헌한 사람이 28명밖에 안된다고 나왔고, 이들로 인한
국고 손실은 세금으로 1억5천만 달러를 사용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에드워드 조나단은 869명으로 자손이 번성
했을 때 조사를 했더니 주일학교 열심히 다닌 가문에서 주일학교 교사가 186명이 나왔습니다. 목사와 선교사가 116
명이 나왔고, 발명가가 21명, 문필가가 75명, 대학학장이 12명, 대학총장이 4명, 재벌실업가가 73명, 국회의원이
75명, 부통령이 1명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이런 통계를 왜 냈겠습니까? 그렇게 되니까 낸 겁니다.
여러분, 주일학교 교육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 가문이라는 것이 사회에 이렇게 크게 공헌할 수 있습니다. 갈
보리교회 주일학교 나오는 1,0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진리의 빛이 되어서 이 사회 21세기에 큰 빛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이제 7, 8월에 저희들이 어린이 프로그램을 많이 계획하고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게 되는데
이런 작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영적 충만이 모든 어린이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영적 열매가 되게 하여 주시옵
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출처/이필재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