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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감사합시다. (삼하22:47-51)

by 【고동엽】 2022.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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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감사합시다.  (삼하22:47-51)

천원군에 살던 머슴 이씨는 가난한 중에도 열심을 다하는 주님의 성도였습니다. 교회 예배에 열심히 참예하면서 주의 일을 잘 받들었는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게 되면서 원하는 대로 교회 일을 하지 못함을 안타까이 여기게 되었습니다. 머슴살이 첫 해 맥추 감사절이 되었는데 교회 예배에도 참예치 못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그 날 밤은 한잠도 못 자고 머슴방에서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주일도, 절기도 제대로 지킬 수 있게 도와주소서.”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주인에게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가 되었습니다. 여름 보리 추수 후에 교회에서 지키는 맥추 감사절에 참예하고 싶다고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당했는데 몇 번 부탁한 후에 허락을 받았습니다. 다음은 예물을 드려야 되겠는데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서 다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마침내 보리 한 가마를 주어서 그것을 져다가 예물로 바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일 그 교회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과 머슴이 같이 절기를 지키는 주일이 되었고, 머슴 이씨에게는 적은 것으로 바쳤는데, 큰 복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 주일이었습니다. 그 후에 이씨 머슴은 주인집을 다 구원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해져 교회를 잘 받들었습니다.(21세기예화- 주인을 전도한 머슴의 믿음)

다윗은 자신의 승리의 영광을 모두 살아계셔서 자신에게 힘과 용기와 도움을 주셨던 하나님께 돌리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감사는 결코 근거없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마음의 보답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거합니다.
나아가 다윗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겠다고 고백함으로 감사의 무대를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의 모든 민족들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방 민족들 가운데도 생생히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정복된 이방 민족들은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놀라며,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감사와 찬양이 이스라엘의 전유물일 수 없고 온 민족가운데 선포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후일 사도 바울은 구원이 민족과 혈통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강조하며 본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롬 15:9)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맥추감사 주일을 맞으며 우리도 주께 감사합시다.

   생존하시니
(삼하 22:47)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합니다. 생존은 살아계신다는 뜻으로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진리를 생생히 깨닫고, '여호와는 살아계시도다!'라고 확신있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도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생명력 넘치는 속성을 나타낸 것으로서, 아무런 희망이 없던 존재들에게 새 힘과 삶의 의미를 주시기에 충분합니다.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그러므로 '생존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하는 자에게는 결코 낙심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마 28:5-6)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행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은 곧 성도의 안전과 생명과 기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존하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입에서는 감사와 찬양이 영원토록 계속됩니다.
(롬 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계 1:17-19)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하나님은 영원토록 스스로 살아계십니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만유인력을 발견한 과학자 뉴턴에 얽힌 일화입니다. 뉴턴이 숙련된 기계공에게 태양계의 모형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각각의 혹성이 움직이도록 아주 정교하게 설계하였습니다. 어느 날 무신론자이면서 과학자인 한 친구가 그 태양계 모형을 보고는 거기에 있는 크랭크를 서서히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모형에 달린 각각의 혹성들이 다양한 속도로 태양 주위를 회전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친구는 자못 놀란 표정으로 '야, 정말 훌륭한 모형이군.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 그러자 뉴턴은 '아무도 아닐세'라 무심히 말했습니다. '이봐, 이 모형을 누가 만들었냔 말이야?' 그러자 뉴턴은 '이건 누가 만든 게 아니고 여러 가지 물건들이 모아져서 우연히 이런 형태가 된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은근히 화가 난 친구는 '자네는 나를 완전히 바보취급하고 있군. 이렇게 정교하고 훌륭한 모형이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거!'하고 소리쳤습니다. 뉴턴은 친구 어깨에 손을 얹고는 '이건 엄청나게 큰 우주계의 작은 모형에 불과해. 이렇게 간단한 장난감도 설계자나 제작자 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자네가 주장하고 있는데, 하물며 이것의 근본이 되는 태양계가 설계자나 제작자 없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무어라 설명하겠나?' 친구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뉴턴은 그의 책 '프린키피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태양 혹성 혜성으로부터 생기는 매우 아름다운 천체는 지성을 갖춘 강력한 실력자의 의도와 통일적인 제어가 있기에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다...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신 분이시다.'

  구원의 바위시니
(삼하22:47)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하나님께서 미천한 다윗을 들어 온 민족들의 머리로 삼으신 것과 다윗을 대적으로부터 보호하신 사실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보수하시고입니다. 하나님이 보수하심을 믿었기에 사울왕에게 복수 할 기회가 있었으나 자기 손으로 해하자 않았습니다.
(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삼상 24: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복종케 하시며입니다. 이방 민족들로 다윗의 발아래로 내려가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나오게 하시며입니다. 원수에 의한 멸망에서 다윗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입니다.

드시고입니다. 모든 이방민족 가운데 다윗을 높이 드사 으뜸이 되게하신 하나님입니다.

건지시는도다입니다. 모든 대적의 위협과 핍박에서 다윗을 건져주신 하나님입니다.  

  큰 구원이라고 합니다. '큰 구원'(믹딜 예슈오트)은 '큰 구원들'입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다윗 왕에게 베푸신 여러 번의 구원의 역사와 그 구원의 풍성함을 의미합니다(Smith, Lange). 여호와께서 다윗 왕에게 '큰 구원들'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학가다는 유대인의 민족 문학서 또는 민족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문서라 합니다. 이 문서에는 유대인들이 최대 축제인 유월절에 대한 언급이 있다합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 있다가 탈출하여 유대로 귀환한 때를 기념하는 출제일입니다. 학가다에서 그 때의 해방의 환희와 소중함을 언급하고 있다합니다. 그 이야기는 이런 구절로 시작된다합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였다.' 세계의 어느 민족사에서 이와 같이 굴욕적인 패배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예가 있을까요? 더욱이 제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한 것이 아니라 '해방되었다'라고 수동형으로 기록하고 있다합니다. 해방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나타냅니다.

(삼상 2:6-8)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
(삼하 22:51) 기름 부음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인자'(헤세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맺으신 언약에 근거하여 각종 호의와 친절과 선과 자비등을 아낌없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언약의 본질이자 핵인 '메시야'(Messiah)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나고 완성된 모든 일의 전조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하나님의 지상 대리자 곧 신정국가의 왕으로서 '기름부음 받은 자'(마쉬아흐) 다윗에게 1차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다윗의 감사와 찬양은 메시야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롬 1:3-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 15:12)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모든 구원과 인자의 완성자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15: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그러므로 감사의 대상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 입니다.
(고후 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다윗 왕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다윗을 상대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밝히 알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자식을 세워 다윗의 나라를 견코케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언약을 약속받았기 때문입니다.
(삼하 7:16-17)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고하니라

그런데 후손'(제라-'씨'란 뜻)은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후계자 '솔로몬'을 가리키나 궁극적으로는 다윗 언약의 모든 것을 최종 이루시게 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결국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이와 같은 구원의 은총에 감사의 찬송을 힘차게 노래합니다(Keil).
특히 '영원토록'이란 말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인 우리들에게도 지금 구원의 역사를 베풀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실로 언약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때 더욱 헌신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죄짐을 지시는 사랑입니다.
어느 사람이 세계의 존경을 받던 그렌펠 선교사에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처럼 헌신적인 생애를 살도록 영향을 주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합니다. 어느 날 밤, 그가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 병원에 불에 몸을 몹시 데인 여인이 응급환자로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몸을 너무 많이 데었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졌습니다. 그 여인은 술을 많이 먹고 집에 들어온 남편이 파라핀 등불을 던져서 그렇게 치명적인 화상을 입었습니다. 술이 반쯤 깬 남편을 경찰이 연행하여 병실로 끌고 들어왔을 때, 책임 담당관은 그 여인의 목숨이 얼마 안 남은 것을 알고, 어떻게 그런 화상을 당하게 되었는지 경찰에 그대로 말해주기를 재촉하였습니다. 그 불쌍한 여인은 자기 침대의 곁으로 끌려온 남편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립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시선이 남편의 그 억센 손에 닿게 되었습니다. 여인의 기운 없는 시선은 남편의 팔을 따라서 어깨, 그리고 드디어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고통 중에 있는 여인의 얼굴이 잠시 고결해지는 것 같았다합니다. 그는 책임 담당관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불의의 사고였습니다.” 그런 뒤 베개에 머리를 묻고 곧 사망했다고 합니다. 윌프레드 그렌펠은 이 이야기를 하고 다음과 같이 맺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사랑과 똑같았습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출처/강성찬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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