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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설교 : 하나님과 사람의 갈등 (요나1장 1-3, 4장 9-13)

by 【고동엽】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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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람의 갈등   (요나1장 1-3, 4장 9-13)

지난 22일에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반 FTA 협정체결 반대투쟁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 반대투쟁이 얼마나 심했던지 대전에 있는 충남도청 벽이 무너져 내렸고, 광주에 있는 전남도청 유리창이 깨어지는 것을 우리는 신문과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폭력적 투쟁과 시위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합니다. 국민의 83%가 이 시위에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당한 목적의 시위라 하더라도 폭력적인 행위는 더 이상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처럼 이러한 시위, 투쟁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의 스며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투쟁”이란 것이 항상 잠재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투쟁이 단순히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택한 선지자 요나사이의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서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갈등에 관해 살펴보고 또 지금 우리의 모습도 살펴보면서 은혜 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갈등.
요나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의지가 관철되느냐 아니면 요나의 의지가 관철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에 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또 고전 4:2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2에 하나님은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말씀하셨을 때, 요나는 “주님! 거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앗수르의 수도가 아닙니까? 거기는 이스라엘과 절대로 화해할 수 없고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반문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과 요나사이에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요나의 생각은 니느웨는 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니느웨가 하나님의 복음을 들으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라도 회개하면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사실 요나가 선지자로 일하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니느웨”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기의 뜻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의지는 고집스럽게 하나님과 갈등하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했던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복음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는 니느웨와 정반대에 있는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요나가 도망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옳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와 죄악이 많은 니느웨는 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기가 옳다는 자아도취에 빠진 것입니다. 이렇게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은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대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는 도망침으로 자기 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팔레스틴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그 당시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다시스에도 계시고, 지중해 바다 한가운데도 계신분입니다. 그래서 도망가는 요나가 탄 배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요나는 풍랑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하면서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 즉 이 이야기는 자기는 죽으면 죽었지 “자기 의지”를 꺽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학대 즉 죽음과 자기도취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자기 의지가 강한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쉽게 자학하고, 자기 목숨을 버립니다. 물속에 던져진 요나는 준비된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회개합니다.(요나2:4) 우리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할 수 없습니다. 순종만이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셋째, 두 번째 하나님과 갈등하다.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던 요나는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습니다. 요나는 이 말씀을 전한다고 악하기 이를 데 없는 니느웨가 회개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요나3:5) 이 회개의 역사에 대해서 하나님은 3:10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 요나는 화가 났습니다. 요나는 분노가운데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요나4:1-2) 또다시 요나는 용서라는 하나님의 뜻에 대항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갈등하는 요나에게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뙤약 빛에 있는 요나에게 박넝쿨을 준비하셔서 그늘 아래서 쉬게 하셨습니다. 그후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먹어서 그늘이 사라졌습니다. 이번에는 요나가 박넝쿨을 가지고 하나님께 따집니다. 그때 하나님이 요나서4:11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말씀하십니다. 요나서는 이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 다음에 대답이 없습니다. 요나가 변화되었을까요? 변화되지 않았을까요?
바티칸의 가면 시스티나 성전 천정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수많은 선지자와 사도 족장들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가장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요나의 얼굴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뜻에 완강하게 저항하던 요나가 힘겨루기를 끝내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선지자가 되어서, 그렇게 밝은 얼굴, 하나님을 찬양하는 얼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름 받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내세워,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해서, 평화, 기쁨, 행복한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강용규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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