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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 (롬12:1-2,사43:21)
로마서는 기독교의 신앙과 복음을 총괄하는 기독교 신앙과 복음의 대 헌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거스틴과 루터가 로마서를 읽으면서 기독교의 신앙과 복음을 발견했습니다. 로마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이 세상의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을 권면하면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즉 예배로 드리라고 분부했습니다. 여기 “그러므로” 라는 말은 죄인들이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었다면” 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들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배를 쉽게 설명하면 효자 효녀들이 아침 저녁마다 부모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는 효심이 많은 신자들이 주일 아침과 저녁마다 또는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와서 무릎을 꿇고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문안 인사에는 고마움을 아뢰는 ‘감사’의 인사와 잘못을 고하는 ‘회개’의 인사와 감사를 표하는 ‘드림’의 인사와 바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다짐’의 인사와 무엇을 좀 도와 달라는 ‘요청’의 인사가 포함될 것입니다.
문안 인사를 정성껏 주고 받을 때 부모는 물론 자식들은 기쁨을 누립니다. 자식들은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 사랑과 은혜를 입게 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예배를 정성껏 드릴 때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물론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은 기쁨을 누립니다.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은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게 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예배는 ‘만남’이고 ‘감사’이고 ‘회개’이고 ‘드림’이고 ‘다짐’이고 ‘요청’인데 예배를 드릴 때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예배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예배를 정성껏 드리다가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눅2장에 나오는 시므온과 안나는 나이 많은 노인이 되어서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와 예배를 정성껏 드리다가 아기 예수를 만나서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눅2:28). “안나가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더니”(눅2:36,37). 예배는 나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직업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백부장 고넬료가 항상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다가 베드로를 통해 주님을 만났고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천 장사 하던 루디아가 강변에서 기도와 예배를 드리다가 바울을 통해 주님을 만났고 유럽 복음화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예배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과 모세의 예배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부름 받은 이후부터 한 평생 예배를 정성껏 드렸던 예배의 조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아브람이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창12:7).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12:8). "아브람이 장막에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창13:18). 단을 쌓았다는 것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창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까지 잡아서 제물로 드리면서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 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22:9,10).
아브라함의 제사와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너무 기뻐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보라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창17: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18:17,18). 아브라함이 자기가 가장 사랑하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최고의 제사를 드리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크게 놀라시면서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22:12-17). 아브라함이 정성껏 예배를 드렸을 때 하나님도 기뻐하셨고 아브라함도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부터 한 평생 예배를 정성껏 드린 예배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실 때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목적이 바로 예배를 드리는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라"(출3:12). 예배가 구원 받은 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모세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에게 이르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8: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9: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서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9:13). 여기 섬길 것이란 말은 물론 예배를 드릴 것이란 말입니다.
결국 출애굽 이후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사십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아서 처음으로 제사 제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 예배 제도의 시작이 되었는데 그 제도의 정신에 따라서 지금도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은 안식일 즉 주일을 철저히 지키면서 제사를 드리라고 지시하셨고, 유월절을 즉 수난절과 부활절을 철저히 지키면서 제사를 드리라고 지시하셨고, 칠칠절 즉 오순절을 철저히 지키면서 제사를 드리라고 지시하셨고, 월초 제사와 매일 아침 저녁 제사를 철저히 드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명하신 말씀을 읽어드립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1,8,9,22).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출31:14).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제사 드리고 예배 드리는데 충성했던 예배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사 드리는 모세의 장막에 항상 구름으로 불로 임재하셨고 모세와 함께 하시며 모세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면하여 예배 드리는 모세를 비방하는 아론과 미리암을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민12:8). 하나님은 예배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고 함께 하시고 변호하십니다. 모세가 마지막에 느보산에서 순종의 제사와 죽음의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서 그의 시체를 건사해서 하늘로 데려오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기쁨이고 축복이고 천국입니다.
둘째로, 청교도들의 예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예배의 조상들을 일일이 다 거론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벨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과 다니엘은 모두 기도와 예배의 조상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120명 성도들이 기도와 예배를 드리다가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고넬료와 루디아가 예배 드리다가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디엘 가든지 기도와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을 친밀하게 만났고 주님의 지시를 받으면서 복음을 땅끝까지 전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배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다 생략하고 교회사로 뛰어넘어와 청교도들의 예배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청교도들의 삶의 목적은 예배에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었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 유럽의 고향과 친척을 버리고 북미 대륙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영국에서 엘리자벳 여왕(1558-1603)과 제임스 1세(1603-1625)와 찰스 1세(1625-49)가 영국의 국교를 강요하며 비국교도에 대한 박해를 가하자 영국의 청교도들 102명은 예배를 자유롭게 그리고 마음껏 드리기 위해서 1620년 6월 메이 플라워(the Mayflower) 라는 배를 타고 영국 서남부 Wales 에 있는 Plymouth 항구를 떠나서 신 대륙으로 향했습니다. 4개월 이상 거센 파도와 싸우며 항해하여 1620년 11월 11일 신대륙에 도착했습니다. 케이프 캇을 거쳐 플리머스로 이동하여 12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정착을 할 수 있었는데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1621년 1월과 2월 사이에 50여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해 봄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옥수수를 심어 추수한 후 그 해 가을 아무 것도 감사할 수 없는 가난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찰스 1세의 통치 기간인 1630년부터 청교도들의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되었는데 청교도들은 주일 성수와 십일조 헌물을 삶의 기본으로 삼으면서 신대륙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거룩한 나라를 세우려고 모든 정성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청교도들은 마을이나 도시 한 가운데 큰 광장을 만들어 놓고 교회를 그 광장의 중심에 세웠습니다. 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청교도들은 일주일을 매일 같이 가정 예배를 드리며 다음 주일에 목사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주일 예배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주일 예배가 일 주일 삶의 목표였습니다. 토요일에는 가족이 이웃들을 불러 저녁도 같이 먹고 같이 예배 드리며 주일 예배 때 은혜를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일이 되면 온 식구가 나이 어린 자녀와 같이 교회에 예배 시간 전에 출석하여 기도하며 예배 시간이 되면 부모가 어린이들과 같이 앉아서 같이 예배를 드려도 어린이들이 불평함이 없었고 어른들은 2시간 동안이나 이어지는 목사님의 성경적인 설교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감격에 겨워 울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는 부모가 어린이들과 같이 그날 설교의 내용을 복습하고 그 다음 일주간 내내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활했습니다. 너무나 축복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청교도들을 크게 축복하셨고 덤으로 미국까지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주일도 쉽게 빼 먹는 오늘의 한국교회 신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습니다.
셋째로, 부족하지만 저의 예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주일을 성수하기 위해서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 11살 때 고향과 가정을 떠나 혼자서 38선을 넘어 북에서 남쪽으로 왔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가슴이 슬퍼지고 아파오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너무나 큰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어오는 11살 난 소년을 보시고 만족의 웃음을 웃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처음 1,2년 동안 서울에 와서 이모님 집에서 살면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남 몰래 눈물을 흘렸지만 영락교회를 다니며 마음껏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서 부산에 피난 갔다가 대구에 가서 3년 동안 "서울피난연합중학교" 라는 학교에 다니면서 살았는데 그 때 남의 집 셋방에서 살았지만 주일 예배와 수요일 예배는 물론 새벽기도를 거의 빠뜨리지 않고 드렸습니다. 조그만 방 한 칸에서 할머니 두 이모님 이모부님 이모부님의 형수님 사촌 동생과 나 이렇게 7명이 비좁게 비정상적으로 살았는데 사실 그 때 상황은 예배를 좀 빼 먹어도 괜찮을, 피난 생활을 하던 비정상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새벽에 남의 집 대문을 열고 나갔다 들어오는 것은 허락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다고 말한 대로 저는 대문 밖에서도 대문을 안에서 걸고 나가는 방법을 알아내었습니다. 사실 그 방법은 서울에 와서도 사용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하여튼 저는 비정상적인 피난 생활 중에도 정상적인 예배 생활을 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회는 대구의 어느 곳에서 열려도 만사를 제치고 찾아가서 들었던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또 들으면서 은혜를 받아 감격해서 울면서 헌신을 다짐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수요일 저녁 극장으로 갈까 교회로 갈까 여러 번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하다가 결국 교회로 간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빙그레 웃으셨을 것입니다. 저는 기뻤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를 통해서 이모님 가정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둘째 이모님께서 그 때 시장에서 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와서는 저를 아주 반갑게 대해주셨습니다. 그날 이모님이 시장에서 점을 쳤는데 점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모님 집이 지금 복을 받고 있는데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중학생 아이 때문에 복을 받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모님이 기분이 좋았고 저를 더 잘 대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때 귀신이 알아 맞추기는 참 잘 알아 맞추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에 와서 서울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예배 중심적 생활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이 담임하시던 창동교회를 다녔는데 주일 아침 저녁 예배와 수요 예배는 물론 새벽 기도도 빠지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부흥회를 찾아 다니고 기도원을 찾아 다니면서 기도와 예배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고3 때와 대1 때는 왕십리에 가서 개척 교회를 세우고 기도와 예배와 전도에 전력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안흥규 라는 학생을 길가에서 만나서 개척 교회를 함께 섬겼습니다. 12년 동안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박정희 정권이 주일 성수를 여러 모양으로 침해하려고 했을 때 저는 정면으로 도전하다가 남산 지하에 있는 중앙정보부 취조실에 끌려가서 밤새 심문을 당했지만 아주 재미 있게 심문을 당하고 나와서 여전히 주일 성수 운동을 계속해서 벌이기도 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많이 축복해주셨습니다. 기쁘고 즐겁게 살게 해주셨습니다. 모험심과 담력도 주셨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이 한 평생을 여유롭게 살게 해주셨습니다. 공부는 항상 상위권이었습니다. 국내와 국외에서 좋은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건강의 축복도 주셨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에 말씀 드린 대로 지난 주 화요일 홍천에 가서 건강 진단을 받았는데 작년보다 건강 상태가 약간 좋아졌다는 진단을 받고 왔습니다. 70 노인이 3시간 안에 23번 스키를 신나고 즐겁게 탈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물질의 축복도 많이 주셨습니다. 단 돈 100불을 가지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유학 갔지만 물질의 부족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결혼할 때 반지 살 돈이 없었지만 아내가 반지 값을 지불해서 그 때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필요한 곳에 돈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강변교회 성도 여러분의 헌물을 통해서 특히 루디아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은 성도들의 헌물을 통해서 지금도 필요한 곳에 물질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한 일이 있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빌4:18). 저도 같은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합니다.” 제가 한 평생 기쁨과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된 이유를 말하라면 세 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둘째는 부모님과 신앙의 선배들의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셋째는 부족하지만 제가 한 평생 주일 성수와 새벽 기도를 힘썼기 때문입니다. 제물 되는 삶과 예배 중심적 삶을 살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사이 매일 새벽 수지에서 강변교회로 오면서 교회에 가까이 오면 마음에 아늑함과 평안함과 감사함과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아 오늘도 아버지 집으로 가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이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할까 라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저는 가끔 서너 살 때의 일을 기억하곤 합니다. 평안남도 안주 친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서 살곤 했는데 수요일 밤 초롱 불을 밝히고 논 밭 길을 멀리 걸어서 수요 예배에 참석하던 때의 일을 기억하곤 합니다. 그 때 어른들이 기도할 때 두 손을 방 바닥에 대고 고개를 흔들면서 기도하는 것을 보곤 했는데 저도 따라서 그렇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손자 수혁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에서 기도할 때 고개를 숙이고 흔들면서 ‘주여 주여’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필리핀에서 선교 훈련 받을 때 본 것을 그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합니까? 아주 어렸을 때 예배에 참석해서 예배 드리면서 보던 모습이 평생토록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손자 손녀들에게 무슨 모습을 심어주시겠습니까? 예배 드리고 기도 드리는 모습을 심어주시겠습니까? 놀러 다니며 먹고 마시는 모습을 심어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아니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 드리게 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천국에 들어가는 목적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7:9-12).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창조와 구원의 목적입니다. 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자에게는 기쁨과 축복이 주어집니다. 천국이 열립니다. 예배를 등한이 여기는 자에게는 기쁨도 축복도 없습니다. 천국이 닫힙니다. 예배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정하신 곳 옛날에는 성막과 성전 지금은 교회에서 드려야 합니다. 주일은 종일 예배 드리기 위해서 구별해 놓으신 하나님의 날입니다. 아침 제사와 저녁 제사도 드리라고 분부했습니다. 2007년에 여러분 모두에게 예배의 부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부흥과 회개의 부흥과 예배의 부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기쁨과 축복이 충만하고 그리고 천국이 열려지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이중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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