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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전도여행 [제 3-12순례] 돌레마이(악고) : 하루를 묵고 떠나다

by 【고동엽】 2022.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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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레마이(Ptolemais)는 베니게의 지중해 연안 악고 항의 북쪽 끝에 있는 곳으로 구약(히브리어)에서는 ‘악고(Akko)’로 불려졌다(삿 1:31). 이곳이 ‘돌레마이’라고 불린 것은 BC 3세기 말 애굽의 프톨레미소테르에 의해서였다. BC 2세기경 유대 마카비 왕조가 로마에 대항하여 무장 항쟁을 벌일 때 이곳이 그들의 거점이 되었으나, 결국 AD 1세기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 시대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훗날 로마가 멸망한 뒤 이곳은 다시 ‘악고’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사도행전 21:7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두로~돌레마이(악고)
 

 

지중해의 항구 돌레마이(악고)

 


특별히 이 악고는 십자군 전쟁 와중에 예루살렘을 이슬람에게 빼앗긴 적이 있었을 때(1187년)에 100년 동안 십자군 운동의 중심지가 된 곳이 바로 이곳 악고였다. 그래서 이 악고에는 아직도 십자군의 채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아크레-십자군 성채 감옥

 

현재는 아르케(Acre)라고 불리는데, 1291년에 맘루크조가 십자군으로부터 아크레를 탈환한 뒤 약 500여 년 간 자치를 유지하다가, 18세기 중반에 오스만 튀르크제국에게 자치권을 이양했다. 당시 오스만 튀르크제국의 지방행정관이던 아흐메드 파샤 알 제자르(Ahmad Pasha al-Jezzar, 1775~1804 재임)에 의해 세워진 알 제자르 모스크는 현재 이스라엘에 남아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중의 하나가 평가받는다. 또 다른 역사적 건축물로는 18세기에 건축된 대상들을 위한 숙소 ‘칸 엘 움단(Khan El Umdan)’과 1906년에 술탄 압둘 하미드를 기리고자 건축된 시계탑을 들 수 있다.

 

아크레-터키식 목욕탕 박물관

 

아크레는 1918년에 오스만 튀르크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며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현재는 이스라엘에 속해있다. 중세 십자군 요새와 18~19세기의 오스만 튀르크제국 시기의 건축물들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으며,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두로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계속 바삐 가고 있는 바울 일행은 여기 돌레마이에 일단 도착하여 하루를 묵으며 형제들의 안부를 돌아본다. 그리고 이튿날 가이사랴로 또 떠난다.

 

출처 : https://cafe.daum.net/ccm/6Km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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