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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목양 단상[1,073]〓/사도신경.주기도.십계명

사도신경③ -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by 【고동엽】 2022. 3. 9.

사도신경③ -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설교자 : 마경훈목사

우리는 3주째 사도신경의 내용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서 가장 먼저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크게 3가지입니다.
저는 첫 번째 고백인 전능하신 하나님도 중요하고, 두 번째 고백인 창조주 하나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고백이 세 번째 고백인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고, 창조주이시지만 나와 상관이 없다면 앞의 두 가지 고백은 나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그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실 때 그분의 전능하심과 창조주이심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옆집 아저씨가 아무리 돈이 많고 능력이 있고 인격이 좋아도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 능력 있고 돈 많고 인격도 좋으신 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실 때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신분의식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확실해지면 그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믿음이 확실하면 그 믿음에 합당한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믿음에 합당한 말을 하게 되고, 그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덴마크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지은 [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어린 백조가 자신이 백조인지 모르고 오리 새끼들 틈바구니에서 구박 받고 삽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합니까? 그런데 다행히 나중에 자신이 백조인 것을 깨닫고 창공을 향해 날아갑니다. 그 백조는 본래부터 백조였지만 자기가 백조라는 의식을 갖지 못했을 때는 오리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백조가 자기가 백조라는 의식을 갖게 되니 마침내 다른 백조처럼 하늘을 날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는 하나님 자녀라는 신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적 신분의식이 부족하면 그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의식이 확실해지면 그 때부터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율법 아래 있게 하신 이유를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들 속에 아들의 영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입니다. 오늘 설교는 우리의 아버지, 아빠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 하나님
요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주님을 찾아와서 주님으로부터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거듭남이란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납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라는 말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질문에 두 가지의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1)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넓게 보면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아버지이십니다. 행17:28 보면 사도 바울에 아덴에 가서 설교할 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시민들을 향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소생’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게노스’라는 말인데 그 의미는 ‘후손,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시조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었고 요 8:34 말씀대로 인간은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이 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죄로부터, 마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성경 요 1:12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성경 요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자신이 대신 죽으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베스트셀러가 된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가 자신을 주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가시고기]는 이런 내용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다움이는 엄마 없이 아빠와 살면서 백혈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도 다움이의 백혈구 수치가 낮아질 가망이 없자 다움이 아빠는 아이를 퇴원시켜 시골로 내려갑니다. 그 후, 다움이의 병이 심각해져 다시 병원에 가게 됩니다. 백혈병 환자에게 희망은 골수이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일본에서 다움이의 골수와 딱 맞는 기증자가 나와 골수이식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원비가 없었던 다움이의 아빠는 특단의 조취를 취합니다. 다움이의 아빠는 자신의 각막이식을 하고 애꾸눈이 됩니다. 그리고 각막이식을 한 돈으로 다움이는 골수이식을 받습니다. 몇 달 뒤 다움이가 호전되나 아빠는 간암으로 죽어갑니다. 그러나 아빠는 다움이를 돌보느라 자신을 치료하지 못하여 회복 불능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다움이 아빠는 프랑스에서 온 엄마에게 다움이를 줍니다. 그 후, 아빠는 병세가 악화되어 시골 한 폐교에서 삶을 ! 마감합니다. 프랑스에 사는 다움이는 아빠의 죽음을 모른 채 아빠를 기다린다는 내용입니다.
다움이 아빠가 자신의 생명을 주고 다움이를 살렸듯, 하나님 아버지는 생명보다 귀한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을 주시고 우리들을 살리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는 사람만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경 요 3:5에 보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경 고전 12:3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이 믿어지는 이유는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 롬 8:16에서 말씀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우리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눈으로 본적이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들어 본적이 없고, 그분의 직접 만져본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로 믿어집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믿어지도록 증거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나를 위한 사건으로 믿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분이 계시다면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십시오. 성령이 역사하시면 주님의 공로가 나를 위한 것으로 믿어지고, 하나님이 아버지로 믿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2. 자녀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아버지 하나님
요즘은 낳기만 했지 자녀를 버리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건 짐승만도 못한 짓입니다. 짐승도 자기 새끼는 책임을 집니다. 부모는 자녀를 책임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어도 최선을 다해서 책임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폐지라도 주어서 자녀를 책임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철환 씨의 [연탄길]이란 책이 있습니다.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작은 이야기들을 묶은 책입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짠한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그 가운데 [아버지의 우산]이란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린 시절 달동네에 살던 사람이 어른이 되어 회상하는 글입니다. 아버지는 고물 장사를 했습니다. 철이 없는 그는 그런 아버지가 창피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돈을 조금 모아 식당을 차렸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어머니와 우유 배달을 합니다. 설사가상으로 교통사고로 부상당해서 깁스를 하고 집에서 쉬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둥 번개가 치며 폭우가 집니다. 천정에서 비가 주룩주룩 새서 양동이를 받쳐놓아도 소용없습니다. 아버지가 속이 상했는지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밤이 깊어져도 돌아오지 않자 식구들이 찾아 나섭니다. 동네를 다 뒤져도 아버지를 못 찾자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들어오는데 지붕 쪽에서 시커먼 물체를 발견합니다. 아버지였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안간 힘을 쓰며 우산을 받치고 물이 들이치는 지붕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정상적인 아버지는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 가족을 보호하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모든 것을 책임져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름 최선을 다해서 자녀를 책임지려고 해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입니다. 그 곁에 어머니가 있지만 언제나 무엇인가 허전함이 있습니다. 제 아내는 세상에 태어나 6개월 되었을 때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자라면서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어머니에게 돈으로 아빠 사오자고 졸라댄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 없는 허전함은 세상의 무엇으로도 매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허전함이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 되었습니다. 영혼의 친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만난 후에 그 마음에 있던 허전함이 치료되었습니다.
저는 육신의 아버지가 있느냐 없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아버지를 만났느냐 못만났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육신의 아버지가 채울 수 없는 모든 것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사는 한 여성이 지하철에서 도움을 구하는 아저씨 한 분을 보았습니다.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한 쪽 발목에 의족을 차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의족을 차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쪽 바짓단을 걷어 올린 채 조그만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구걸했습니다. 그 때 이 여성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이 남자가 왜 구걸하며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 아느냐?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자기에게 없는 한 쪽 발목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구걸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란다. 너도 마찬가지다. 너도 내게 받은 것들이 그토록 많건만 남편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니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없는 남편, 없는 아빠, 없는 돈, 없는 능력을 바라보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 마6:26에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물인 새 한 마리에게도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데 하물며 당신의 자녀들을 책임져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제 책상 유리 밑에는 네 잎 크로버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약 15년 전에 시골에 갔다가 따와서 책 사이에 넣어두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이사를 여러 번 했습니다. 이사 다니며 책이 엄청 뒹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네 잎 크로버는 책 사이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가 제 책상 유리 밑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책 사이에 있던 네 잎 크로버처럼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사랑을 받는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3.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면 징계하시지만 회개할 때는 모든 것을 품으시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가 바르게 자라도록 때로는 사랑의 매를 들어야 합니다. 적당한 징계는 자녀를 바르게 자라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주셨지만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간다면 사랑의 매를 드시는 분입니다.
사무엘하 7장을 보면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한 사람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 7:14) 하나님은 다윗의 아버지가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다윗이 만일 죄를 범하게 되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약하게 시작됩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약한 징계를 받은 후에 바로 깨닫고 돌이키면 약한 징계로 끝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들이 약한 징계를 받고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기 고집대로 하면 징계의 강도는 점점 강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징계는 냉정하고 무섭게 옵니다.
어떤 사람은 무서운 징계를 받고도 돌이키지 않는데 이는 미련한 짓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하나님을 이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그는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말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징계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양이 무리를 이탈하면 이리의 밥이 됩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을 때려서라도 무리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차가지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사탄 마귀의 밥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이고 징계가 곧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성경 히 12:6,7을 보면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이며, 징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바른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징계하시지만 우리가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어떤 죄를 범했든지 다 받아주시는 넓으신 아버지이십니다.
눅 15장에 보면 한 탕자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시퍼렇게 살아계시는데 유산을 받아 아버지를 떠나버립니다. 떠났으면 잘 살아야 하는데 바보 같은 아들은 허랑방탕하여 모든 재산을 낭비하고 돼지 치는 일을 합니다. 아들은 너무 고생이 심하니 부끄럽고 죄송하지만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들이 아니라 종이라도 좋다는 심정으로 돌아가는데 아버지는 그 못된 아들을 받아드립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벌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모든 것을 품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심각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 나오기가 너무 힘들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거부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굳어지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신다는 믿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집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처럼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시고 언제나 우리를 받아드리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가슴의 넓이만큼 사람들을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가슴이 좁은 사람은 작은 죄인도 받아드리지 못합니다. 죄라고 할 것도 없는 아주 사소한 상대의 잘못도 영납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은 우주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품으실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지고 돌아오는 모든 자를 다 받아주시는 넓은 분입니다.

4. 기도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부모는 언제나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능력의 한계 때문에 모든 좋은 것을 공급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고,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제시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응답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받아 누릴 수 있을까요? 기도가 해답입니다. 성경 마 7:11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에 보면 이스라엘 회복에 관한 약속을 하신 후에 3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저희 누님 교회에 나오는 초신자의 간증입니다. 이분은 아직 초신자라 주일성수의 개념이 약합니다. 노점에서 이것저것 파는 분입니다. 요즘은 메주를 판다고 합니다. 작년에 메주 판매로 좀 재미를 봤나 봅니다. 메주 판매도 철이 있나봅니다. 지금이 적기인 것 같습니다. 믿음이 약하니 메주 판매의 적기를 놓칠 수 없으니 얼마 전에는 주일에도 메주를 팔기 위해서 장사를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후가 다 되도록 메주를 하나도 팔지 못하고 하루 장사 공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직 초신자라 믿음도 부족하지만 교회에서 들은 기도하면 응답 하신다는 말씀대로 길거리에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기도를 하는데 교인 몇 사람이 지나가다가 메주 가격을 물어보더니 한 덩어리에 약 2만원하는 메주를 16덩어리인가를 사가더랍니다. 이 분은 기도 응답에 감격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일낮예배 뿐만 아니라 주일오후예배도 드린다고 합니다. 이분은 초신자이지만 기도를 통해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 받았고 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분은 믿음! 도 성장하게 되었고 또 장사보다 예배가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의 응답으로 크고 비밀한 일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5. 영원한 상속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여러분이 세상을 떠날 때 여러분의 재산은 누구에게 물려주고 가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습니까? 보통 부모들의 상속의 대상은 자녀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주십니다. 본문 7절에 보니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입니다. 성경 롬 8:15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친 아들이신 예수님과 함께 공동상속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롬 8:17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양자인 우리가 하나님의 친아들이신 예수님과 공공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인 1세기 당시 로마법으로는 양자도 친 아들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졌습니다. 네로 황제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본래 왕족이 아닌데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가 되어 완전한 상속자로 로마 황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상속 받을 기업은 하늘에 보관된 것들입니다. 그것은 영생과 천국 그리고 천국의 상급 등입니다. 벧전1:4에서 말씀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셨고, 천국을 예비하고 계시며, 하늘의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상속자입니다.

6.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자녀가 잘 사는 것은 부모의 자랑거리입니다. 자녀가 잘못 살게 되면 부모의 가슴은 피멍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일까요?

1) 영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경 요 3:6을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육은 부모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났고 우리의 영은 성령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육으로 살면 안 됩니다.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육을 따라 살든지 영을 따라 살게 됩니다. 이 말은 육이 원하는 대로 살든지 영이 원하는 대로 산다는 말입니다. 롬 8:5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을 따르는 결과는 무서운 것입니다. 롬 8:6-8을 보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유기견 보관소에 두 사람이 들어와서 개 한 마리씩 데리고 갑니다. 한 사람은 집에 데리고 가서 가족처럼 키우려고 개를 데리고 가고 또 한 사람은 보신탕을 해먹으려고 데리고 갑니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한 마리는 집으로 가서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 것이고 다른 한 마리는 곧 죽어서 식탁위에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영의 생각은 평안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 속에 와 계시는 성령님의 감동과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을 따라 살므로 늘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2)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사람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자녀의 모습입니다. 성경 마 5:48에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가 온전해지는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그 답이 앞의 몇 구절에 나옵니다. 성경 마 5:43-47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여러분! 혹시라도 여러분 마음에 미움이 남아있다면 주의 은혜를 구하시고 마음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3)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경 골 3:15-17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 말씀에 보면 세 번식이나 구절마다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은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유무에 있다'고 했습니다. 중세 시대 때 수도원에서 제자 양육시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외형적 모습은 비슷할지라도 감옥에 있는 사람은 불평과 원망이 있고, 수도원의 생활에는 감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일지라도 감사 없으면 감옥이 될 것이며 감옥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가 넘치면 그곳이 천국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없이 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 때, 문제가 넘치고 있는데 감사하는 것은 성령충만한 사람 외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크리소스톰은 항상 복음을 전하면서 감사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로마황제가 기독교를 핍박하던 때에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붙잡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이곳에 파송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얼마 후 사형언도를 받게 되었을 때에 “순교는 성도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하는데, 나 같은 죄인을 순교자의 반열에 동참케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갑자기 사형을 중단하라는 명령으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크리소스톰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아버지, 아직도 이 종에게 할 일이 남아있었군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소스톰처럼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감사해야 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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