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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의 겸손! 웃시야의 교만! (대하 26:3-21)

by 【고동엽】 2022. 2. 11.

웃시야의 겸손! 웃시야의 교만! (대하 26:3-21)

 

▶성경의 일곱 가지 기적이 있습니다.
⑴형성의 기적입니다. 성경은 약 1500년에 걸쳐 왕, 농부, 철학자, 어부, 시인, 정치가 등 40여명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⑵통일성의 기적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될 때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과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람이 서로 만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경을 편집해놓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일관되게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⑶판매의 기적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최고의 베스트셀러입니다.
⑷흥미의 기적입니다. 성경은 계층을 초월해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넘어 만인에게 흥미를 줍니다.
⑸보전의 기적입니다. 수천 년 간 모진 박해 속에서도 온전히 보존되었습니다.
⑹걸작의 기적입니다.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저술되었지만 문학적 가치에 있어서 최고의 걸작입니다.
⑺영향력의 기적입니다. 성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성경이 들어가는 곳마다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 모든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미개한 국가가 문명 국가로 발전되었으며,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가 도덕적인 사회로 변화되었습니다. 불의하고 악한 자들은 선하고 착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옥 같은 가정이 천국 같은 가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멸망 받을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할/
인류 역사상 찬란한 영광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거의가 다 성경을 통해서 받은 은혜 때문에 위대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링컨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성경을 붙들라’고 하면서 유언하기를 '링컨아! 이 성경 속에는 부자가 되는 비결, 정치를 잘 하는 비결, 바르게 사는 비결이 다 들어 있단다. 성경을 늘 읽으면서 성경대로 살아라'
링컨은 어머니의 유언을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가까이 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자손 대대에 유산으로 물려져야 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은 유다의 10대 왕 웃시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웃시야는 16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웃시야는 '여화와는 나의 힘'이란 뜻으로 그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지만, 말년엔 문둥병이 들어 비참한 생을 마감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한 그런 사람입니다. 웃시야는 그의 할아버지 요아스와 그의 아버지 아마샤와 같이 처음에는 선하게 시작했다가 악으로 인생을 마감한 불행한 사람입니다. 웃시야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신본주의로 시작했다가 인본주의로 마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초기의 웃시야는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였고, 솔로몬 이후 남쪽 유다에 가장 큰 정치적, 경제적 분야에서 엄청난 번영을 일으킨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일 나라가 강성해지자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떨다가 그의 말년을 문둥병에 시달리다가 외롭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왕입니다.
여러분! 성공하는 사람에게도, 실패하는 사람에게도 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성공한다고 해서 결코 경거망동(輕擧妄動)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겸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더욱 더 베풀어주십니다. /할/ 그러나 만약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멀리하실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제목 소개!▶

 

웃시야는 한 시대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그런 왕이었습니다. 사6:1절에 보면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는 대왕 웃시야의 죽음에 대하여 몹시 근심하면서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뵈옵고 부름을 받게 됩니다.
사6:1-4절에 보면 이사야는 우선 온 '천지만물의 주권자'가 되시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바로 그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 여호와 하나님'을 뵈옵게 된 것입니다.
'높이 들린 보좌'는 바로 세상의 그 어떤 왕도 앉을 수 없는 가장 높은 보좌이므로 거기에 앉으신 하나님은 두말할 필요 없는 최고의 통치자이십니다. /믿/ 그런 하나님을 스랍들이 호위하고 있습니다. '스랍'이란 하나님의 하늘 보좌 곁에 있는 영물을 가리키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특별한 천사'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스랍들이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었다'고 한 것은 하나님을 엄청나게 두려워하는 자세로 섬기고 있음을 가리키며, '나머지 두 날개로는 날아다니고 있었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을 즉시 수행하기 위하여 완전무결한 준비태세를 항상 갖추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스랍들이 내는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했다'는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을 드리는 일에 온 정성과 힘을 다 쏟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스랍들에 관한 이런 일련의 묘사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 세계로부터 섬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지극히 높고 위대하신 주권자 되심을 극명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아니라 세상의 그 어느 훌륭한 군주라 해도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최고의 절대주권자이신 하늘의 통치자를 뵙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웃시야가 그 당시 끼친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아 왕이 죽던 해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대가 영적인 암흑기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할/

 

①웃시야는 누구인가? 그 당시 배경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웃시야 왕은 그의 나이 16세에 파란만장한 정치적인 변란 속에서 이스라엘의 남 왕국 유다의 제 10대 왕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의 할아버지 요아스 왕은 시리아 군과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왕궁으로 돌아와 있다가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 이 웃시야 왕의 아버지 아마샤도 자기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아마샤가 예루살렘에서 라기스로 피신해 갔지만 거기까지 반역자들이 쫓아와서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계속해서 역모와 반란이 계속되는 그 가운데서 어린 나이로 왕이 되었던 사람이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이 웃시야라는 왕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난 뒤에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약 52년 동안 남 왕국 유다를 통치를 했는데, 그가 처음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 블레셋을 쳐서 이기게 하고, 아라비아 사람을 쳐서 이기게 하고, 그의 세력이 점점 강성해져서 암몬 사람들은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고 이집트에까지 그의 명성이 널리’ 퍼졌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더욱더 견고히 하고 망대를 세우고 그리고 광야에도 요새화 된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파서 목축업과 농업을 크게 장려했고, 약 30만 7천 5백 명이라는 정예군을 두었고 총사령관 하나냐를 중심 해서 2,600명의 장교들이 이 30만 7천 5백 명의 병사들을 훈련시킴으로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을 치면 국방과학연구소 같은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유명한 발명가들을 다 모아서 군사적인 장비를 제작해서 망대와 성곽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기구들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주변에 많은 나라와 민족들은 벌벌 떨게 되었고 왕은 더욱더 강력한 임금으로서 그의 권력 기반을 다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의 강성함은 그 이름이 뜻하는 바 그대로 '여호와로부터 온 힘'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할/
그러나 그가 외적으로 강성해지고 힘이 막강해지니까 그의 마음속에 교만이 들어와 결국 그는 패망의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16절을 한번 주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그렇습니다. 교만이 문제입니다. 잠16: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잘 될 때, 무엇이 형통할 때, 일이 잘 풀려 나갈 때, 그때 우리는 절대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더욱 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의 은혜입니다'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아멘!/
이 웃시야 왕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셨고 하나님 말씀에 겸손하게 엎드릴 때 하나님은 그를 형통케 하셨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지킬 때 하나님은 그를 강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할 때 하나님은 그를 버리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됩니다. /할/

 

②웃시야의 겸손! 그는 그때 형통의 길로 갔습니다.
웃시야는 '아사랴'라고도 하는데(왕하14:21), 역대 왕 중에서 가장 많은 인기와 덕망을 한 몸에 받았던 그 당시 아주 소문난 왕이었습니다. 그는 약관의 나이 16세에 왕이 되었지만(3) 장장 52년이나 집권자의 권좌에 앉았던 그런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유다는 우리나라의 강원도의 넓이만큼도 체 안 되는 아주 작은 영토를 가진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웃시야는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인 분야’에서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입니다. /할/
다시 한번 그의 업적을 상고해 보면 군사적으로 블레셋을 정복하고, 아라비아와 마온을 무찔렀으며, 지레 겁먹은 암몬에게 조공을 받아냅니다(6-8). 그의 군대는 삼십만 칠천 오백 명(307,500)이나 되었고, 전쟁무기도 공장을 두어 만들어냈습니다(13,15).
경제적으로는 물웅덩이를 파 평야와 평지에 가축을 키우고 산을 개간하고 밭을 일궈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10). 정치적으로도 강성하여 변방은 물론 원 방까지 이름을 떨치는 왕이었습니다(8,15). 그는 한마디로 형통의 성공을 거둔 그런 임금이었습니다. /할/
그렇다면 16세에 참으로 보잘것없는 나라의 왕으로 즉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52년 간이나 권세의 지팡이를 잡고 유명한 치정을 하고, 애굽의 변방에까지 이르도록 소문이 나고 그의 명성과 권세로 말미암아 암몬 사람들이 해마다 조공을 바치도록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해 주셨기 때문에 형통의 길이 열렸고 성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에게도, 실패하는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웃시야가 그런 형통의 길로 가게 된 원동력이 무엇인가? 우리가 이 시간에 배워야 할 덕목입니다. /아멘!/

 

⑴하나님이 도와주실 때 그가 형통할 수 있었습니다(5,7,15).
성공의 강력한 이유는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5절에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7절에 '하나님이 도우사' 15절에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할/
그렇습니다. 웃시야가 형통의 길로,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다의 군대가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우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웃시야가 강해져서 이름이 원 방에 퍼지게 된 것도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웃시야가 성공하게 된 근본 원인은 웃시야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앙의 묘미가 있습니다. /아멘!/
특히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영감을 더해 주는 말씀은 '기이한 도우심으로'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형통의 원리이고 이것이 해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특징이 있습니다.
모세가 그렇습니다. 모세가 모세 된 것은 결코 모세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양을 치려고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14번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지팡이가 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 물이 나왔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있을 수 없는 기이한 일입니다. 그 지팡이로 홍해를 치 바다가 갈라져 길이 났습니다. 기이한 도우심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할/
바울도 그렇습니다. 바울이 사용했던 손수건만 아픈 사람에게 얹어도 병이 나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입니다.
다니엘도 그렇습니다. 죽이려고 사자굴속에 넣었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내주셔서 사자 입을 막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으로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헤롯이 기독교를 핍박하면서 베드로를 사형시키려고 잡아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와서 옥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기이한 도우심으로 베드로는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할/
그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이 도와주셔야 우리의 삶 속에 기이한 축복이 일어나게 됩니다.
시121:1-2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기서 산은 어디인가? '저 높은 곳'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골3:1-2절에서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위엣 것을 바라보고 위엣 것을 생각하고 추구하고 목적하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서 귀한 것은 모두 저 위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만나가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위로부터 주어졌습니다. 주님도 저 위로부터 오셨습니다. 주님의 재림도 저 위로부터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존슨 오토만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모든 근본적인 도움은 저 높은 곳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할/
▶어떤 청년이 어머니의 고지식한 신앙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배우지 못하고 너무 무지해서 저렇게 고지식하게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주일마다 꼬박 교회에 나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는 어머니의 저속한 믿음생활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때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젊은이가 군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전선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를 때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한마디를 했습니다. '전선에서 암담하고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거든 너는 위를 보라'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전선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이 잘난 아들이 전선에서 작전 중에 적진에서 퇴각하다가 홀로 낙오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적진 깊숙한 곳에서 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방법이 전무했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별 수단이 없었습니다. 지금 자기가 위치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방향조차 모를 만큼 혼돈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이 젊은이 마음속에 그 무지하고 고지식하기만 했던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기차를 탈 때 마지막으로 전해주시던 어머니의 한마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전선에서 암담하고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지거든 저 위를 보라'
그때 이 젊은이는 일생 처음으로 가장 진솔하고 가장 솔직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저 위를 바라보면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자신도 모르게 절박한 기도가 나왔습니다. '나를 살려 주세요, 나를 구원해 주세요, 나를 기억해 주세요' 이 젊은이는 일생 처음으로 그렇게 진실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가 바로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그러면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 주어지는 것일까? 아무에게나 기이한 도우심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지도자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웃시야 왕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9-10절에 '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또 거친 땅에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팠으니 평야와 평지에 육축을 많이 기름이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를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더라'
웃시야 왕은 왕인데도 불구하고 농사를 좋아했습니다. 당시 왕들은 대부분이 사냥을 좋아하고 성을 쌓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은 농사를 좋아했다는 것은 그만큼 백성들을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지도자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지도자들에게 '기이한 도우심'을 주십니다. /할/
야베스의 기도를 보자! 대상4:10절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은 불신자요 망하게 됩니다. 욥36:13절에 '마음이 사곡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께 속박을 받을지라도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신앙은 주님의 도우심에 우리를 내어 맡기는 일입니다. /아멘!/

 

⑵웃시야가 정직히 행할 때 주님은 도와주십니다(4).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하지만 사람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웃시야 왕에게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웃시야가 정직할 때 그가 형통하게 되고 성공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정직이란 평가는 자신이나 타인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리신 평가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혹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등이 그것입니다. /할/
바울의 고백은 무엇인가? 갈1: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하나님은 정직의 하나님이십니다. 시25:8절에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하나님은 정직하실 뿐만 아니라, 정직을 기뻐하십니다. 대상29:17절에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또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잠14:11절에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뿐만 아니라 정직하면 후대가 잘 되며(시112:2), 도시와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잠11:11). 우리는 정직하기만 해도 하늘의 복과 땅의 복 모두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할/
여기서 말하는 성경적인 정직은 윤리나 도덕의 차원이 아닙니다. 말이나 행동의 단계도 아닙니다. 정직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마음이 정직할 것을 강조합니다.
시7:10절에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그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의를 베푸소서'(시36:10)라고 시인은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교는 이 시대의 마음입니다. 종교가 정직해야 세상이 정직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종교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특히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 어느 곳보다 정직해야 할 곳이 교회입니다(시24:3,4). 3%의 염분이 바다를 썩지 않게 하듯이, 이 땅의 우리 기독교인들만 정직해도 우리나라는 절대 썩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영국 격언에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고,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을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일 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사고,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직 합시다. 정직함이 건강한 신앙이고, 정직함이 행복이고 정직함이 형통의 통로입니다. /믿/아멘!/

 

⑶주의 종과 관계가 좋아야 형통의 길이 열립니다(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여기의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에서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구한다'라는 말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기 위해 그의 말씀을 따랐다는 말씀입니다. 경건한 예배자, 구도자의 모습입니다. 웃시야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고, 은혜를 구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그가 계속 하나님을 찾은 생활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형통할 수 있었습니다. 즉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 때에 형통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형통의 성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부지런히 구해야 합니다. /아멘!/
여기서 스가랴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자'입니다. 그가 웃시야 왕에게 영적 감화력을 주었던 인물입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아는 자’란 '그가 말씀에 붙들려있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는 주님의 손에 붙잡혀있는 사람입니다. 웃시야 왕에게는 선지자요 교사요 고문으로서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스가랴가 왕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왕에게 가르쳐주고 인도한 것뿐입니다. 기도하게 가르쳤습니다. 바른 예배의 삶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른 정치를 가르쳐 주었고, 바른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가르침을 잘 받는 성도가 혈통의 복을 받습니다. /할/
▶웃시야와 스가랴의 관계는 주의 종과 성도의 관계입니다. 주의 종과의 좋은 관계, 그것이 그의 성공비결입니다. 성도는 주의 종을 잘 만나야 합니다. 주의 종도 성도를 잘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주는 사람, 그의 말씀을 잘 따르는 사람의 관계가 성공을 만들어냅니다.
히13:17절에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주의 종을 섬길 때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줄로 알고 도와야 합니다. 렘3:15절에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합한 자를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모세를 보내 주셨습니다.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 시대마다 당신의 종들을 세우시고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주께서 세우신 주의 종들을 도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할/
㈁하나님은 당신이 세운 종들을 통하여 역사를 허락하십니다. 암3: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주의 종들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역사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노아를 통하여 홍수의 예언을 주셨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소돔과 고모라 땅의 멸망도 예언하셨습니다. /할/
㈂주의 종들이 즐거움으로 일하도록 성도들이 도와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하셨습니다. 기왕이면 주의 일을 즐거움으로 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유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고 당부하셨습니다 /할/
웃시야가 형통할 때는 스가랴의 말씀을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가랴가 죽자 웃시야는 달라집니다. 웃시야의 성공의 이유는 주의 종과의 관계였을 뿐 아니라 그의 말을 따라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구할 동안에는 성공하였지만 하나님께 구하도록 곁에서 가르쳐주던 스가랴가 죽자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고 그는 바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실패자가 된 웃시야 왕을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할/

 

③웃시야의 교만! 그 때 그에게 저주가 임했습니다.
1-15절까지는 웃시야의 성공 이야기를, 16절부터 그의 실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었지만 말년엔 실패하고 문둥병이 들어 비참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웃시야가 성공도 하고 실패도 했다면, 우리들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초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성공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온다면, 실패는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옵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관계는 겸손에서 오며, 잘못된 관계는 교만에서 옵니다. 그러니까 웃시야의 실패 원인을 한 마디로 교만 때문입니다. /할/


▶우리는 여기서 겸손과 교만을 한 번 정리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인물들 가운데 그들의 겸손함을 교훈으로 듣습니다. 하루는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 현관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옆을 지나가던 비서가 구두를 닦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임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말을 합니다.
'각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일 국의 대통령의 존귀하신 몸으로써 천한 사람들이 다 하는 구두를 손수 닦으시다니 이게 될 법한 말입니까? 이리 주십시오' 링컨이 대답합니다. '여보게 제임스! 자신의 구두를 자신이 닦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이게 무슨 잘못된 일인가? 또 구두 닦는 일이 천한 일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일세. 대통령도 구두닦이도 다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일세!' 비서는 링컨의 겸손하고 사리에 맞는 말에 감탄을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교만이 있습니다.
㈀지식의 교만이 있습니다. 무엇을 남보다 더 배워서 안다고 교만합니다. 그러나 한평생 달고 다니는 자신의 눈썹의 수효도 모르고 지냅니다. 한 시간 후에 일도 모르고, 종이 한 장만 눈앞에 가려도 그 앞을 못 봅니다.
㈁물질적인 교만이 있습니다. 남보다 돈이 많다고 교만합니다.
㈂또 사회적인 교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지위가 높다고 혼자 잘난 것처럼 생각하는 교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앙적인 교만도 있습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잘 믿는다고 착각해서 ‘저렇게 믿는 것도 믿음이냐?’고 비판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교만에서 오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포도송이는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아래로 숙인다’라는 말이 있고, 우리 속담에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겸손과 교만 중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멘!/
▶성경에 보면 교만의 '만'자를 쓰는 단어가 세 가지 나오는데 그 뜻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교만, 거만, 오만'입니다.
㈀교만은 '남보다 뛰어난 것이 있다고 뽐내면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거만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으스대는 것'인데, 이것은 눈뜨고 볼 수 없는 꼴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데 혼자 잘난척합니다. 그런 사람은 남의 앞잡이 노릇만 잘합니다. 일본 외정 때 앞잡이들이 다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인격이 없기 때문에 밤낮 남에게 이용만 당합니다. 이런 사람을 '꼴값'한다고 합니다.
㈂오만은 무엇입니까? '사람만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까지 업신여기는 것'인데 거만 보다 더 나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 오만 방자한 사람입니다. /할/
▶그렇다면 교만은 무엇인가?
㈀뭐니뭐니해도 교만은 하나님께 영광(찬양, 예배)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입니다. 사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고 고전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또한 전12:13절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할/
㈁교만은 욕심입니다. 시기는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것인데 욕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을 나타내고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자신의 부족을 모르는 자,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는 자도 교만한 자입니다.
자기의 죄를 아는 것이 겸손이요, 자기의 부족을 모르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선하다고 의롭다고 생각하며 '나 정도만 깨끗하라고 해! 나 정도만'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허물과 그 죄에서 구원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추호도 못합니다.
교만했던 바리새인은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과 같지 아니함을 당신께 감사하나이다.' 독선적이며 자기만족과 자만으로 가득 차 있던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이 외면하셨지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가슴을 친 세리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믿/
㈄교만한 자의 보응은 무엇인가? 여러 보응이 있습니다 만은 잠16:5절에 보면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 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또 삼하22:28절에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할/
▶이제 겸손은 무엇이며 그의 보응은 무엇입니까?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겸손의 본을 우리 주님이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하지 않고 하늘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기의 죄와 부족을 깨달은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비우는 것이요,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하늘의 영광 보좌를 포기하시고 마지막에는 생명까지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은 섬기는 종의 생활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마20: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겸손한 사람은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해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낮춤을 통해서 겸손해지는 사람은 존귀를 얻습니다. 존귀는 높은 지위를 얻게 되고, 부유하게 되고, 명예롭고, 존경할만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할/
㈄겸손한 자의 보응은 무엇인가? 많은 것이 있습니다 만은 잠22: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할/ ▶재물의 축복을 받습니다. 소유가 점점 많아지고, 풍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영광의 복이 따릅니다. '영광'은 '명예의 축복'을 말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게 됩니다.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축복하시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려 주시는 것입니다.
▶생명의 복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생명'은 '건강과 장수의 축복'을 말하고, 영원히 사는 영생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 잘 지켜주셨다가 저 영원한 천국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할/

 

⑴웃시야가 언제 교만해 졌는가? 강성하여질 때 교만해졌습니다(16).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이 짧은 구절에 웃시야가 실패하게 된 요인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는 승승장구했습니다. 그 상황을 성경은 '강성하였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강성함이 오히려 그를 교만하게 만들었고, 그 교만함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데까지 이르게 합니다. /할/
그는 누구 때문에 강성해졌는데, 그걸 잊었습니다.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하나님이 도우사'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그렇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잘 되었는데 그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린 자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호8:14절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고을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사람은 자신이 성공하고, 승리하고, 잘 되고, 풍요롭고, 건강하면 그 이전의 모습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잘 될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0:12절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할/

 

⑵정치행위와 종교행위를 구별 못하고 분향한 것, 이것이 교만입니다(16).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웃시야가 강성해지자 교만하여 악을 행했습니다. 이에 대제사장 아사랴는 젊은 제사장 80인을 동원하여 왕을 말렸으나, 그는 노를 발하며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열왕들은 교만해지거나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면,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고 여호와의 성전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웃시야는 특이하게 성전에 함부로 들어가 분향하려고 했습니다.
웃시야가 향단에 분향하려 했던 것이 왜 죄가 되는 것인가? 그것은 레위 지파 중 아론 자손의 제사장들이 맡은 고유의 임무였습니다(민18:1-7). 그 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손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 법을 무시한 것은 그 법의 창시자인 하나님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제사 의식에 아무런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던 웃시야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한 나머지 제사장 아사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향단에 분향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교만한 불 신앙적 태도요, 큰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할/
빈센트(Vincent)는 말하기를 '교만은 하나님의 군대를 불러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웃시야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간 것도, 향단에 분향하려고 한 것도 모두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행위입니다. /할/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스가랴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스가랴가 살았을 동안은 주님의 말씀으로 왕을 가르쳤고 왕은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스가랴가 죽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고하는 이가 없습니다.
스가랴가 살아서 말씀의 잔소리를 하며 영적 영향력을 미칠 때, 웃시야는 곁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교만의 함정에 빠져 헤어나질 못합니다. 실은 다른 제사장들이 왕을 만류하였습니다(18절). 그러나 듣지 않고 화를 냅니다.

 

⑶그 결과가 19절입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21절을 보세요! '웃시야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이스라엘의 개념으로 문둥병이란 하나님의 매며, 징계입니다. 문둥병에 걸렸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매를 맞았다는 뜻입니다. 민12:9-10절에 보면, 미리암이 모세를 원망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미리암을 문둥병으로 때리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성공하는 것도, 복을 잃고 실패하는 것도 주의 종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웃시야의 실패는 문둥병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열 왕의 묘실에도 장사되지 못한 것은 왕으로서의 특권까지 영원히 상실한 것입니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야 하고, 주의 종과도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성공했을 때도 절대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의 절개를 잘 지키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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